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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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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언제 보았던가 ' 십 년? 그 보다 더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표지도 떨어진 너덜너덜한 이 책을 단숨에 읽었던... 추억이 잔인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꿈꾸었던 내 청춘은 풀리지 않은 퍼즐처럼 지금 어디로 갔는지.. 표지가 말끔하고, 종이냄새도 좋은 책으로 2005판이 나왔지만 주문하고 배송한 지 십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읽지 않고
"추억 속의 광기" 내용보기
이 책을 언제 보았던가 ' 십 년? 그 보다 더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표지도 떨어진 너덜너덜한 이 책을 단숨에 읽었던... 추억이 잔인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꿈꾸었던 내 청춘은 풀리지 않은 퍼즐처럼 지금 어디로 갔는지.. 표지가 말끔하고, 종이냄새도 좋은 책으로 2005판이 나왔지만 주문하고 배송한 지 십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읽지 않고 있다 한 번 눈에 들어가면 단번에 읽어버릴 것 같은, 그래서 그때 아려한 추억도 날아가버릴 것 같아서.. 추억에 잔인하게 배고플 때 읽어보려고 지금 장록 깊숙히 넣어두련다
YES마니아 : 로얄 w***n 2005.04.11.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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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술을 잘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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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 칭하는 것들을 나같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얼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고 나 같은 경우는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광기 어린 시선이 예술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배운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나는 예술 = 광기, 또는 모호함, 또는 난해함 같은 걸로 해석하게 된다.   아마 이것 역시 나만의
"난 예술을 잘 모르지만" 내용보기

예술이라 칭하는 것들을 나같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얼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고 나 같은 경우는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광기 어린 시선이

예술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배운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나는 예술 = 광기, 또는 모호함, 또는 난해함

같은 걸로 해석하게 된다.

 

아마 이것 역시 나만의 선입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와 다른 생각, 다른 시선...

그것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폐허와 다름 없는 예전 입시 학원.

그속에 숨어사는 대학을 자퇴한 여대생.

그리고 문명이라는 커다란 세상에서 타협하지 못하고 대립하는 화가 지망생.

그 둘은 냉정한 현실속에서 진정한 예술을 꿈꾼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의 경지다.

세상에는 없는 들개를 탄생시키고픈 화가는 들개의 본성을

찾고자 들개처럼 생활하고 들개처럼 되려고 노력한다.

근데...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쥐를 잡아 쥐 가죽을 벗기고

쥐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렇게 탄생시킨 들개 99마리는 화가 지망생의 영혼과도 같은

그림일테지만  그렇게 해야 예술이 완성되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 나는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다른 생각이나 다른 모습들을 상상하고

이야기 해야 하지만 나는 너무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니까...

 

하지만 이런 책들을 보면

무섭고 섬뜩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그건 예술이든, 운동이든, 글을 쓰는 작가든

세기에 이름을 날리고 싶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노력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나와 거리가 먼(?) 주제이고 이야기지만 그래도 읽는 과정은 새로웠다.

이외수 작가 특유의 글내음이 풍겨나는 그런 소설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k*****3 2011.01.09.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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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본, 그리고 다시 한번 볼 만한 책....
"오래 전에 본, 그리고 다시 한번 볼 만한 책...." 내용보기
들개, 이름부터 좀 외롭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처음 이외수라는 작가를 만났던 다른 작품들.. 벽오금학도나 칼 등의 작품에서 보아 왔던 이미지와는 다른.. 그전의 이미지는 좀 도인적이고, 선교나 도교의 사상이 보이는 그런 느낌의 책들과는 달리, 한 번 손에 쥐고 읽으며, 결국 끝을 보고 말았던 책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와 같이 인간의 내면이나 삶의 방향등을 그리는 작품
"오래 전에 본, 그리고 다시 한번 볼 만한 책...." 내용보기

들개, 이름부터 좀 외롭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처음 이외수라는 작가를 만났던 다른 작품들..

벽오금학도나 칼 등의 작품에서 보아 왔던 이미지와는 다른.. 그전의 이미지는 좀 도인적이고, 선교나 도교의 사상이 보이는 그런 느낌의 책들과는 달리, 한 번 손에 쥐고 읽으며, 결국 끝을 보고 말았던 책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와 같이 인간의 내면이나 삶의 방향등을 그리는 작품이면서, 좀더 인생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늑대의 눈빛과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고, 나의 미래에 관해서 깊은 고민을 가지게 했던 책으로 남아있다. 좀 오래전에 출간되어지긴 했지만, 다시 한번 읽을 만한 책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외수라는 이름과 함께..

t******1 2010.05.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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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TV에서 방영했었나?
"이거 TV에서 방영했었나?" 내용보기
작가 이외수의 작품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TV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린다는 소위 "바보상자"란 말이 나온것처럼 이외수의 작품으로 인해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길로 들어가기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바로 "들개" 이 작품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것과 같이 읽어가면서 현재와 다음의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하게 상상이 되었으며, 그렇게 상상한것이 마치
"이거 TV에서 방영했었나?" 내용보기

작가 이외수의 작품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TV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린다는 소위 "바보상자"란 말이 나온것처럼

이외수의 작품으로 인해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길로 들어가기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바로 "들개"

이 작품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것과 같이 읽어가면서 현재와 다음의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하게 상상이 되었으며, 그렇게 상상한것이 마치 판화로 찍어낸것처럼 절묘하게 들어맞아 혹시 TV에서 방영했던가 했을 정도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이분의 작품들을 두고 두패로 나뉘어 말한다.

한 무리는 너무 멋지고 재미있다. 나는 당신의 포로입니다 하는 무리와

마약과도 같은 함번빠지면 빠져나올수가 없다. 즉,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책이며, 몇권 읽어보면 패턴이 같아 재미없다. 하는 무리다.

