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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부분은 쪼금 지루하다. 영화로 본다면 그냥 신경 안쓰고 지나쳐도 되는 그런 장면들인데, 책에서는 배경 설명을 위해서 꽤 자세하게 과학 지식이 설명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혹시 이 책을 앞으로 읽을 생각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 설명들, 그다지 자세하게 읽지 않아도 하등 상관없다. 단지 흥미진진한 모험을 "있음직"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야기 전개나 구성에는 사실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장면이다.
그러면 왜 그런 쓸데없는, 지루한 장면을 그렇게도 길게 써놓고 있는 것인가. 이 소설이 크라이튼의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모두 <쥬라기 공원>을 알고 있다. 수백만년전 얼어죽은 모기가 빨아먹은 피 속에서 공룡의 유전인자를 추출해낸다는 그 무릎을 치는 아이디어에 우리 모두는 감동받았었다. 그리고 자연발생적으로 동성생식이 가능해진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걸 빼고 나면 <쥬라기 공원>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나? 물론 영화에서는 공룡을 재생한 화려한 영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란 지극히 흔해 빠진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 크라이튼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야기가 아니라 무릎을 치게 하는 과학 지식으로 승부를 거는 작가가 아니던가.
<타임라인>에서는 "모기"의 자리를 양자 역학을 이용한 원격이동이 차지한다. 그것도 3차원의 공간 이동 뿐만이 아니라 시간 여행이라는 고전적인 모험의 형태로.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시간 여행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시간 여행이 아니라고 한다. 이거 설명하려면 말 길어지기 십상인데, 한마디로 이렇다. 과거로 가는게 아니라 다른 우주로 간다는 개념이다.)
과학이란, 인간의 능력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항상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생기는 오류가 비극을 잉태하는데, <쥬라기 공원>에서는 동성간의 자연발생적인 성 분화가 문제가 됐다면 <타임라인>에서는 전사오류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양자역학을 이용한 원격이동이란 사람이나 물체를 양자 단위로 쪼개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뒤에 다시 붙이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똑바로 안 붙으면? 예컨대 얼굴 반쪽이 일그러진다거나, 더 심하게는 얼굴 오른쪽과 왼쪽이 아귀가 맞지 않는다거나, 또는 (머릿속으로라도 그림을 그려 보지 않는게 좋을텐데) 턱 밑에 이빨이 난다거나 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거만 알면 끝이다. 나머지는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기 위한 역사학도들의 모험담일 뿐이다. 물론 읽다보면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재밌기로 말하자면, 이왕에 과거로 갔다가 돌아오는 것과 비교하자면 <백 투 더 퓨처>가 오히려 웃줄이다. 좀 진지하게 비교하자면 벌써 250년 전에 나온 <걸리버 여행기>가 오히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느낌이고.
예전에 홍콩 갱 영화가 "홍콩 느와르"라는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으며 중흥을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단언코 대개 몇 편의 영화만 보면 그 시절에 나온 영화 모두를 본 것과 마찬가지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천장지구> 정도가 아닌가 싶다. 나머지 영웅, 첩혈 등등의 말들이 들어가는 영화는 모두 말짱 꽝이다. 아류작이라는 말이 아까운 쓰레기들이다. 형만한 동생없다고, 영화도 그렇다. 마이클 크라이튼을 보고 있자면 작가도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쥬라기 공원>을 염두에 두고 <13번째 전사>와 <타임라인>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 보지만 결국은 실망하고 만다. <장미의 이름> 이후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 그 어느 것도 그만한 반향을 다시 얻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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