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지음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생각해 보면 대학때는 참 사회 문제에 대해서 열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을 참 좋아했었다. 그 중에서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몇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탄광이라는 나에게는 생소한 직업에 대한 르포... 그당시에는 충격이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읽을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각해 보면 대학때는 참 사회 문제에 대해서 열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을 참 좋아했었다. 그 중에서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몇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탄광이라는 나에게는 생소한 직업에 대한 르포... 그당시에는 충격이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1936년, 서른셋의 청년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 탄광 지대로 향했을 때, 그는 자신의 중산층적 편견과 선입견을 짊어진 채 그곳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탄광 속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그의 모든 관념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렇게 1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진다." 오웰이 묘사한 탄광 속 풍경은 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비인간적 조건 속에서도 생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생존 자체가 얼마나 영웅적인 행위인지를 보여준다. 네 발로 기어가야 하는 좁은 갱도, 숨이 막히는 열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천장 아래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오웰의 진정한 발견은 탄광의 물리적 조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뿌리 깊게 박힌 계급 의식이었다. 중산층으로 태어나 교육받은 그는 노동자들과 진정한 연대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인정해야 했다.

오웰이 지적한 '냄새'의 문제는 계급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차별의 도구다. 상류층이 하층민을 향해 느끼는 혐오감의 근저에는 바로 이 냄새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 기택에게서 맡는다고 말하는 '그 냄새'와 일치한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는 냄새, 반지하에서 풍기는 곰팡이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의 냄새'라고 불리는 그 모든 것들. 오웰이 1930년대에 지적한 이 문제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오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혐오감이 개인적 취향이나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학습되고 강화되는 것임을 간파했다. 중산층인 자신도 이러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 품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오웰이 던진 가장 날카로운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계급 차별을 없애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중산층인 자신이 계급 차별 철페를 외치는 것은 쉽지만, 정작 자신의 관념과 취향, 심지어 몸동작까지도 계급 차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를 철저히 변화시켜야 하며, 결국엔 같은 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 .. 절망은 변화의 어려움에서,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동시에 오웰은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직접적인 설득이나 계몽보다는 이야기의 힘을 택했다. <카탈로니아 찬가>,<동물농장>, <1984>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오웰의 사회주의는 이상주의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당시 좌파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 부족과 이론적 독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노동계급과 전혀 접촉해본 적 없는 상류층 사회주의자들이 보이는 위선과 무지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오웰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의 핵심은 복잡한 이론이나 교조적 신념이 아니라 바로 이 두 가지 가치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가치들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실적인 사회주의의 길을 모색하면서 오웰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의외로 실용적이다. 그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분법적 구분 대신 '약탈자'와 '피약탈자'라는 보다 구체적인 구분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해 관계가 같은 사람들 간의 연대를 통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웰이 1930년대 영국에서 목격한 계급 갈등의 양상은 2025년 한국 사회에서도 놀랍도록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 명품, 아파트, 자동차, 교육, 문화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계급 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줄 서기와 라인타기로 표현되는 권력에의 아부와 기회주의. 특히 주목할 점은 진정한 기득권층은 책임을 회피하면서, 상대적으로 하위 계층들끼리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구조다.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는 반면, 정작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진짜 기득권 층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오웰이 지적한 바로 그 문제다.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엉뚱한 대상을 향하도록 조작되고, 진정한 변화의 동력은 분산되고 소모된다. 결국 기존 질서는 더욱 공고해지고, 피착취자들은 서로 싸우며 지쳐간다.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던진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그는 '기계적 진보의 경향은 노고와 창조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본성을 좌절시킨다'고 경고했다. 인간이 노동을 통해 얻는 성취감과 자아실현의 기회,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고된 육체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은 분명 인류의 진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성 자체를 잃어버린다면, 과연 그것을 진정한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오웰의 해답은 균형감각에 있다. 모든 것을 기계에 맡기는 것도, 모든 기술을 거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것이다.


오웰이 제시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바로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들 간의 연대'다. 그는 소규모 자작농과 공장 노동자, 자동차 정비공 등이 연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바로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 쳐지는' 처지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가 가능하려면 사회적 편견과 우월감을 극복해야 한다. 은행원과 부두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습관과 전통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연대의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높은 집세와 생활비에 시달리는 청년층, 고용 불안에 노출된 중년층,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장년층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 이해관계가 있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를 경쟁자나 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메커니즘이다. 

