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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아직도 읽히는 이유는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것도 있지만, 19세기와 지금의 현실 중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고 하지만 주위의 압박과 방해로 좌절하고 도태되는 경우가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학 입시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만큼 부족하고 낙오자라는 인식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은 학생 수보다 대학정원이 더 많음에도 입시과열이 없어지지 않는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어린 학생들의 입장에서 매일 같은 일과를 보내는 것이 지겹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적응하고 살아가는 학생도 많다. 다만 그 쳇바퀴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잘못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수없이 많지만 한가지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뒷부분은 무시하는 것처럼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것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능력이 있어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배우는 지식이 내일 쓸모 없어지는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이 무한한 청년들이 어이없이 죽어나가기 전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나름대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레바퀴아래서 #헤르만헤세 #코너스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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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는 주인공 한스의 삶을 통해 경쟁과 압박 속에서 무너져가는 한 소년의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신학교에서의 생활', 그리고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삶'이라는 세 번의 환경 변화를 중심으로 한스의 심리와 성장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유난히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의 한스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신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처럼 뛰어놀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해야 할 나이에 한스는 오직 공부만을 위해 살아간다. 햇빛을 보지 못해 창백해진 얼굴과 운동 부족으로 마른 몸은 그의 삶이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수석에 가까운 성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한스는 조용히 공부만 하는 학생으로 지낸다. 그러던 중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하일너를 만나게 되고 처음으로 숨통이 트이는 시간을 경험한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하일너는 한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하일너는 결국 신학교 규율을 어겨 퇴학당하고, 같은 방 친구였던 힌딩거마저 사고로 죽게 된다. 연이어 찾아온 상실 속에서 한스는 점점 무너져가고 결국 신경쇠약으로 학교를 떠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삶도 한스에게는 희망이 되지 못한다. 그는 더 이상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한 채 공허함과 우울 속에서 무기력한 하루를 버텨간다. 그러던 중 '에마'를 만나며 잠시 삶의 빛을 되찾지만 그녀마저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리자 한스는 다시 깊은 절망에 빠진다. 결국 그는 기계공으로 일하던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길에 강물 속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사고였는지 스스로 강물에 들어간 것인지는 끝내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 소년의 비극적인 결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스의 감정에 깊이 몰입했고 자연스럽게 나의 학창 시절도 떠올리게 되었다. 어른들의 기대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돌볼 시간조차 없이 살아가야 했던 한스의 모습은 오늘날의 입시 중심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한스는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달려야 했다. 그래서 목표가 사라졌을 때 '자신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한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더 높은 성적이나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줄 사람 단 한명이지 않았을까. 《수레바퀴 아래서》는 단순히 한 소년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경쟁과 기대 속에서 청소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질문을 던진다. 특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과, 아이들을 성적과 결과로만 바라보는 어른들이 함께 읽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아무리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혼자 견디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사람은 다양한 경험 속에서 성장하고, 시간이 흐르며 상황 또한 변해간다. 한스처럼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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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는 더 바르게 헤엄치다가 쉬고 다시 헤엄치면서 기분 좋은 차가움과 나른함에 젖어 들었다. 강물에 둥둥 떠서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원을 그리며 붕붕대는 황금빛 날벌레 소리에 귀 기울였다. (-34-) 이 년전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면서 한스는 감독관의 딸 에마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에마는 한스와 동갑내기로 마을에서 가장 예쁘고 청순한 소녀였다. (-35-) 루치우스가 바이올린을 배우겠다며 찾아오자 음악 교사 하스는 기겁했다. 