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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냉전시대가 끝이나고 경제전쟁이 가속화되어 무엇보다도 부가 우선시되는 시대에 살면서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부를 추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세계 부는 특정 국가에 편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각국의 노력이 부족해서 일까 아니면 숨겨진 뒷 이야기가 있는 것인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노력은 가난한 일반인들이 죽어라고 하지만 부는 소수의 집권층만 누리는 것처럼 이 세계도 특정 국가들만 부를 누리고 나머지 국가들은 끊임없는 착취만 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하여 최근의 일련의 세계 곳곳의 각종 착취에 관련된 사건들을 연관지어서 대담형식으로 독자들이 스스로 느끼게 해준다. 세계 곳곳의 사건들을 넘나들기 때문에 따라가기 쉽지 않은 점도 있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관련 사건들에 대하여 미리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현재의 일들 또한 대부분이 승자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촘스키는 그 부분을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다. 산업혁명이든 뭐든 조금 먼저 발전을 통한 서양의 나라들이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이 이를 뒷받침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세계 곳곳의 나라들에 억압과 착취를 행하고 있으며 이를 광고를 통하여 교묘하게 진실을 감추고 있음을 지적한다. "경제학 강의들 들어보면, 정보를 지니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소비자들을 기반으로 하여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텔레비젼 광고를 한번 보라. 그것은 올바른 정보를 갖추지 못한채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소비자들을 양산하기 위해 고안되고 있지 않은가." 단순한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국지전이나 학살에 관련된 사항도 이러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이 왜곡된 것이라면 그 생각만으로도 모연이 송골해진다. 공산주의의 막후세력으로 존재했던 소비에트 연방은 악의 중심축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렇지만 소비에트 연방하에 있었던 국가들의 국민들이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더 자유로웠으며 풍요로웠다고 한다. 물론 모든 소비에트 연방하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가? 이슬람 국가들이 폭력적이라고 알려진 것이 정말로 사실인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기독교 국가들보다 더 평화롭다면 쉽게 수긍하겠는가? 라틴아메리카의 파나마의 도시 콜론의 광경을 보자. 자유주의와 국제사회의 절대선을 주장하는 미국의 침공이 있은 후 사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로 유지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침공이었을까? 우루과이의 위대한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했던 말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그들로부터 희망을 앗아가는 것이다"과 더불어서 "동지들이여 인민들의 희망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 약속을 했으면 지키라!"라는 말에 가슴에 멍이 들 만큼의 충격으로 다가 옵니다. "혁명의 지도자들은 전형적으로 엘리트 계층 출신이 많다. 그러한 리더들이 권자에 앉게되면, 그들은 자신들이 끌어내린 바로 그 사람들과 똑같은 패턴으로 옮아가기가 십상이다"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선진국들을 따라가기 위하여 기존의 자신들의 세계관을 버리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변화하려는 국가들의 모습은 어떨까? 동남아시아가, 라틴아메리카, 중동 모두가 한결같이 대다수 국민들이 착취를 당하지만 소수의 지배계층은 부를 누리고 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국가의 재산과 국민의 피를 착취하도록 눈감아주는 대가로. 그 모습이 마치 "희망"이라 불렸던 배의 잔해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참된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을 알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한 언젠가는 진실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 책의 모든 것이 진실이건 아니건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이라는 말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개인들이 반드시 직면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그저 누군가의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성인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면 비록 작은 목소리라고 할지라도 결코 소홀히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면에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꼭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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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 이 책은 행동하는 지식인의 양심이라 불리우는 노엄 촘스키와 저널리스트 안드레 블첵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 되어 있다. 안드레 블첵은 지구촌의 분쟁지역을 넘나들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저널리스트이자 기록 영화 제작자다. 보통의 언론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현장의 모습들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바라보는 서구사회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역사가 서구의 관점이다. 비단 역사 뿐이 아니다. 경제, 과학, 문학, 예술분야까지 대부분 서구의 방식과 지식을 그대로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서구(특히 미국을 중심으로)의 관점은 우리의 관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을 읽을 수록 우리가 얼마나 서구의 관점에서 지난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책을 읽으면서 은밀하고 잔혹하다는 문장이 얼마나 적절한 제목인지 공감하게 된다. 지난세기와 현재를 되집어볼 수록 서구의 열강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않고, 되돌아보려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역사를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 또한 말이다. 저자 역시 이 부분을 강도있게 비난한다. 우리가 20세기의 부끄러운 민낮을 들여다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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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엄 촘스키와 저널리스트 안드레 블첵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 되어 있다. 노엄 촘스키는 미국의 언어학자 이면서 철학자, 그리고 실천적 정치 평론가 이다. 그는 지금까지 1천여 편의 논문, 100권에 가까운 저서를 집필한 언어학을 뛰어 넘어 세계 여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실질적 지식의 표상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자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향한 그의 항해는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안드레 블첵은 지구촌 분쟁 지역을 빠짐없이 넘나들며 취재 보도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기록영화 제작자, 극작가 이다.