책을 읽고 나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이 얼마나 뿌리 깊고 변화하기 어려운지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오웰이 90년 전에 지적한 문제들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과연 인간 사회에 진보라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발견한다. 오웰 자신이 보여준 것처럼, 기득권층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특권을 성찰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의 노력이 모여 사회적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라는 오웰의 구호는 단순해 보이지만, 바로 그 단순함에서 힘을 얻는다. 복잡한 이론이나 교조적 신념보다는 이 기본적인 가치들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연대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p****r 2025.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노동 계급의 이야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노동 계급의 이야기" 내용보기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르포르타주(reportage)는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실제의 사건을 보고하는 문학을 말한다.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로서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조지 오웰의 르포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노동 계급의 이야기" 내용보기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르포르타주(reportage)는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
실제의 사건을 보고하는 문학을 말한다.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로서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쓰인 시기는
대공황기로 대량 실업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정치적으로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파시즘이 득세하던 때였다.

이 즈음 밑바닥 사람들의 생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던 그가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책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고
집중적인 조사 끝에 완성한 책이다.

책은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실상,
탄광의 실태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담겨
문학적으로도, 역사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 실상에 대한 내용에 이어
자신의 성장 배경과 영국의 계급 문제,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담은
주장 강한 에세이가 이어지며
큰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이 책은
조지 오웰이 '작가'로서 얼마나
문학적으로도 감동을 주는
'르포르타주'를 써 내려갔는지,
그리고 역사학적으로 충실한 자료가 될 정도로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명의 기반이 되는 석탄을 캐기 위해
지옥 같은 땅굴에서 목숨을 걸고 노동하지만
천대받는 광부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 없이 고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자는 없다며
계급 문제, 정치적인 견해까지 이어져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탄광 노동자의 실상을 다룬 1부에서는
다큐멘터리나 미디어를 통해 접한
탄광 노동의 고됨을 면면히 알 수 있었다.

그저 '힘들겠지' 정도만 생각했던
노동의 고됨과 그럼에도 퍽퍽했던 생활,
'몸으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처우가 개선되거나
그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하지 않으며
사실상 '노예의 강제 노역'과 같은 노동환경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와
크게 다를 바 없어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시대와 국가는 다르지만
여전히 탄광 노동자들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공장에서 체력과 건강을 갈아 넣으며
자신을 다 태워 넣는 노동환경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기에

영국의 탄광 노동자의 현실이 아니라
'전태일'과 '미싱공'을 떠올리는 우리의 과거,
그리고 식품공장에서 목숨을 잃고도
여전히 일을 이어가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여전한 문장이라서
그들의 희생과 극한의 노동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영화 〈기생충〉에서
상류층 동익이 아내 연교에게
운전기사 기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항상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는데,
그의 냄새만큼은 선을 넘는다."

아무리 숨기고 포장해도 숨길 수 없는
계급 차이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던 대사라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아래 것들은 냄새가 나'라는
부르주아로 자란 유럽인들이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들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장벽'에서
영화를 보며 실감했던 같은 씁쓸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그저 관찰하고
글로 써 내려갈 뿐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확대해 바라보는
어쩌면 용기 있었던 조지 오웰의 선택에서
지금의 우리가 알아야 할,
목소리 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르포르타주라는 '보고'를 넘어선
2부의 내용은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정치나 이념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고,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주장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조지 오웰만의 신념을 엿볼 수 있기도,
계급 차별에 대한 냉철한 현실을 꼬집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 궤적을 되짚으며
한 인물의 서사를 알게 되는 문장들이기도 했다.

탄광 노동자들의 실상을 시작으로
'밑바닥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같은 맥락에서 힘없는 빈자와 약자와 소수자가
사회에 압살당하지 않고
공공의 영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스스로 느끼고 고민해 보게 도와주었다.

