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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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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삶을 원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살고 싶었다. 몇 년 전 까지 나는 잘 살았다. 아니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행복’이라 믿게 해주는 삶의 요소들, 가령 긍정적 마인드와 쾌활함의 원천이 되는 친절함이 나로 하여금 잘 살고 있다는 자만에 빠지게 했던 것 같다. 젊은 날, 유난히 성공을 갈구 했던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외치는 성공하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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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삶을 원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살고 싶었다. 몇 년 전 까지 나는 잘 살았다. 아니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행복이라 믿게 해주는 삶의 요소들, 가령 긍정적 마인드와 쾌활함의 원천이 되는 친절함이 나로 하여금 잘 살고 있다는 자만에 빠지게 했던 것 같다. 젊은 날, 유난히 성공을 갈구 했던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외치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자기계발서를 읽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도처에 넘쳐나던 행복하기 위한 방법들, 성공하기 위한 캐치프레이즈 문구가 길거리 현수막처럼 나부끼던 시절이었다. 문득 이 책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제목이 마치 지난날의 '나'를 향한 물음인 것만 같아 오랜 동안 행복만을 목표로 질주해 오던 지난 날들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맹목적이었던 행복의 추구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에게 행복의 추구는 곧 성공이었고, 성공은 곧 최고의 삶이었다.

 

지난 봄, 갑자기 아팠다. 불면증과 멜랑꼬리의 과잉이 불청객처럼 찾아와 나를 괴롭히면서 온 몸에서 이상신호가 울려댔다. 평소 건강을 자신하고 있었기에 처음으로 느꼈던 몸의 이상신호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아픔이 오래가면서 내 인생 처음으로 삶의 지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목표'를 정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해야 하는 성격이었고 습관처럼, 강박처럼 그것이 곧 행복이라 믿어왔다. 아프고 나서야 나는 '잘 ' 살고 싶었던 삶의 표적이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의 의미와 가치는 외면한 채 좋은 차와 좋은 집, 좋은 옷과 같은 물질적인 '잘' 삶만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여 생각하다보니 침울해 지고 자신감이 점점 상실해 갔다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잘 산다는 것을 하나의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지만,  삶에서 나 스스로가 가치를 만들고 의미를 만들지 않았기에 아팠다.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물음은 더욱 확고해져 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조하는 삶'이 최고의 삶이라 하였듯이 저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삶을 관조하게끔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철학과 사색이 부족한 시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자양분은 '관조'함으로 얻게 되는 실천적 지혜이다. 철학자 바지니와 심리학자 마카로는 삶을 관조하는 방법으로 스무가지의 질문들을 통해 철학적 사색과 심리학적 분석으로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있다. 철학과 심리학을 통해 '최고의 삶'을 정의해 주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삶'을 관조할 수 있도록 조망해 주는 것이다.

 

 한 번 쯤은 우리의 삶에서 질문 해 보았음직한 질문들인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인가에서부터 행복이 인생이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와 같이 가장 기초적인 가치 개념부터 재정립 해 나간다.  최고의 삶에 부합되는 행복이라는 정의를 심리학자 마카로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 행복해질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하며 철학자 바지니는 행복하지 않아도 삶에 만족하며 멋지게 살수 있음을 조언해 주고 있다. 서로 상충되지만 가치와 의미에 주목하고 있는 이들의 시각을 통해 '최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은 책이다. 오히려 삶에서 최고의 목표였던 행복을 저자들은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일과 자기 삶에 의미를 주는 일 다음의 부차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행복을 만들어 내는 데에만 급급하여 행복의 이유를 찾기 보다는 삶에 가치를 두고 의미를 찾으려 하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최고의 삶'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책을 통해 나의 삶을 반추해 나가며, 내면으로의 여행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오늘 자 한겨레 신문 특별기고문에서 도정일 교수는 인간이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지구 바깥에서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지상에 살면서 살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고 채워 넣지 않으면 안되는 생존의 부채같은 것이라 했다. 저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관조하는 삶의 방법을 철학과 심리학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며 공허와 허무라는 여백의 삶에 생존을 위해서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까지 삶에서 빠져 있었던 질문 스무가지를 통하여  내 삶을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관조하는 삶'은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결코 얻어질 수 없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산을 오른다.  정말로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내가 멋진 삶을 살았다고 사람들에게 전해주시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4.10.24. 신고 공감 11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낙엽의 계절, 마이웨이를 듣는다
"낙엽의 계절, 마이웨이를 듣는다" 내용보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오색으로 물들었던 단풍잎은 짧은 순간 낙엽이 되어 거리에 쌓인다.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기에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의 손길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이유는 자신의 삶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단풍과 노을 그리고 인생의 가을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아름답지만 한 순간이라고 할 만큼 짧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
"낙엽의 계절, 마이웨이를 듣는다" 내용보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오색으로 물들었던 단풍잎은 짧은 순간 낙엽이 되어 거리에 쌓인다.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기에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의 손길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이유는 자신의 삶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단풍과 노을 그리고 인생의 가을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아름답지만 한 순간이라고 할 만큼 짧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을은 슬픈 노래가 어울린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드립 커피 한잔을 내리며 듣는 김광석의 노래는 멜로디보다 가사가 주는 아픔이 더 처연하게 다가온다. 단풍은 1년이 지나면 다시 물들 수 있고 노을은 다음날 저녁이면 붉게 빛날 수 있지만 청춘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을은 외로움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나아가 낙엽과 동일시 되어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삶은 더욱 아프다. “무엇을 하며 살았지?” 이 질문 속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회한이 서려있다. 세속주의 가치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구차한 모습이지만 한편으론 안정할 수 없다는 오기 때문에 변명하고 싶다. 이때 발견된 책이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책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또 “이렇게, 저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란 비결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하면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보다 나은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혜서라 할 수 있다. ‘행복, 욕망, 지위, 죽음, 감정, 외모, 삶의 의미, 육체, 영혼’ 등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의 내적인 가치에 대해 철학자인 줄리언 바지니와 심리학자인 안토니아 마카로는 독자들에게 쉬운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소크라테스처럼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제시한 질문들 가운데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인생에서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질문 20가지를 논하고 있으니 마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다’는 말처럼 이 책은 머리를 어지럽히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한 번 더 읽는다면 조금씩 깨달음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추천한 연세대 김형철 교수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시하는 책으로 일독一讀이 아니라 다독多讀을 권한다.’라고 말한다.

