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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절대 2월의 달력에서는 나올 수 없는 날짜가 제목이라니, 의아함 제대로 두들겼다. 커튼 밖으로 드러난 빨간 힐의 다리는 숨겨진 욕망, 숨어있는 욕망을 나타냄으로 보여졌다. 하여 제목이나 표지 시선을 잡아끈다. <이책은> 솔레이 님께서 선물해 주신 도서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강렬한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커튼 아래로 드러난 하얀 다리에 신겨진 새빨간 구두. 깔린 듯한 포즈로 짐작이 되는데 그건 눈속에 깔려죽은 그녀를 형상화한 것 같았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생일을 가진 그녀. 그녀를 원하는 마음이 도를 넘어 품었고, 임신중인 아내에게 들켰고, 그만두자 고민하며 또 다시 질질 끌려 만났다. 그런 그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으며 더구나 임신중이었다고 한다. 부랑자에게 죽었다 여겼기에 한때나마 사랑했었다는 감정이 북받치며 한편으론 홀가분한 마음도 드는 남자는 현재. 지역유지이자 치과의사인 조부께서 지어주신 이름처럼 현재는 현재만 잘 살면 문제없는 선택받은 삶이다.
그런 그에게 태클이 걸렸으니 죽은 혜린의 범인으로 현재가 지목되었던 것.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던 형사가 호출하기에 이르렀는데, 하필 자신의 아버지가 정치에 입문하는 싯점서 사건이 터지다니. 다른 당의 후보자는 흠집내기에 좋은 호재를 만났다 싶은데 거기에 호응하는 여자가 있었나니 자신의 터울 많은 여동생 미래다. 여동생일 뿐이지 살가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기에 남이나 다름없게 서먹한 사이다. 오히려 자신보다 여동생이 더 터프하고 더 화통하다. 아버지가 하필 이모를 좋아해 이혼을 하네 마네 하다가 낳은 여동생인데 미래는 혼자 크다시피해서 불쌍한 면도 있다.
혜린이 죽던 날 자신과 마지막으로 만났으며 자신이 화를 내면서 싸우던 걸 목격한 사람이 여럿. 그날 현재는 술에 취했는데 그후는 생각이 안난다. 필름이 끊기면 도무지 생각이 안나는데 이런 증상이 생긴지 오래되었다. 외국에서 마약을 하고 잠시 방황하던 시절에 생긴 후유증이다. 그런 환각상태서 미성년자를 취하고 범법자가 될 수 있었을 상황에서 도망쳐 귀국했다. 혜린을 만나면서 그때 미성년자와 많이도 닮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으나 도무지 생각이 안난다. 정말 내가 술김에, 술취해서 혜린을 죽인걸까. 알 수가 없다. 혜린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그 일로 인해 가문에 누가 되고 자신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고, 어렵사리 빌어올려 아내와 화합하려는 시도들이 무산될까 그런게 더 신경쓰인다.
애당초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무슨일이 생기면 조부가 막아주고 해결해주고 웬만한 일이 생겨도 조부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덮고 마는 그런 삶에 길들여졌다. 할아버지 윤조 씨의 후광이 그렇게 대단한지를 커갈수록 더 체감했는데 혜린이 일도 그렇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혜린이가 죽어서 애달프고 괴롭고 살맛이 안 난다던가 그런 생각은 없다. 단지 혜린이를 좋아한 건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혜린이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만큼 용감하지도 않고 그럴 맘도 없다. 편리함이 주는 혜택, 부유함이 주는 매사 평탄함이 버릴 수 없는 삶이다. 사랑 없어도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불편한 삶은 싫다. 구질구질하고 그런 삶은 생각조차 하기가 싫다.
할아버지가 해결한 혜린이의 사건. 어떻게 해결했을지는 크게 관심이 없고 할아버지의 영향력에 놀라긴 한다. 할아버지의 독립 투사 일화는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전파를 타고 거의 후보로 선출되는 듯하다. 해결된 것으로 보여지던 혜린이 사건은 야당에 의해 파헤쳐지면서 오래전 과거의 의문사가 불거진다. 혜린이 죽은 장소에서 오래전 같은 날 죽은 여인이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방송국의 미제 사건 파일을 확인하던 현재는 어떤 운명의 힘에 끌리듯 탐문을 하기에 이른다. 알아갈수록 캐낼수록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사실들. 그 사실들을 모두가 한결같이 쉬쉬하는 분위기에서 드뎌 팝콘 터지듯 봇물이 터지는데...
중략
모르고 지내는게 좋았을까. 몰랐던 엄청난 3대의 비밀을 알아가는 시간은 경악이었다. 그토록 자신을 아껴주시고 밀어주시던 할아버지의 여자들. 그 여자들에 얽힌 기막힌 운명의 실타래들. 그 사실들을 제각각 기억하는게 다르다. 본질을 모르고 보여지는 것들로 판단하자니 치정에 연루된 것들로 여기고, 워낙 잘 생긴데다 치과의사요 경제력 탄탄하고 호탕한 성격이었던 할아버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할머니는 약을 드시고 자살을 하셨는데 어린 날의 기억이라 무섭기도 했거니와 꿈인지 생시인지도 헷갈렸다.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건만 자연스레 알게 되는 할머니의 음독자살. 투기가 부르고 오해가 낳은 투기. 죽는날까지 알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비밀을 안고서 자신의 죗값을 스스로 치룬 할머니. 그럼에도 떳떳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할아버지. 그렇게 커다란 비밀, 엄청난 비밀을 안고서 선택받은 삶을 가진 현재를 귀여워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이 되었을까...
