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읽고 난 첫 느낌 일단 분량이 방대한지라 보름이상 취침시간을 쪼개가며 통독하였다. 구한말 격동의 세월이 바로 옆에서 숨쉬는 것 같았다. 오늘날의 역사현실(북핵문제와 6자회담, 중국과 일본의 경제대국화, 비지성적 반미주의 등등)을 돌아볼 때에, 아직까지 결코 약소국의 지위에서 자유럽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2. 고종 매천야록을 한편의 대하소설로 본다면 단연 주인공은 조선왕조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1852~1919)이 될 것이다. 고종은 말년에 독살설도 있지만, 조선 왕 27명 중 환갑을 넘긴 사람이 불과 6명에 불과한 현실에 비추어 대체로 천수와 함께 갖은 영화를 누린 임금이다. 재위기간은 44년으로 역대 왕중에 영조(52년), 숙종(46년)에 이어 3번째로 길게 왕위에 있었다. 대원군 섭정 10년을 제외하더라도 랭킹 5번째에 들 정도이다. 바꾸어 말하면 기회가 많았던 군주였다. 매천이 왕조사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나라를 망친 제일의 책임을 고종과 민비에게 돌리고 있을 정도로 당시에조차 민심을 이반한 임금이었다. 오죽했으면 10년간 복무한 미국 공사 Allen 이 귀국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겠는가. "한국 국민이 가련합니다. 내가 일찍이 구만리를 돌아다녀 보고 위아래로 사천년 역사를 보았지만 한국 황제와 같은 인간은 또한 처음 보는 인종이었습니다!"(하권, 222쪽) 쓸데없는 데 국고 낭비하지 말고, 서구 열강의 세력균형을 이용하면서 일본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실속있는 부국강병책을 꾸준히 추진했더라면, 그토록 허무하게 나라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3. 일본 요즘도 일본한테 축구시합에 지면 국가대사를 그르친 것 마냥 난리법썩을 피우는데, 우리나라 만큼 일본을 우습게 아는 국민이 없을 것이다. 사실 개개인의 역량을 놓고 볼 때 우리나라가 일본에 뒤질 이유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정말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 우리가 워낙 역사를 압축해서 배우고, 또한 되새기고 싶지 않은 치욕적이 부분이라 쉽게 넘어가서 그렇지만, 일본의 대한(對韓) 경략은 참으로 치밀하기 그지없기에 한번쯤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 다시 반복되어 한국이 어느 나라의 식민지가 될 경우에 처한다면 19세기말 일본측이 구사한 시나리오는 아직까지 유효할 듯 싶다. 물론 한꺼번에 병탄할만한 물리력이 부족한 것이 큰 이유였겠지만, 30년이 넘는 세월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준비한 정교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지도록 만들어서, 순차적으로 무장해제시키고 권력이 이양한 방식은 후진국을 식민화하는 전형적인 교과서라 할 만하다. 당대를 살면서도 끊임 없이 옥좨어 오는 일본의 마수(魔手)를 정확히 포착하는 매천의 역사의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4. 인재(人材)와 난신적자(亂臣賊子) 고종과 민비가 가장 큰 원흉이기는 하지만, 매천야록에는 더불어 나라를 망하게 한 매국노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한다. 요즘 유행하는 친일파 인명록을 작성하는데 적지않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팔아 먹은 놈부터 백성을 수탈하여 민심을 피폐시킨 외척과 탐관오리, 국록만 축낸 고위관료, 헛된 상소로 국론을 분열시킨 비현실주의 山林까지 수많은 인물이 명멸한다. 그러면 다 이런 사람들만 있었겠는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물론 이 시대에도 인재는 있었다. 초야에 묻혀 있든지, 조정에서 주목받고 있지 못하든지..... 다만 이들은 알아줌의 성은을 입지 못한 것 뿐이다. 고종의 불행이자 우리민족의 불운이다. 특히 갑오경장 이후 일본의 강요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개혁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아관파천의 변란을 당하고, 이때 김홍집과 어윤중 두 일꾼을 잃은 사태는 그야말로 마지막 기회를 날린 것처럼 보인다. 김홍집 내각에 조금만 더 힘을 실어주고 개혁정책을 계속 추진하였더라면, 일본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하더러도 그처럼 허무하게 나라를 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종은 인재를 알아볼 줄 알았다. 왕실의 비용을 충족시키기 위해 벼슬팔기를 일삼았지만, 꼭 절실한 경우에는 적재적소에 기용할 줄도 아는 임금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아쉬운 생각이 든다. 5. 매천 황현 1855년 출생한 매천은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당대의 한심한 정세에 염증을 느끼고 낙향하여 평생 독서에만 전념하였다. 한일합방 소식이 전해지자,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오백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몸을 바친 자가 한명도 없다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 하며, 다량의 아편을 복용하고 순국하였다. 일찍이 友人 김택영은 "황매천에 있어서 詩는 文(산문)보다 몇배는 뛰어난 別材이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당대의 대학자가 평가한 것이니만큼 훌륭한 시인이었음은 틀림없겠다. 매천의 시를 따로 접해보지 못하였으되, 매천야록 권말에 실린 절명시 4수는 한시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품격이 높다. "秋燈掩卷懷千古, 亂作人間識字人"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되기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시를 감상할 능력이 별로 없는 현대인에게는 7권의 매천야록이 너무나도 소중한 기록일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소중한 기록이 매천 사후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이르러 겨우 일반인이 읽을 만한 완역본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부끄러울 따름이다(10여년 전 교문사에서 나온 매천야록은 주석이 태부족이고 거의 국한문혼용이라 일반인이 읽기는 힘든 서적이었다). 말끝마다 "역사의 교훈"을 되내이지만 진정한 교훈은 애써 외면하는 현실이 아니겠는가. 6. 맺음말 적다 보니 서평도 논설도 아닌 이상한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지난 몇주 동안 국어사전과 字典을 옆에 두고 매천야록을 탐독하였던 시간은 참으로 복된 시간이었다. 흥행성이 별로 없는 이러한 서적이 출판될 수 있게 후원해준 서남재단이 고맙기 그지없다. 책은 장서가들이라면 누구라도 탐나게 잘 만들어졌고, 정성 가득한 주석과 권말 색인도 아주 훌륭하다. 더 욕심낸다면 부록으로 실린 오하기문은 전문이 실렸으면 하고, 일상 용어가 아닌 것(예를 들어 軍額, 緬禮, 饒戶 등)은 현대 표준어로 바꾸든지, 상세한 뜻풀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오탈자가 조금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정도라면 참을만 하다. 이런 희망사항을 다 감안한 완결판이 나오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