 

이름 꽤나 알려진 교수나 저자들의 인문학 강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지역 도서관은 인문학 강좌가 줄줄이 이어지고 출판계는 인문학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인문학 열풍이다. 그런데 인문학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는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인문학과가 통폐합되거나 폐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까?  인문학은 바른 삶에 목말라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이 학문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열풍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저열한 밥벌이 수단보다 못하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가치에 물들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른 삶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작가 박완서는 그의 수필집 ‘세상의 예쁜 것’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어디엔가 높은 정신이 살아 있어야 그 사회가 살아 있는 것과 다름없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 한 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것들이 많겠지만 외적인 것에 치우칠수록 그 사회는 물질적인 가치가 중심이 된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은 높은 정신이 죽었기에 인간은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회의감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와 비교해 본 모습이 너무 초라하기에 “뭐하고 살았나?” 란 자조적인 한숨이 나오는 것은 최고가 아닌, 실패한 삶을 인정한 결과다. 이런 자괴감 때문에 가을은 슬픈 계절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이 책은 슬픈 인생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

촌철살인처럼 이 책속에는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야 할 많은 지혜로 가득 차 있다. 그중의 하나 ‘자신을 최상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굳이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해 질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그 뒤로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더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만들어내기 위한 진심어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된다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81쪽)

“하면 된다.”는 막연한 믿음이나 확신으로 가득한 자기계발서보다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라며 이 책은 수 없이 노력을 강조한다. 이 나이에 무슨 노력이라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둔다.’는 것이다.  이제 목표를 정해놓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것이 어울리는 나이는 아니다. 그렇지만 포기하고 좌절할 나이는 더욱 아니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렇게 삶의 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고 매일 매일을 음미하며 사려 깊은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 (133쪽) 이 충고는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인생의 가을을 지낼 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는 배움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 외적인 성공보다는 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경쟁에서 이겼다는 승리의 쾌감은 아니다. 누군가에 비해 초라하고 인정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이 듦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은사시나무는 낙엽이 진 후, 눈보다 더 하얀 몸과 앙상한 가지로 매서운 바람을 이기며 겨울을 지난다. 봄보다 아니 여름이나 가을보다 겨울이 더 아름다운 은사시나무를 보고 싶은 이유는 자신의 인생도 이와 같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다. 최고가 아니기에 삶에 대해 깊은 회한의 한숨을 쉴 때 저자는 이렇게 인생을 충고한다. 인간이란 ‘그의 행동의 총합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며, 그가 살아온 삶이 곧 그 자신이다.’ 사르트르의 말이다. 이 한 구절을 읽는 순간 정신은 도끼에 맞고 결을 따라 쪼개지는 나무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 대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이 모습은 누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삶의 결과일 뿐이다. 이제야 자신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20대 시절 뜻 보다는 멜로디가 좋았고 특히 후랭크 시나트라 라는 이름 때문에 흥얼거렸던 노래가  ‘My Way’ 다. 이 책을 읽으며 그 가사를 이제야 음미한다.

 

‘I did what I had to do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네.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도망가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해냈지‘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을 닫으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런데 그 답은 철학자나 심리학자의 지혜나 아니라 뜻도 모르고 흥얼거렸던 ‘My Way’ 속에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 그것이 남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답이다. ‘올바른 삶과 가치’는 이론적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도망치지 않았을 때 남겨진 삶의 기록이다. “최고가 아니면 어떨까? 아니, 실패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해냈다”는 데 있다 이 한 가지 깨달음만이라도 자신의 것이 되었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어떤 힘듦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회복이 있다면 이 책은 돈 몇 푼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j*****r 2014.10.24. 신고 공감 10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최고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아가는 길을 배우다.
"최고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아가는 길을 배우다." 내용보기
2학기 1차 지필고사가 치러지는 교실 일찍 등교한 학생들은 제자리에 앉아 책에 눈길을 고정한 채 책장 넘기는 소리로 정적을 가른다. 지난밤에 외운 내용을 행여 놓칠세라 연습장에 그 내용을 옮겨 적으며 확인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시험 기간은 1등급을 향해 경주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2015학년도 수시전형을 준비하며 내신 불변의 법칙을 확실히 알게 된 덕분에 남은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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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학기 1차 지필고사가 치러지는 교실 일찍 등교한 학생들은 제자리에 앉아 책에 눈길을 고정한 채 책장 넘기는 소리로 정적을 가른다. 지난밤에 외운 내용을 행여 놓칠세라 연습장에 그 내용을 옮겨 적으며 확인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시험 기간은 1등급을 향해 경주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2015학년도 수시전형을 준비하며 내신 불변의 법칙을 확실히 알게 된 덕분에 남은 시험에서 그동안 미진한 부분을 만회하여야 원하는 대학에 원서라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저조한 내신 성적으로 선택조차 할 수 없는 비참한 성적은 비상하려는 욕구까지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잘 아는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기 전부터 적자생존의 논리에 맞부딪혀 최고의 등급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양상을 띤다.

 

   지금 1등급으로 최고가 아니라고 실패한 인생이라는 낙인을 찍고 어떤 희망도 갖지 않는다면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고 마는 일일 것이다. 1등만을 최고로 여기는 일등지상주의의에 사로잡혀 강박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동안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많은 이들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 지금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답하였다. 행복을 위해 강박적으로 자유를 옥죄며 살아가는 일이 만족스러운지 되물으며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며 스무 가지의 철학적 물음에 답하며 철학과 심리학이 변주하는 삶의 질서에 통찰하는 힘을 불어넣고 있다.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지 못한 채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감정의 노예로 단순하게 움직이는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어 스스로가 미워질 때가 있다. 자식과 거리를 두지 않고 엄마가 기대했던 대로 움직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앞세워 닦달할 때 영혼은 어디로 도망가 버린 것은 아닌지 의아스러워 할 때가 많다. 영성의 힘을 믿으며 이성을 앞세워 행동할 때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개선될 것처럼 여기어왔는데 인간관계는 법칙처럼 인과적 질서대로 움직여지지 않음을 절감하며 살아간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성찰과 행동이 조화롭게 이뤄지는 일상을 위해 석학들의 가르침을 들으며 그동안 저질러 왔던 과오의 굴레에서 나와 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를 배운다.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접하며 원인과 결과를 따져 선악을 판가름하기에 앞서 일련의 양태와 상황을 관조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자리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으로 조절하며 살아가는 일이 필요하다. 여러 경험 속에 자신을 이뤄온 점을 각인하고 자신의 인성 형성에 대한 책임은 유전과 환경을 탓하기 전에 올바른 습관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행복한 삶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번영에 뜻을 두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 습관으로 이을 때 우리 삶은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가시적인 재물 축적에만 급급하여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의미를 저버리는 오류에서 벗어나 타인과 더불어 즐거운 인생을 찾는 일이 소중한 선택이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명령을 금언처럼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여길 때가 많다.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사는 일이 타인에게 사랑받는 자신은 아닐진대 자의적인 언행으로 일관하며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자전거 바퀴가 맞물려 굴러가듯 복잡 미묘한 인생 역시 자기비판을 통해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를 면밀히 살펴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인생을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편으로 여겨진다. 사회적 계약과 동시에 이뤄지는 여러 책임에 묶여 자신을 옭아매기보다는 자신이 결정한 선택에 집중함으로써 중요한 판단을 놓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성공은 자신의 가치에 따라 사는 것이다.’