탄생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의지로 되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부잣집에 태어날 지, 노비의 아들로 태어날 지는 더더구나 모른다. 세상에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불복하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켜 살아남은 노비는 거의 없다. 그만큼 양반님네 세도는 건재하기에 노비는 대를 이어 노비일뿐. 일제시대에 노비라는 굴레를 벗고 싶어 일본놈 앞잡이를 하다가 이용만 된 통 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박대길의 아비가 있다. 노비의 신분이라면 영리하면 더 딱한 처지가 되지 싶다. 그저 고분고분하니 그 삶에 만족해야는데 이름탓인가 대길은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니 이루기 위해 어릴 때부터 곱추인 고명딸 이조를 마음에 품는다. 엎어서만 대문밖 출입을 하던 이조 아씨를 언감생심 홀려서 몸으로까지 품은 대길. 그런 대길이 순수한 연정으로 이조를 품은게 아닌 신분상승을 목적으로 사악함을 가졌기에 용서가 안되는 남동생 윤조.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말한다. 요약하자면 전부터 나는 지독한 악당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만들고 싶었는데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재벌 혹은 사이코패스 같은 인간은 안 되고,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면서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되기는 하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동시에 그는 우리 시대의 어떤 분위기, 어떤 핵심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였나, 저자가 그리는 악당은 여기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조금은 욕망이 과도하게 보여지는 면도 있는 사람. 쉽게 악당이라고 묘사하기 어려운 사람. 다 가진 조금은 부러운 대상을 그렸다. 이렇게 치밀탄탄하면서 흥미로우며 빠른 몰입을 요하던 책을 만난 시간이 좋았다. 7년의 밤을 읽을 때의 몰입도와 비슷한 경험. 그때만큼의 서늘한 공포는 덜했지만 욕망을 향해 달리는 멈추지 못하는 불사신을 보았다. 그는 죽었다가도 깨어나는 사람이었다. 욕망인 광기는 절실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는가. 잘 만나진 책은 저자의 다른 책을 찾기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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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하나 존재를 증명하기 쉽지 않은 날. 처음 책의 제목을 보고 ‘2월 30일 생이 존재 가능해?’ 하는 생각을 했다. 검색을 해 보니 2월 30일 생은 존재하기도 하고 양력 날짜를 계산해 생일을 챙기기도 한다고 한다. 4년에 한 번 온다는 2월 29일 생일도 신기한데 2월 30일 생이라니... 만약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신의 탄생을 극적이고 신비하다고 생각하게 될까? 아니면 재수 없는 징조라고 생각하게 될까? 나는 긍정적인 편이라 생일날짜의 희귀성 때문에 존재 자체를 귀하게 생각하게 될 것도 같은데... 모두 나와 같지는 않겠지? 현재라는 청년은 2월 30일 생.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날에 태어난 혜린을 사랑했고, 어느 날 그녀를 잃었다. 그녀가 죽게 된 원인을 찾다보니 숨겨진 자신의 가족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방송국 PD로 일하는 현재는 헤어진 전 애인을 고향 동네에서 만나게 된다. 현재는 그녀를 다그치며 서울로 올라갈 것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이 있다며 그의 말을 거부하고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긴 현재는 혹 자신이 그녀를 죽인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다행히 인근 부랑자가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자백하며 현재는 혐의에서 벗어난 듯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무마 시킨 인물이 현재의 할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술로 인해 필름이 끊긴 현재는 진범을 알고 싶어 하고 그렇게 시작된 진실은 과거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까지 파헤치게 되는데... 가끔 일본 문학을 읽다보면 2차 세계 대전 당시 신분 세탁을 하는 사람들이 곧잘 나오곤 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해 실시간 검색이나 동영상이 촬영되지 못한 시절. 그나마 돈 좀 있다는 사람 몇이 사진을 찍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묻고 새로운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군다나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오지에 있는 마을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머슴으로 살던 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좋고 욕심이 가득했다. 이것이 기회라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분을 세탁할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이 자신에게 왔을 때 그는 잡았을 뿐.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음과 동시에 승승장구 하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 자신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눈치 채는 사람이 곁에 있는 걸 그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현재 자신이 만들어 놓은 단단한 성을 깨부수려 하는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현재를 잘 살아야 미래가 밝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현재만이 해답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과거의 시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교훈 삼아야 할지 생각한 사람이 현재도, 미래도 알차게 살아간다. 3자들이 봤을 때는 단단한 성이고 오를 수 없는 견고한 성일지도 모르는 그들의 리그. 하지만 그 리그에 살고 있는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무너져가기 일보 직전의 땅에 성을 올려놨으니 흔들리고, 금이 가는 건 어쩜 당연한 처사 아닐까? 나는 전쟁 세대도 아니고, 이념 때문에 서로에게 총 칼을 들이미는 세대도 아니다. 집을 놔두고 피난을 떠난 세대도 아니고, 머슴과 양반이 있던 세대를 산 사람도 아니다. 지금이야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해방되기 전까지는 분명 머슴이 있었고, 주인 집 아가씨와 도련님이 있었다. 누구에게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능력은 갈렸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리와 이념 사이에 갈등했다. 우린 그 시대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근대화를 이뤘고, 그 과정에서 줄을 잘 탄 사람의 경우 출세할 수 있었다. 줄을 잘 탄 그 사람들에게 과거는 결코 반가운 기억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을 없애고 싶어 하기도 한다. 