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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 데이비드 갓맨 편집 <구승준 옮김> 침묵의 큰 스님, 마하리시의 가르침
있는 그대로 - Be As You Are. 있는 그대로의 '나는 누구인가'. 열여섯 살 소년 벵카타라만은 어느 날 죽음을 체험한다. 갑자기 죽음을 경험하면서 그때 그는 깨달았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참된 본성은 형태가 없으며 만물에 두루 퍼져있는 의식이라는 것을. 자신의 참된 본성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며 육체나 마음 같은 개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의식만이 유일한 실체'이며 개체로서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후 벵카타라만은 시바신의 현현顯現으로 여기는 '아루나찰라' 산으로 갔다. 그의 내면의 깨달음이 자연스레 영적인 빛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 빛에 이끌려 몇 명의 추종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말로 가르치기보다는 조용히 앉아서 침묵의 에너지로 가르침을 펼쳤다. 그의 성스러움과 지혜로움의 발산에 감화된 이들이 벵카타라만 대신 '바가반 스리 라마나 마하리시'로 부르기로 했다. '바가반'은 주主' 또는 '신'이라는 뜻, '스리'는 인도에서 존경을 나타내는 존칭, '라마나'는 벵카타라민의 약칭, '마하리시'는 산스크리트어로 '위대한 현자'라는 뜻이다. 그의 가르침은 '깨달음이 우리의 본성'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마하리시는 질문하는 이들에게 일관되게 답했다. 어떤 질문이든지 답은 한 가지로 향했다.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라. 자신이 주인이라고 여기게 하는 '나라는 생각'이 실체가 아닌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탐구'이다. '진아'는 결코 무가 아니며 오히려 존재의 충만이자 순수의식이며 영적 희열이다. 원래 나는 있는 그대로의 '진아'이지만 무지가 그것을 가리고 다른 것을 투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릇되게 투사된 것을 자신의 참된 자아로 착각한다. 인간의 무지가 제거될 때 있는 그대로의 '진아'가 나타난다. <내>가 아닌 것을 알려고 하는 행위를 그치기만 하면 된다. 그런 것들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순수한 깨달음만이 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I am that I am(성경;출애굽기 3장 14절). <나>는 존재의 참되고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나>는 깨어지지 않는 평화와 온전한 고요함이다. <나>는 순수한 의식 자체이며 유일한 참나(atman)이다. <나>는 그냥 있을 뿐이다. 행복은 <나>의 본성이며 <나>는 행복 그 자체다. <나>는 브라만, 존재-의식-지복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조건 때문에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진정한 행복의 보물창고를 열기 위해서는 <나>를 깨달아야 한다. <나>는 성취해야 할 목표가 아니며 '<나>가 아닌 것'이라는 제한적인 생각을 버리기만 하면 저절로 깨달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저 '나로 존재하라'라는 것이다. 우리가 깨달음이라 부르는 상태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일 뿐, 무언가를 더 알거나 무엇이 되는 상태가 아니다. 항상 존재해 왔고,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외부에 보이는 삼라만상은 실체가 아니며 '나라고 여기는 생각'이 만들어 내는 현상일 뿐이다. 마음은 지성, 기억, 습관, 에고 등 다른 정신적 기능들이다. 마음으로 마음의 본질을 쉬지 않고 규명해가다 보면 결국 마음이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마음이란 '생각의 더미'에 불과하며 모든 생각 중에서도 '나라는 생각'이 뿌리를 이룬다. 그러므로 마음은 결국 '나라는 생각'으로 요약된다.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면 육체와 나를 동일시하게 된다. '나라는 생각'을 없애라. '나라는 생각'이 있는 한 괴로울 것이며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면 괴로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근원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불과한 에고는 사라진다. '나'의 근원을 찾는 것이야말로 '나'를 깨닫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수행이다.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계속 탐구해 들어가다 보면 에고의 본질적인 의식을 만나게 된다. 순수한 '나'와 '나라는 생각'을 구별해야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존재 자체로서의 '나'에 머물 수 있다면 '나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망상도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나'의 지고한 의식 안에서 마음이 소멸되면 애착하게 만드는 힘을 위시한 모든 힘들이 완전히 사라지며 그것들이 자신의 의식 현상에 나타났던 허상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오로지 의식만이 존재한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I am that I am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생각과 망각 활동이 사라진 '나' 만이 순수한 해탈이다. 깨달음은 늘 존재하고 있지만 단지 생각이라는 막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나'를 깨닫고 나면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 '나'는 완전한 지복이자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이미 실체이면서도 실체를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말고 존재하라!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그냥 존재한다! <나>는 이미 내면에 있다. 깨달음이 우리의 본성이다. 명상이란 <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수많은 이름과 모습으로 복잡하고 혼란한 이 세상의 본래 상태는 공空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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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는 심오합니다. 사유하면 할수록 더 깊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본질을 보기 위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진리에 한발짝 다가선 느낌입니다. 반가반 마하리쉬는 특별한 무언가를 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깨달은 존재입니다. 깨달지 못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 생각만 없애면 그 즉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마스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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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영성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결국 최종적으로 남겨둔 책은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와 바가반 라마나 마하리시의 말씀이 담긴 책 몇권이네요. 침묵이 가장 큰 가르침이라는 말이 예전엔 가슴에 와닿지 않았는데, 책들을 읽고 스스로 탐구를 해나아가다보면 결국 진리를 설명하거나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들이 진리로부터 멀어지게할뿐이라는 아주 자명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어떠한 계기로 영적인 탐구에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는 초기의 단계에는 최대한 진리를 왜곡하지 않는 순수한 가르침이 너무나 절실한 법인데, 라마나 마하리시나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가 남긴 말씀들이 영적 여정의 좋은 길잡이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