  라는 러스 해리스의 말대로 통념이 정한 대로 움직이며 살기보다는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인생의 중심에 서서 중요한 가치를 찾아가는 일은 정체성 있는 인생을 위한 철학의 구심점으로 생각되었다. 조금 뒤처지더라도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색깔로 인생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갈 때 만족할 만한 일상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일상을 음미하며 사려 깊게 판단하고 그 선택에 집중함으로써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일이 더 중요한 가치로 다가왔다. 단기적 만족과 장기적 이익의 대결이라는 숱한 경쟁에서 중심을 바로 세우며 살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수용하여 합리적 판단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조율의 수위를 높여 갈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갈수록 오리무중인 상황이 늘어나서인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반문할 때가 많아진다. 목표에 부합하는 실천만 내세우기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인지 성찰하고 조명함으로써 더 큰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낸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지속함으로써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일상을 살아갈 때 지금의 삶은 한결 나아질 것이라 믿고 싶다. 완벽한 성공에 사로잡혀 지금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씩 번영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n*****9 2014.10.12. 신고 공감 8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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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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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평할 때 주변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부지런 함이다. 지금도 나에겐 강박 비슷한 것이 하나 있는데 한시도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다. 그 압박으로 인해 생긴 것이 바로 부지런 함이니... 나도 참 피곤한 인생을 사는 사람일 게다. 하지만 지금의 부지런함이 예전보다는 많이 고쳐진 부지런함이라면 예전의 나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도 리뷰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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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평할 때 주변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부지런 함이다. 지금도 나에겐 강박 비슷한 것이 하나 있는데 한시도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다. 그 압박으로 인해 생긴 것이 바로 부지런 함이니... 나도 참 피곤한 인생을 사는 사람일 게다. 하지만 지금의 부지런함이 예전보다는 많이 고쳐진 부지런함이라면 예전의 나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도 리뷰를 통해 나의 20대를 곧잘 이야기했지만... ^^ 다시 언급하자면.. 나의 20대는 미친 20대였었다. 그렇게 살아야 최고가 되고 성공하는 줄 알았으니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대학이라는 관문.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잠을 줄이는 것 뿐. 그게 당연한 것이고, 누구나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던 나였으니까.

 

그런 내가 29살에 결혼을 했고, 30살에 아이를 낳으면서 회사를 퇴사했고 멘붕에 빠져버렸다. 표면적으로 시간이 남아도는 것 같지만 한시도 아이한테서 시선을 뗄 수 없고, 내가 아닌 아이를 위해 쓰게 되는 시간이 나는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 단 한 번도 누구를 위한 인생을 살아본 적 없고, 누구를 위해 희생을 감내해 본적도 없었다. 오로지 앞만 봤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들. 그 인생들이 모두 백지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위기감에 심한 우울증도 앓게 되었다. 그럼에도 정신(?)을 놓지 않은 이유는 다시 사회로 나갈 거라는 희망의 끈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도 작은 아이가 생기면서 산산이 부서졌고, 다른 끈을 잡지 않으면 우울의 우물 안으로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 내 멘탈이 유리가 아니어서 빠르게 합리화를 시작했다. 기회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은 늘 그렇다. 선택과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용. 두 가지를 모두 취할 수 없기에 선택 했다면 그 선택에 집중해야 한다고. 당시의 나는 육아를 선택했고, 지금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물론 30. 아이를 키우는 10(30대란 나이는 참 묘하다. 어떻게든 내가 사회로 나가겠다면 받아 줄 것 같고, 아직은 그 능력이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은 충분히 예쁠 수 있는 나이고, 가능성이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기에 미련이란 놈이 끈질기게 붙어서 부채질 하는 것 같다.)은 끊임없이 싸우는 정신들로 피곤했지만... 나라고 사회생활에 미련이 없었을까? 아니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나는 끊임없이 나를 다독이고 위로 했다. ‘최고가 아니어도 좋다. 현재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위로하고 다독이며 우울의 우물로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니까.

 

아이와 사회라는 둘레 안에서 끊임없이 방황할 때 나를 지켜주고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은 바로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 그리고 책이었다. 책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고민이 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고군분투도 있다. 그런 과정 안에서 철학자나 심리학자 또는 옛날 성인들의 글을 찾다보면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된다. 이번에 만난 책은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한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하는데 쉽게 그리고 편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늘 철학자의 책을 읽다보면 느끼는 건데 평범한 독자를 위해 물 흐르듯 편히 읽히는 책을 써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모두 20개의 의문들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씩 했을 법한 질문들이다. 평범한 나에게 생기는 의문들, 삶의 질문들은 또 그렇게 나름의 방법으로 결론이 나고 삶의 지혜들로 쌓이는 이야기들이다. 다만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이야기 했을 때 보다 멋있고 설득력 있게 비춰질 뿐이지만.