 

니가 너의 손톱의 네일아트가 오른쪽이 더 마음에 드나? 왼쪽어 더 마음에 드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소설이다.

 

 

b*****0 2009.11.24.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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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
"들개" 내용보기
아,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난 여전히 이외수가 싫다. 하지만 작품은 참 좋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라는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를 그저, 동정심을 유발하는 거지딴다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들개] 작품을 보면 그는 정말 좋은 작가이다.         필요 이상의 진실에 대한 탐구는, 생각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경우를 끊임없이 행하다보면  자신 스
"들개" 내용보기

      아,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난 여전히 이외수가 싫다. 하지만 작품은 참 좋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라는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를 그저, 동정심을 유발하는 거지딴다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들개] 작품을 보면 그는 정말 좋은 작가이다.

 

      필요 이상의 진실에 대한 탐구는, 생각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경우를 끊임없이 행하다보면  자신 스스로도 수많은 모순을 낳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행동이 생각을 못따라가는 것이며, 또 다시 말해, 생각만 옳고 입만 나불거리며 하는 짓은 범인과 똑같은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내가 보는 이외수가 그랬다.

 

      나의 개인적인 성격상, 이것 저것에 기웃거리는 인물들을 참 싫어한다. 배우기 위해 기웃거리는 것과 뭐하나 주워먹기 위해 기웃거리는 것은 많이 다르다. 주워먹기 위해 기웃거리는 행위를 꿈을 좇는 행위라고 달리 말할 수도 있다. 꿈을 좇는 행위를 그렇게 악용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들끼리의 바보같은 판토마임에 불과하다. 보는 이가 모두 바보는 아니다. 꿈을 좇는 것과 주워먹기 위해 기웃거리는 행위는 분명 다르다.

 

      연예인들도 그렇다. 이 방면 저방면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연예인중에 한 분야에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잠시 생각해본다. 일단, 안 떠오른다. 확실히 나는, 배우면 연기, 가수는 노래, 그것으로 승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다. 그 외의 연예인은 모두 딴따라이다. 딴따라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며, 자신의 일에 충실한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분명 격은 다르다.

      딴따라에 속한 연예인이 모두를 싸잡아 우린 모두 딴따라예요,라고 겸손한 척 말하는 경우를 보면 어이가 없다. 나는 이은미나 설경구를  딴따라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본인의 업에 충실하면 그만이지, 진짜까지 딴따라로 만드는 그들의 가벼움은 싫은 쪽이다. 겸손은 진짜가 자신을 낮추어야 감동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낮은 놈이 높은 태도로 자신을 낮추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만이다.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 아는 것이 많고 똑똑하다고 해서 정치를 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분명 다른 세계이다. 그러나 자신의 본본을 포기하고 정치판에 들어섰다가 결국, 더러운 놈들 이라며 나오는 이들을 본 기억이 있다. 나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생각이다. 한번 작가를 포기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돌아오는 것을 적어도 나는, 독자의 입장으로 받아줄 생각이 없다.

      연예인이나, 작가나 다른 세계에 기웃거리는 행위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면 저마다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핑계없는 무덤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래서 다 그놈이 그놈인 것이다. 적어도 내가 존경하는, 진짜인 인물들은 그런 식의 언변으로 자신의 행위를 감싸안는 비겁을 행하지는 않았다.

 

      내게는 이외수도 그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작품보다 방송을 통해 더 알려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작품이 좋아서 방송을 탔다고 한다면 방송을 타야할 작가는 백열종대 운동장 일억바퀴이다. 일단, 이외수는 말이 너무 많았다. 그 말들을 잘 들어보면 일차적으로 매우 그럴듯 해보이는 말들이나, 곱씹어보면 대체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비호하는 말들 뿐이다. 결국, 나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 인척 하니 꼴보기가 싫은 것이다.

      내가 그리 싫어하는 이외수라지만 그래도 작가이니 작품으로 판단해보자라는 생각에서 본 책이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라는 책이었다. 나는 그 작품을 개떡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편견은 더욱 심해져 버렸다. 이쁘게 치장해서 인기를 얻으려는 사람이나, 도사같은 몰골로 기이함을 가장하여 인기를 끄는 행위나 그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쁘게 치장하는 자들에게 그가 던지는 독설을 보면 참으로 기가 찬 것들이었다. 정말 너나 잘해라,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나마 정치판에는 안뛰어들길래, 그 정도까지는 자신이 없나보다 생각하던 판에 2007년 대선 후보에게 어떤 말을 내 뱉길래, 으이그, 당신도 이제 먹고 살만하니, 오지랖이 발동하느냐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외수는 작가라기보다 방송인이었다.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니다. 그를 그런 식으로 알지 못하고, 그의 작품을 먼저 접했더라면 나는 완전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들개]라는 작품을 읽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대중에게 너무 노출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 자신이 마케팅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독자가 티비를 안보면 되지 않냐고 질문할 것인가? 저자가 티비에 안나오는 것이 맞냐, 독자가 티비를 안보는 것이 맞냐를 두고 싸우자는 얘기밖에 되질 않는다. 이렇게 적다보니 내가 마치, 티비에 나오는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어떻게 나타나는가가 중요하다는 요점이다. 적어도 그는 그의 작품보다, 그의 기이함이 언론에 더 노출되어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보기엔 별로 기이해 보이지도 않더구만 언론이 그를 더욱 그리 만들었다.  

