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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역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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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역사마이클 피셔/최하늘더숲/2025.4.25.sanbaram “한때 무굴제국이 지배한 땅은 오늘날 인도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달한다.(p.5)”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처럼 넓은 영토를 갖고 300여년 동안 존재했지만 역사적으로 크게 부각 되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무굴 제국의 역사>에서 기술하고 있다. 무굴왕국은 1526년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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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역사

마이클 피셔/최하늘

더숲/2025.4.25.

sanbaram


“한때 무굴제국이 지배한 땅은 오늘날 인도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달한다.(p.5)”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처럼 넓은 영토를 갖고 300여년 동안 존재했지만 역사적으로 크게 부각 되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무굴 제국의 역사>에서 기술하고 있다. 무굴왕국은 1526년 중앙아시아 출신 바부르카가 인도북부를 정복하고 세운 왕조다. 왕조가 인도 북부에 정착한 후 종교와 언어가 다양한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토착세력과 정략혼을 통해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영토를 형제들에게 나눠 상속하며 군주권을 나누는 전통을 지키다 보니 결속이 약해졌다. 또한, 이웃 국가를 정복한 후 약탈한 재화로 국가를 경영하고, 때로는 현지세력에 관리를 맡기는 정책으로 중앙집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를 품고 발전시켰으며 특히 여러 정원 영묘 중 타지마할은 걸작 건축물로 유명하다. 끊이지 않는 형제와 친척의 반란과 경쟁으로 국력이 약해졌다. 이에 더해 영국과 네덜란드 등이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경제와 국권을 침탈해 결국은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무굴제국은 물론 현재의 인도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굴 제국은 1526년 중앙아시아출신의 바부르가 인도를 정복하고 세운 이슬람 왕조로, 약 3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부를 일구어 번영을 누리다 1857년 막을 내렸다. …무굴이라는 이름은 왕조를 세운 바부르와 그 후손이 속한 부족을 가리키는 말로, 몽골을 뜻하는 페르시아식 표현이다.(p.6)”고 <무굴 제국의 역사> 서문에서 말한다. 초대 황제 바부르는 젊은 시절을 약탈 습격과 짧은 정복, 목숨만 겨우 건진 도주, 경계 혹은 경멸의 눈길을 보내는 친척의 궁정을 오가며 보냈다. 바부르와 그의 중앙아시아인 추종자들, 새로운 힌두스탄인 신민은 각자의 문화와 전통, 이해관계가 뒤섞인 결합체로서 무굴제국을 창건했다. 2대 황제 후마윤은 인도 북부에서 무굴제국의 황제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바부르의 유언과 중앙아시아의 관습에 따라 왕가의 남성들은 군주권을 공유했다. 3대 황제 악바르와 주요 지지자들은 악바르의 재위기(1556-1605년) 50년간 무굴 왕조를 힌두스탄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했다. 악바르는 약탈적이지 않고 세금 납부자와 징수자 모두에게 명확한 규칙과 기록이 있는 중앙집권화하고 관료화한 혁신적인 세금 징수 모델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악바르는 긴 재위 동안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겼다. 이후의 황제들은 성공의 정도는 각각 다르기만 모두 악바르의 기반 위에서 업적을 이루어 냈다.