우리가 어떤 곳에 힘을 실어야 하는지
어디에 연대의 함성을 보내야 하는지,
과거의 그가 전하는 문장을 통해
우리의 '내일'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를 품을 수 있었고

다시 '조지 오웰'을 읽는 이유를,
각자가 사회와 노동자와 자신을 위해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2*****u 2025.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내용보기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쪽이 거칠게 긁히는 느낌이 든다. 오웰이 북부 잉글랜드의 탄광 도시들을 걷는 모습이 낯설 만큼 또렷하다. 검댕이 낀 얼굴, 매캐한 공기, 눅눅한 이층집, 나무로 된 공동변소까지 그는 빠짐없이 쓴다. 보고 들은 것만이 아니라 냄새와 감촉까지 글에 옮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단순한 노동계급 탐방기가 아니다. 그것은 육체의 고통과 사회의 모순이 구체적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내용보기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쪽이 거칠게 긁히는 느낌이 든다. 오웰이 북부 잉글랜드의 탄광 도시들을 걷는 모습이 낯설 만큼 또렷하다. 검댕이 낀 얼굴, 매캐한 공기, 눅눅한 이층집, 나무로 된 공동변소까지 그는 빠짐없이 쓴다. 보고 들은 것만이 아니라 냄새와 감촉까지 글에 옮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단순한 노동계급 탐방기가 아니다. 그것은 육체의 고통과 사회의 모순이 구체적인 언어로 증명되는 보고서다. 그러나 이 책이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후반부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오웰은 시선을 바깥에서 안으로 돌린다. 세상을 바라보던 눈으로 이제는 자신을 바라본다.


사실 조지 오웰은 처음부터 사회주의자도 르포 작가도 아니었다. 그는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조용하고 인간적인 이야기, 어딘가 고장난 평범한 삶에 대한 묘사. 그러나 당시 영국은 그런 문학적 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육을 받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식탁 위 빵 한 조각조차 불평등하게 배분되었다. 오웰은 책상머리에 앉아 픽션을 고민하는 대신 거리로 나갔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그 세계를 직접 살아봐야 한다는 직관이 그를 북부 탄광촌으로 이끌었다. 위건 부두는 문학의 이상이 현실의 바닥과 부딪힌 자리였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작가가 아닌 기록관이 되어갔다.


책의 전반부는 현실에 대한 관찰이다. 오웰은 광부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석탄먼지를 뒤집어쓴 채 90센티미터짜리 탄광 갱도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침묵과 무거운 눈빛. 그는 어떤 장식도 없이 이 현실을 보여준다. 이 묘사에는 동정이나 연민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을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그는 믿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부분은 후반부다. 그는 노동계급이 처한 외적 환경보다도 중산층 지식인이 가진 내적 모순을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나 역시 이들과 완전히 섞이지 못한다. 나는 그들의 식습관에 불편을 느끼고 말투에 거부감을 갖는다. 내가 지닌 도덕적 선의가 실제로는 무지와 거리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오웰은 스스로를 해부하듯 분석한다. 그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 자기 혐오를 그는 숨기지 않는다. 사회주의를 말하면서도 노동자와의 정서적 단절을 느끼는 이 아이러니. 그는 그것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오웰은 당시 좌파 지식인들이 이상만을 앞세우며 현실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대중은 정치적 구호보다 실제 고통에 대한 이해를 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상은 실감에서 출발해야 한다. 낡은 방 한쪽에 끼어 있는 곰팡이의 냄새를 모른 채 혁명을 말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이다. 불의에 대한 감각, 진실에 대한 감각, 그리고 부끄러움에 대한 감각.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지금도 여전히 낯설고 뾰족하다. 그 불편함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지금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 안에는 얼마나 많은 거리감과 관찰자의 안일함이 섞여 있는가. 오웰은 그런 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안다는 말보다 본다는 말을 택한다. 그리고 본 것을 끝까지 잊지 않는 태도를 택한다.


