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그때 당시 시골유지집 딸이었음에도, 그럴싸한 외지의 중학교에 합격증을 받아버려서, 감히 딸주제에. 외조부는 엄마를 방에 가뒀다고 했다. 배움에 한이 맺힌 내 엄마는 백과사전을 제일의 애독서로 삼고 사신다. 하, 서두가 엉뚱해졌다. 엄마는 아주 누렇게 뜬 이책을 집에 주워오셨더랬다. 지금은 새로 장만한 책이지만. 나는 어릴때부터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왕따였을까? 그 반대였던것같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를 따돌렸고, 식사가 끝나면 가족을 따돌렸다. 언제나 내 방으로 숨어들어와 방문을 꼭 닫으면서 진짜 내 생활이 시작되는거라고 믿었다. 결혼후 한참은,,, 화장실에 숨어서 내 진짜 생활을 살곤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때부터 방학마다 평생의 화두로 삼을 법한 책을 공교롭게도 하나씩 골라가며 수많은 밤을 고통스러워하고 고뇌하며 보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엄마가 주워 오는 책들이 많이 그랬다. 사람의 아들이 그랬던것처럼, 만다라는 내게, 내 마음속에 새소리,바람소리와 함께, 묵직한 벼루 하나를 얹어준 작품이었다. 그때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절망했다. 살아내야 하는것에.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그리고 언제 다시 읽어도 살아내는 것은 조금도 쉬워지지 않은 것같다. 지암스님은 처음 만난 법운에게 묻는다. "학생인가" "그랬는데 아닙니다. 더 이상 학굘다닐 이율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호오, 그래? 하는 지암스님의 눈빛.. "지식따윈 혼자서도 충분히 익힐수 잇습니다. 학교에서는 제 의문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답을 얻고자 닥치는 대로 읽고 생각햇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한계가 왔고, 문제아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몰이해와 일원적인 사고방식에 저는 깊은 외로움을 맛봅니다. 결국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단 결론에 자퇴햇습니다. 혼자 번민하고 고뇌했으나 오리무중입니다. 어디에도 길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고통입니다." "무엇이 그리 고통스러운고?" "마음이,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젋은이 고통을 없애줄까?" "예" "가져오게. 마음을 가져와봐. 괴롭다는 그 마음을 내놔보라니까. 그래야 그 고통을 다스려주지.." 법운이 그랬던것 처럼, 나도 그랬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것 같았다. 그리고 잠깐의 대화후 노승(지암스님)은 수수께끼를 낸다. "여기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깊고 넓어지는 병이 있네. 조그만 새 한마리를 집어넣고 키웠지. 이제 그만 새를 꺼내야 겠는데, 그동안 커서 나오질 않는구먼. 병을 깨뜨리지 않고 도저히 꺼낼 재간이 없어. 그러나 병을 깨서는 안돼. 새를 다치게 해서도 안되고. 자, 어떻게 하면 새를 꺼낼 수 있을까?" 그 선문답이, 법운뿐아니라, 내 일생에도 줄곧 마음속에서 새울음소리를 들리게 할줄이야.. 법운수좌의 수행에 또 한번의 방황을 준, 지산스님과의 만남. 공양은 마다하고 술을 마시며, 술잔이 부처로 보인다며 나무소주불을 읊는 지산.. "하지만 정작 문제는 갈 곳이 없다는 현실적인 절박함에 있는 것도 아니야. 단순히 그런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어. 결국 나는 어디로든 가게 될 것이고 어디서든 살게 될 테니까. 결코 길바닥에서 노숙을 한 적은 없었으니까...그것은 영혼의 문제일 거야. 살을 태우고 피를 끓여서 소주처럼 청정한 백골 한자루로 뚫고 들어갈 구멍, 혼을 팔아서 혼을 살 수 있는 일물, 모두 죽고 모두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혼의 광장,,,, 아아 나를 죽여서 나를 살릴수 있는 뜨겁고 뜨거운 열정이 마른 재처럼 식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는 정거장에 쭈그리고 앉아 망연해 하는거야...."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는 정거장에 쭈그리고 앉아 망연해 본 적이 있다.... 한때, 치열하게 살고 싶다고, 겉멋들인 말을 되뇌이곤 했었다. 살아내는 것이 고통이라고 내심 생각하지만, 건방지게..생각하곤 했지만, 나는 마음을 꺼내 위로하지 못한다. 나는 마음을 꺼낼 수 없었다.. 여전히 나는 마음속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소리가 들린다. 입구가 좁은 그 병에서 새를 꺼내지 못했고, 어쩌면 일생 새울음소리에 어찌할 바 모를것도 같다. 그때마다 마음속의 벼루를 꺼내 먹을 간다...단 한글자도 써내려가지 못하지만, 먹을 간다.. 그때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부터 꾸역꾸역 올라와 나는 여전히 화장실로 달아나곤 한다... 아직도 나는 어린 그때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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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계가 승이고, 속인가?..