무굴제국의 주요 전략은 적의 지도자를 포섭하는 것이었다. 만사브다르는 지방의 지도자들을 지방 행정에 참여시켰다. 알람기르가 죽은 1707년에서 1857년까지 무굴제국의 후반 150년 동안 유약한 황제들이 잇달아 등장했으며, 그나마 실제로 지배한 사람은 몇 안 된다. 무굴제국의 황제와 관리는 방대한 역사 서술과 문헌뿐 아니라 예술 작품, 건축, 주화 등 풍부한 1차 자료를 남겼다. 파키스탄 건국의 근거가 된 가장 중요한 이념적 주장은 파키스탄을 무굴 제국의 후계국가로 보았다. 1971년 분리독립하기 전에는 동파키스탄이라 불리던 방글라데시는 사실상 독립된 무굴제국령 벵골이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영국 제국주의에 굴복한 지역이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일으킨 힌두트와(힌두다움) 운동은 불할되지 않은 인도를 힌두의 고향으로, 무굴제국을 약탈과 억압을 행한 이방인 침략자로 여긴다. 힌두트와 운동의 슬로건은 오늘날 인도에 사는 모든 무슬림을 실제 혈통과 관계없이 이방인 ‘바브르의 후손’으로 규정한다. 이처럼 무굴제국의 역사는 이 세 나라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무굴 제국의 역사>의 저자 마이클 피셔는 미국 오버린 대학교의 로버트 댄포드 역사학 석좌교수로 16세기 이후 인도와 유럽에서 빚어진 인도인과 유럽인 사이의 상호 작용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인도사>, <세 바다 너머 : 무굴제국의 여행자 이야기> 등 무굴 및 인도 역사를 다룬 15권의 저서가 있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k******4 2025.05.16. 신고 공감 1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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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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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은 한국에서 은근히 잘 알려진 이름이기는 하지만, 그 이름이 거의 대부분 타지마할을 만든 황제의 제국쯤으로만 언급될 때가 아주 많아서 무굴 제국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이클 피셔의 책인 무굴 제국의 역사가 한국어 번역본으로 출간되면서, 무굴 제국의 전반적인 역사 이야기 등에 대해서 찬찬히 읽어볼 수 있게 되어서 반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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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은 한국에서 은근히 잘 알려진 이름이기는 하지만, 그 이름이 거의 대부분 타지마할을 만든 황제의 제국쯤으로만 언급될 때가 아주 많아서 무굴 제국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이클 피셔의 책인 무굴 제국의 역사가 한국어 번역본으로 출간되면서, 무굴 제국의 전반적인 역사 이야기 등에 대해서 찬찬히 읽어볼 수 있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전체적으로 인도의 많은 지역을 지배했던 무굴 제국의 역사적 인물과 역사적 사건 등에 대해서 주로 다루지만, 그 외에도 타지마할 등 유명한 문화재나 당시 문화 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다루고 있어서 더욱 풍부한 재미와 흥미를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건이 당시 무굴 제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겨졌을지 등에 대한 내용 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연말리뷰
o****7 2025.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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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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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은 18세기 아프가니스탄과 페르시아의 침공과 인도 지방 지배자들의 보기로 분열을 거듭한 끝에 결국 확장하던 영국 제국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한때 무굴 제국이 지배한 땅은 오늘날 인도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달한다. (-5-)1526~1530 바부르, 파니파트 전투에서 승리하며 인도 북부 침공을 마무리하고 무굴 황제로 재위. (-13-)바부르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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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은 18세기 아프가니스탄과 페르시아의 침공과 인도 지방 지배자들의 보기로 분열을 거듭한 끝에 결국 확장하던 영국 제국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한때 무굴 제국이 지배한 땅은 오늘날 인도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달한다. (-5-)





1526~1530 바부르, 파니파트 전투에서 승리하며 인도 북부 침공을 마무리하고 무굴 황제로 재위. (-13-)





바부르 시대에 몽골인(모굴인) 대부분은 중앙아시아 초원 주변에 거주하는 목축 유목민으로 주로 전통적 샤머니즘과 불교 관행을 고수했다. 반면에 마와라알나흐르의 도시 교역과 농경 경제권에 정착한 몽골인(무굴인) 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경향이 있었다. (-42-)





바부르를 비롯한 많은 중앙아시아인은 전통적 이슬람 관행 외에 전조와 점성학, 수비학, 문자학, 수수께끼 같은 꿈의 안내에 따라 종교적 신비와 미래의 사건을 알아내고자 애썼다. (-47-)





1526년 4월에 벌어진 파니파트 전투에서 바부르는 화승총과 대포를 중군에 배치하고, 쇠가죽으로 만든 밧줄로 연결한 수레 700개를 서벽 삼아 화승총을 쏘는 군사와 포병을 보호했다. (-68-)





무굴 시대에 장거리를 이동하는 이주 공동체 다수는 목축 생활을 교역과 융합했다. 이들은 육류와 유제품을 생산하여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이나 지역의 시장에 내다 팔았다. 무굴 제국 군대는 황소 증에 곡물을 얹어 운반하는 대규모 장거리 교역 상단에 의존했다. 무굴 제국 정부는 이런 목축민과 떠돌이 상인을 찾아 세금을 매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89-)





