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9.0
  • 50대 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제르미날 - 에밀 졸라
"제르미날 - 에밀 졸라" 내용보기
얼마 전 김한식의 <고전의 이유>를 읽으며 19세기 프랑스 탄광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제르미날>을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연주의 작가로 유명한 에밀졸라가 하층민의 삶을 어떻게 표현했을 지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다.   황량한 풍경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보다 더 황량한 에티엔의 처지에 대한 서술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1866년 프랑스는 극심한 불황
"제르미날 - 에밀 졸라" 내용보기

 

 

 

 

 

 

 

 얼마 전 김한식의 <고전의 이유>를 읽으며 19세기 프랑스 탄광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제르미날>을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연주의 작가로 유명한 에밀졸라가 하층민의 삶을 어떻게 표현했을 지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다. 

 


 황량한 풍경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보다 더 황량한 에티엔의 처지에 대한 서술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1866년 프랑스는 극심한 불황기로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었다.

상사와의 마찰로 인해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에티엔은 굶주림과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하며 구직 중이였지만 불경기가 심화된 탓에 구직은 쉽지 않았다. 차디찬 바람을 이기고 몬수의 르 보뢰 탄광에 도착해 일자리를 청해 보지만 거절당한다. 일자리를 찾아 다시 어디론가 떠나야한다는 중압감이 그를 억누를 때 운좋게도 탄차 운반부 자리로 취업할 수 있었다.

구직에 대한 기쁨도 잠시, 탄광 노동자의 삶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탄광에서 일한 첫날, 갱도에 들어가기 전 그의 눈에 비친 하치장은 교회 중앙홀 같았지만 갱도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나서 바라본 하치장은 단지 텅 비고 더러운 곳으로 여겨질 뿐이였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짐을 꾸려 떠나겠다는 생각과 달리 하루 하루 일하며 탄광에 적응해 간다.

 마외 가족은 르 보뢰 탄광의 시작부터 함께한 탄부 집안입다. 1세기 넘는 기간동안 온 식구가 탄광 노동자로 일했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되려 빚만 증가하고 있었다. 현재도 할아버지부터 손자 손녀까지 피땀흘려 일해보지만 노동의 대가는 처참하리만치 낮았고 삶은 고달팠다. 탄광 측은 노동자를 도급제로 운용하고 있었고 경매방식의 입찰로 인해 노동의 가치는 갈수록 하락했다. 마외, 그의 아비 본모르, 그의 아들과 딸까지...온 식구가 갱도에 몸을 돌보지 않고 개미처럼 일하지만 주머니에 든 돈으로는 당장 먹거리를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탄차 운반부로 취직했던 에티엔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마외네 팀에 채탄부 자리가 비었고 에티엔이 그 자리로 취직한다. 이를테면 고속 승진이다. 채탄부가 되면서 에티엔은 마외네 집에 하숙하게 된다. 몽수에 오기 전 근무했던 직장의 상사로부터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접하고 거기에 빠져든다.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든 에티엔의 설교는 마외 가족에게 달콤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고, 부르주아를 타파하고 프롤레타리아가 대접받는 사회가 도래하리란 믿음은 빠른 속도로 탄광촌에 번져갔다.
 
배움이 부족한 탄광 노동자들 사이에서 에티엔의 입지는 커졌고 탄부들은 그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한다. 에티엔의 노력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공제조합이 만들어 졌고 그는 몽수의 지부장 자리를 차지한다.  

 노동자의 처지를 대변하는 마외 가족의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었다. 한평생을 탄광에서 희생한 마외의 아비 본모르는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겨 더이상 작업을 할 수도 정상적으로 걸을 수도 없었고, 마외의 작은 아들 장랭은 작업 도중 갱도가 무너지는 바람에 다리에 부상을 입고 절뚝거리게 된다. 탄광 회사는 이들의 희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연금을 줄이고 어떻게 하면 보상금을 적게 줄 수 있을지만 궁리할 뿐이다.

산업위기가 증폭되면서 탄광은 석탄 재고를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채굴을 중단시켰고 탄광에서 나오는 쥐꼬리만한 급여로 근근이 연명하던 노동자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탄광 회사 측은 산업위기에 따른 이익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식을 택한다. 입찰 방식의 도급제로 이미 떨어질만큼 떨어진 임금을 부실한 갱목 작업을 빌미로 더욱 낮춘다. 이미 한계수준의 생활로 연명하며, 말 그대로 간신히 버티고 있던 노동자들은 좌절하고 절망하고 분노한다. 결국 르 보뢰 탄광 노동자들은 파업을 결심한다.

르 보뢰 탄광의 사장인 엔보 가족이나 르 보뢰 탄광의 주주인 그레구아르 가족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돌아보지 못한다. 높은 자리나 생산 수단을 가졌다는 이유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취하는 본인들의 노력은 과분할정도로 고평가하지만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탄광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노력은 무시한다. 이들 부루주아지의 눈에 비친 프롤레타리아트의 숙명은 그저 순종적으로 일하고 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일해야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간혹 노동자들에게 선심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은 알량한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 이상은 될 수 없었다.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은 사측과의 협상을 기대했지만 기득권 층은 그들의 이익을 노동자와 나누는 것에 반대했고 파업은 장기화된다. 노동자를 이끄는 대표로 거듭난 에티엔은 노동자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으며 초심을 잃고 자만심은 높아진다. 어쩌면 이 무렵부터(에티엔 자신은 부인하겠지만) 그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부르주아지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적 수준의 한계로 인해 본인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 부닥치곤 했지만 자기최면을 통해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넘겼다. 오히려 과대망상에 빠져 자신이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 권력을 민중에 돌려주겠다는 망상에 젖어든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시작했던 파업이 장기화되자 이미 극빈층에 속했던 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정리할 수 있는 세간을 모두 정리하였음에도 한 끼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에티엔은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탄광 노동자들을 이롭게하는 일인가 자문해보지만 쉽사리 답을 내리진 못한다.
파업에 동참한 노동자들은 끝없는 허기에 시달리지만 부르주아지의 불로소득이 노동자들에게 환원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이 윤택해지는 '어떤 희망의 세계'를 고대하며 파업에 대한 결의를 다진다.



 자연주의 작가인 '에밀 졸라', 그는 <제르미날>을 집필하기 전 직접 탄광촌의 삶을 체험하고 탄광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실감했다고 알려져 있다.

 본문에 수차례 등장하는 '노동자의 체념'은 <제르미날> 전반에 걸쳐 깔려 있으며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감이 굶주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는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먹먹함을 느끼게 된다.

 노동자들이 탄광 회사 사장인 엔보와 면담하러 간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대표해 말문을 연 마외, 그는 가족대대로 르 보뢰 탄광을 위해 희생한 자였다. 그런 마외의 입이 열렸을 때 그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들이 봇물 터진듯 흘러나왔고 그의 말과 그의 심상을 통해 수십 년 동안 어쩌면 훨씬 더 오랜 시간동안 억눌렸던 노동자들의 울분을 느낄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정당하기 그지없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주장할 자격 또한 갖추고 있었지만 기득권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무지한 자가 신념을 가지는 것도 무서운 일인데, 여기에 부지런함까지 보유한 에티엔을 바라보며 <제르미날>의 결론이 절망으로 치닫진 않을까하는 우려를 품은 채로 2권을 주문했다.
YES마니아 : 로얄 t******8 2018.04.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