음악 시간을 통해 이미 루치우스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루치우스의 노래는 학생들에게 큰 재미를 주었지만 교사인 하스에게는 깊은 절망을 안겨주었다. (-85-) 한스 기벤라트는 놀라움의 눈으로 하멜을 지켜보면서도 착하고 말 없는 룸메이트로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한스는 성실했으며 루치우스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했다. 다른 룸메이트들은 그런 모습에 감탄했지만 하일너는 예외였다. (-86-) 교장은 하일너가 자신의 금지령을 무시하고 거의 매일 한스의 산책에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번에 한스는 혼내지 않고 주범이자 자신의 오랜 적인 하일너만 집무실로 불렀다. (-140-) 그녀가 한스 앞에 새 맥주병을 가져다 놓자 옆에 앉은 숙련공이 다정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아가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숙련공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을 보이려는 건지, 아니면 고운 소년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스 쪽으로 몸을 돌려 머리를 재빨리 쓰다듬고는 카운터로 가버렸다. (-216-) 작가 헤르만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의 도시 칼프에서 태어났으며, 1904년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로 전억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1943년 마지막 소설 『유리알 유희』 를 출판한 귀 ,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가 있다.이 세편은 자전적 소설이자 자기 성찰 소설로 부르고 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06년에 출판되었으며, 서른 가까운 나이에 쓰여진 소설이며, 주인공은 한스 기벤라트이다. 소설은 100년 전 독일 사회 목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신학교에 다녔던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가 담겨졌으며, 신학교에 입학하였지만,시인이 되기로 한 그의 고뇌와 갈등이 한스에게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의 작품은 21세기 무한경쟁 사회에서,인간의 삶이 어떤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운명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한스와 하일너의 인생이 대조적인 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스는 신학교 생활에 착실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하일너는 그렇지 않았다. 흔히 성공하려면 친구를 잘 두어야 한다는 말이 한스와 하일너 관계에서 드러나고 있었으며,학교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하였고, 잘 어울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한스가 꿈꾸는 삶, 저항하며 살아가는 하일너를 보면서, 하일너의 모습을 부러워하지만, 자신의 삶이 그를 따라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자괴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한스의 방황은 우리 사회가 성공보다 출세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한스가 진정으로 원하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그의 삶은 수레바퀴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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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주인공 한스는 자신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타의적으로 수도원 학교에 입학하는데요 경쟁과 억압 속에 공허함과 피로를 느끼며 지쳐갑니다. 거기서 자신과는 다른 하일너를 만나 위로 받으며 지내지만 하일너의 퇴학 후 우울증이 심해집니다 실제로 헤르만 헤세도 선교사였던 아버지와 외조부의 영향으로 수도원학교에 입학했다가 7개월 뒤 도망쳐 나왔다고 해요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을 따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단아 취급을 받고 학교도 그만두게 되고 촉망받았던 한스가 마을 사람들의 냉대를 받게 되는데요 성공과 명성, 세속적인 모습만 보이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한스의 슬픔. 지금 대한민국도 많은 학생들이 이런 사회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요 우리 아이들은 또 우리는 학교, 사회라는 수레바퀴에 억눌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눌린 채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 헤르만 헤세의 내면 탐구 3부작이라고 불리는 수레바퀴 아래서 - 데미안 - 싯다르타 로 읽어보는 것도 추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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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남은 문장과 인상 깊었던 부분 “수레바퀴 아래 깔린 것은 단순히 한 명의 소년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 개성, 인간성이다.” 출처 입력 이 문장은 이 작품의 본질을 압축해줍니다. 한스 기벤라트는 더 이상 '소설 속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 사회 속 청소년이자, 직장에서의 나 자신이며, '다름'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속 모든 '이방인'입니다. 특히 하일너와의 우정 장면은 뼈아프도록 선명하게 남습니다. 억압적인 시스템 속에서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정함과 이해, 자유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 인간다움을 거부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오늘날 한국 사회와 닮아, 책을 덮는 순간에도 씁쓸함이 쉽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사유 ?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수레바퀴' 《수레바퀴 아래서》는 100년 넘은 고전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현대적입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여전히 수레바퀴 아래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입시 전쟁에 고통받는 청소년들 ?? 성과·효율만을 강요하는 직장 문화 ?? 