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자기 몇점의 발견으로 시작되어 몇백년전에 침몰한 무역선이 발견되었습니다. 2만점의 중국 자기를 실었던 이 무역선을 발견하여 인양하면서 한국은 해양고고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무역선은 중국 닝보항을 출발해서 일본 하타카항이 목적지였습니다. 2만점의 중국 자기는 대부분 원대의 생활자기로 이 배 한척의 선적량만으로 한국은 전세계 원대 자기의 50%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배가 보여주는 시사점은 원나라대에서 강남지역은 활발하게 무역을 진행하였으며 적국이었던 일본에도 막대한 수출을 중국의 배로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초원에서 일어난 몽골제국은 수많은 강국을 무너뜨리고 유라시아 전체에 걸친 영토를 정복하였으나 바다에서는 약해서 일본과 베트남에서는 패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안선은 반대로 몽골제국이 활발하게 바다에서 무역을 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국의 선박으로 멀리까지 항해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내부적 변화가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 시절에 일어났으며 남송 정복과 이후의 통치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약한 사대부의 나라라고 평가 받던 송왕조는 역사상 최강국으로 꼽히는 몽골제국을 상대로 항전했습니다. 송나라를 격파하고 놀려댔던 북방 민족의 국가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진데 반해서 송나라를 장렬하다고 평가할수 밖에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싸우다가 무너졌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아무래도 서양쪽 사고 방식으로 쓸모없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저로서는 높게 평가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몽골은 이런 송나라를 상대로 말에서 내려서 배에 타고 싸우는 법을 배운 다음에야 이길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송나라를 정복하는 후에 벌어서 원정은 막대한 손실을 본 후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은 멈췄으나 무역은 이어졌습니다. 몽골 제국은 이러한 변신에서 성공했으며 쿠빌라이 칸은 이런 점에서 유연했습니다. 중국사 전체를 봐서는 이러한 변화가 후대 왕조에서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명나라는 원나라를 몰아내고 계속 북방유목민과 대립했기에 새방 vs 해방의 방향에서 새방에 매달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중국의 역사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볼수 있었습니다. 서구학자가 쓴 몽골, 중국 역사는 우리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