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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못 말리는 여자들
나는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숙연해진다. 역사란 수 많은 인간들의 삶을 집적한 거대한 물
줄기이기 때문이리라. 말하자면 역사 속에서 개개인의 삶이란 그저 하나의 물방울에 지나
지 않는다. 한방울의 물이 모이고 모여 역사라는 대하를 이루고 유유히 시간을 따라 흘러
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를 단지 지나간 옛이야기로 치부
해서는 안되고 엄연한 사실과 객관성, 그리고 후대의 평가--이렇고저렇고 해서 어느 학문
보다도 역사학에는, 역사와 관련된 저술에는 진정성이라는 대명제가 따라붙기 마련이
다. 역사서란 다른말로 죽어간 자들 앞에서 읽는 조사인데, 어찌 함부로 조사를 낭독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역사서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치밀한 고증과 합리적인 객관
성을 획득한 확신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꾸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리라.
'고대의 못말리는 여자들'이라는 책은 한편으로는 독특한 책이다. 여자, 혹은 여자 영웅
을 기록한 역사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자들을 시
대별로 모아 책을 내놨으니 말이다. 엔헨두아나, 하트셉수트, 드보라와 야엘, 세미라미스
등등해서 나름대로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가 역사에 기록된 이름들--해서 한권의 책에
무려 19명의 여성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역사적인 행위에 대해, 그리고 역사적인 위치와
영향등을 꾸려놨다. 하지만 많은 인물들을 다루어서인지 아무리 초등학교 고학년을 염두
해두고 지은 책이라해도 그 개개인의 진정성을 밝히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껏 지구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영웅들이 살다 갔다. 그럼 여기 나오는 개
개인의 인물들의 이력을 잠깐 살펴보자. 이집트 여자 파라오인 하트셉수트, 그 유명한 사
포, 베트남 독립영웅 쯩자매, 클레오파트라, 아시리아의 정복왕 세미라미스 같은 영웅이
있는 반면 로마시대의 전문독살가 로쿠스타, 길거리 철학자 크라토스와 결혼해 길거리 철
학자라는 명성(?)을 함께 들은 히파르키아, 로마 삼두정치 때 세 집정관 앞에서 연설한 호
르텐시아, 운동선수로 이름을 날린 트리포사 자매, 제사장 엔헨두아나 같이 기록조차 찾
기 힘든 인물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네로를 도와 수많은 사
람들을 독살한 로쿠스타란 인물을 소개한점이다. 책에 나오는 다른 위인들과 전혀 이질적
인 인물을 끼어 넣은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독살시키더라도 역사에 이름
만 나면 그만인가. 아무튼 이런 연유로 여러 단편적인 인물들을 역사라는 대하에 합류시
키는데에 있어 이 저서는 충분히 실패했다고 본다. 또한 '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
계 역사 이야기' 라는 부제에 맞지 않게 그 진정성의 결여는 책 군데 군데 띈다.
가령 브리타니쿠스가 네로에게 독살 당한 뒤 '그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하고 마치 아그
리피니가 그처럼 생각한 것처럼 글을 써놨는데, 다른 역사책 어디를 뒤져봐도 아그리피나
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객관성을 얻지 못한 글을 어린이 도서라해서 생각없
이 싣는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리고 책 처음부터 끝까지 거슬리는 반말
투의 문장, 가끔가다 한번씩 튀어나오는 (지도를 보렴), 논술비중이 높아진 이때에 어울
리지 않게 너무 가벼운 '생각해보기 코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못말리는 여자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 세상에 나온 책은 인류
의 반을 차지한 여자들의 기록되지 못한 삶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오죽하면
로쿠스타가 나왔을까--그정도로 여성 영웅이 역사에 드믈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있
어서 얼마나 압제적이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를 생각한다는 것은 슬픔의 다른 이름이다. 역사라고 뭉뚱그려진 어휘 뒤에는 이름조
차 잊혀진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뼈와 살, 그리고 피가 대하를 이루고 흐르고 또 흐르기
때문이리라. 역사앞에선 누구나 숙연해지고 또 숙연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나는
다시한번 조사격으로 외쳐본다. 아, 역사여, 애달픈 우리 인간의 기록이여, 애증이 점철
된 삶이여, 우주적 죽음이여, 여기 이렇게 그대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또 한 권의 책이 나
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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