비부르가 델리 술탄국을 무너뜨린 사건은 야심 찬 경쟁자들에게 실력을 확장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갠지스평원 저지에서는 인도아프간계를 비롯한 여러 지역 지배자가 이 기회를 잡았다. (-94-)



잃어버린 영토와 명성을 되찾기 위해 후마윤은 시르 샤 수르를 향해 재차 진군했으나., 1540년 5월 카나우지에서 더욱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사기가 저하된 무굴 제국군은 본격적으로 싸우기도 전에 흩어졌다.(-124-)





악바르는 바이람 칸이 아버지 역할을 해준 데 감사함을 느끼는 한편, 그를 힌두스탄에서 명예롭게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악바르는 일부 토지 세입을 다시 할당해 주어 메카 순례와 돌아온 후 은퇴 생활을 위한 연금으로 쓰도록 했다. (-153-)





무굴 제국은 공략한 지역들에서 조공과 세금믈 거두기 위한 거대 규모의 군대와 행정부가 필요한 군사재정주의 국가였다. 제국 군대와 정부는 물론 악바르의 가문과 궁정은 그 수입으로 지탱되었다. (-171-)





학자들은 이런 초자연적 설명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히려 어떤 이는 악바르가 간질 환자였다고 생리학 측면에서 설명한다. 또 어떤 이는 악바르가 신앙의 위기, 신비주의적 탐색과 이전의 정토 순니파 신앙을 화해시키기 위한 내적 투쟁읊 겪었고 심리학 측면에서 설명하다. (-223-)





1583년경 악바르는 매일 다섯 차례 기도하는 이슬람의 의무를 그만두고 매일 네 차례 태양에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더니 신성한 빛에 대한 신앙을 공공연히 드러냈다고 한다. 악바르의 새로운 의례에는 여러 기원이 있을 수 있다. (-229-)





자항기르 재위기에 조신들은 예절을 다룬 책을 많이 저술했다.이 책들은 출세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황제에게 다가가 황제를 기쁘게 하는 방법과 거기에서 얻을 이익을 가르쳤으며, 이는 모든 관심사를 능가했다. 실제로 자항기르의 호의는 큰 명예와 권력, 부를 가져다주었다. (-268-)





아그라성에서 줌나강을 따라 내려온 곳을 부지로 택한 샤 자하은 건축가들에게 타지마할을 무굴 제국의 정원 영묘 가운데 가장 독특하게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정원을 중심에 둔 많은 무굴 영묘 모스크와 달리 타지마할 같은 아그라의 통례대로 북쪽 끝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누르 자한이 부모 의 영묘를 위해 고안한 요소들은 5년 뒤 샤 자한의 건축가들에 의해 더욱 거대하고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310-)





전략적 요충지 칸다하르는 무굴 제국과 사파비 제국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곳이었다. 1638년 사파비 측 총독 알리 마르단 칸이 무굴 제국에 투항하여 샤 쟈한에게 칸다하르를 안겨 주었다. 샤 자한은 그를 5천/5천 만사브, 병사와 군마를 위한 장비를 주며 환영했다. (-316-)





그 결과 많은 만사브다르가 휘하 군인과 부하들에게 오랫동안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불충한 행동을 조장했다. 또한 만사브다르들은 자기르에서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뽑아내기에 바빴고. 다음 사람에게 양도하기를 거부했다. 무굴 제국의 중앙 정부가 지방 행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마침내 만사브다르는 자신들의 봉토인 자기르를 세습 왕국으로 만들었다. (-356-)





1947년에 있는 인도로부터의 파키스탄 분할은 무굴 제국의 역사에 대함 다양한 접근 방식을 강화하고 재구성했다. 이대 대규모 폭력 사태가 빚어져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 1천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힌두와 시크 대부분이 파키스탄을, 많은 무슬림이 인도를 떠났다.독립 직후 무굴 제국이 얼마나 무슬림적 또는 인도적이었느냐, 그리고 무굴 제국을 구성했던 모든 사람의 관점을 어떻게 반영하고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411-)