 

      [들개]을 읽고 이외수의 작가적인 내공에 다소 놀랐다. 의외였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역시 작가는 작품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작가와 작품을 별개로 놓기가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들개]로 인해 내가 그것을 극복할수 있게 해주었다. 아아, 방송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이외수의 이미지가 너무 아쉬웠다. 작품으로 알려진 그였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들개]를 읽으며 토마스 만의 [토니오 트뢰거]가 떠올랐다. 토마스 만 역시, 작가는 싫고 작품은 좋은 대표적인 사례중에 하나이다. 그만큼 작품만 보자면 훌륭했다고 말할수 있다. 인간 내면의 고독에 대해 정말이지 심도깊게 그려내었다. 작중인물이 고독한 이유에 대해서는 동감할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그려낸 필력이 놀라운 것이다. 문장도 좋고, 재미도 있었고, 그야말로 책을 내려놓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들개]의 내용중에 절반은 나의 생각과 정반대에 있는 주장이었다. 즉, 작중의 담화나 서술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에 대해,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라고 말할수 있는 부분이 절반쯤은 되는 것 같았다. 물론, 100% 동감하는 얘기들도 있었다.

      바로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들개]가 더 좋은 작품이라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나와는 정반대의 생각으로 가득찬 작품임에도, 그러므로 작품에게 독자가 설득당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정말 좋은 작품이로구나, 라고 말할수 있게 만드는 것 말이다.

 

      끝으로 책의 말미에 "작가가 말하는 작품세계"라는 글은 없었으면 좋았을뻔 했다. 또 겸손을 치장한 변명으로 가득했다. 사람은 싫고 작품은 좋다니, 그만큼 작가가 기이한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그의 작품 몇 개를 더 탐독하게될 것 같다. 

     확실히 좋은 작품은 작가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그냥 싫었던 이외수가 [여자는 여자를 모른다]라는 작품을 보고 엄청 싫어졌고, [들개]라는 작품을 통해 여전히 싫긴 하지만, 내가 너무 선입관적인지도 모르겠다, 까지 돌려 세워놓았다. 몇개의 작품을 더보고 어쩌면 좋아져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방송은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 이제 먹고 살만하다면서 왜, 방송에 자꾸 나올까?  

b******k 2008.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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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한 남자의 야성 발굴기[들개-이외수]
"예술을 위한 한 남자의 야성 발굴기[들개-이외수]" 내용보기
이외수 소설읽기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이외수가 지향하는 가치는 일관되게 드러난다. 물질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인간미 넘치는 마음을 지키며 사랑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 그것이다. 역시나 이 작품에도 때묻지 못해서 세상에 적응하고 순응하지 못한 여린 영혼들이 등장한다.    당장이라도 쓰러질듯한  낡고 기괴한 건물에 숨어 사는 24살의 대학
"예술을 위한 한 남자의 야성 발굴기[들개-이외수]" 내용보기
이외수 소설읽기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이외수가 지향하는 가치는 일관되게 드러난다. 물질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인간미 넘치는 마음을 지키며 사랑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 그것이다. 역시나 이 작품에도 때묻지 못해서 세상에 적응하고 순응하지 못한 여린 영혼들이 등장한다. 

 

당장이라도 쓰러질듯한  낡고 기괴한 건물에 숨어 사는 24살의 대학 자퇴생인 내 앞에 모든것이 무의미합니다라고 유언과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들의 만남은 작가적인 감성으로 끄적였던 그녀의 습작노트를 그가 보관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99마리의 들개그림을 완성하기위한 작업장소를  찾던 남자가 그녀가 사는 건물에 숨어들게 되면서 이들의 만남은 폐쇄된 공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예술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사회에 좌절당했던 남자는 자신을 가혹하게 다루는 극한의 방식으로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불태운다. 그림과의 혼연일체를 위해서 야성을 되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눈물겹다못해 비현실적이고 기이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것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숙명일까?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것에 길들여진 내게 그의 그런 모습이 이해될리 만무했다. 일체의 문명과 인간적인 본능을 거부한채 살아있는 쥐를 날로 뜯어먹고 보신탕거리로 상에 오를뻔 했던 추레한 개와 함께 동거하는 모습은 들개그림을 향한 작가적인 노력이라기 보다는 흡사 인간 들개가 되기를 선망하는 미친 놈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그의 모습은 여자보다는 한수위였다. 그는 혼탁한 세상을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뚜렷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가? 사람들이 부러워마지않는 일류학벌을 자랑하지만  어떤 명백한 자기의식 없이 비관과 염세속에 허우적거리며 세상을 둥둥떠돌고 부유하기만 한다. 배가 고픈 현실을 돌파할 용기도 없으면서 돈에 몸을 팔아버린 자기의 모습을 인정하지도 못한다. 제도와 문명에서 점점 더 스스로를 고립시켜가며  세상에게도 사람에게도 마음을 닫아걸어버렸지만 그녀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채 맴돌기만 하는 그녀와는 다르게 그는 그림을 완성해갈수록 사육당하지 않은 자유로운 본성을 되찾아간다. 그런면에서 그와 그녀의 절대적인 고독은 다르게 보였다.

 

감성소설을 주제로 하는 세개의 작품을 연속해서 읽었다. 오랜만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등장한 그를 보니 불쑥 그의 글이 궁금해져서 시작한 여정이었다. 각각 광기,야성,신비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작품마다 주제에 걸맞은 감성을 잔뜩 담고 나름의 독특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가 지향하는 예술가로서의 가치관과 더불어 시대를 향한 외침은 색깔만 다를뿐 같은 방향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결국 모자이크처럼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게 될것이다.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예술가는 예술가답게 어른은 어른답게,,,그렇게 사는 평화롭고 사랑가득한 세상을 말이다.그가 되풀이하는 사랑타령이 듣기 싫지 않다. 질그릇같이 투박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밥한공기처럼 상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d*****8 2008.07.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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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밖에서 자유를 입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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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름을 걷어내고 자유를 입을 수 있는 사람. 열정으로 자신을 연소시키며 생을 살아가는 사람. 완전한 혼자로서 자신을 완성시키는 사람. ... 그들이 들개인가.   나는 무척이나 가련한 존재. 거추장스러운 육체를 먹여살리기 위해.. 영혼을 부패시키는 역겨운 행위들.   곰팡내 나는 영혼은 저리 치워두고서.. 내가 아닌 나의 명령으로.. 수족을 움직여대고..언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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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름을 걷어내고 자유를 입을 수 있는 사람.