다름과 개성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어쩌면 우리는 이미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수레바퀴'에 짓눌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비극을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수레바퀴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때론 그 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한 멈춤과 저항의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며, 타인의 기대가 아닌 나의 욕망으로 사는 법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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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는 물론 학교의 교사와 교장 그리고 마을의 주민들과 목사까지 모두의 기대와 관심과 응원을 받는 영리하고 명민한 한스는 아이들이라면 다들 즐기는 낚시도 수영도 산책이나 운동도 멀리한 채 신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합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기에 부담감과 두려움이 작용하며 열심히 한 공부에도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 같아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신학교에 불합격할시에는 더이상의 공부나 진학은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에 더욱 고민을 깊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한스는 36명의 입학생중 당당히 2등으로 합격을 하게 되고 곧이어 시작된 여름방학동안 그동안 못했던 취미생활을 하며 여가를 보내려고하는데요 그러나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신학교에 입학을 해야하니 미리 이런저런 공부를 해두는 것이 좋다는 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초반의 며칠만 온전히 휴식을 했을 뿐입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만나는 아이들은 그동안 고향에서 보았던 아이들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고 한스의 성향과도 다르며 그런 다름이 때로는 친밀함의 이유가 되기도하는데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며 성장해가는 한스의 인생에 밝은 미래만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야기는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주변의 기대와 관심에 부응하느라 스스로의 재능이나 흥미는 표현해보지도 못하고 주위에서 짜준 계획표대로 인생에 내몰린 아이가 마주하는 진실과 실패로 인한 충격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곧이어 찾아오는 혼란함에 매몰되는 모습은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 순식간에 장점이 아닌 단점이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데요 이책이 출간되고도 100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며 아이들의 마음에 좀더 귀기울이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읽은후에 쓴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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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코너스톤 헤르만 헤세 박지희 옮김 김욱동 해설 처음 책과 만날 때 주인공과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기까지 친해지기까지라고 해야 할까요? 집중을 하기 위해 음악을 듣습니다. 또 가사가 있으면 집중에 방해되기에 클래식을 주로 듣게 되는데 한스가 신학교에 들어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 k626이 흘러나오면서 수레바퀴 아래서의 소설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소설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수레바퀴아래서라는 제목은 눈에 익고 저자도 헤르만 헤세라는 것까지는 알지만 그 내용은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데미안을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나중에 읽어보자 하고 미뤄놨었습니다. 밧뜨 이것이 운명인 것인지 이번에 코너스톤에서 오리지널 초판 표지 디자인으로 새로 출간했다고 하여 표지도 너무 느낌 있고 멋있기에 이번에 읽어보자 하고 도전해 봤습니다. 그런데 데미안보다는 좀 더 쉽게 빨리 읽었고, 읽고 난 후에는 영화 비트 와 많이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영화 비트의 남주인공이 방황하는 모습과 영화 결말이라든지 여주인공이 공부 경쟁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친구한테 배신이라고까지 아니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으로 놔버리는 상황 등... 젊을 시절의 요동치는 마음 정신 방황들을 수레바퀴 아래 서라는 제목으로 비유하며 끝맺음 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공부를 잘해야지만 정부 시험에 합격해야지만 정부 지원을 받고 들어갈 수 있는 마울브론에 위치한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겪는 경쟁, 사랑, 방황, 갈등, 좌절, 절망 등을 이야기하고 있고 헤르만 헤세가 직접 경험한 자서전 성격의 소설이라고 합니다. 표지가 멋들어져 왠지 옛 고전 책을 보는 듯한 모습에 취해 더 잘 읽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꼭 한 번씩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수레바퀴아래서 #헤르만헤세 #코너스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마울브론 #신학교 #김나지움 #싯다르타 #데미안 #수레바퀴아래깔린달팽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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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왜 여전히 남의 기대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가는 걸까? 잘해야 한다는 강박,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 안에서 점점 사라지는 ‘나’라는 존재. 이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속에 계속 맴도는 질문이다. 아마 한 번쯤은, 아니 어쩌면 매일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문제는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학교에서, 집에서, 사회에서 ‘착한 아이’,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던 기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던 순간들. 《수레바퀴 아래서》는 그 오래된 상처를 조용히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내 이야기 같고, 네 이야기 같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은 단순히 19세기 독일 소년 한스의 불행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신학교라는 이름의 거대한 기계 속에서 기대와 명예라는 이름의 수레바퀴에 깔려 조금씩 숨이 막혀가는 한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한스는 똑똑했고 성실했다. 하지만 그건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성실함이 그를 파멸로 이끄는 올가미가 되었을 뿐이다. 