지금 현재의 안정된 기반이 무너지기를 원치 않으니까. 때문에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2월 30일 생처럼 그들은 묘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 과거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없는 사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선 살인도 불사하는 무서운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할아버지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손자의 입장을 ‘현재’라는 이름으로 배치시킨 작가의 센스가 놀랍다. 시대의 흐름을 타 끊임없이 변신한 할아버지와 세상의 흐름에 변화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 혹자는 잊고 싶은 과거가 있을지언정 지금 현재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면 그까짓 손가락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재산 반환 청구 소송을 하는 것 아닐까? 그에 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은 현재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 이것만한 모순도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라의 안위와는 상관없이 내 배만 부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용서 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시간들. 그리고 감추고 싶은 사람들.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선량한 시민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김서진 작가의 2월 30일 생. 다음에 나올 세 번째 작품도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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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은 양력에는 없지만 음력에는 있는, 음력에 있지만 그렇다고 늘 있는 것은 아닌 특이한 날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생신은 음력 2월 30일이었다. 해당 날짜가 없는 해엔 전날 2월 29일을 생신으로 지냈다. 양력으론 없는 날짜가 음력으론 있다는 사실이 꽤 신기했었다. 김서진의 소설『2월 30일생』을 만나기 전까지 할머니의 생신이 음력 2월 30일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사라진다. 오늘 옆에 있는 사람이 내일은 없을 수 있는 게 현실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의 그릇된 욕망으로 없는 존재로 살기도 한다. 혜린은 음력 2월 30일에 태어났고 언니라고 불렀던 정희와 같이 살았으며 3개월 전까지 유부남 피디 현재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현재의 할아버지 정윤조가 유지로 있는 J시에서 우연히 현재를 만난 이후 죽었다.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현재는 혜린을 만나 술을 마신 일은 기억했지만 그녀와 어떻게 헤어지고 집에 왔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현재는 ‘내가 범인일까’에 대한 의문을 품고 혜린이 당일 만나려고 했던 사람을 추적하다 할아버지와 고모 할머니 정이조의 과거를 만나게 된다. 현재, 독립투사 집안에 태어나 치과의사였던 할아버지는 J시의 지역유지였고, 판사와 변호사 경력의 아버지는 국회의원 공천을 앞두고 있었고, 현재는 방송국에서 피디로 일하고 있다. 혜린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럭저럭 현재를 살아갔을 것이다. 미국에서 벌인 치명적인 실수는 잊은 채로. 기억 상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공통으로 앓는 질병 아니던가. 올핸 세월호 사고를 비롯하여 사건·사고가 잦았다. 반복되는 참사는 기억 상실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과거에 매달리는 건 어리석어. 중요한 건 현재야.’ 하곤 삶에 적응하려 애쓴다. 삶은 애쓴다고 해서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현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재는 혜린과 불륜 관계였고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용의자로 몰린다. 미국 유학 시절, 방종했던 그가 얻은 것은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증상이었다. 그 증상으로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 그는 서울로 도망쳤다. 그것은 그의 삶이 크게 흔들릴 것에 대한 예고였으나 그는 뒤늦게 알았다. 그는 혜린과 만났을 때 술을 마신 탓에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신하지 못한다. 복잡한 세상에선 잠시만 멍해도 길을 잃게 된다.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현재는 최 형사로부터 혜린이 만리라는 여자를 찾았고, 그녀는 25년 전에 혜린이 죽은 장소 부근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25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두 여자의 죽음, 현재 죽은 여자가 과거 죽은 여자를 찾았다는 사실은 그녀들의 죽음이 별개의 사건이 아닌 하나의 사건임을 증명했다. 정희는 혜린이 박대길을 찾아다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박대길은 할아버지 윤조를 보도연맹으로 몰아 죽이려고 했고 이미 죽었다던 할아버지네 머슴이었다. 현재를 사는 현재는 할아버지 윤조 덕분에 안정적 삶이 보장되었지만, 과거의 대길은 그렇지 못했다. 머슴이었던 대길은 세상이 뒤집히길 원했다. 이조에게 대길은 금지된 사랑이었으나 대길에게 이조는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다. 필요에 의한 사랑은 필요가 끝나면 버려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길을 찾은 대길에게 이조는 존재해선 안 될 사람이었다. 혜린이 유부남 현재 혹은 누군가에겐 존재해선 안 될 사람이었듯이. “그러면서 나는 잊었어. 엄마에 대해서, 엄마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 세월은 그런 거야. 아무리 억울한 것도 시간이 지나니까 희미해지더라고. 세월은 그런 거야. 아무리 억울한 것도 시간이 지나니까 희미해지더라고.“ “모든 것이 지나가니까.” “맞아.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 지난 일은 그냥 내버려둬야 해. 그냥 흘러가도록. 그렇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내버려뒀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는 우리의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일어난다.(242쪽) ‘할아버지’ 세대의 비틀린 욕망은 위태로운 ‘현재’를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현재’를 지키기 위해, ‘현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감췄지만 비밀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혜린은 존재의 기원을 찾아 길 위에 나섰다가 죽음을 맞은 것이었다. ‘나’처럼 과거는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는 용기를 내 비밀을 밝히고 진실은 찾으려는 이들에 의해 떠오른다고 생각한다. 침묵과 외면은 비밀이 숨기 좋은 장소다.