열정으로 자신을 연소시키며 생을 살아가는 사람.

완전한 혼자로서 자신을 완성시키는 사람.

... 그들이 들개인가.

 

나는 무척이나 가련한 존재.

거추장스러운 육체를 먹여살리기 위해..

영혼을 부패시키는 역겨운 행위들.

 

곰팡내 나는 영혼은 저리 치워두고서..

내가 아닌 나의 명령으로..

수족을 움직여대고..언어를 목조르는 시간들.

 

현재를 수치스러워하는 일과..

현재를 동정하는 일.

나는 도대체 어느편에 서야할 지.

 

그래도 한 걸음 더 내딛기 위해서

완전한 혼자..를 완성키 위해서

나는 조금 더 수치심을 느껴야 하리라.

i******j 2008.06.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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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기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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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기억이지만... 이외수님을 알게되고 처음으로 읽었던 책이 바로 이 들개란 책이었다. 지금은 오락프로그램에도 나올만큼 대중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정말 괴짜에 기인으로 알려진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에겐 적잖은 거부감도 있었다고 했던 이 책이 나에게는 정말 삶의 밑바닥에 있는 남녀의 처절하고도 처절한 사랑이야기....그 정도로만
"아련한 기억이지만~" 내용보기

아련한 기억이지만...

이외수님을 알게되고 처음으로

읽었던 책이 바로 이 들개란 책이었다.

지금은 오락프로그램에도 나올만큼

대중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정말 괴짜에 기인으로

알려진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에겐 적잖은

거부감도 있었다고 했던 이 책이

나에게는 정말 삶의 밑바닥에 있는

남녀의 처절하고도 처절한

사랑이야기....그 정도로만

비춰졌던 것 같다.

진짜 처절함이 없었더라면

나올 수 없었던 책인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j 2008.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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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는 거야 (들개)
"왜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는 거야 (들개)" 내용보기
드디어 '들개'를 다 읽었다.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들개'를 사두기만 하고 오랫동안 못 읽고 있었다. 다 읽고난 지금 조금 허탈하다. 이런 내용일지 예상 못했다. 요즘 대부분 집개일 뿐, 들개가 과연 있을 법한 얘긴가.막상 이 글에 나오는 여자와 남자의 이름을 떠올려보니 기억이 안난다. 리뷰 쓰는 지금에야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아가씨
"왜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는 거야 (들개)" 내용보기

드디어 '들개'를 다 읽었다.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들개'를 사두기만 하고 오랫동안 못 읽고 있었다. 다 읽고난 지금 조금 허탈하다. 이런 내용일지 예상 못했다. 요즘 대부분 집개일 뿐, 들개가 과연 있을 법한 얘긴가.


막상 이 글에 나오는 여자와 남자의 이름을 떠올려보니 기억이 안난다. 리뷰 쓰는 지금에야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아가씨', '그', '그녀', '시간강사', '그 남자'가 전부다. 작가가 의도한 걸까? 이름을 언급하면 왠지 길들여진 것 같아서 '들개' 이미지에 안맞아서 일부러 그랬을까?


스물네살 여자가 빈건물에 살고 있다. 그 건물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버려진 건물이다. 두 번의 휴학, 그리고 두 번의 휴교령(데모로 인한) 때문에 학교를 그만뒀다는데 이건 핑계로 보인다. 진짜 그만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는 것 같다. 얼굴은 예뻤는지 술집 아르바이트만으로 생활비와 학비는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이 여자는 학교를 그만두고 폐건물에 들어와서 살까? 내가 이 책을 통해 이 여자가 하고 싶은 것을 파악한 것은 단 한가지였다. 그건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여자는 책을 좋아하고 멋진 글을 쓰고 싶어한다. 대학의 학과는 모르겠으나 시를 쓰는 시간강사를 만나는 걸 보니 국문과였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는 이 여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얼굴모양, 키, 옷차림, 헤어스타일, 고향 같은 게 없었던 것 같다(혹시 실제 인물은 아니겠지). 이렇듯 이름도 안나오고 장소나 행동, 인물에 대한 묘사 또한 빈약하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머리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현실적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저 듬성듬성 언급되고 나머지는 독자가 채우던가 말던가다. 그래도 폐건물 안에 있는 연못에 대한 묘사는 나은 편이다. 거기에 노감주나무가 있고 원추리가 폈다 진다는 건 알고 있다.


이 여자가 하는 것이라고는 한 마디로 '시간 죽이기'다. 오늘은 또 뭐 하면서 시간을 때울까 걱정이다. 이 무료함, 이 권태로움, 이 재미없음을 빨리 벗어나고 싶지만 언제쯤 그렇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여자는 그냥 '확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가끔 시내에 나가서 시간강사를 만나기도 하고 헌책방에 가서 책을 팔아서 생긴 돈으로 먹을 것을 사기도 한다. 이 젊은 청춘은 왜 이러는 걸까? 아, 그러고 보니 이 여자의 과거 설명 역시 빈약하다.