대한민국에서, 이도 무굴 제국이 단독으로 언급된 시기는 1998년 전후였다. 그 이전까지 무굴 제국은 인도의 역사의 한 제국사로 편입되었다. 물론 무굴 이라는 명칭은 후대의 역사가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1526년 무굴제국의 초대 황제 바부르는 파니파트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분열된 인도를 하나의 제국으로, 무굴 제국으로 왕권을 바꿨다. 그 과정에서, 무굴제국의 전성기는 1636년 샤 자한이 집권한 다음이었다. 샤 자한은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이 , 1631년 열네 번째 자식을 낳다가 서른 여덟 살에 사망하였으며, 그녀를 기리기 위해서 , 22년간의 기한이 걸려서 타지마할을 완성했다. 무굴 제국은 초대황제 바부르가 재위하였던 1526년부터, 17대 황제 바하두르 샤가 재위하였던 1857년까지, 360여 년 간의 평화로운 무굴 제국을 키워 나갔으며 영토 확장 뿐만 아니라 막대한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 그로 인해 인도의 역사에서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확보했으며, 무슬림 제국으로 우뚝섰다.





인도의 무굴 제국의 가치와 문화적 가치는 무굴제국이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 , 다시 그 영광을 되찾고자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인도의 무굴 제국은 전성기 때, 인구 25만의 도시가 100여개 이상 이었으며, 중앙아시아 상업과 경제의 중심지였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중앙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하였고, 무굴 제국의 허약한 왕권은 내부의 분열로 인해, 영국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인도가 영국식민지가 되었고, 세계 열강의 전쟁터가 되었던 이유다. 불교와 무슬림, 힌두교가 공존하는 다채로운 나라 인도는 무굴제국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k*******2 2025.08.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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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역사(마이클 피셔 저, 더숲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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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마이클 피셔의 "무굴 제국의 역사"는 제국의 복잡한 역사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풀어낸 책이다. 마이클 피셔는 이 책을 통해 제국의 황제와 역사적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여 제국의 발전과 쇠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복잡한 역사적 사실들을 간략하면서도 명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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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이클 피셔의 "무굴 제국의 역사"는 제국의 복잡한 역사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풀어낸 책이다. 마이클 피셔는 이 책을 통해 제국의 황제와 역사적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여 제국의 발전과 쇠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복잡한 역사적 사실들을 간략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피셔는 제국의 정치적 사건과 문화적 변화를 복잡하지 않고 중요한 핵심만을 짚어가며 소개한다. 또한 제국의 여러 황제와 그들의 정책을 중심으로 제국의 성장과 위기를 설명하며, 각 시대의 특징을 잘 포착한다. 특히, 제국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단지 사건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들이 제국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무굴 제국의 역사 더 나아가 인도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에게도 이 책은 쉽게 다가왔다.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이 책은 쉽게 읽히고, 무굴 제국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입문서가 될 것이다.
m*****e 2025.05.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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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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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촉발 직전에 있는 지금, 『무굴 제국의 역사』를 펼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양국의 갈등은 무성의했던 영국의 식민 지배 청산에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만, 두 나라가 하나의 제국으로 묶여 있던 무굴 시기에서 그 뿌리를 찾는 것도 결코 어긋난 접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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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촉발 직전에 있는 지금, 『무굴 제국의 역사』를 펼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양국의 갈등은 무성의했던 영국의 식민 지배 청산에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만, 두 나라가 하나의 제국으로 묶여 있던 무굴 시기에서 그 뿌리를 찾는 것도 결코 어긋난 접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읽기에 가장 적절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힌두와 이슬람, 섞일 수 없는 두 종교가 공존했던 제국의 역사 속에 오늘의 갈등을 이해할 단서가 숨어 있기를 바라며, 찬란함과 긴장이 공존하던 과거를 들여다본 시간은 지금의 불안을 더욱 깊이 실감하게 했다.