나에게 가장 큰 잘못이 있다면, 지난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를 대신해 변명해줄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다. 내 잘못이다.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나는 내가 왔던 것과 나를 이 세상으로 오게 만든 것에 대해 알았어야 했다. 저 먼 우주의 별들조차 몰랐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335쪽) 소설은 현재는 과거에서 이어졌고, 과거를 모르는 현재는 가짜 현재라고 말했다.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삶이라 해서 과거를 외면한다면 불행은 현재와 미래를 잠식한다고. 그러므로 진실을 찾는 여정은 힘들고 여정의 끝에 마주하게 될 진실은 참담한 진실일지라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사랑했기에 비극의 생을 살다 간 그녀들의 생이 안타까웠던 소설이기도 했다. 강렬한 표지가 인상적이었으나 같은 표지의 다른 책이 있다는 사실에 반감되었다. 다음 편이 궁금한 드라마처럼 읽는 내내 다음 페이지가 궁금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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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나타난 자기방어적인 인간의 심층심리를 중심으로
이 글을 읽으면서 살아온 순간순간의 삶들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다가왔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살았던 기억들이다. 누구와 약속을 하면 먼저 나와서 기다려주기를 바랐고, 자신이 먼저 가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은 듯하다. 상대가 나중에 오면 배려가 없다고 그리 타박하면서 자신이 정작 그렇게 되면 이유를 대느라고 분주했던 기억들이다. 이 글은 그러한 생각을 낱낱이 드러내어 우리들에게 되돌려 준다. 생활에 대한 우리의 치부라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을 당연시했던 기억들이 아프게 살갗을 찌르게 하고 있다. 글은 가족의 안온함과 우월함을 느끼면서 내려간 소도시에서 주인공이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의 죽음이 이야기되면서 시작된다. 죽은 자는 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다. 이야기는 그 여인과 주인공인 나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전개되어 나간다. 내가 그 여인이 죽은 곳에 같이 있었고, 나는 필름이 끊어진 상황이라 기억에 없다. 하지만 경찰은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고 조사를 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 나의 삶이 그려지고 혜린과의 관계가 자세하게 드러난다. 서로의 물리적인 만남은 늘 이루어진다. 불륜의 사랑도 하고 음식도 나눈다. 같이 여행도 하고 일도 한다. 하지만 마음은 서로가 하나가 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상황들이 전개된다. 그리고 여러 일들 속에 그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도 제시된다.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가득한 것을 목도한다. 또 자기에게 조금만 불리하게 여겨지면 책임을 전가하는 나쁜 습성까지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내용을 이 글에서 읽을 수 있어 내 마음이 서늘해졌다. 내가 혜린을 죽인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그녀의 소지품을 지닌 자가 잡히면서 밝혀지고, 그 과정 속에 나는 이상한 일을 발견한다. 20여 년을 거리를 두고 똑같은 살인 사건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일로 혜린을 통해 나의 가족사 문제로 이야기가 발전한다. 그리고 그 살인 문제에 할아버지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와 같은 생각은 현재 지방의 유력자로 있는 할아버지의 과거사를 찾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속에서 이야기가 반전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확인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나의 욕망과 이기주의도 이런 할아버지의 영향과 관련이 있음도 독자들은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어두운 할아버지의 과거사를 목도할 수 있도록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면서 나의 혜린을 향했던 마음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말이다. 이야기는 부분부분 독자가 깨달을 수 있는 의미심장한 재료를 제공해 준다. 만리라는 여인, 이조라는 여인 그리고 그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 있었던 할아버지의 삶 등이 미묘하게 엮여져 나가면서 독자의 추리에 불을 당길 수 있게 만들어 나간다. 추리극의 묘미가 마음껏 살려지고 있는, 정교한 소설적 장치가 흥미를 배가해 나가게 하는 글이다. 혜린의 죽음이 그녀의 죽음으로 끝이 나지 않는 것은 과거 속에 동일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자신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들은 사라져주어야 자신의 모습을 온전하게 지키는 욕망의 응결체는 자신을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한다. 한 번 그렇게 잘못 연결된 고리는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 대에 일어났던 일이 재생이나 된 것처럼 다시 일어나고 그것을 통해 손자인 나, 현재는 그래도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온당함을 역설하면서 할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우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현재가 만난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것은 가족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주인공 현재, 혜린과 감독으로 만난 나는 그녀와의 모든 관계에 있어 자기 위주다. 혜린의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하나의 도구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욕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책임을 도외시하는 관계, 혜린은 자신이 필요하면 항상 거기에 있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해 간다. 심지어 그녀를 일회용 상품처럼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그의 삶 속에 그녀의 인격은 무시되어 있다. 둘의 모든 관계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녀가 약자의 입장에서 그 관계를 외형적으로 용인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일로 인해 나의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절대 안 된다. 가령 문제가 생겨날 때쯤 당연히 버려질 수 있는 것이 그녀다. 혜린과 나는 지나가는 관계다. 그것은 혜린과 내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던 것이었다. 아니, 합의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정겨운 하나의 사물로 곁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결국 큰 사건을 만들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된다. 소도시에 자신의 흔적을 찾고자 내려온 혜린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죽음에 할아버지의 이기적이고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작용했지만 말이다. 주인공은 참으로 몰염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그런 관계는 인간 삶에 있어서 지극히 비극을 잉태한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이 결국 자신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살인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그것도 의식이 사라진 가운데 이루어진 일로 포장을 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할아버지의 삶도 마찬가지다. 세대 간에 걸린 욕망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비극적으로 이끌어 가는가를 잘 인식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것을 통해 아마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질타한 것이리라. 이야기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세상의 두려움을 인식하게 만들어 주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들은 타인의 삶을 구속해 가면서까지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 공적인 관계 형성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있어서는 안 되는 관계가 만들어 진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비정상적인 생활의 행태도 보이고 있다. 확실히 문제가 되는 관계가 만들어 진다. 인간들의 삶에 경계를 삼아야할 내용이라 여겨진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끔찍함을 많이 느꼈다. 언어의 세밀함 뒤에 숨어있는 인간사고의 치밀한 자기 방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한 일이 자신을 정당화해 나가고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 일을 책임진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내 가족들이 이 모습, 이대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설령 그 모습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저 아름다운 배경일 뿐일지라도 나는 나라는 존재가 여전히 그 배경 속의 한 부분으로 남기를 바란다. 