이 여자는 무언가 기다리는 듯 했다. 자신을 구원해줄, 자신의 이 무료하고 심심하고 가끔 '확 죽어버릴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따분하고 글도 안 써지는 삶에 활력을 줄 무언가를 매일매일 기다리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뀌면 달라지겠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났고 그 남자와 반강제로 커피숍에 가서 얘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밤에 같이 술을 먹었고 다음날 아침에 자신의 아지트에서 그 남자와 같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남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구원자인가? 


일단, 책을 다 읽는 지금은 그 남자가 이 여자의 구원자가 맞는 것 같다.


소설이나 TV 드라마, 영화가 주는 좋지 못한 영향들 중에 하나는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 남녀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에 나오는 이 여자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책을 너무 많이 읽었는지 이 여자는 사랑은 고귀해야 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각박관념이 강해 보인다. 그래서 남자와 술을 먹다가 남자가 "사는 게 참혹해." 같은 공감을 일으키는 말을 하면 이 여자는 그 남자와 하룻밤을 자준다. 그런데 그날밤 그 남자의 육체를 보면서 그 남자에 대한 애정은 싸늘하게 식는다(오직 육체만이 보였기 때문에). 이 여자는 고귀하고 싶고 감동받고 싶고 형이상학적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잠깐의 환상 동안은 그렇게 보여도 얼마 후에는 그 환상은 깨지고 만다.


남자는 여자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둘은 '논리는 이론이다', '사회는 회사이다' 처럼 앞뒤를 바꿔도 단어가 되고 의미가 있는 문장을 만드는 게임을 한다. 그리고 꽃잎의 시간을 역행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왠만한 것들은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남자에 대한 여자의 거부감은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이 폐건물 2층에는 남자가 살기 시작했다.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외로움은 얼마나 치명적일까? '봄여름가을겨울'의 '외로운 사람들' 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만나면 행복하여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견디게 가슴 저리네


비라도 내리는 쓸쓸한 밤이면 남몰래 울기도 하고

누구라도 행여 찾아오지 않을까 마음 설레여 오네


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수 많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들개'에 나오는 이 여자의 심정이 아마 이 노래 가사와 같을 것이다. 자신을 건들 생각 하지 말라며 그 남자에게 강한 경계심을 보이는 이 여자는 같은 건물에 남자가 살자 안도감을 느끼고 그 남자가 뭐하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이 여자는 외로웠던 것이다.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결국 둘은 사랑해서 같이 있는 게 아니라, 외로움을 없애려고 같이 있고 그러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누구나 첫눈에 반하고 사랑하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것을 꿈꾸곤 한다. 하지만 그건 환상일 뿐이다. 연애도 결혼도 그런 것 같다. 서로 잘 모르는 남녀가 조금씩 상대를 알아가고 관심을 가지는 것, 이것이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누구보다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이 여자의 생각이 글쓰는 것을 막아버렸고 사랑에 대한 환상이 사랑을 막아버렸다. 


남자가 그릴 물감을 사기 위해 술집에 다시 나가는 것을 정당화했고 그 남자가 원하는 개 한 마리를 얻기 위해 사업가와 하룻밤 자는 것 역시 예술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면서 술집에 온 남자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 나중에 좀 깨닫는 것 같지만 그런 모습들은 모두 위선이고 가짜이다. 폐건물에 들어가서 사는 것, 배고픔을 참는 것, 결국 쥐고기까지 먹어도 자신은 고상하다는 생각, 그것이 그녀의 진정한 장애물일 것이다.


그 남자는 결국 1년동안 자신을 불살라서 '야성'을 찾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99 마리의 들개를 완성시킨다. 그녀가 사랑한 것이 그 남자였는지 아니면 그 99마리의 들개 그림이었는지 지금도 햇갈린다. 그녀의 머리는 여전히 고상한 예술과 형이상학적인 그 무언가를 추구할 것 같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그녀의 감정과 몸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중반 이후로 그녀와 시간강사가 열차를 타고 바다에 가는 부분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남자와 여자는 겨울을 함께 난 이후에 남자는 예술을 불태우는 역할, 여자는 그 남자의 예술을 도와주는 역할로 바뀐다. '마음에서 마음으로'를 읽은 후에 '들개'를 읽으니 들개에 나오는 여자와 남자에는 모두 이외수 작가의 일부가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멋진 글을 쓰려는 여자, 예술혼을 불태우며 걸작을 그리려는 남자, 고생하며 배고픔에 시달리는 남자와 여자, 이 안에 이외수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처럼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이외수 작가의 모습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언어유희, 사전은 의외의 즐거움이었다. 현대인은 너무나 길들여진 집개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자와 남자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을 거부했고 고립된 폐건물에 살기는 자처했다. 둘 다 일반인 사이에서 살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왜 이들은 배고픔 등의 고통을 참고 왜 고립된 폐건물에서 살 수 밖에 없었을까? 들개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 그것이 진짜 삶이라는 걸 이들은 알고 있다.


남자와 개의 영혼은 정말로 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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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최근에 이르러 언어라는 것에 약간의 혐오감을 느끼고 제 나름대로 언어 파괴운동을 벌이고 있는 놈 중에 하납니다. 그랬는데 아가씨의 노트를 보니 저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반드시 한번 만나서 술 한잔을 같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와 남자의 술이 아니라 그저 같은 공법으로서의 술을 말입니다." (17쪽)


우리는 연약한 비닐우산을 앞세우고 '구름잔'이라는 이름의 생맥주 집으로 가고 있었다. (18쪽)


"그럼 혐오감(嫌惡感)은 혐악감으로 발음하겠네요."

