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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그 사소함
"만약 죄를 범하지 않을 자유가 인간에게 있다면, 죄와 교수대를 동시에 바라보면서도 죄를 범하고야 마는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_사드
병우는 흉터가 없는 해원의 오른손 무명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병우가 반지를 해원의 왼손에 끼워주었더라면, 그들의 사랑은 가능했을까 이 소설은 자신의 흉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 같다. 그것이 행복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 자신은 아니라고 '느낀다'. 동시에 그 흉터와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늘 그 자신이다. 그는 자신의 흉터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누구보다 절실히 그 흉터를 사랑하면서. 그 몰입의 상태에 타인을 초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사랑이? 어떤 헌신이
그는 불행이 전이되기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기였기 때문에, 모두가 거부하고 남은 것, 모두가 받아들이길 거부한 것, 그것만이 유일한 자신의 것이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불행이기 때문에.
불행은 거부당함으로써 유일해지고 의미를 갖는다.
이름을 바꾼다, 문장을 바꾼다. 하지만 그건 그저 흩날리는 것이다. 대체되는 것이며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 흘러가는 물위에 집을 지을까, 기꺼이. 그런 영혼들이 있다. 그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 여기로 와, 건너편에서 손짓하는 그리운 풍경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어도 스스로 허락지 못하는 사람이.
성직자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에게만큼은, 모든 걸 던지고 불태우는 사람. 아름다우면서 단단하고, 타오름으로써 다이아몬드가 되려고 했지만 결정적 전이의 순간에 손을 놓아버린 자신에 대한 용서 불가능한 의식이 남아 있다.
“목이 타도 물을 마시지 못하는 죽음이 있다”(46쪽)
왼손을 잡아주는 것, 그건 '너와 나는 같다'는 그 의리에 대한 확인과 같다.
모멸의 손, 끝까지 외면당하는 그 손,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 고통에 책임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의 책임이.
나로 존재하는 방법은 무얼까 나의 운명이 이 고통뿐임을 알 때, 그것을 수락해야 한다면…
누군가에겐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의 윤리, 일상적인 삶에서의 금기, 여기까지만, 여기를 넘어가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 라고 말하는 경고문 너머엔 어떤 공포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혹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죽어야 한다는 명령에 던져진 채 살려달라고 말하며 경고문이 있는 경계로 다가간다. 죽음에 다가가보면 알 수 있다. 세상의 경고, 그것들은 사실 텅 비어 있는 것이며 죽음 앞에 선 자신을 살려줄 어떤 힘도 없는 '믿음'이었을 뿐임을. 힘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전쟁도 없고 죽음도 없는 삶에서 그 힘들은 유효하다. 하지만 전쟁을 겪고, 죽음에 다가가야만 하는 삶, 존재의 끝을 보아버린 이들에게 그 힘들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 힘들은 마주칠 것 같지만 엇갈리고 마는 빗금으로 온다.
이미 배신당한,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세계에서 이탈하게 된 이들은 삶의 어느 곳에도 자신의 구원을 청할 곳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예술의 편으로 기울인다.
한국단편문학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무어냐 라고 물으면 나는 약혼의 이 마지막 장면을 꼽겠다. 아무리 반복해 읽어보아도 '회복된 아름다움'을 목격하고야 마는 하오의 풍경엔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누구나 잘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수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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