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배받은 땅'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스물세살 무렵엔 까뮈나 샤르트르, 보봐르, 지드, 장 그르니에 등에 그야 말로 열광하며 살았던 것 같다. '섬' 이나 '야간비행' 등 기억에 남는 책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까뮈의 '페스트'와 '유배받은 땅'은 지금까지도 그 감동이 남아있다. 얼마전 프랑스 소설을 검색하다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연히도 - 생각해보면 필연적이지만 - 까뮈의 책들이 주욱 뿌려지는 걸 보고 문득 내가 열광했던 책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오래지 않아 '적지와 왕국'을 찾아내었다. '유배받은 땅'과 '적지와 왕국'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적지'라는 말이 '유배지'를 뜻한다고 하니 생각해보면 멋진 번역이었던 셈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책이나 영화 제목을 원제와 상관없이 '거의' 창작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번엔 제대로 된 제목으로 게다가 김화영의 번역으로 다시 한번 그때의 감동을 떠올리게 되기 바라며 두번째 책을 주문했다. 주말 오후를 20여년전의 그때로 잠시나마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간부', '배교자', '말 없는 사람들', '요나', '손님', '자라나는 돌' 등 여섯편의 단편이 하나하나 다시 살아났다. 겁없는 선교사와 갇혀버린 화가의 모습을 하나씩 다시 만나면서도 무엇보다 가장 그리웠던 건 '손님'이었다. 눈으로 인해 휴교한 고원 학교에 혼자 남은 선생님과 살인죄를 저지른 아랍인의 하룻밤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건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감옥을 향해 걸어내려가는 아랍인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에서야 그 아랍인이 감옥으로 향한 이유가 어쩌면 하룻밤일지라도 범죄자가 아닌 손님으로 대해준 선생님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설득력 있는 건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은 운명에 그저 순응하는 두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 인 것 같다. 아마 그 당시의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다시 구입해 읽은 것이 잘한일인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그때 놓쳤던 여러 문장을 찾아내는 재미는 있었지만, 아련하게 남아있는 감동이 두배 세배 더 커질리는 없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지나 제목을 잃어버리고 내용을 다른 책과 헷갈리고 하면서도 감동만은 그때 그 모습대로 남겨두는 게 더 현명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오후 잠깐동안이나마 20대 초반으로 다시 돌아가볼 수 있었지만, 까탈루냐인들 처럼 축구에서 이기는 걸로 패배를 보상받는 정도의 반항심밖에 남아있지 않은 나이에 썩 어울리는 책은 아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