 

요즈음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은 바로 책 제목 그대로다.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최근 몇 년간 책을 읽고,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는데 이 책에서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그 해답을 이야기 해 준다. 나는 최고라는 것. 성공이라는 것. 그 의미는 사회가 정해 놓은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 삶의 잣대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성공으로 붙잡아 둔다면 성공하거나 최고가 된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개인이 만들어 놓은 자신만의 잣대가 있다면 누구나 삶은 최고이자 성공한 삶이 될 수 있다. 나는 마흔 넘는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내가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남들이 봤을 때 나는 아이를 키우며 하찮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시선에 맞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성공 기준에 준하며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가 살아온 삶이 곧 나 자신인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람이 태어나 죽게 되는 그 순간까지, 그 누구도 내 삶에, 타인의 삶에 실패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최고가 아니었고, 성공하지 못했고, 이름을 날리지도, 높은 지위에 앉지 않아도 죽는 순간, 나는 참 행복한 혹은 기분 좋은 인생을 살고 가니 좋다... 라는 마음을 먹었다면... 그 사람이 진짜 최고의 삶을 산 것은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쭉 삶에 대한 많은 의문을 가지고 생각하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건 내가 철학자나 심리학자 혹은 뭔가 논문을 내려고 생각하는 것들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갖는 의문들은 나를 인간답게 사는 방향키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철학자나 다른 성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날이 오게 될 거라 믿는다. 그들의 말처럼 어렵게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오늘 내 방식대로 쉽게, 최고는 아니지만 실패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 인생에 대한 의문을 제시할 때 내 방식대로 이겨나간 방법을 이야기 해 주리라. 나는,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우리만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매일 행복하진 않아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4.10.20. 신고 공감 6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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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척추 교정사와 시력 교정사...
"나의 척추 교정사와 시력 교정사..." 내용보기
허망이라는 단어를 가슴 가득 새가게 되는 날이 있다.정말 누구보다 달려왔다고 자신하는데 알고보니 사실은 늘 제자리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바로 그런 날이다. 열대의 스콜처럼 허망감의 폭우가 뇌리를 가득 적시고 '그동안 도대체 나는 뭘했나?'하는 자조가 물보라처럼 몽글몽글 일어난다. 허무로 젖은 마음의 대지는 이제 자기 비하의 늪이 되어 나를 삼켜간다. '뭘 해도 난 안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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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이라는 단어를 가슴 가득 새가게 되는 날이 있다.

정말 누구보다 달려왔다고 자신하는데 알고보니 사실은 늘 제자리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바로 그런 날이다. 열대의 스콜처럼 허망감의 폭우가 뇌리를 가득 적시고 '그동안 도대체 나는 뭘했나?'하는 자조가 물보라처럼 몽글몽글 일어난다. 허무로 젖은 마음의 대지는 이제 자기 비하의 늪이 되어 나를 삼켜간다. '뭘 해도 난 안 될거야'라는 레퀴엠이 사방에서 흘러들어오는 가운데 무력감이 빚어낸 비애가 무덤의 흙처럼 마지막으로 나를 뒤덮고 만다.


 이런 매장을 생각해보면 난 참 무던히도 반복해왔던 것 같다. 삶은 자주 날 허무의 강으로 인도하였고 그 때마다 수면 위에 비친 덧없음의 자화상을 보면서 늘 떠올렸던 물음은 하나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할까?


 하지만 정말 물어야 했던 질문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한 권의 책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머리를 타종하듯 알려준 장본인이 바로 줄리언 바지니와 안토니아 마카로의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라는 책이다.


 줄리언 바지니는 철학자고 안토니아 마카로는 심리치료사다. 하지만 내게 있어 바지니는 굽은 등을 곧추세워주는 척추교정사 같고 마카로는 시력교정사 같았다.


 바지니의 말을 듣다보면 나는 지금까지 흡사 남이 흘린 돈을 찾으려고 내 발끝만 보고  살아온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나는 너무 결과에 집착했는데 생각해보면 그 집착은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남의 인정을 얻기 위한 것이 많았던 것이다. 알고보면 나를 죽어라 달리게 만든 채찍은 다름아닌 남의 시선이었으니 정말 남이 흘린 돈이나 주으려고 발끝만 보고 가는 삶이라 무엇이 다르겠는가? 바지니는 그런 나의 굽은 등을 곧추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곧게 편 등으로 내 주위를 둘러싼 많은 풍경들을 보게 한 것이다. 삶의 목적은 내가 되어야 할 것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바지니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알려주었다.


 한 편, 안토니아 마카로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쳤다. 사실 나의 불안도, 부족도 모두 내 실존의 부분으로 인정하라는 마카로의 말은 얼른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의 거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거기서 거울은 늘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여왕은 그 진실 때문에 불행해졌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는 여왕의 시선이 잘못되어 있었음을.


 거울의 대답을 강요하는 여왕의 모습에서 잘 드러나듯이 여왕은 자기 삶에 대한 긍정의 시선을 온전히 남에게만 맞추고 있었다. 그녀는 내면에 간직된 빛은 보지 못하는 비유하자면 '원시'였다. 타인의 인정만이 눈에 들어왔고 그랬기에 남이 한 작은 하나의 부인에도 큰 상처를 쉽게 받았다. 그녀의 삶이 그토록 불행했던 건 삶의 만족을 오로지 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실도 그녀에겐 독이 되었던 것이다. 마카로의 말들은 바로 그것을 보게 했다. 그녀는 나를 근시로 만들어 남이 미처 보지 못한, 그리고 나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를  찬찬히 헤아리는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바지니와 마카로는 척추교정사와 시력교정사가 되어 내가 정말 어떻게 보고 또 어디에서 참 가치를 찾아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었다. 이제와 깨닫는다. 내가 왜 그토록 삶의 가치에 대해반복적으로 허다한 갈증을 느껴야 했던 것인지.

 높이 성공하고자, 많이 행복하고자 하는 바람이 없었는데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덧없음의 초상화를 마주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애초에 내가 너무 타인의 인정에 얽매여 있던 탓이다. 남들의 빛을 자기 빛으로 알고 마냥 따라다니다가 어느 틈엔가 꺼져버린 내 빛을 뒤늦게 깨닫고는 절망에 빠져버린 반딧불이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의 빛으로 내 몸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빛으로 나를 환하게 만드는 것임을 타종 뒤의 긴 여운처럼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빛은 차별이 없다. 세상 어느 깊은 골짜기에 있는 웅덩이라도 일단 빛이 들어가기만 한다면 빛은 그 수면을 반짝이게 만든다. 수면도, 돌멩이도, 유리창도 그 어느 것이든 빛은 똑같이 반짝임을 나눠준다. 그게 바로 긍정의 모습이리라.