그러한 이력의 소유자인 두 사람이 서구의 제국주의, 식민주의가 아직까지 청산 되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한 여파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진단아래 그 실체에 대해 냉철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촘스키는 다양한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실체에 접근 하고 안드레 블첵은 사선을 넘나들면서 현장에서 목격한 진실을 여과 없이 이 책에 담고 있다. 우리는 제국주의, 식민주의는 20세기 전에 전성기를 누리다 2차 대전 이후 사라진 유산쯤 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후 그것은 나의 착각이고 나의 무지에서 나온 오류라는 사실을 깨달고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한 동안 멘봉 상태였다. 그럼 그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전횡되고 있는데 그동안 우리들은 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는 지 의문이 듣는 부분이다. 옛 식민주의에는 악당이 명확 하여는데 지금의 식민주의는 모호해져다는 점 때문이다. 콩고 동부에서 3백만~5백만 명을 학살된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겉으로 들어난 사건의 주체는 민병대가 자행한 만행이지만 그 속을 들어다보면 다국적 기업과 몇몇 정부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간접 개입이기에 눈에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모하게 법망을 피해 신식민주의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더욱 공고히 다지기 위해 프로파간다를 동원 한다. 대중 매체를 통한 과대선전으로 인해 본질은 사라지고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역할을 해주므로 인해 대중들의 귀와 눈을 막아 의식 확대를 차단해 버렸다. 특히 지구촌 경찰국가라고 자처하는 미국의 이중적 형태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미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지구환경문제를 등한시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오세아니아 섬나라들이 사라질 지경으로 몰리고 있지만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는 곳이 없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 키리바시가 첫 사례가 될지도 모르다고 한다. 그 외에도 베트남, 남미 등에서 행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예를 들어 신랄하게 꼬집어 주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잉글랜드 파생국가들은 제국주의 시대 일 때 원주민에 대한 처사는 동일했다. 바로 완전히 멸족 시켜 버렸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제국주의 식민주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었고 지금도 자행 되고 있지만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자본주의와 대치되는 사회주의 계열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서만 매도를 프로파간다를 통해 연일 맹공을 퍼붓는다. 하지만 자본주의계열에 입맛이 맞는 국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인괄 하는 자세를 위지 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역할로 서구의 프로파간다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긴장이나 공포를 조정 하는데 발 벗고 나선다. 서구 언론의 자기검열의 심화로 인해 지나지게 통제 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반대로 공산주의 계열에서는 서구 언론에 비해 소신 것 발언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 상황인줄도 모르는 서구인들은 자기들이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왜냐 하면 자기들이 서구의 프로파간다에 세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두 사람은 진단내리고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몸살을 앓았던 남미가 변화의 조직이 나타나고 있다. 20년만 해도 남미에서는 친미정부가 들어서 수많은 인명들이 살상 되었고 자원의 유출로 인해 황폐해 졌는데 이제는 친미 정부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의 쇠퇴해가고 있다고 진단을 내리는 촘스키는 그로인해 이런 상황이 언제 가는 아프리카에서도 벌어지리라고 촘스키는 희망을 품어 본다. 아프리카도 이렇게 까지 황폐화 된 이유는 풍부한 천연자원 때문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내전으로 내몰린 이유는 서구의 자본 때문이다. 우리는 프로파간다의 농간에 눈도 멀고 귀도 멀고 있었다. 이제는 서구의 프로파간다를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강한 빛에 눈이 멀어서 세상의 다른 빛은 보지 못한 는 형국 인 것 같다. 자본주의가 성장 하면서 지구촌에 자행한 수많은 잔혹한 유산들을 매의 눈으로 정확히 본질을 파악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들이 나의 새로운 의식을 고취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