"아닙니다. 염악감이라고 발음합니다. 혐(嫌)자는 염(廉)자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글자를 의도적으로 혼동해 사용하는 것도 제 언어 염악증에서 생긴 유희 중의 하나입니다. (19쪽)


그는 이제 이 사회가 상투적인 언어들로써 너무 많이 자기를 속여먹어 왔다고 말했다. 언어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거였다. (19쪽)


"언어 가학성의 문제에 있어서 저는 어쩐지 패북감(敗北感)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요."

내가 말했다.

"패북감? 와 그거 기분 좋은데." (20쪽)

-> 과연 이 시대에 '패북'이 지금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았을까.


두 번이나 휴학을 했었죠. 그런데 저 같은 앤 공부할 운이 없나 봐요. 등록금을 내고 공부 좀 해볼까 하면 금방 데모 때문에 휴교령이 내려지는 거였어요. 그것도 몇 달씩이나. 두 번 다 그랬어요. 저는 고생고생해서 번 돈만 학교에 갖다주고 사실은 별로 공부한 게 없어요. 휴교 중에는 교문이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도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휴교 중에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려고 다시 술집에나 나가고......" (46쪽)

-> 아니, 휴교령을 내려서 수업을 안하고 학교개방을 안하는데 등록금을 돌려주지 않았던 건가?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오리라. 가을이 오면 무슨 변화든 생겨주리라. 나는 언덕을 내려오며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랑해 왔던 모든 아름다운 것들, 이를테면 오마르 하이얌의 술 썩는 냄새, 베토벤의 뇌매독, 구스타프 클림프의 나른한 애증, 세르반테스의 선병질, 바다 거품과 식충식물과 곰팡이와 뼈 따위들 - 그런 것들도 이제는 내 피톨을 눈뜨게 하지 못하고 있다.

-> 이 여자의 취향이 참 독특하군. 그런데 '피톨'이 뭘까?


단 한 번의 육체적인 행위로써 모든 지성과 모든 고통과 모든 절망을 배설해 버리고 단지 설덩어리만으로 천연덕스럽게 잠들어 있던 그의 모습이 나는 몹시도 허망했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부질없었다.

 그러나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 만나면 그와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날 밤 그는 내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었다. 곰곰히 생각하면 기억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역시 전화번호나 주소 같은 것을 건네주는 건 중요한 듯.


"자살하려고 마음먹으면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데 바로 그런 두려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만큼 살고 싶다는 생각과 다를 바 없어."

"선생님은 왜 사세요. 아, 유치하죠. 이런 질문."

물어놓고도 나는 참 한심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왜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는 거야." (65쪽)


"모두들 세뇌당해 있어요. 문명이라는 것에 세뇌당해서 문화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어요. 안다고 하더라도 그건 거짓말이에요. 참고서를 보고 왼 것에 불과해요. 문명은 외서 해결할 수 있지만 문화는 외서 해결할 수 없어요. 문화는 느껴야 되느 거예요. 요즘 남자들은 대게 가슴이 없어요. 두뇌만 있어요. 콘크리트 냄새와 쇳내만 나요. 플라스틱 냄사와 가스 냄새만 나요." (67~68쪽)


"자꾸만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도 무의미해요!"

나는 그를 경멸하듯 내쏘아주었다. 그러나 의외였다.

그는 태연히 이렇게 응수해 왔던 것이다.

"아닙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럴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가 나는 이내 정말 그렇다. 라고 수긍해 버렸다. 나는 그 순간 그가 흔해빠진 남자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82쪽)


"그래 댁은 이 건물 안에서 살면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죠?"

"빌어먹을 놈의 사회가 내게서 빼앗아가버린 나의 실체를 찾겠다는 겁니다."

"댁은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나는 좀더 형이상학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었어요." (82쪽)


그는 다시 한 번 빙긋 웃어 보였다. 이빨도 참 못생겼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83쪽)

-> 관심이 없다면 이빨이 못생기든 잘생기든 무슨 상관이랴. 이 여자는 은근히 이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


"어쩐지 개 같지는 않은데."

"그것들은 갭니다. 그러나 집개가 아니라 들개죠."

"들개?"

"야생견을 말하는 겁니다." (87쪽)

-> 처음으로 '들개'라는 단어가 나왔다.


"직접 그리셨다니, 역시 믿기지 않는군요."

나는 약간 놀리는 듯한 어투로 말해 주었다. (88쪽)

-> 이 책에서는 이처럼 '~해 주었다'라는 표현이 종종 보인다. 상대에게 인심쓰는 것처럼.


"배가 고프다는 것은 외롭다는 말과 이음동이어입니다. 나는 언제나 배가 고팠습니다. 배가 고픈 자에게는 친구가 귀합니다. 배가 부른 놈들은 내 쪽에서 싫어했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없었고 배가 고픈 놈들은 또 하나의 배가 고픈 놈이 곁에 있으면 한 그릇의 라면도 반 그릇의 라면으로 줄어드니까 서로 친구 삼기를 꺼립니다. (89쪽)


 "일차원적인 인간들의 세상입니다. 그림은 먹을 수 없다. 고로 그림은 무가치하다. 돈으로는 먹을 것을 살 수 있다. 고로 돈은 가치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먹고 사는 일 하나에 연연해서 몇 푼 안 되는 돈에다 모가지를 걸어놓고 평생을 남의 사업만 거들다가 자기 일은 하나도 못 해놓고 죽은 사람들을 보며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91쪽)


"자기 자신과의 일체감이란 어떤 것인가요."