#리뷰어클럽리뷰
a*******e 2025.05.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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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 역사를 알기 쉽게 다룬 개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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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 학교 시절 국사보다 세계사를 더 좋아했지만 이상하게 인도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었다. 그냥 덥고 습한 기후의 살기 안좋은 땅 정도의 이미지라 그런가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내게도 두 가지는 아직까지 분명하게 기억난다. 무굴 제국, 그리고 악바르 황제. 아마 실제 인도 역사에서 그만큼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이리라. 그리고 무굴 제국을 다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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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 학교 시절 국사보다 세계사를 더 좋아했지만 이상하게 인도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었다. 그냥 덥고 습한 기후의 살기 안좋은 땅 정도의 이미지라 그런가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내게도 두 가지는 아직까지 분명하게 기억난다. 무굴 제국, 그리고 악바르 황제. 아마 실제 인도 역사에서 그만큼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이리라. 그리고 무굴 제국을 다룬 이 책에서도 악바르 황제에 대한 기술은 전체 분량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많다.

방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를 보유한 인도라는 국가에 대한 역사에 대해 그닥 알려진 바가 적은 것은 아마 통일 왕조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특히 지역마다 다른 문화와 언어가 중앙 집권적인 행정국가 설립에 큰 장애물로 작용한 부분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인도에 처음으로 등장한 거대 제국이 바로 무굴 제국이고(놀랍게도 이 무굴이란 이름은 타인들이 부른 이름이다! 스스로 붙인 게 아니다!) 그렇기에 무굴 제국을 아는 것이 어쩌면 인도 역사를 아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무굴 제국의 건국과 제국의 확립, 전성기 그리고 쇠퇴와 멸망을 각 황제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바부르라는 초대 황제가 서북부의 작은 영역을 지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굴이 건립되었고 이후 2대인 하마윤이 힌두스탄(서쪽 펀자브와 동쪽 벵골 사이 중심부. 남부인 데칸 고원까지는 아직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까지 어느 정도 세력을 확장한다. 놀라운 점은 이들이 인도 본토인이 아니라 현재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온 외부인이라는 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인도 서북부 방향으로 진출했지만 이들은 늘 본고장인 중앙 아시아를 그리워했고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3대 황제 악바르는 잠깐의 유배 생활을 제외하면 인도 본토에서 자랐고 할아버지,아버지처럼 카불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마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인도의 여러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반대파를 제거하고(유목민의 전통때문인지 모든 형제는 서로 차기 권력자가 될 권한이 주어진다.그렇기에 권력 투쟁은 불가피하다.) 평생 전장을 누빈다. 이와 동시에 조세 제도를 개혁, 합리적인 징수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국가 재정을 확보한다.아마 악바르 황제에게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이유는 자신의 윗 세대와 달리 인도를 자신이 정착할 땅으로 인식하고 중앙 집권화된 국가 체제 확립에 성공했기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치 청나라가 초기 강희제,건륭제,옹정제 등 뛰어난 황제가 잇따라 등장하며 오랜 기간 치세가 계속된 것처럼 무굴 제국도 악바르 황제 이후 3명의 뛰어난 황제가 통치를 지속하며 제국은 전성기를 누린다.(자항기르,샤 자한, 알람기르) 그렇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이후 무굴 제국은 계속 쇠퇴를 거듭하며 짧은 시간의 통치를 마치고 물러나는 황제가 속출한다. 그리고 1862년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가 사망하며 제국은 막을 내린다. 아쉬운 점은 제국의 쇠퇴부터 멸망까지 시간이 150년 정도로 제국 전체의 절반이나 되는데 막상 할애된 지면은 40 페이지도 채 안되다는 점이다. 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지배한 황제가 몇 명 안되다는 걸 감안해도 너무 적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런 약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무굴 제국의 역사에 대한 개론서로 손색이 없다. 특히 요즘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번역서에서 자주 보이는 읽기 어색한 번역 투의 문장의 주는 불편함은 찾아 보기 힘들다.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쓰여 있는데 아마 원문도 그렇게 서술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특히 풍부한 각주와 지도, 알기 쉽게 정리된 가계도 등은 제국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무굴 제국은 그렇게 거대한 영토를 지녔슴에도 결국 외부인이 세운 제국이고 국가가 무너질 때 이들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결국 파키스탄과 인도가 분리되었다는 시선을 고려하면 무굴 제국의 역사는 현재 인도와 주변국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이 내딛는 첫걸음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m*****6 2025.05.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