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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음악적 경성』 1920~1935년 식민지, 여성, 음악에 대해....
"『음악적 경성』 1920~1935년 식민지, 여성, 음악에 대해...." 내용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조윤영 지음/ 소명출판속지가 알록달록하고 모던한 느낌, 삽화도 일제 강점기 경성을 다루는 점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의 경성은 어떤 모습일까? 마치 타임 슬립하는 기분으로 펼친 책이다!!책 몇 페이지 안 넘겼을 때 내 흥미를 끄는 문장!! 조선의 의복이 주로 흰색이었다면 일본은 주로 검은색이라고 하는데, 그 이
"『음악적 경성』 1920~1935년 식민지, 여성, 음악에 대해...." 내용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조윤영 지음/ 소명출판







속지가 알록달록하고 모던한 느낌, 삽화도 일제 강점기 경성을 다루는 점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의 경성은 어떤 모습일까? 마치 타임 슬립하는 기분으로 펼친 책이다!!


책 몇 페이지 안 넘겼을 때 내 흥미를 끄는 문장!! 조선의 의복이 주로 흰색이었다면 일본은 주로 검은색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의미 있다. 일본의 경우 검정이란?!! 개국 때부터 감지한 서양의 색깔 즉 문명의 색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이든 의복이든 식민지를 건설하고 또 우리 문화를 말살하려 한 일본에 대한 감정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마구 치밀어 오르는데, 그 어떤 감정을 배제하고 읽어보려 노력한 책이다





근대와 전근대가 나뉜 도시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지배자와 식민지 피지배가로 나뉜 도시의 모습...


당대 경성의 음악 상점, 악기 상사, 야외나 실내의 음악회 모습 흑백사진으로 만나는 군악대의 모습, 손으로 쓴 악보와 음악회 티켓까지!! 그리고 조선 호텔의 내부 콘서트홀의 모습과 좌석 배치 그리고 기독교 청년회관의 재즈밴드 공연 등 볼거리가 정말 많은 책이다. 극히 소수이지만 당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활약하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예술가, 문화 인사, 유력가들도 검색해 보는 중인데 우리 문화에 지대한 역할을 한 분들 중에 민족반역자들이 있다.

친일파가 아니고 민족 반역자라 불러야 옳다!

홍난파, 현제명 같은 인간 혹은, 안익태 같은 인간들..............


음악뿐 아니라 미술계는 더 썩었고 문학계도 마찬가지.... ( 만약 일제 강점기에 너라면 안 그랬겠냐고 묻는 분들에게, 했고 안 했고도 중요한데 민족 반역, 배신행위에 대해 전혀 반성이 없다는 점에 분노한다!!! 천수만 수 부귀영화 누리는 점, 부가 대물림되어 그 자식들도...... 머 그렇다 )










책은 사회문화, 소설,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식민지 시설 경성을 말한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시절 경성에 가보고 싶다... 끝으로 여전히 일본에 말해주고 싶은 것.


최근 세계대전을 읽고 공부하며 독일에 대해 알게 된 수많은 진실들. 그들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거사에 대해 반성했다는 것은 지극히 일부다. 그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총리가 머리를 숙이는 것은 일종의 퍼포먼스다. ( 물론 그조차도 안 하는 놈들보다는 낫지만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쟁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ㅠㅠ


역사를 왜곡하고 수없이 훼손해왔으며 심지어 거짓의 역사를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믿으며 그들은 언젠가는 마침내 그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저자는 식민지, 여성, 음악가라는 키워드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 분이다. 이 책은 1930년대에서 끝나는데 이후 조선의 여성, 음악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길, 또한 그런 책도 출간해 주시길~~