내 마음 어딘가에는 여전히 피 흘리고 있는 어떤 지점이 있지만, 그것을 열어보고 싶지 않다. 혜린과 관련해서 그 어떤 것도 돌아보고 싶지 않다.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회피와 무책임의 자기 방어적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모든 인간들이 지닌 삶의 기저에 이러한 모습들이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닌가? 도 생각된다. 인간의 심층 깊이 있는 그 부분을 잘 표출해 내고 있는 듯한 글이다. 많은 깨우침과 성찰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내용이다. 오늘날 이기주의가 그렇게 팽배하게 된 것도 이러한 심층의 윤리의식에 기인하는 것 같다. 이성으로 누르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는 내재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의 확실한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가 무시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가 자신의 비대한 삶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까지 가볍게 보는 듯하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I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의 목숨을 함부로 취급한다. 화면을 앞에 두고 생명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그들의 의식구조도 이러한 의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말 무너진 윤리의식이 인간들의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어가지 않을까 저어된다. 이글도 그러한 관점에서 읽혀진다. 혜린의 삶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를 위주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입장만 중요하다. 그러기에 혜린과의 만남을 암묵적으로 혼자 합의해 두고 육체적인 사랑을 즐긴 형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불확실성을 가지고 오니까 마음에서 이미 그를 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자신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듯이. 실재로 죽이고 죽이지 않고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존재가 방해물로 다가오니 거추장스럽게 되었고, 이미 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내면에서 지우게 된다. 그것이 과거를 지워야 하는 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게 되고, 결국 혜린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 것이다. 2월 30일을 생일로 가진, 이 세상에 없는 날에 존재했던 한 여인의 삶이 그렇게 없는 듯 사라지게 된 것이다. 참으로 인간들의 마음이 아프게 읽히는 글이다. 화평과 이타를 근간으로 하는 인간 윤리가 다시 마음에 감기게 만든다. 인간의 삶이 본원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안다. 그러기에 이러한 욕심과 이기가 가득한 삶이 상처로 다가든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인간들이 지니는 원초적인 자신을 위한 공격적인 삶의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부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인간들의 습성이 못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삶의 모습은 이타적이고 희생적이 될 때 더욱 아름답고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고, 그런 마음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경우 우리들의 삶은 좀 더 풍요롭게 될 것이다. 인간들의 지혜로운 삶이 우리들의 것이 될 것이다. 추리소설 한 편을 읽으면서 행간에 가득한 인간의 누추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자기 성찰이 많이 되었다. 마음으로 읽은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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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음력으로는 존재하는 날 2월 30일... 제목으로 이 날짜가 있어 강렬한 표지도 인상적이지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2월 30일생의 주인공은 '현재'란 남자다. 현재란 이름에 맞게 현실에 만족하며 엇나가는 일 없이 현재를 중시하며 살아 온 남자다. 그의 여동생은 열 살 터울이 나는 미래로.. 이런 이름을 지어준 분은 남매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지역의 유지로 현재는 법조계에 몸담았지만 지역 기반이 별로 없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도움에 힘을 얻어 정치인이 되려고 한다.
현재는 특별한 끌림 없이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에서 일하던 구성작가와 알게 되고 외도를 저지른다. 아내에게만 걸리지 않았다면 그의 바람은 언제까지 이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임신 중인 아내는 현재의 외도 사실을 알고 친정으로 떠나 버린다. 이혼까지는 생각지 않는 아내와 별거가 그렇게 이루어진 상태다.
집안의 행사로 현재는 고향집에 내려와 있던 중 헤어진 여자 '혜린'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고향에 연고자가 없는 혜린의 등장은 석연치가 않기에 현재는 그녀가 혹시 자신을 쫓아 고향까지 내려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헌데 이런 혜린이 죽었다. 현재에는 말하지 않았던 임신 3개월의 상태로 동강 근처에서 죽은 것이다. 혜린을 만났을 때 만취상태로 필름이 끊겨버린 현재는 스스로가 완전히 결백하다고 믿기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현재는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행히 그녀의 소지품을 가지고 있는 노숙자가 잡히면서 살인범에서 벗어나는 듯싶었지만...
현재는 혜린의 죽음과 관련해 자신에게 연락을 취했던 최형사를 만나는데 혜린이 죽기 전 찾았다는 '정만리'란 여성에 대해 듣게 된다. 정만리란 여성은 혜린이 죽은 장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슨 이유로 혜린은 만리란 여성에 대해 알고 싶어 했으며 그녀가 죽은 장소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만리란 여성에 대해 알기위해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간 현재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여겼지만 할아버지와 만리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정만리가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도 있었는데...
혜린의 하나 밖에 없는 언니 정희가 던진 이름 중에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인물이 있다.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자신이 직접 죽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인물이다. 60년 전의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 과거의 현재 할아버지 '윤조'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 온 인물로 몸이 성치 않은 누이 '이조'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조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은 머슴은 넘보지 말아야 할 이조와 정을 통하게 되고 이를 안 윤조는 격분하게 된다. 이 머슴이 바로 죽은 남자다. 현재는 진실에 다가설수록 혜린이 아닌 그녀의 언니 정희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조, 정만리, 혜린과 같이 여인들의 인생이 왜 이리 안쓰러운지... 같은 여자로 그녀들의 삶에 마음이 아프다.
인간의 끝을 모르는 욕심, 이기적인 욕망이 결국 사람의 본성까지도 파괴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죄의 댓가를 치르기를 바라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스토리는 충분히 흡입력도 있고 다음 이야기를 추리하며 읽는 재미 또한 괜찮다. 결말에 대한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반전이 있기에 흥미를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60년을 현대사를 통해 한 집안의 어두운 가족사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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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인연인지《그랜드맨션》과《2월 30일 생》은 같은 얼굴(표지)을 하고 있다. 같이 놓고 비교하니 정말 똑같다. J시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의 국회의원 출마를 돕기위한 할아버지의 부름으로 고향으로 내려온 방송국 pd 현재, 나이차가 많은 여동생은 미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만약 형이나 누나가 있었다면 과거라는 이름을 가졌을런지도. 할아버지가 그러한 것처럼 아버지나 그(현재) 또한 여자와의 만남에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현재 또한 아내외에 혜린이라는 숨겨진 여자가 있었고 아내에게 외도를 들킨 상태에서 현재 그들은 헤어져 있다. 그런데 혜린을 고향 J시에서 생각치않게 마주쳤다면? 더군다나 그와 만남이 있고 얼마후 혜린이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면? 현재는 혜린을 죽인 용의자로 경찰서에 가게 되고 그것은 아버지의 국회의원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다. 상대편에선 후보의 아들이 살인 용의자라는 것을 크게 선전할테니까.