 그 빛처럼 나의 모든 것을 이대로 긍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삶을 온전히 껴안고 싶다. 물론 여전히 낙담의 스콜은 날 적실 것이고 불안의 황혼은 날 물들게 할 것이며 좌절의 웅덩이는 날 실족시킬 것이지만 그래도 모처럼 가지게 된 이 앎을 지키고 날로 벼려간다면 언젠가는 그 통증도 아무렇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허무의 강조차 아련하게 먼 기억이 되는 때가 곧 오리라는 것도...


 

l****1 2014.10.24.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철학과 심리학이 삶에 지친 당신에게 던지는 조언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철학과 심리학이 삶에 지친 당신에게 던지는 조언" 내용보기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말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이 사회가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사람들은 물질적인 성공을 추구하도록 세뇌 당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빨리빨리’를 외치는 문화 속에서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것만 같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만연해 있는 부조리함 속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할 수밖에 없다.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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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말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이 사회가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사람들은 물질적인 성공을 추구하도록 세뇌 당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빨리빨리를 외치는 문화 속에서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것만 같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만연해 있는 부조리함 속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할 수밖에 없다.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들과 각종 매체에서는 무한긍정태도를 설파하고 현실의 고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미래의 희망을 담보로 지금의 현실을 잊도록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오늘 하루의 가치는 무시되기 일쑤 아니던가. 얼핏 생각하면 위의 문장 역시도 개인의 마음가짐이 문제라고 말하는 듯하다. 당신이 사고방식을 바꾸면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패턴은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러이러하게 행동해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여태까지 읽었던 자기계발서가 최소로 잡아도 백 권은 넘는다. 순간의 만족감, 내가 조금만 애쓰면 성공을 낚을 수 있다는 잠시 동안의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는 측면으로 보면 그 가치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이조차도 결국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는데 내 삶은 변화한 것이 별로 없다. 실행에 옮기지 않아서 혹은 당신이 변하지 않아서 여전히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후로 자기계발서는 독서목록에서 사라졌다. 자기 계발에 지친 당신에게라는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하는 두 분야, 철학과 심리학이 한 권의 책 속에서 삶에 관한 공통의 주제를 논하며 녹아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가진 편견으로 결론 내렸지만,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개념을 다루는 철학과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 해석하고 분석하는 심리학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두 분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다.

 

철학은 삶 속에 근원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어려움과 자아가 가지는 한계를 짚어 준다. 인간이기에 근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삶의 태도에 대한 지적이다.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 자아 속에서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원인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봉착하게 되는 외적인 고난과는 달리 문제해결의 방향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통속적인 기준에 따르고자 함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은 관점의 변화만으로도 해소될 수 있다. 사회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목표는 좋은 집, 좋은 차를 얻고 많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라고. 나도 알지 못하는 새 그렇게 되어야만 내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속적으로 정의된 성공을 이루는 것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행복 자체가 목표가 되어 있었고 나는 그곳을 향해 정신 없이 달려가는 와중에 발생하는 또 다른 목표들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철학자는 말한다. 행복하지 않아도 삶에 만족할 수 있다고 말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타인들에게 나눠주었고, 명성이 드높던 시기에도 시골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았다고 한다. 62세에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그가 한 말은 좋군요!”였다고 한다. 얼핏 보면 이 사람이 추구했던 목표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통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죽음에 직면해서 했던 말이나, 자신이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복과 삶에 대한 만족은 별개의 문제이고, 내가 행복을 목표로 삼고 질주하지 않아도 삶 속에서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철학자는 목표라는 것이 가치가 있으려면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 자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만들고,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해냄이 아닌 하고 있음에 초점을 두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가진 목표들이 가진 문제점들을 알았다. 너무 막연하고 해냄이 일어났을 때에 대한 환희만을 고려했다. 목표를 향해 한 단계씩 나아갈 때 각 과정이 내게 줄 수 있는 만족감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못했다.

 

한편, 심리학은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심리학자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 보다 행복해질 이유를 찾으라고 말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 집착하다 보면 그 자체가 행복을 훼손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행복해져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너무나 모호하게 막연하게 그래야 한다라고 생각했을 뿐, 행복하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명확히 따져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심리학자가 제안하는 방안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잘살기번영과 같은 목표를 세우라는 것이다. 자신이 가치 있다 여기는 일, 삶에 의미를 주는 일에 온 힘을 다한다면 행복은 부차적으로 따라온다라는 관점이다. 또 하나, 목표에 집착하기 보다는 가치에 집중하라고 했다. 내가 가진 목표가 지닌 가치들을 생각해 보았다. 남들이 하니까 해야 된다고 여겼던 일들,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더 잘나가야 된다고 스스로 옭매던 강박관념들, 수많은 목표들 중에 이타적인 마음가짐으로 세웠던 목표를 제외하고는, 하나 같이 그 가치가 형편없었다. 가치 없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따져봄 없이 추구해 왔으니 목표치가 달성되기 이전까지는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목표들은 처음부터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너무나도 이상적으로 현실을 무시하고 설정된 것은 아닌지, 그 목표가 내 삶에 있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 충실할 수 있겠는지 재점검해봐야 한다. 또 목표에 너무 집착하여 주변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심사숙고 해봐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학문이 삶을 바라봄에 있어 공통적으로 지닌 논지가 있다. 삶에 정답이란 없고 개개인이 처한 상황, 환경은 전부 다르다. 내 자아, 내 마음 속은 시시각각 새로이 생성되고 변화한다. 삶이 주는 가치라는 것은 절대적 기준이 존재할 수 없고, 포괄적으로 묶어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 학문 모두가 삶의 순간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미래를 계획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삶이 순탄하다 즐겁다라고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인생이란 반복해서 문제들이 생겨나고,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 진 사회는 필연적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수반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함은 다른 것들을 무시하고 너만 바뀌면 잘 살아갈 수 있다의 강요가 아닌, 불합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삶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이 두 사람은 정답을 말해주진 않는다. 당신이 몰랐던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으니,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어때라고 돌려 말하는 듯하다. 두 사람이 당신들은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래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쳤더라면 나는 이 책을 덮었을 것이다. 타인의 주장대로 내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은 철학과 심리학의 삶에 대한 견지는 내 시야를 넓혀 주는 역할을 했다. 한 번 읽고 전부가 와 닿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쉽게 내 것이 될 수 있는 문제라면 누가 삶에 대해 힘들어 할까.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내 안의 욕망들과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삶이 지칠 때 두고두고 펼쳐보면 좋을 듯하다. 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가 헤쳐나가야 할 인생의 레이스에 든든한 조언자를 만난 기분이다.