주인공은 청정발심으로 대원력을 세우고 출가한 햇중이지만
여러 세파를 전전하며 승과속의 본면목을 깨우친다는 줄거리이다.
실제로 나이 열아홉에 출가하여 수년간 산중에서 수행생활을 한
김성동 작가자신의 초상의 표본이기도 하다. 주인공 햇중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파계승이 등장하는데 김성동 작가는 그 파계승을 내세워 과연 어느 쪽이 중생제도를 위한 진실한 방편인지를 되묻고 있다.
오늘날 이땅의 불교와 불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초발심수행자에게
있어서는 꼭 한번 읽어 보아야 할 필독서라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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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사십을 바라보며 다시 읽었다. 다시 읽지 않았다면 '만다라'의 개작도 몰랐을 터, 흔치 않은 역량있는 작가의 변화된 관점과 인식을 놓치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쓸어 안고 헤매는 번뇌들, 방황들. 나이들수록 무감각해지는듯 하지만, 더욱 오롯이 무겁게 다가 온다. 적어도 내게는. 외로움과 허무함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견성의 경지는 너무나 멀고 높고, 나는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역량과 좌표에서 헤매나니...... 그저, 죄 짓지 않고 가능한 한 복덕을 짓고 살거나. 그러나, 또한 동시에 더불어 사랑하며 사는게 문득문득 한없이 두렵다. 언젠가 떨쳐 버리고 떠나기 어렵게 할 것들, 연연함에 목이 메일 것들, 차마 이별하지 못할 것들.
김성동의 묘사는 손에 잡힐 듯해서 좋다. 그의 타고난 듯 농익은 솜씨는 어줍잖은 흉내꾼들이 따르지 못한다. 그의 우리말 사랑과 진설은 고맙고 기쁘다. 친절하고 명쾌한 작품해설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의미는 무엇인가. 부모미생지전에 시심마오 ? 주인공, 그리고 작가의 내면에 나의 번뇌가, 요즘들어 틈틈이 부쩍 불현듯 떠올라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번뇌덩어리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점에 있음을 확인 하는 느낌은 묘하다. 안도하지만 두렵다. 내가 조로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내게 쓸데없는 영역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일상의 권태와 과도하게 허용된 나태함에서 온 것일까. 겨를없이 부딪히며 번뇌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조차 없는 일상은 차라리 행복한가, 다행인가 아니면 처연한가.
[인상깊은구절] '복달라고 비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마음 깨쳐 스스로 부처 되자는 것이 불교입니다. 관세음보살'......p.227 ' 인간이 늙는다는 것, 늙고 병들어 결국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 아닐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팽팽한 젊음 그대로 있다면 저 산 같고 바다 같고 하늘 같은 사랑과 미움과 원한과 그리고 저 욕정을 다 어쩌겠는가. |
| 갈등에 고민과 번뇌에 휩싸여서 세상을 돌아다니는 떠돌이 중의 구도담이다. 실제로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법 하지만, 아마도 소설적인 과장일 것일게다. 구도에 대한 집착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오는 몸부림이었을게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무렵 내가 그런 상태에 있었다. 청춘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어디론가 탈출구를 찾고 싶어 바둥거리던 나에게 이 책이 찾아왔고, 한동안 나는 이 책과 함께 청춘의 고뇌를 즐겼었다. 지금은 즐겼다고 이야기를 할수 있지만, 그때는 참으로 절절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는 조금씩 야물어졌고, 이젠 세상의 풍파가 모질게 불어도 조금은 잘 견딜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일던 바람이 잠잠해진 것이다. 과연 내가 해탈을 한 것일까. 성불을 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때가 묻어 세상과 타협을 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