정말 혜린은 자신을 버린 현재에게 복수하기 위해 J시에 온 것일까? '뭐든 탐내고 탐나는 것은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 이것이 주변 사람들이 평가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정체를 가족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평생의 비밀로 삼아왔다. 혜린이 죽기전까지 찾아다니던 '정만리'란 여인은 누구이며 또 '박대길'은 누구야?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혜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송국으로 현재를 찾아왔고 의도적(?)으로 연인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서로 약점을 잡고 있거나, 서로 미워하면서도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을 수 있지." (p.253) 서로 미워하면서도 보호해야 할 약점이라~ 25년전에 죽은채로 발견된 만리라는 여자와 현재 발견된 혜린과의 사이에는 어떤 연관관계가 성립되는 것일까? 그들의 죽음에는 현재의 할아버지 또한 연관이 있다.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 무슨 사연이?
여자라서 일까 처음 표지를 보고 푸른 커튼 밖으로 드러난 빨간 구두가 잘 어울리는 날씬한 다리가 부러웠고 비밀의 장막 안에 숨겨진 그녀의 외모가 궁금해졌다. 혜린이 살해당하던 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상태였기에 현재의 기억속에 혜린과의 마지막은 남아있지 않다. 현실에서 존재할수 없는 시간인 '2월 30일'에 태어난 여자 이혜린, 저자는 있을수없는 시간인 2월 30일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의미)을 남기고자 하는 것일까? 독립투사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어려움을 겪고 지금은 J시에서 막막한 지배력을 자랑하는 유지가 되어있는 할아버지 윤조는 아들을 국회의원으로 출마시키고 공천을 받기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당연히 이루어지리란 신념하에, 그의 그런 막강한 신념이 부럽기도 하다. '뭐든 탐내고 탐나는 것은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라는 주변 평가를 받는 그 사람의 진실된 정체를 밝혀내는 길이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기도 하다.
이 책속의 주인공은 현재가 아닌 할아버지 윤조다. 주인공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일을 주도해가고 있기도 하며 25년전 혜린이 죽은 장소에서 죽은 여인 '만리' 또한 할아버지와 깊은 관계가 있는 탓이다. 혜린이 죽기전까지 찾아다녔던 여인 '만리', 또 혜린이 죽은 후 자신이 혜린의 유일한 가족이라던 여인 '정희' 그렇게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25년 전 과거와 연결되어져 있다. 그 시작은 육십년전 노비였던 박대길이 주인딸이자 윤조의 누이였던 이조와 사랑에 빠지면서 비극은 시작되었지. 남자는 신분이 미천한 여인을 취할수 있어도 여자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과 혼인할수없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 하긴 일제시대를 거쳐 지나오면서 신분제도는 많이 사그러져왔긴 했을테다. 당시 이조를 노리는 남자들은 많았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이조뿐 아니라 이조와 함께 달려 올 재산도 있었지. 현재의 고모할머니에 해당하는 이조, 그녀 또한 커다란 비밀을 안고 있다. 자~ 비밀들을 풀러 가보실까요...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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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생,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짙은 파란색 커튼 밑에 흰 다리와 붉은색 구두로 표현된 여성의 주검이 내용과 분위기를 동시에 암시하는 듯하다. 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이번 책도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만족. 전작보다 이야기와 인물도 풍부해지고 미스터리도 강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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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모임 때문에 고향인 J시를 찾은 현재는 한때 불륜관계였던 혜린과 우연히 만납니다. 그런데 1주일 후 혜린이 살해당하고, 현재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당합니다. 가까스로 혐의를 벗지만 현재는 연고도 없는 J시에서의 혜린의 행적이 의문스러울 따름입니다. 살해당하기 직전 혜린이 만났던 한 여인을 시작으로 현재는 혜린의 동선을 하나씩 되밟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혜린이 J시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 정윤조와 관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윤조는 J시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내를 방치한 채 수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던 희대의 바람둥이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혜린이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할아버지 정윤조와 관련된, 지난 60여 년간 봉인되어 온 비밀들을 하나둘씩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혜린의 죽음이 그 비밀들을 푸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임을 깨닫습니다. 2월 30일이라는, 존재할 수 없는 날에 태어난 한 여자의 죽음에서 출발한 이야기지만 작가가 펼쳐놓은 서사의 폭은 60여 년이라는 시간만큼 깊고 방대합니다. 전쟁의 시대를 겪은 사람들의 추악하지만 절실했던 욕망을 뿌리삼아 작가는 권력, 이기심, 탐욕, 성욕, 살인, 시기, 질투, 치정(癡情) 등 인간의 밑바닥에 있는 본능들을 민낯 그대로 내보입니다. 그 중심에는 정윤조-정태훈-정현재로 이어지는 3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정윤조는 칠순에 이르러서도 남의 여자를 넘보던 희대의 바람둥이였고, 아버지 정태훈은 처제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이력이 있습니다. 아들 정현재는 임신한 아내를 둔 채 함께 일하던 혜린과 몸을 섞었고, 아내는 뱃속의 아기를 지키면서 정씨 집안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3대가 공유한 불륜과 치정의 유전자는 60여 년에 걸친 비극의 이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저 한 쌍의 남녀가 금지된 영역에서 쾌락을 맛보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의 인생을 끝장내거나 큰 상처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60여 년에 걸친 현대사의 비극’과 ‘불륜과 치정’이라니, 물과 기름 같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아이러니한 조합이 아닐 수 없지만, 작가는 생생한 캐릭터, 적절히 배치된 사건, 베일에 싸인 과거사를 정교하게 구성함으로써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무게감과 리얼리티를 이끌어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정은 ‘기억’과 ‘과거’에 관한 것인데, 혜린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현재는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증상을 갖고 있습니다. 