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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나 지금이나 부부(夫婦)는 변함없는 부부(夫婦)이다.
"전통시대나 지금이나 부부(夫婦)는 변함없는 부부(夫婦)이다." 내용보기
인문학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의 육체적인 면보다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다 보니 형이상학적 주제가 그 중심에 있게 되고, 또한 개인의 사생활보다는 국가나 민족 같은 거대담론이 주류를 이루면서 실생활과 인문학 사이에는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과 사유방식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고, 사적인 인간의
"전통시대나 지금이나 부부(夫婦)는 변함없는 부부(夫婦)이다." 내용보기

인문학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의 육체적인 면보다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다 보니 형이상학적 주제가 그 중심에 있게 되고, 또한 개인의 사생활보다는 국가나 민족 같은 거대담론이 주류를 이루면서 실생활과 인문학 사이에는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과 사유방식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고, 사적인 인간의 삶은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통하여 그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저자는 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부부라는 주제를 선택하여,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살펴보고 있다. 이렇게 과거의 남의 일을 현재의 나를 위한 것으로 삼아 자신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 방향을 찾는 것이 전통시대 학문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위기지학(爲己之學)이며,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사적인 관계이면서, 또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야기 시키는 것이 바로 부부관계가 아닐까 싶다. 전통시대 부부는 결혼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사랑은 필수조건이 아니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중매를 통해 만나서 부부가 되며, 그때부터 사랑을 하고, 미운 감정이 생기고, 또 갈등과 오해로 반목하며 사는 것이 부부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현재 또한 전통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대부분의 만남이 중매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저자는 전통시대 선비들은 부부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부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부부가 된 후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조선시대 문인의 글들을 통하여 알아보고 있다.

 

전통시대에는 남녀가 중매없이 서로 좋아하는 것을 야합(野合)이라 하였고, 아내를 맞이하면서 부모에게 고하지 않는 것을 불고이취(不告而娶)라 하여 가장 큰 불효로 보았다. 그러나 문헌에 나오는 첫 야합의 사례는 바로 공자의 탄생이었고, 고대의 성인이라 일컫는 순임금이 불고이취 하였음이 맹자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야합과 불고이취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시대의 일반적인 남녀의 결합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학이 이데올로기로 정착되면서 조선의 유학자들은 혼인을 사적인 일이 아닌, 공적인 영역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다. 작게는 집안의 일이고, 크게는 국가대사였다. 따라서 혼인을 야합의 상태로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남녀상열(男女相悅)에 의해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적인 절차와 규정이 만들어 졌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린아이가 일곱살이 되면 지각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엄격하게 하지 않으면 남녀의 사단을 막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소학에 나오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은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금과옥조가 되었다. 또한 혼인을 할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두가지 전제사항이 있었으니 하나는 동성동본끼리는 혼인할 수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적집안, 패륜한 집안, 죄인의 집안, 대대로 나쁜병이 있는 집안, 남편상을 당한 여인의 큰딸 등 혼인을 맺어서는 안 되는 집안에 대한 규정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제사항이 충족되면 중매쟁이를 통하여 양가의 의사를 타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문명, 납채, 납길, 납징, 납폐, 친영과 같은 절차에 따라 혼례가 이루어 졌다. 이는 집안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간소하게 치러지기도 했지만, 혼인이 사적인 일이 아님을, 그래서 당사자들의 마음에 따라 끝낼 수 없음을 나타내는 기능도 했다.

 