#식민지경성, #경성음악, #이중도시경성,

#음악적경성





이달의 사락 r******7 2025.05.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음악적 경성] 서로 다른 정체성··· 이중도시 음악적 경성의 모습
"[음악적 경성] 서로 다른 정체성··· 이중도시 음악적 경성의 모습" 내용보기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한일 강제병합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압도적 통감 정치를 펼친 일본 제국주의는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정치'를 실시했다. 3·1운동은 중국에서 외세를 내쫒아야 한다는 5·4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일본 총독부는 지나치게 조선을 압도하는 정치가 오히려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음악적 경성] 서로 다른 정체성··· 이중도시 음악적 경성의 모습" 내용보기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일 강제병합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압도적 통감 정치를 펼친 일본 제국주의는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정치'를 실시했다. 3·1운동은 중국에서 외세를 내쫒아야 한다는 5·4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일본 총독부는 지나치게 조선을 압도하는 정치가 오히려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하나씩 점령해가던 시절이어서 예전 정치로는 조선에 발목이 잡히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병탄 초기 동화정책을 기본으로 삼았던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한국민의 반항을 막기 위해 헌병과 경찰을 통합하여 중앙의 경무총장에 헌병사령관, 각도의 경무부장에 헌병대장을 임명하여 이른바 헌병경찰정치를 통해서 철저한 무단탄압정책을 강행하였다. 1919년의 3·1운동을 계기로 극악함이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헌병경찰은 보통경찰체로 바뀌고 총독부의 정책도 이른바 문화정치로 전환하였으나, 경찰제도는 여전히 총독부의 한국통치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여 비대하여만 갔다.

총독부의 중앙부서는 ‘문화정치’ 이후 내무·재무·식산·법무·학무·경무의 6국으로 개편하였고, 총독관방도 서무·토목·철도의 3부로 개편하였다. 지방제도에서도 도장관을 지사(知事)로 개칭하고, 민선으로 구성되는 도평의회 및 부·면협의회 등 자문기관을 두었다. 이들 자문기관은 도·부·읍회로 개편되어 지방자치제로서의 결의기관으로 발전시켰으며, 중앙의 중추원도 개편하여 고문·찬의·부찬의를 참의로 통합하고, 정원도 65명으로 정하였다. 한국인의 관리임용에서도 그 범위를 넓히고 대우를 개선하였으며, 언론·집회·출판에 대한 종래의 탄압정책을 완화하는 등 회유책을 썼으나, 이것은 모두 표면상의 정치적 제스처이었을 뿐, 음성적인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다. 이 기간 1920년부터 1935년까지의 '문화 정치' 때 ‘음악회’는 식민지시기 경성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 ‘최고의 유행물’이었다고 이 책 『음악적 경성』의 저자 조윤영은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당시 경성인들의 일상을 면밀히 살펴보고, 음악문화 형성의 중심지였던 종로와 혼마치(지금의 충무로 일대)의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진 근대 음악회를 정치적, 사회문화적 맥락을 통하여 알아보기 위해 집필 이유를 적시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는 일제의 문화정치와 일본 유학을 시도한 젊은 음악가들이 귀국하는 시점이 맞물려 음악적으로 중요한 시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1920년대에는 다양한 전공의 양악전문가들이 출현하고 양악을 향유하려는 조선인들이 증가하면서 음악회에 참석하는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것. 같은 시기 총독부의 문화정치와 함께 다수가 모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종로와 혼마치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가 박사학위 논문에 사용될 목적으로 연구하고 수집했던 자료가 대부분이어서 책으로 내기 위해 이 기간에 출간된 다수의 출판물, 즉 신문, 잡지, 음악회 공고문 등의 자료를 통해 수정 보완됐다고 밝힌다. 이 기간에는 다행히 문화정치로 전환하고부터는 일제가 우리의 신문, 잡지, 기타 각종 출판물의 자격과 기준 제한을 크게 낮추었던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역사 서술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영역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우리의 삶과 밀접한 음악사회에 대한 출판을 기획했다. 독자들 가까이에 식민지 일상의 음악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의 출간 의미를 두고 누구나 편하게 열어볼 수 있게 쓰고자 노력했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이제는 우리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이 식민지라는 환경에 의해 너무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특히,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를 휩쓴 아이돌 그룹이나 성악가 조수미,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같은 국제적 음악 인재들이 나올 수 있는 기반에는 우리가 100여년 전 새롭게 익혔던 서양음악이 현대 한국인들의 이중 음악적 모국어로 형성될 수 있는 근간이었음을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처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던 일상적인 것에도 우리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처럼 구멍 나 있는 역사의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과정은 앞으로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p.7~8)