a*****0 2014.10.24.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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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 정도면 된 거야, 오늘 하루도.
"맞아. 그 정도면 된 거야, 오늘 하루도." 내용보기
나는 선생님이 없다. 서른을 훌쩍 넘겨, 이제는 한 아이의 아비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정말 선생님이 없다. “선생님, 정말 힘드네요. 후... 선생님은 어떻게 사셨어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라고 죽을 만큼 힘든 그때, 술 한 잔 기울이며. 아니, 술 한 잔 아니더라도 전화로라도. 아니, 카톡(참, 카톡은 안되지. 텔레그램?)으로라도. 아니면 밤 늦게 집 앞에 찾아가서
"맞아. 그 정도면 된 거야, 오늘 하루도." 내용보기

나는 선생님이 없다.

서른을 훌쩍 넘겨, 이제는 한 아이의 아비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정말 선생님이 없다.

“선생님, 정말 힘드네요. 후... 선생님은 어떻게 사셨어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라고 죽을 만큼 힘든 그때, 술 한 잔 기울이며. 아니, 술 한 잔 아니더라도 전화로라도. 아니, 카톡(참, 카톡은 안되지. 텔레그램?)으로라도. 아니면 밤 늦게 집 앞에 찾아가서라도.

 

나는 그런 선생님이 없다.

대학 3학년, 휴학 1년을 결정하고 졸업 후 학사장교로의 진로를 변경할 때 상의할 선생님이 없었다. 전역 후 이틀만을 쉬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의논할 선생님이 없었다. 돈을 잘 버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 진지하게 고민을 쏟아낼 선생님이 없었다.

친구 놈이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 배가 아프다. 나는 왜 저런 선생님이 없을까. 짜증이 난다.

모르겠다. 나는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은데, 선생님들에게는 더 잘해주고 싶은 학생? 관심이 가는 학생? 평생의 제자로 삼고 싶은 학생은 아니었나 보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이치와 상식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했을 뿐인데, 그 선생은 영화에서처럼 시계 줄을 풀더니 폭력을 가했다. 맞으면서도 내가 왜 맞는지 몰랐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건 분명 훈육이 아닌 폭력이다.’라고 생각되었다. 그 선생으로 인해 내 학창시절을 거친 모든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후로 ‘선생님, 교사’라고 하는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와 비하, 냉소와 조롱이 체(體)화되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 교사’ 분들은 여럿 만났지만 내 편견은 쉽게 걷히지 않았고, 당연히 ‘내 선생님’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슬픈 일이다.

 

 

이 책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는 내게 선생님은 될 수 없지만, 곁에 두고 반복해서 꺼내 보고 생각하고 또 고민하고 성찰할 만한 문장과 권유로 가득한 책이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두 명의 저자는 책의 앞뒤에서 분명히 얘기한다.

자기계발·자기계발서라는 것이 극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에서만 지난한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프랑스와 유럽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한 번 휘익~ 하고 불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유럽도 별 수 없구만~’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프랑스에서도? 아니 그럼 자기계발서가 맞는 건가? 다시 사서 봐야 하나?’라고 생각해야 할지.

웃픈 일이라고 밖에.

 

 

“정말 인내심만 기르면 행복해질까?” (p.11)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펼쳐내는 인생 이야기는 단지 자신들의 전공만 늘어놓거나 허접스러운 위로 따위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계발과 자기계발서를 펴낸 유명한 사람을 그토록 비판하면서도 고작 대중들에게 하는 것이 간단한 윽박지름 정도에 불과한 가학적 상담을 내놓는 강 모 철학자와도 다르다. 쉽게 정의내리지 않고 간단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 자기계발서에 적응된 사람들에게는 피동적인 고객의 니즈 정도를 파악하는 백화점 영업파트 정도의 얄팍한 꼼수로 보일 수도 있고, 국내 자기계발서를 그토록 경멸하며 비판하는 강 모 철학자와 같은 이들에게 적응된 사람들에게는 차갑지고 뜨겁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무책임함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앞서도 말했듯이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팔만 뻗치면 닿는 그곳에 위치해 있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책갈피를 찾지 않아도 되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재미있고 유의미하며 공감이 가는 문장들과 고민들로 새겨진 ‘하루계명’을 얻어 밤새 뒤척이던 시나이 산에서 내려갈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나’를 긍정적으로 정의 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이가 아닌 스스로를 정의 내려야 한다. 계발되지 않은 잠재 능력이란 꿈의 영역에 속하는 가정된 능력에 불과한 것이지, 우리의 실제 삶의 영역에서 유령과 같이 존재하는 어떤 것이 결코 아니다.” (p.31)

 

더군다나 유령이 필요하지도, 그런 유령으로 불리고 싶지 않을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헛된 망상’과 ‘잡히지 않을 뜬구름’ 따위를 쏟아내는 진통제도 부정한다.

 

 

“우리는 자기비판의 적정선을 지키지 못한 채 살아간다. 대표적인 예가 지신이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자신에게만 유리한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데, 그 결과 남들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반면, 자신에게는 관대해지기 쉽다.” (p.86)

 

명쾌하다.

뒤통수가 근질근질 할 정도로 명징하다.

나도 충분히 그런, 일정 정도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살고 있는 현대인이니까.

‘에이~ 저 정도는 누가 못해?’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젠 채 하기는!’