오늘날 혼인은 개인의 소중한 권리이다. 그러나 전통시대에는 국가의 대사이었다. 음양이 조화를 잃게 되면 기상이변이 생긴다고 보았고, 남녀의 혼인은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일이었다. 그래서 [경국대전]에는 가난 때문에 혼기가 꽉 차도록 혼인하지 못하였을 때,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었고, 목민관의 주요 임무중 하나가 가난한 백성의 혼인 주선 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통시대 부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무리 전통시대에 중매가 혼인의 유일한 방법이었고, 혼인전 까지는 생판 모르는 사이였다 할지라도 전통시대에도 신혼부부는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자 하였고, 또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부부생활이 유지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 인간관계를 규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윤리는 오륜이었다. 오륜중에 부부 사이의 윤리를 규정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부부유별(夫婦有別)이다. 부부라 하더라도 서로 내외를 구분하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하는 일을 달리 하는 것을 말하는 이 윤리를 정약용은 거처를 달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고, 이황의 제자 이덕홍은 거기에 더하여 다른 부부와의 관계에 분별이 있어야 한다고 해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오면서 부부내부의 윤리는 남녀유별로 처리하고, 부부유별은 다른 부부와의 난잡한 관계를 예방하는 쪽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그 시대에도 바람은 어쩔수가 없었나 보다. 조선시대 결혼의 목적은 효의 달성이었다. , 후사를 두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유별나게 부부유별을 강조한 까닭은 부부가 육체적 탐닉에 빠지면 서로 공경하는 마음을 잃게 되고, 그것이 가정의 파괴에 이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중심에 부부관계가 놓이면 가정에 평화가 오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부부유별이 꼭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18세기 유학자 송명흠은 그의 저서 [규감]에서 조선시대 아내의 임무를 남편을 보필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며, 제사를 받들고, 자식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현처(賢妻)가 될 것을 주문하였다. 현처란 내조를 잘 하는 여성을 의미한다. 보통 내조라 함은 남녀유별의 규범에서 바깥일을 하는 남편과 대비하여 집안일을 잘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또한 남편이 생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바깥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모든 남성의 꿈은 현처를 얻는 것 이었다고 하나, 굳이 조선시대가 아니래도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남성의 꿈이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자신들이 쓴 모든 글에서 부부유별에 대하여 엄격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체검열을 거친 선비들의 글 이었다. 실상은 그들 또한 아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같이 백년해로 하기를 소망했다. 남자가 과거공부를 하러 떠나거나, 벼슬을 하느라, 또는 귀양살이를 하느라 떨어져 살 때, 그들 또한 아내를 그리워하기는 매 한가지이었다. 또 세상의 남편들은 아내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아내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한다. 조선시대 남편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애정을 드러내는 글을 쓰지 않았지만,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자리에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회한의 정을 강렬하게 토로 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부로 같이 살다 보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갈등의 원인은 다양 했지만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덕무는 그러한 갈등의 원인으로 크게 네가지를 들고 있다. 자존심 싸움, 서로의 약점이나 잘못, 가난, 그리고 남편이 처가에 잘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통시대 가장 큰 가정불화의 원인은 남편의 외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부부갈등을 선비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퇴계 이황은 부인이 스스로 소박맞을 죄를 지은 경우를 제외하면 부부불화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남편에게 있다고 보았다. 전통시대의 선비들은 불화의 가장 큰 책임을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잘못을 고쳐나가기를 강조 하였다.

 

만남에서 죽음에 이르는 이별까지, 저자는 전통시대 부부들의 삶을 선비들의 글을 통하여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결코 전통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님을 알려준다. 선비들의 부부에 대한 인식이 오늘에 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갈수록 부부간의 도리가 혼탁해져 가는 세상에서, 부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케 해준다는 점에서, 전통시대 선비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느낀다.



k*****1 2011.10.11. 신고 공감 12 댓글 21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시대 결혼을 집중 탐구!
"조선시대 결혼을 집중 탐구!" 내용보기
부부. 제목 좋~다! 마주보고 있는 남과 여의 모습도 보기 좋다.   이종묵 선생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부부'라는 매력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 출간되었다길래 바로. 읽어보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부부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조금 망설였었다. 지루하면 어쩌나, 역사적인 내용만 서술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한장 한장 읽어내려가다
"조선시대 결혼을 집중 탐구!" 내용보기

부부. 제목 좋~다!

마주보고 있는 남과 여의 모습도 보기 좋다.

 

이종묵 선생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부부'라는 매력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 출간되었다길래

바로. 읽어보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부부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조금 망설였었다.

지루하면 어쩌나, 역사적인 내용만 서술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한장 한장 읽어내려가다 보니. 전 혀 그렇지 않았다.

지루하기는 커녕 생각지도 못했던 선생님의 웃음코드가 숨어 있어서 혼자서 키득키득 거릴 정도!

 

책을 읽다가 정말 너무 재밌었던 게 하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처녀가 결혼을 못하면 그 부모에게, 만약 그 부모가 없다면 주변 친척들에게 죄를 물을 정도로

제때에 하는 혼인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경국대전에 혼인하지 못한 처녀의 부모를 처벌하라는 것이 법령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이야기!

그런데 이게 또 이해가 가는 것이,

그 때는 농사를 지었던 시절이고 농사를 지으면 날씨가 상당히 중요했던 시절이고, !

그 날씨라 함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야만. 청명하고 정상적일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던 거다.

그래서 남과 여,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혼인을 그렇게 강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그때는 혼인을 못한 남여가 있으면 국가에서 비용을 대주고라도 결혼을 시켰다고 한다.

아니.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을 수 있나!? ㅋㅋ

요즘에야말로 국가에서 결혼비용을 지원해줘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청 들었다.

생각해보면, 실제로! 요즘 얼마나 날씨가 이상한지...

가을인데 한여름처럼 해가 쨍쨍 내리쬐질 않나, 어제 오늘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감기 걸린 사람이 수두룩하질 않나...

이게 다 음양의 조화가 안맞아서 그런것은 아닌가 싶다.ㅎㅎ

 

아. 대통령이 이 책을 읽어야지 국가에서 결혼비용지원 법령이 하나 제정될텐데 말이지.

아무래도. 국회로 책을 하나 발송하든지 해야지. 안되겠다.! ㅋㅋ

 

암튼,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책을 발견한 기분!

강추! +_+

 

 

v*****5 2011.09.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