덕분에 혜린이 살해된 시점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렸고, 어쩌면 정말 자신이 혜린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동시에 현재는 혜린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만난 사람들에게 길게는 60년부터 짧게는 20년 전의 일들을 기억해내라고 다그칩니다. 사라진 자신의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타인의 기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폭주하는 현재의 이중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작가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을 캐릭터들의 이름을 통해 묘사하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는 현재에 충실히 살라는 의미로 ‘현재’, 여동생에게는 항상 앞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미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어디선가 ‘과거’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기억’과 ‘과거’를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사건이나 캐릭터가 종종 등장하는데, 독자에 따라 작위적이라 여길 수도 있고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한 매력적인 설정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는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일어난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은 아주 잘 뽑힌 한 줄의 카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파 껍질처럼 벗길수록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현재’의 진실들과 고구마 줄기처럼 아무리 뽑아내도 끝없이 뽑혀 나오는 ‘과거’의 진실들, 그리고 그에 발맞춰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역겹거나 안타까운 죽음들이 적잖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오차 없이 직조된 덕에 하루 만에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김서진의 첫 작품인 ‘선량한 시민’ 역시 좋은 평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두 번째 작품인 ‘2월 30일생’을 읽고 나니 첫 작품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만한 서사를 꼼꼼하고 빈틈없이 요리한 필력으로 미뤄볼 때 그녀의 첫 작품 역시 큰 기대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후기 중 이 작품의 작의를 압축한 부분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겠습니다. “뻔뻔함과 노골적인 욕망을 지닌 지독한 악당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면서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인물을... 동시에 우리 시대의 분위기, 핵심을 드러낼 수 있는, 또 그를 통해 현대사 6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욕망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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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그레고리력 기준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날이고, 그나마도 2월은 윤년 여부에 따라 28일, 29일의 크기로 변동된다. 통념적인 상식으로는 2월 30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태음력의 기준으로는 음력 2월 30일이 존재한다고 하며, 실제로 음력 2월 30일에 태어난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서로 간에 혼선 없는 소통과 공유를 위함이다. 2월 30일이 없는 날로 정의된 것은 과학적인 근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기준을 정한 것일 테다. 즉, 2월 30일은 존재는 하나 존재가 드러나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날짜이다. 책의 제목인 2월 30일, 그리고 그 날에 태어난 ‘혜린’이 그러한 존재다. 혜린의 등장으로 인해 다수의 유관자들이 영향을 받고, 그들에게 준 영향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퍼져 나간다. 모든 것은 ‘혜린’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와 불륜 관계였던 ‘정현재’가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던 날 그녀는 살해되었다. 용의자로 몰리게 된 ‘현재’는 과거를 되짚어 가는 과정에서 비극으로 점철된 가족사를 만나게 된다.
역사를 돌아본다.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는가 돌이켜 보면 의외로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다.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라는 문장은 중의적이다. 기억하고 싶은 일도 지워버리고 싶은 일도 모두 지나가 버리니까. 어떤 이는 시간이 흘러 지나가길 바랄 테고 또 다른 이는 지나가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예컨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저 문장은 죄책감, 잡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을 망각의 힘을 빌려 지우고자 하는 바램을 담게 되고, 반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기 전에 밝혀내야만 한다는 의지와 강박을 담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혜린’의 죽음을 계기로 복잡다단한 삶의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 과거가 지워진 채 흘러가기를 바라는 편과 사라짐을 두려워 하는 편으로 나뉘어서… 소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할 듯하다. 이 책은 6.25 발발 직후 시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6.25 발발 시기는 대한민국이 건립되고 헌법이 제정되어 각종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제도들이 폐지는 되었으나 그 잔재들이 남아있던 시기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지만 극단적인 구조 변화를 야기하는 도화선의 역할도 한다. 변혁의 과도기에는 필연적으로 혼란과 불법이 판을 친다. 신분제가 폐지되고 여성의 인권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던 격동의 시기를 살아간 사람들은 변화의 물결에 저항하거나, 물결을 타고 삶 자체를 바꾼다.