이런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있나?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누가 남들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 달콤하고도 만병통치약 같은 최면에서 벗어나고 싶겠나. 남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을 이제껏 단 한명이라도 만나봤다면 모르겠는데, 나는 만나본 적이 없어서 이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많은 철학자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니체형의 ‘초인’ 정도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도 너무 명쾌하고 명징하게 나를 그려내는 통에, 이 페이지에서 한참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인생이 반드시 경주일 필요는 없다.” (p.102)

“훌륭한 목표는 ‘해냄’이 아닌 ‘하고 있음’에 초점을 둔 것” (p.54)

“선택이 항상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저 충분히 좋은 정도면 된다. 그리고 만약 충분히 좋은 것도 아님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나중에 가서 방향을 바꾸기만 하면 될 것이다.” (p.147)

 

나는 이런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렇게 ‘살고 있음’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안정적인 일상과 몇 천만 원 정도의 연봉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 않는 삶임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믿고 따르는 선생님에게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사람이 당장 없으니 이 책으로 만족할 수밖에. 모두가 한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이 미친 경쟁의 시대에서 다소 뒤쳐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하루하루 밀어내는 삶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맞다. 그것을 격려 받고 싶었다.

 

 

“철학사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논증들’을 살펴보라. 그 논증들이 진행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연역적 추리보다는 귀납적 관찰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275)

 

귀납적 관찰보다는 연역적 추리에 기초한 선택을 추구했다. 경험과 기억과 습관은 때로는 적확하지만 무모하리만치 무책임할 수도 있으니까. 굳이 거시 철학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가 밀어내 온 삶의 궤적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렇다. 아니, 그랬다. 한심하고 늦춰지는 것처럼 보였던 오랜 시간의 고민과 그것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선택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찾아내 들춰내어 톺아보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 그거다.

지금이라도 ‘나만의 선생님’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찾아지지 않는 것에 힘을 쏟아 살기에는, 당장 내가 힘을 쏟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걸작은 하루하루를 제대로 사는 것이다. 그 외의 다른 모든 일들은 보조물이고 부가물일 뿐이다.” (p.133)

 

500년 전 몽테뉴 선생께서 이렇게 멋진 말을 하셨단 말이지?

나는 오늘도, 오늘의 걸작을 온 몸으로 써 내려 가고 있다.

그래, 그것으로 됐다.

 

l****h 2014.10.24.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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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지혜서-아날로그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지혜서-아날로그" 내용보기
고대에는 인간의 삶이 총체적이기에 여러 학문도 범주가 함께 했다. 그것이 중세를 거쳐 근대로 오면서 분화되기 시작했고, 담당하는 학자들의 고집으로 인해 서로 섞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학문이 각자 자신의 길을 외길로 걸어가려는 모습을 보였고, 자신의 학문만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학자들의 고집은 끈기와 집요함을 연상하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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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인간의 삶이 총체적이기에 여러 학문도 범주가 함께 했다. 그것이 중세를 거쳐 근대로 오면서 분화되기 시작했고, 담당하는 학자들의 고집으로 인해 서로 섞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학문이 각자 자신의 길을 외길로 걸어가려는 모습을 보였고, 자신의 학문만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학자들의 고집은 끈기와 집요함을 연상하게 만드는 좋은 점이 많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도 있다. 고집은 학자가 가지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관점을 편협 되게 만들어 나가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고집스러움 때문에 근대로 오면서 철학은 철학이요, 심리학은 심리학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 와서 그것들이 다시 같은 내용으로 통합되고 있다. 어려운 결단을 한 두 저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이 글은 제목에 설의법이 사용되어 있다. 설의법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의문을 통해 강조한 표현이다. 어느 누가 최고가 아니면 실패한 삶이라고 할까?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지 최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잘 알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그것을 이야기해 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철학이 어떤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 들어가듯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다양한 인생들에 대해 문제를 언급해 보고 있는 글이다.

 

가령 완벽에 집착하는 인생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저자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들린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이다.”라는 말은 심리학자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완벽해질 수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노력 그 자체는 삶을 만들고, 그 삶을 통해서 모든 결과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한 것이든 나의 삶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삶이 곧 나 자신이다.”는 철학자가 들려주는 말이다. 이 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살아온 삶 그것을 부정하고 최고의 삶만 지향한다면 그것은 남의 삶을 사는 것이지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삶,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뜻이리라.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먼저 질문으로 독자가 가지는 의문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가면 뒤에 숨은 자신을 발견하고 싶은 당신에게’, ‘비싼 값을 주고 성공을 사려 하는 당신에게’, ‘신속하게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싶은 당신에게등으로 문제의 방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완곡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방향을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신속한 결정을 문제로 할 때, 직관에 의해 판단을 내리는 힘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직관이 온전한 판단의 요소로 사용되어서는 안 됨을 말하면서 이성의 협력자가 되도록 해야 함도 말한다. 이와 같은 구조로 20개의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에 대해 두 명의 화자가 대안을 제시해 나가는 표현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같은 문제에 대해서 철학과 심리학의 비교 만남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 인생이 어느 한 부분으로 재단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일어나는 것이 삶이다. 그것을 심리학, 철학 등 학문만으로 온전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단지 그들은 살아가면서 실천적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저술하고 있다. 실천적 지혜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때, 누대에 걸쳐 축적된 지혜 속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고 도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집필하게 했고 독자인 우리는 그렇게 자기계발 지혜서로 도움 받을 수 있는 책으로 만나면 되리라 여겨진다.

 

도움이 되는 많은 지혜가 들어있다. 저자들이 간추리고 깨달은 내용으로 삶의 방향성이 잘 나타나 있다. 누적된 지혜가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삶 속에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삶에 공허함을 느낄 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충분한 마음 자세를 일깨워 주고 있는 책이다. 독자는 이야기하는 상황에 맞은 일을 만날 때 참으로 이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목표보다는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늘 스스로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타인을 존중해야 함을 말하고, 과도한 책임을 지려는 자신에 대해 경계해야함을 말한다. 자기기만은 은밀하게 진행되는 질병과도 같음을 말하고, 포기해야할 가치도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글 속에는 이제까지의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그것이 철학적으로 정리되든, 심리학적으로 편집되든 상관이 없다. 다양한 관점으로 독자의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문제다. 독자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 융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들은 삶의 문제를 영혼의 범주까지 이끌고 있다.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 심지어 종교까지의 관계성을 언급하면서 삶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영적인 것들의 논의는 직관이 많이 작용할 듯하다. 주어진 많은 이야기들이 참고가 되어 독자들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요긴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독자가 어떻게 수용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책은 충분히 우리들의 삶에 대해 많은 문제를 풀어내고 있고, 그것에 대한 정리된 내용으로 제언을 주고 있다. 삶에 대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이 되려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두 저자,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많은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안내서를 소망하면서 엮은 책이 우리들 곁에 이렇게 와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품어 본다.

j****3 2014.10.15.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지혜란 언제 포기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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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문제와 함께, 중장년들의 노후대책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해지는 현실에서 경제마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어찌 보면 고통의 연속이다. 설사 고통까지는 아니래도 삶의 의미를 잊은 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어쩌다 시간이 나서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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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문제와 함께, 중장년들의 노후대책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해지는 현실에서 경제마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어찌 보면 고통의 연속이다. 설사 고통까지는 아니래도 삶의 의미를 잊은 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어쩌다 시간이 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라치면 우선 답답한 마음이 먼저 든다.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 이런 삶 말고, 내가 원했던 삶, 그런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원하는 삶, 아니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행복이라는 것이 비록 주관적인 것이기에 사람마다 어떤 것을 행복이라 느끼는 지에 대해서는 다 다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삶 속에서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이 없다면 그것도 행복이 아닐까 싶다. 설사 그것이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삶일지라도..