"모든 예술가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찌그러진 깡통을 그리든 종이비행기를 그리든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그 내부까지 묘사해 보려고 할 때 비로소 떠도는 자기의 영혼이 자기 육체 속으로 불어들여지게 되는 것이죠." (92쪽)


원래 산속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나는 지금 가장 험준한 산속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산을 넘어서 평지에 다다르지 않으면 이 산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이든 바라보면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전쟁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쟁 중에는 우선 전쟁을 하든 피난을 하든 붓을 잡을 겨를이 없는 것이다. (102쪽)


이야기만으로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와의 치열한 투쟁끝에 얻어낸 자기만의 실로써 자기만의 무늬를 놓아 비단을 짜고 그것을 정교하게 바느질해서 인간에게 입혀놓았을 때, 반드시 그 인간이 어떤 의미로든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102쪽)


"눈에 보이는 대상을 보이는 즉시 과거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해보십시오. 시간을 역진행시키는 것입니다. 만약 아가씨가 땅에 떨어진 꽃잎을 보았다면 마음속으로 그 꽃잎에 대한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만들어보십시오. 꽃잎은 우선 땅에서 떠오를 것입니다. 떠올라서는 원래 있던 자리, 즉 꽃나무 가지에 다시 붙을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오므라들 것입니다. (121쪽)


"그렇지 않을 겁니다. 진정한 무의미란 우리가 시간을 역진행시켜 상상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바로 시간이 순행적인 흐름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에 있어요."

 나는 그만 사길르 당해버린 듯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123쪽)


"차라리 서로 사랑하는 척이라도 하며 사는 게 나을 겁니다. 비록 아무것도 사랑할 건덕지는 없지만. 또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이제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흉내라도 내지 않고서는 외로워서 더이상 살아갈 수가 없어요." (123쪽)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던 먹이 문제에 관한 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이제 모두 끝나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쥐고기를 먹었다, 라는 사실이 나는 다른 것도 먹을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가지도록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차라리 하나의 벽을 무너뜨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츰 불쾌감이 사라져가는 것이 이상했다. 이 극한 상황을, 환전히 뛰어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143쪽)


"허어 이렇게 악마적인 매력을 가진 아가씨가 이 집에 다 있었나. 술맛 나겠군." (173쪽)


해가 지면서 문득 사람이라는 것이 습관처럼 그리워져 왔다. 그립다는 것도 일종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배고픔처럼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보았다. (185쪽)


그러나 나는 되도록이면 스스로 그들 속에 섞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비록 다시 한 번 쥐고기를 먹어야 하고 다시 한 번 몸을 팔아 원고지를 사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그들 밖에서 엉겅퀴처럼 살아갈 작정이었다. (202쪽)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강의실에서는 그럴듯하게 떠벌리지. 한국의 시인들은 귀소본능의 문제에 있어서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의 예를 들 수가 있다. 하나는 바다 지향적인 시인이고 하나는 하늘 지향적인 시인이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바다에서 태어난 것이 되고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하늘에서 태어난 것이 되는데 어쨌던 우리 인간은 우리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209쪽)


정말로 어른들의 생각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의 인물화를 보면 처음 시작할 때는 한결같이 우주인을 연상케 하는 것 같았었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기원을 생각해 보면 죄와 벌이라는 것이 대두되어 자연히 마음이 어두워지고 진화론적 입장에서 인간의 기원을 생각해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의 조상이 결국은 바닷속의 미생물 따위로 변해 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약간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었다. 외계인이라면 어느 정도 그러한 결점에서는 벗어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212쪽)


벽 위쪽에 네모나게 구멍을 뚫고 형광등을 가로질러서 옆방과 함께 쓰도록 만들어놓은 것을 보며, 정말 여러 가지로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났다. (213~214쪽)


열차는 아주 일정한 속도로 덜컥거리는 소음을 끌며 빗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열차 안의 시간은 깊이깊이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몇십만 년 동안이나 줄곧 이 열차를 타고 나와 함께 여행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각자 어딘가에 흩어져서 자기 나름대로 그만큼의 삶을 살다가 이제 떠날 때가 외어 우리가 왔던 먼 과거 속으로 함께 되돌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20쪽)

-> 은하철도 999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현실은 모두 꿈이지 싶었다. 어느 날 문득 꿈에서 깨어나면 우리가 생각했던 현실은 진짜 현실이 아니고 그저 잠시만의 꿈, 진짜 현실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잠시만의 꿈속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헐뜯고 빼앗다가 막상 꿈을 깨어 진짜 현실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되면, 그 때는 부끄러우리라. 꿈속에서 행하였던 그 많은 일들이 얼마나 치기무쌍했었던가를 알게 되리라. (220~221쪽)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우리들의 미래가 마침내는 우리들 스스로에 의해 철저하게 멸망하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오염되어 있는 것은 자연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까지라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인간을 상실해 가는 것을 상관하고 있었다고 벌써 오래 전부터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왕 멸망해 버릴 바에야 좀더 빨리 멸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21쪽)


"나는 지금 그 친구가 몹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결국 완전한 혼자가 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거든. 그 친구는 오래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런 것일까. 인간은 결국 완전한 혼자가 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225쪽)


좋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사는 게 참혹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사는 게 외롭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236쪽)


그런데 교미가 끝난 암모기가 수정란을 키워서 알을 낳으려면 반드시 동물의 피가 필요하다. 그리고 암놈은 동물의 몸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탐지하는 특수 감각기관으로써 동물의 존재를 쉽게 파악할 수 가 있다.

따끔!

 피를 빠는 모기는 이미 처녀모기가 아니다. (257쪽)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남들이 한평생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일 년 동안에 모조리 살아버리고 떠나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내 삶의 몫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 합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습니다." (263쪽)


"아 정말로 보들레르적인 장면......"