이 책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그 질문이야말로 오웰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날카로운 유산일 것이다.

s****1 2025.06.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내용보기
#도서협찬#서평단#위건 부두로 가는 길#조지오웰@hanibook@bellorum_civilum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조지오웰이 직접 위건의 탄광노동자와 생활하면서 쓴 글이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한거 보다 열악했다.  열심히 일함에도 그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조지오웰은 그들의 가난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보았다. 계급문제로 인한 불평등이 그것이었다. 이부분에서 지금도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내용보기
#도서협찬#서평단#위건 부두로 가는 길#조지오웰@hanibook@bellorum_civilum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조지오웰이 직접 위건의 탄광노동자와 생활하면서 쓴 글이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한거 보다 열악했다.  열심히 일함에도 그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조지오웰은 그들의 가난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보았다. 계급문제로 인한 불평등이 그것이었다. 이부분에서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계급차이로 불평등의 문제가 심한데라는 생각이 들으니 마냥 과거시대의 문제라고 보이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대가 낳은 문제까지 지금이라고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으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대선을 앞두고 있으니 이 책이 주는 깊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것 같았다. 책은 어려웠지만 좋은 책이 주는 여운이 느껴져서 좋았다.
리뷰 총점 종이책
오웰과 보는 노동자의 삶
"오웰과 보는 노동자의 삶" 내용보기
#도서협찬. 위건부두로 가는 길 by조지 오웰 ~<1984>와 <동물농장>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조지 오웰이 쓴 로포르타주가 있다. '르포르타주'란?  프랑스어로 '보고하다' 라는 뜻을 가진 문학장르이다. 사건이나 현장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보도하는 방식으로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에 있는 장르이다. 영화로 치자면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조지 오웰의 문
"오웰과 보는 노동자의 삶" 내용보기
#도서협찬. 위건부두로 가는 길 by조지 오웰 

~<1984>와 <동물농장>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조지 오웰이 쓴 로포르타주가 있다.
 '르포르타주'란? 
 프랑스어로 '보고하다' 라는 뜻을 가진 문학장르이다. 사건이나 현장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보도하는 방식으로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에 있는 장르이다. 영화로 치자면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조지 오웰의 문학작품 <1984>와 <동물농장>에서도 사회문제를 다루고 비판의식을 보였던 것처럼 그는 로포르타주 작가로도 유명했다.
 하층민의 생활을 다룬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이 담긴 <카탈루냐 찬가>가 있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1936년 그가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을 다루었다. 
 두달 동안 랭커셔와 요즘에는 요크셔 일대 탄광 지대에서 광부의 집이나 노동자들이 묵는 싸구려 하숙집에 머물며 조사하여 쓴 작품으로 '실업을 다룬 세미 다큐멘터리의 고전' 으로 까지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그가 브로커 부부의 하숙집에서 생활을 시작하며 진행된다. 
 창도 제대로 없고 악취에 쩔어있는 집, 바퀴벌레, 지저분한 담요 등 인간이 생활하기에 비위생적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매주 10실링을 주고 그 수준의 숙식을 제공받으며 살아간다.
 그는 막장꾼을 의미하는 필러들을 보며 그들의 강인함에 질투심을 느낀다는 표현으로 그들의 초인적인 노동량과 어려움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주당 수입은 2파운드 15실링 2페니, 이것도 성수기인 겨울 기준이고 봄이 되면 실업상태에 놓이며 생계에 위협을 느끼게 된다.

 1부에서 힘들게 일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언제든 실업상태에 놓이며 비참하게 생활할 수 밖에 없는 탄광 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나면 2부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 이라는 제목으로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들을 지적한다.

 중산층 이상은 학교교육에 의해 노동계층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 노동자들의 문화에 거부감을 가지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알려고 들지않고 선을 그어버려서 계급 불평등은 심화된다. 그로인해 사회주의 인식이 퍼지지 않고 전체적인 노동자들의 인권향상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노동문제는 악순환의 길에 들어선다.
 오웰은 자신도 그러한 점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계급문제가 단순히 경제적 부분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조지 오웰의 <1984>와 <동물농장>을 인상깊게 본 독자로써 그가 실제 노동현장이나 험난한 생활에 뛰어들어 직접 취재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했다는 것에서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의 입장에서 굳이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스스로 발을 들였다. 이는 그의 작품활동과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왜 그가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지를 더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984년은 이미 오래전이 되어버렸지만 그의 예지력과 통찰력이 21세기에도 빛나 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hanibook
@bellorum_civilium
#위건부두로가는길 #조지오웰   
#한겨레출판 #르포르타주 #서평단 #도서협찬 
< 한겨레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y****2 2025.05.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