이 책은 경성시대 음악 사회를 분석한 저자의 박사논문이 바탕이 돼 출간되었으며, 조선인과 일본인의 생활공간을 가로지르며 음악이 문화정치적으로 담당한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근대도시 경성의 음악문화와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양상을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① 식민지조선의 모던도시 경성이 근대적 문화도시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개괄하고 조선인 중심의 종로와 일본인 중심의 혼마치문화를 비교하여 분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서구화된 일본의 문화를 탐닉하는 조선인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본다. ② 조선인들에게 문화의 상징성을 내포한 공간이자 종로의 대표적 공간에서 열린 음악회를 구체적으로 조사하여 조선인 중심의 음악회 유형과 특성을 밝힌다. 그리고 일제의 지배하에 놓인 이중도시 경성의 이면을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들의 문화와 혼마치의 대표적 음악회장 위치와 역할, 그리고 성격 등을 파악하여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던 식민/피식민, 중심/주변, 고급/저급의 음악사회를 탐색한다. ③ 음악회를 구성하는 다양한─청중, 음악가, 주최자─입장을 다각도로 조망하여 식민지권력과 자본주의 아래에서 근대적 도시 경험인 음악회라는 문화를 수용하는 모습을 분석한다. ④ 조선인들에게 음악회가 어떻게 ‘최고의 유행물’이 되었으며 ‘음악광시대’로 확산되어 가는지, 그들의 담론을 통해 조선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식민지경성에서 펼쳐진 음악회의 의미를 그려본다.

이에 따라 기술된 이 책 『음악적 경성』은 지금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던 음악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 조선인들에게 음악회에서 서양음악을 듣고 본다는 것이 어떠한 근대적 경험인가? 제도권 밖 음악문화의 저변층 확대를 둘러싼 의문을 풀어본다. 둘째, 식민지 상황에서 재조일본인들의 영향력과 그들만의 음악문화가 일상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식민지 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기에, 교육과 정책 연구에서 확인되지 않는 일반적 적용 사례를 찾아본다. 셋째, 그로 인해 조선인들이 받은 영향과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는가? 일본을 통해 굴절된 서구 근대화가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제국에 의해 한꺼번에 들어와 음악문화를 주재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혼재하는 경성이라는 도시의 음악 문화를 근대적 상징인 '음악회'에 집중해서 분석한다. 저자는 음악회를 중심으로 보는 이유는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시간예술 장르인 음악이 음악회와 관견된 다양한 자료물을 기록으로 수치화할 수 있어 어느 정도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모던도시, 그리고 이중도시 경성(京城)〉, 2장 〈경성의 서양식 음악회 1920년부터 1935년까지〉, 3장 〈이중도시 경성의 음악회 특징과 음악적 경성의 면모〉, 4장 〈도시와 음악 문화〉 등이다. 1장에서는 「모던도시로 재탄생한 경성」「이중도시 경성에서의 문화탐닉-종로(鐘路)와 혼마치(本町)」 등 2개의 테마로 분석한다. 2장은 「야외에서의 음악」과 「실내에서의 음악」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3장은 「조선인의 문화-종로의 음악회」, 「재조일본인, 그들만의 문화-혼마치의 음악회」로 각각의 특징과 다른 점을 집중 분석한다. 마지막 4장에서는 「조선인의 음악 담론 “음악광시대”」와 「경성 안 두 민족의 음악회」 등 2개의 소제목에 따른 흥미로운 내용이 전개된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사실 식민지경성이 근대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음악의 역할이 중요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음악 활동에 관한 중요성을 간과하여 근대의 일상에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특히 재조일본인들의 음악활동을 살펴본 데에는 경성인으로 함께 살아갔던 그들의 활동을 살펴보며 심층적으로 접근하여 근대 초기 경성의 음악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로써 근대 음악회의 수용과 그 중심지인 경성을 개괄하고 그동안 잊혀 있던 ‘음악과 일상’의 담론을 어떠한 형태로든 복구하여, 현재 우리의 음악문화와 일상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내려 가다 보면 낯익은 이름과 다소 낯선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경성의 음악과 음악회, 음악인들 뿐만 아니라 타 분야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인사들도 책에 이름이 들어 있다. 그만큼 경성의 음악과 음악회는 음악인들과 음악향유층의 관심의 높았고, 대중적 인기도 높았기 때문으로 독자는 풀이한다. 또 서양음악과 서양음악인들의 이름도 자주 나온다. 경성의 음악은 이른바 '서양 클래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홍난파는 "우리 사회에는 음악회란 것이 일대 유행물"(1925. 1. 1)이었다고 하나 당시 경성은 주체적으로 음악회를 열어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음악홀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실내 음악회는 근대식 건물의 다목적 공간인 공공 강당에서 개최되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한국 서양음악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홍난파(1898~1941)는 또 뒷날 1940년 5월 19일자 신문 칼럼에 "그때 음악회란 음악전문가들의 예술적 연주회가 아니라 서양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어릿광대들의 소기(素技, 꾸밈없는 기술)에 지나지 못했던 것···"이라고 썼다. 여기서 '그때'란 1915~1920년을 말한다. 그때는 근대음악이 우리 땅에 이식되던 시기라고 볼 때 적절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경성은 일본이 추종했던 서구 음악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혼마치(지금의 명동·필동 일대)의 악기상과 레코드 가게, 음악다방 등을 통해 도시는 점차 음악에 젖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문화충돌이 없던 건 아니다. 마당놀이 같은 야외 연회에 익숙했던 조선인들에게 실내 음악회는 생경했다. 음악회장 연주를 배경 삼아 춤추거나 소리 지르고 담배 피우는 일도 허다했다. 관람에티켓 지적이 늘자 양악은 점차 대중과 멀어졌다. 그럼에도 현진건의 단편 「피아노」가 그려내듯 '피아노만 들여놓으면 신식 가정이 될 것 같은 착각'이 1920~1930년대 경성인을 자극했다. 