이었다고 말하려는데 그가 난폭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270쪽)


그러나 어려운 것은 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시에 대한 편견이다. 도대체 시를 이해하려 든다는 것부터가 무모하다. 시가 감상되는 것이라는 기초적 상식을 버리고서는 도저히 시에 근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283쪽)



<단어>

1) 졸보기: 검은 테의 졸보기 안경을 쓰고 있었다. (11쪽)

2) 낭하: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음침하고 긴 낭하가 뿌드득뿌드득 늑골 앓는 소리를 발했다. (69쪽)

3) 밀기울: 밀기울 냄새가 나는 싸구려 빵이었다. (95쪽)

4) 짚북데기: 그는 그대로 인간 짚북데기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179쪽)

5) 아베크족: 아베크족들이 팔짱을 끼고 아주 느린 걸음걸이로 우리들 곁을 스쳐가고 있었다. (190쪽)

6) 터부: "완성시키기 이전에는 그림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미안합니다. 이건 제 터부입니다." (250쪽)

7) 우산조개: 눈부시게 하얀 우산조개를 모아 엮은 목걸이였다 (277~278쪽)



<궁금, 의문>

1) 진정한 예술가란 작품을 위해 자신의 생활에다 일부러 상처를 내는 사람들이라고 언젠가 그는 내게 말해 주었었다. 나는 그 쥐고기가 마치 그의 살점들을 베어낸 것 갖은 느낌이 들어 순간적으로 온몸을 전율했다. (196쪽)

-> '갖은' 이 아니라 '같은' 이 아닐까?




k***5 2014.06.19.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들개는 살아있는가
"들개는 살아있는가" 내용보기
막 PC통신을 시작하고 채팅으로 수많은 밤을 지우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또래의 어린 몽상가들과 접속했는데 그때 만난 아이들 중 한명이 “이외수 선생님”을 키보드에 달고 살았다. 나는 그 여자애가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이겠거니 생각했다. 책도 몇 권이나 냈다기에 집필활동도 겸하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구나. 그러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기적으로 우린 월드컵
"들개는 살아있는가" 내용보기

 막 PC통신을 시작하고 채팅으로 수많은 밤을 지우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또래의 어린 몽상가들과 접속했는데 그때 만난 아이들 중 한명이 “이외수 선생님”을 키보드에 달고 살았다. 나는 그 여자애가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이겠거니 생각했다. 책도 몇 권이나 냈다기에 집필활동도 겸하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구나. 그러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기적으로 우린 월드컵 4강에 올랐고 그 이듬해 봄날, 나는 입대했다. 훈련소를 나와 자대배치를 받은 곳은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동원사단이었다. 내가 맡은 수많은 직책 중 하나는 사단 세탁병. 동원훈련 기간에는 수천 벌의 전투복과 수천 개의 모포, 베개피 등을 빨았다. 세탁기가 빨래하는 동안엔 일병에게는 마치 소개팅을 처음 나갔을 때처럼 어색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책, [들개]. 무심코 집어든 책,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는 하루키의 그것과는 달리 거친 숨소리가 느껴지는 정사씬이 있었다. 비록 짧게 끝났지만 끓는 성욕을 해결하기 힘들었던 나에게는 충분한 불씨가 되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 일을 봤다.

 그 이후 나는 또 다른 정사씬이 있나 눈에 기합을 주고 틈날 때마다 들개를 이 잡듯이 뒤졌다. 책을 읽지 않았지만 읽은 것이요, 읽었지만 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다 차츰 책에 정이 들었던 나는 그 안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동정하게 되었고 그들의 가난과 사랑과 예술혼에 감명 받았다. 결국 들개는 내가 군대에서 읽은 유일한 책이자 세 번 완독한 내 인생 첫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 되었다.

 작년 겨울, 중고장터를 이용해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몇 권 구입했다. 경대북문에서 만난 그녀는 책 수권을 종이가방에 단정하게 담아 건네 줬었다. 상당히 무거웠을 법 한데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바라봤던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한 표정의 그 모습이 인상 깊었었다.

집에 와서 처음 편 책이 [배고픔의 자서전]이었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진하게 배어나오는 나프탈렌 향이 의아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구매한 책을 모두 맡아보았다. 경계선 없이 스며 나오는 나프탈렌 냄새가 나로 하여금 잊고 있던 들개를 생각나게 했다. 나프탈렌은 원래 방충제, 방부제의 용도로 쓰이지만 왠지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면 지하 월세방에서 배를 굶주리며 창작 활동을 하는 가난한 예술인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 아가씨도 들개 속의 여주인공처럼 생계문제로 그 소중한 책들을 팔았던 것은 아닐까 상상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어느새 이십대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고 작가인 “이외수 선생님”은 유명인사가 됐다. 며칠 전에는 케이블 게임채널에도 나와 같이 게임을 하며 즐기는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소셜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도 그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의 신작을 읽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이 [하악하악]이었는데 그것도 중간에 책장을 덮고 말았다. 더 이상 그에게는 들개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림을 완성하고 죽어버린 그 들개는 정말 죽어버린 것일까?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지금 내 손에는 해냄에서 나온 [들개]가 있지만 너무 예쁘고 깨끗해서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다. 세탁소에서 본 동문선의 들개는 표지에 이외수 선생님의 고뇌가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고 종이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책은 세탁소의 수분을 먹어서 뒤틀려있었다. 난 그 책이 훨씬 좋았다.

 들개란 나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가난해도 떳떳하게 살게 해주는 용기이다. 가난해도 꿋꿋하게 창작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열정이다. [들개]는 내 안의 들개를 발견하게 해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신기한 건 이 책이 처음 나온 80년대 후반이나 세기가 지난 지금이나 상황이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들개에 나온 주인공들은 현재도 유효하다.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걸까?

 다만 작가의 사진 옆에 “이 시대에도 들개는 살아있는가!”라는 카피가 적힌 해냄의 책표지를 볼 때마다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k******0 2011.07.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