현재 시대의 주인공이 ‘혜린’과 연인 관계였던 ‘정현재’라면, 과거 시대의 주인공은 정현재의 할아버지이다. 이 소설은 다양한 등장 인물들을 통해 어떻게 한 사람이 극단적으로 반대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히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다. 6.25 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 국가의 고속성장기에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갖춘 할아버지는 ‘현재’에게 있어 이상형에 가깝다. 사람이란 본래 자신의 단점을 파악하고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막연한 이끌림을 갖게 되지 않던가. ‘현재’의 눈에 비친 할아버지는 도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추진력, 성취욕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사실, 그 시대는 ‘잘 먹고 잘 살자’라는 화두 아래 경제 성장만을 최우선 하던 시기이고, 그 결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그 시기에는 부정부패와 비리가 판을 치고, 돈을 버는 게 최우선이라는 미명 아래 각종 범죄들을 눈감아 주고 가려주었었다. 할아버지의 현재는 누군가의 피눈물 위에 구축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그의 행동들은 지역 경제를 살려냈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었던 만큼 지역 주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는다. 벤담의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행동은 옳은 일이 되어 버린다. 반대로, 그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묻혀버린 역사의 주인공들은 그의 욕망 때문에 처절한 삶을 살아내야만 했다. 그들이 보는 관점에서 할아버지라는 인물은 ‘절대 악’이 된다.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 기준에서는 그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현재는 부유한 부모의 보살핌 아래 별 걱정 없이 살아온 인생이다. 우유부단함의 전형을 보여준다. 문제를 일으켰던 부분은 할아버지, 부모가 다 막아 해결해 줬고, 딱히 비도덕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의 편함을 위해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을 한다.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합리화 시키기 바쁘다.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뭐든 해야만 했던 앞선 세대들과 달리, 현실에 짓눌려 그냥저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얼핏 답답하게 보일지 몰라도 한 번 따져보면 우리 세대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사랑도 마찬가지다. ‘혜린’과의 관계를 사랑이라 여기지 않는다. 불륜 관계가 들키게 되고 난 이후 자신의 감정은 ‘욕망’이라 치부해 헤어짐을 선택한 이후에도 그녀를 자꾸 찾게 된다. 본인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나서도 슬픔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걱정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기적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의 삶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뜻을 가지고 움직이지 못하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던 그는, 찾아온 사랑도 깨닫지 못하고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만약, 그를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낸 ‘혜린’의 언니 정희가 아니었다면, 그는 여전히 할아버지 혹은 부모에게 기대며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가 만나는 수많은 역사의 산 증인들과 그들의 입을 통해서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서 움직인다. 이 책이 흥미진진한 페이지 터너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사소한 단서를 가지고 과거를 헤집어야 하는 ‘현재’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해 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에 감정 이입하여 그가 느끼던 그 답답함, 잔실에 대한 갈구를 같이 맛보게 된다. 마치 양파를 까고 또 까듯이 한 꺼풀 벗겨내면 새로운 인물과 그 인물의 역사가 드러난다. ‘이랬었구나’하는 탄식과 또 다른 궁금증이 피어난다.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자칫 산만하다 느낄 수도 있는데, 워낙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얽히고 설킨 상태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당시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환경을 살펴보는 일도 무척 흥미롭다. 보조출연자 역할을 하는 이들도 각자의 역할을 하며 그들이 던지는 대사들은 복선으로 작용하여 현재와 과거를 이어준다.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과 결과를 알고 다시 한 번 읽는다면, 장담하건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리라 생각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핵심적인 내용들을 담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4가지 단어를 ‘욕망’, ‘사랑’, ‘거짓’, ‘진실’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묻혀 버리길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 그 욕망들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피어나는 거짓과 진실들이 어우러져 명작을 만들어 내었다. 할아버지가 가졌던 욕망(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지만 어떤 욕망인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건들, 사건들을 감추기 위해 저질러진 행위들과 반복되는 거짓말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두터운 껍질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껍질을 깨는 것은 ‘현재’가 거짓으로 숨기길 바랬던 불륜의 결과, 욕망으로 치부될 뻔 했던 ‘드러나게 되어 버린’ 사랑이었다. ‘현재’가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족의 치부를 들춰내는 일이다. 진실과 대면하는 고통스러운 여정은 줏대 없이 살아왔던 자신을 버리고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길이자, 사랑을 깨닫고 그 의미를 되잡는 과정이다.
또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냥 덮어두기엔 아쉬운 등장 인물들이 너무나도 많다. 여운이 남아 자꾸 그들의 삶이 떠오른다. 사랑과 욕망, 거짓과 진실이 만들어 내는 삶의 모습들과 각 단어가 지닌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과거와 현재, 내 욕망과 사랑은 어떻게 변해왔고 또 흘러가게 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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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책 리뷰. 나름 추리소설 팬이고,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리뷰를 쓴다는 건 또다른 차원의 일인지라.....ㅋ 추리소설 팬이라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추리소설은 참 드물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인기라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을 제외하고는 너무 헐렁하다고나 할까? 미야베 미유키는 왜 재미없을까. "모방범"을 세 번이나 읽으려고 했지만 다 실패. ㅠㅠ 우리나라 추리소설도 몇 권 읽어보았는데..... 읽히기는 하는데 읽고나면 너무 남는 게 없다는 거. 스티븐 킹도 스토리는 재미있는데 왜 그렇게 문장이 덜컹거리는지. 그러다보니 나에게 추리 범죄소설의 모범은 수십년 전에 나온 토마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과 "레드 드레곤", 루스 렌들이었다. 그리고 별 기대없이 사 본 "2월 30일생". 한 마디로 감상을 말하라면.....놀라웠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나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지나치게 인위적인 사건들, 오로지 트릭에만 치중한 단순하고 어슬픈 인물들. 과도하게 단순하고 헐렁한 문장 등등이다. "2월 30일생"은 순문학이라 할만큼 문장이 좋고 구성과 인물도 빼어나다. 처음에는 단순한 치정 살인처럼 출발하지만 그 살인의 배후에는 한국 현대사 60년의 비극이 숨어있고, 특히 주인공 박대길이라는 인물은 정말 매력적인 악당의 끝판왕이라고 할까. 읽으면서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대충 감이 왔지만 박대길의 연인 이조를 죽인 사람이 밝혀질 때는 깜짝 놀랐다. 아 그게 그렇게 된 거였구나 하는...... 무엇보다 결말이 특히 좋다. 서로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결, 그리고 할아버지와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손자라는 결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 아니었을까. 우리는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다 읽었는데, 단숨에 다 읽는 책이 대부분 읽고나면 좀 허무한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꼼꼼히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랄까.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우리나라 소설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재미와 진지함을 함께 갖춘 책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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