책에 따르면 경성에서 열린 대부분의 음악회는 종로의 기독교청년회관과 혼마치의 경성공회당에 집중되어 있었고, 지정학적으로 조선인 중심지와 재조일본인 중심지로 나뉘어 있었으므로, 이 두 공간의 음악회를 비교하면 종로와 혼마치 음악회의 특징과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종로의 기독교청년회관 음악회는 초기에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만 192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급격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 종로에서 열린 음악회의 인기가 시들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혼마치의 경성공회당 음악회는 공회당이 설립된 1920년부터 차차 음악회가 열리기 시작하더니 192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큰 변화 없이 꾸준히 개최되는 모습을 보인다.(p.146)

식민지배자인 일본인과 피식민자인 조선인의 근대에 대한 사고 차이는 음악문화가 형성되는 음악회 현장을 크게 두 범주로 구분했으며, 이 이중성은 음악적 근대도시 경성의 면모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던 것은 확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경성의 음악회는 공연장이 있는 지역에 따라 조선인과 재조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었다. 종로의 공연장은 조선인들의 공간으로 서구식 공연의 시작 단계에 있었으며, 일본인들의 거주지인 혼마치에서는 전문음악인들이 참여하는 격 높은 공연들이 기획되었다.(p.149)

제3장 〈이중도시 경성의 음악회 특징과 음악적 경성의 면모〉 「조선인의 문화-종로의 음악회」에서는 식민지배자인 일본인과 피식민자인 조선인의 근대에 대한 사고 차이는 음악문화가 형성되는 음악회 현장에서 두 범주로 갈라진 상황을 자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경성의 음악회는 공연장이 있는 지역에 따라 조선인과 재조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었다. 1920년대가 될 때까지도 예배당이든 술집이나 기생집이든 찬송가가 유행하였기에 음악회 곡목은 찬송가나 유행가가 주요 레퍼터리였고, 악기 외에 톱도 등장했다고 한다. 톱을 그어 소리를 내는 톱 연주를 악기 연주라 할 수 없지만 안대선(W. J. Anderson)이나 호아재경의 톱 연주는 조선인 중심 음악회에서 종종 공연되었다. 초기의 음악가는 "음악을 전문공구(專門功究)하는 인(人)은 아니요, 흔이는 부업으로써 다소간 이 방면에 소양과 취미를 남보다 더 가졌"(ghdsksvk, 1925. 4)던 사람들이었고, 음악을 생업으로 하는 음악가들도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장기를 선보이며 청중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김형준은 작사·작곡, 성악, 나팔까지 섭렵했으며, 김영환은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을 겸했다. 박용구는 이를 분업화의 문제로 지적하였지만 당시 소수였던 음악가들이 현실적으로 음악계를 지탱해 나가기 위한 도전과 노력이기도 했다.