책은 그저 한 소년의 몰락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다. “너는 지금 누구의 기대를 위해 살고 있니?”라고. 그리고 말한다. “멈추고 다시 네 숨소리를 들어보라”고. 그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울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아리고, 눈앞이 흐려지곤 했다. 헤르만 헤세는 직접 그런 수레바퀴 아래 깔렸던 사람이기에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한스의 외로움, 두통, 지친 영혼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그가 살아낸 고통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그 진심이 있기에 독자는 책장을 덮고도 쉽게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과, 스펙, 명예라는 바퀴 아래 깔려 신음을 내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이다.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오래전 작품임에도 지금 이 시대 청소년, 부모, 교사, 그리고 어른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한 번쯤 멈춰 서서 자신의 수레바퀴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수레바퀴 아래서》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너무 늦기 전에 나를 돌아보고, 나를 위해 살라는 것. 남의 기준이 아닌 나의 삶을 찾아가라는 것. 하지만 그 간단한 메시지가 실천되기 어려우니, 이렇게 한 소년의 비극이 여전히 읽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건, 나를 지키기 위한 작은 용기의 필요성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수레바퀴 아래 깔려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작은 쉼표가 될지도 모른다. 힘들면 잠시 멈춰도 된다고, 그저 조금만 숨을 고르라고. 이 책은 마치 그렇게 우리에게 조용히 손을 내미는 것 같다.
#수레바퀴아래서 #헤르만헤세 #코너스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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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으로 보니 뭔가 고풍스럽기도 하고 신비하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또 독일어 원제목도 상단에 보이는데 Unterm Rad, 생각보다 간단한 어구네요(생각해 보면 당연하지만).저는 이 책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나이 또래에 고교에 입학하여 처음 배운 독일어 단어가 Fahrrad(자전거)였는데, 저 단어 뒷부분 어근인 Rad가 바로 "바퀴"라는 뜻입니다. 바퀴라고만 하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수 있으니까 우리말로는 "수레바퀴"라고, 한스의 불쌍한 인생이 떠오르게 더 구체적으로 풀어 주는 게 보통이죠. unterm Rad는 단축형이며 unter dem Rad로 더 풀어쓸 수 있습니다. 단, 저 기벤라트라는 성씨의 "라트"라는 부분은 -rath입니다(발음은 똑같음).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플라이크, 물론 성실하고 장점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컨대 p58에서 보듯, 어린 한스에게 "그 목사를 가까이하면 신앙심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무엇이 참된 신앙이라는 말입니까? 한스는 더군다나 그리스어를 배우기 위해 목사를 만난다고 했을 뿐입니다. 한스 스스로도 말했듯 최소한 저 목사는 그리스어를 매우 요령 있게 가르치는 유능한 인물입니다. 별반 성공적이지도 못한 자신의 인생에서 뭘 배울 게 있다고 어린 학생에게 저런 무책임한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당대의 기독교가 형식화하고 위선적 모습을 보였다면, 그건 그것대로 비판하면 됩니다. 본인도 신앙이 없으면서 애한테 너의 신앙을 잃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위선이고 거짓말이 아닙니까? 뻔뻔스러운 자기 투사, 자기 모순이라는 말을 들려 주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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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표지부터 마음이 끌렸습니다. 짙고 단단한 벨벳 느낌의 고급 양장본, 무게감 있는 표지 디자인은 마치 “이 안에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무너짐이 들어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책등을 따라 손끝으로 한 줄 한 줄 만지며, 저는 이미 이 책의 분위기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어린 시절의 한스를 따라가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질문들을 다시 꺼내 들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왜 공부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 단순하지만 너무나 깊은 질문들 앞에서, 한스는 끝내 스스로의 삶을 지켜내지 못합니다. 그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읽으며 저는 참 여러 번 멈춰 섰습니다. 안타깝고, 먹먹하고, 때로는 미안했습니다. 한스는 재능이 있었고, 착한 아이였으며, 어른들의 말에 늘 귀 기울였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착함이, 그 성실함이,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덫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교회와 학교, 아버지와 선생님, 그 모든 어른들이 “이 길이 옳다”고 말하던 그 길에서 그는 결국 길을 잃습니다. 그 무렵의 한스는 마치 우리가 학창 시절에 본 누군가의 뒷모습 같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이었을지도요. 어른이 된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여전히 "수레바퀴"는 존재합니다. 그 바퀴는 성적일 수도, 돈일 수도, 사회적 지위일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우리가 그 바퀴 아래 깔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붕괴를 통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틀어짐과 균열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읽고 나면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지지만, 그 서늘함이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숨 고르기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초판본 양장본은, 그 깊은 내용에 걸맞은 외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절제되어 있지만 강렬한 이 표지는, ‘책이 주는 울림이 <이 포스팅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수레바퀴아래서(오리지널초판본고급양장본) #헤르만헤세 #박지희옮긴이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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