 

그러다 보니 요즘 자기계발서 들의 화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로 모아진다는 느낌이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 자칭 혹은 타칭 멘토라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삶에 대한 지침들을 읽다 보면 현기증이 들 정도이다. 대부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이제부터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지 말고, 또 이렇게 살아라고 하는 그들의 말 속에서 진정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결국 행복하게 사는 법은 다 나와 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자신이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박약이 문제라는 그들의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그런 책을 읽는 어느 순간은 뜨거워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망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계발서류를 읽지만, 이것이 내가 자기계발서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또 살아가야 할 삶을 통찰하기 위하여 많은 경험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경험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책에서 배운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인문학을 접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고전 속에 그 방법들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인문학은 그런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는 단서와 영감을 줄 뿐이다. 그 단서와 영감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삶에 대한 방향을 세우고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는 기존에 나와있는 자기계발서류들과는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질문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20개의 질문들에 대해 철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답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20개의 질문이라는 것이 삶을 통찰하는 질문 전부일 수는 없고, 그것들에 대한 단서가 꼭 행복을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사람마다, 또 각자가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의미 같은 것은 없다고, 이 책의 저자 중 한명인 줄리언 바지니는 말한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인생에 의미가 생길 수 있다며, 의미 있는 인생이란 단순히 말해 살 가치가 있는 인생이고, 그것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볼 때,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이란 것이, 완벽하다는 것이 꼭 내 인생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 부여할 때 이미 그것은 의미 있는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중간의 과정, 즉 노력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또 자신의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패자의 변명일 수도 있다. 루저가 되기보다는 최고가 되고, 평범하기 보다는 완벽하고, 그래서 성공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재료 중 하나일 뿐이다. 하나를 더 많이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하나를 덜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 인지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그로 인해 무엇을 잃게 될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아마 이것이 성공한 삶, 최고인 삶을 살면서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인생의 문제들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따라서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아 방황하지 말라고 한다. 결국 가치 있는 삶이란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는 삶, 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때로는 내 자의적으로 살아가는 삶인 셈이다. 타자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보고, 타자의 걸음이 아닌 자신의 걸음으로 걸어가는 삶,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지혜는 언제 포기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를 더 갖기 위해 또 다른 하나를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었을 때, 우리의 삶은 보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k*****1 2014.12.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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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처한 눈금의 자리를 발견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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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http://blog.yes24.com/document/7837970,>을 읽으면서 최고를 지향하는 교육방법을 논하는 듯한 느낌이 남았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를 받아들면서 새로운 시각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기획이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와 심리학자 안토니아 마카로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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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http://blog.yes24.com/document/7837970,>을 읽으면서 최고를 지향하는 교육방법을 논하는 듯한 느낌이 남았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를 받아들면서 새로운 시각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기획이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와 심리학자 안토니아 마카로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품어보았음직한 스무 가지의 질문에 대하여 각각 답하는 방식입니다. 줄리언 바지니는 ‘자아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한 <에고 트릭; http://blog.yes24.com/document/6665347>을 통해서 이미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1. 자아의 통일성은 심리적 속임수가 만든 결과물이다. 2. 우리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단순한 물질 이상이다. 3. 속성 자체가 변하기에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세 가지 명제에 기초하여 자아의 본질을 설명하였습니다.

 

<최고가 아니면 실패한 삶일까>의 저자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경과가 아니라 노력일 뿐이라고 전제합니다. 즉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주의자들은 결과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류에 빠지면서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자기 향상을 위해서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실패를 견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최고, 행복, 목표, 욕망, 자긍심, 자기기만, 사회적 지위, 책임감, 새로움, 선택, 감정표현, 자부심, 직관, 외모, 중도포기, 낙관주의, 후회, 삶의 의미, 영성, 통찰 등 모두 20개의 주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적고 있습니다. 주제에 따라서는 시각이 같은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어 그 차이를 서로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획입니다. 두 저자가 각각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두 사람의 경력을 보면 두 분야에 대한 상당한 내공을 갖추고 있음을 볼 수 있어 굳이 철학자의 시각은 이렇고 심리학자의 시각은 이렇다고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스무개의 질문 가운데 열 두 개의 질문에서 심리학자 마카로의 답변이 먼저 나오고 있지만, 누구의 답변이 먼저 나오느냐 하는 것도 특별한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책임의 범위를 살펴보면, 철학자는 일상생활에서 책임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모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유의지의 문제를 끌어들이면 상황은 복잡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감정이 개입되게 되면 더욱 복잡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 각자의 느낌을 신뢰하지 말고 자신의 통제권 내에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실제로 책임의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 여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심리학자는 과도한 책임감도 책임회피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자만을 경계하고 겸손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만, 자만 혹은 자부심과 겸손에 대한 철학자의 설명은 다소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의 겸손한 태도를 보고서 그것이 거짓된 겸손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도 겸손이란 적당한 자부심을 의미한다고 이끌고 가는 과정이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고 느꼈습니다. 반면 심리학자는 작은 일에도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선택’이라는 주제를 놓고서는 두 사람의 시각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철학자는 ‘선택이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라고 하고, 심리학자 역시 ‘우리는 대부분 일관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를 읽게 되면 저자들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철학자 겸 심리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저자들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핵심 요소는 자신을 위해 사고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며, 누구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명쾌한 답변을 제시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하며, 그렇다고 그 선택에 대하여 지나친 책임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y*****2 2014.10.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