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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는 박영택 교수의 저서를 살펴보다가 제목에 이끌려 산 책이다. 아무리 똑같은 그림을 그리거나, 같은 수준의 사진을 찍어도 고수의 것이냐 무명인의 것이냐에 따라 그 가치나 평가가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일반인이 보기엔 똑같아 보여도 전문가가 볼 때는 달라 보일 것이다. 아마 작품을 작업할 때의 그 사람의 철학이나 태도가 다를 것 같다. 전문가는 그것을 날카롭게 잡아내는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50명의 조각가, 화가, 사진작가가 모두 '붓을 아무렇게나 던져도 그림이 되는'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이 말에 해당된 이는 일명 걸레스님, 미친 스님이라 일컫는 '중광스님'이었다.
나는 그의 그림을 찬찬히 본다. 그의 그림에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마음이 있다고들 한다. 중광은 항상 무해의 자유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고도 했다. "나는 붓을 그냥 던져도 그림이 된다"고 그는 자주 말했다. 물론 그런 그림은 오랜 시간 숙련을 거친 후에야 비로서 자유로워지는 그런 그림이다. 흉내로써 이루어지는 그림, 단순한 제스처에 머무는 그림은 아니다.(282쪽)
내가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교수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그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예전부터 영화를 볼 때도 영상이나 배경음악보다는 대사에 먼저 마음이 간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언어를 좋아하고 그것에 가장 예민할지도 모른다. 바로 박영택의 글도 그렇다. 그림에 대한 느낌이나 해설에 대한 표현력들이 웬만한 문장가들보다도 뛰어나다. 또한 그의 해박한 지식도 나의 관심을 끈다. 그렇다고 글을 현학적으로 쓰지도 않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 명쾌하다. 아마 그의 사상이나 철학이 그러한 것 같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보는 일이 자신에게 일종의 업인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을 보거나 그와 연관된 이미지와 글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미술이 마장이자 극락인 셈이라고 한다. 전시를 보고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 날 문득 그는 작가들의 주제와 작업에 대한 말들이 대개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난히 한국작가들의 사고구조에는 공통된 성향이 뿌리 깊고 높게 놓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수행과정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도를 추구하는 스님들의 정진과 동일한 은유로서 말이다.
그들의 작업의 주제를 설명하는 단어로 '인연, 업, 윤회, 순환, 상생'등의 불교적 사유에 해당하는 용어들을 빈번하게 쓰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이해하는 미술이란 무엇이며, 왜 이런 주제, 형식, 방법론을 빌었으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의문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아니면 조상들로부터 면면이 이어져 우리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나 또한 '수행, 비움(공), 명상, 정진, 무상함, 상생, 깨달음, 무욕' 등의 말들이 좋고, 또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불교 사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추구하고 그저 내가 살고 싶었던 방향이기에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공(空)'사상이다. 완벽하게 이 우주의 공함을 깨닫는다면, 나아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라는 것을 강조한다. 모든 현상을 제대로 보는 것 말이다.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것은 그대로 '완전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허하지 않은 것은 세상에 없다. 안과 밖도 없고 주체도 객체도 없다. 예를 들어 내 몸은 완벽하게 공한 것이다. 변하고 변해서 결국 사라진다. 실재하는 것은 모두 내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렇다. '공'함은 전 우주의 기본적 진리이고 그것은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이다.(32쪽)
소승불교의 수행을 통해 대승불교 핵심처럼 자기를 완벽하게 비울 수만 있다면 진리를 얻을 수 있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의 눈으로 볼 수 있을텐데…. 그것은 죽을 때쯤이나 가능할까? 아시아 속담에 '사람은 죽을 때 가장 완벽한 집을 짓는다'라는 것이 있는데, 아마 그것은 죽을 때쯤 되어야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아 '공'의 상태가 되어 완벽한 마음을 얻는다는 뜻인가 보다. 그런데 그 '공'의 상태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종교인을 제외하고 예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작업을 수행하듯, 도를 닦듯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그러한 과정으로 작업해서 이루어낸 작품들을 보면서 수행하고 명상하면 조금은 가까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 가운데 강대철의 조각품인 '사원'이 참 인상 깊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깊은 생각에 빠지며 고요한 시간 속으로 흘러들 것 같은 분위기이다. 마치 세상의 모든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조각상이다. 그의 깡마르고 네모 반듯한 모습을 보면, 필요없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걷어내고 꼭 필요한 최소의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원(강대철)
육체는 우주와의 합일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사원이다. 육체는 상대 세계 속에 존재하지만 초월된 세계에 이르는 경전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육체의 수양을 통해 궁극적인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 몸은 말하는 듯하다. 깨달음을 갈구하는 이 육신은 단순하고 납작하게 재현되어 있으며 그 몸이 일종의 문, 경계의 역할을 한다.(18쪽)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도 뛰어나지만, 이 책의 장점은 박영택 교수의 글을 가슴으로 느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펴낸 책들의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은 불교와 연관된 작품들을 소개한 책이라서 마치 내가 산사에 들어 그 고요함 속에 나를 내려놓고 온 느낌이 든다. 나는 그의 다른 책을 또 사기로 했다. 다섯 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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