근대 유행물인 음악회는 사교의 공간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도 당시 작가 현진건의 소설에 나타난 내용을 인용해 저자는 강조한다. "현진건의 소설 「까막잡기」를 보면, 전문학교에 다니는 상춘은 학수에게 여학교 주최로 열리는 청년회관 춘기 대음악회에 가기를 권한다. 음악을 모르니 가지 않겠다는 학수에게 상춘은 하이칼라 여학생은 다 올 것이니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자며 일등표까지 사주고 데려간다. 이 소설 속 음악회는 남학생이 여학생을 만나기 위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현진건의 또 다른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도 여학생에게 기숙사로 남학생의 편지가 오면, 삭람은 '학교에서 주최한 음악회"에서 만났나며 문초하였다. 경성인들에 음악회란 남녀가 만날 수 있는 공개적인 연애 장소로 인식되었다."(p.153) 이에 반해 연극이나 영화처럼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문화 생활에 반해, 음악회는 남녀가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쾌락이자 여흥이나 오락 격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일 원이나 이 원의 고가의 입장료를 선선히 내는 청중들"은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일석의 유흥기분으로 이것에 만족"(홍난파, 1940. 5. 19)하며 음악회를 다녔다.


저자 : 조윤영


호서대학교 강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음악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근대 음악사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에 「조선인 중심의 음악회장, 경성(京城) 기독교청년회관」 「왜 식민지조선 음악가들은 관현악단을 만들고자 했는가: 경성방송(JODK)관현악단의 출현과 그 의의」 「식민지조선 음악단체 중앙악우회(中央樂友會) 정체성 연구」 등이 있다.













c*****0 2025.05.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식민지 경성 - 음악적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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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음악 취향 파헤치기우리는 경성을 식민지 시대의 우울함만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경성에도 문화가 존재했고, 특히 음악은 더없이 발달 했다고 한다.이 책은 그런 경성의 음악적 모습을 담았다.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식민지 시대의 일본은 정말 최악이었다.우리나라의 경성을 자신들의 도시인양, 재조일본인들은 진고개를 자기들 마음대로 혼마치로 부르며 모든 경성의 상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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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음악 취향 파헤치기

우리는 경성을 식민지 시대의 우울함만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경성에도 문화가 존재했고, 특히 음악은 더없이 발달 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경성의 음악적 모습을 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식민지 시대의 일본은 정말 최악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성을 자신들의 도시인양, 재조일본인들은 진고개를 자기들 마음대로 혼마치로 부르며 모든 경성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특히 독일 음악교육을 선호하였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조선인들도 독일 유학의 길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부터 36년까지 기독교 청년회관의 음악회 개체 횟수를 보면 정말 다양한 음악회가 열렸음을 알수 있으며, 사진을 통해 그 시절의 음악회 모습도 같이 감상할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음악뿐 아니라 종교 시설이나 공공시설등 음악과 연관된 곳들과의 관계도 심도 있게 나타냈다.

1923년 최초의 다방 개업당시 그 다방의 주인들은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지식층 이었다는 것을 통해 돈 많은 지식인들의 일본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조선인들이 정치적으로 거리를 두게 하기 위한 조선 총독부는 문화 행사를 통해 그 일을 해결했는데, 서구의 우월의식과 함께 친일파들이 더욱 들끓게 된 계기가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근대도시에서의 음악은 모두가 평등해지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으니 이는 필시 음악의 장점이라 하겠다.

식민지 시절을 살았던 대부분의 조선사람들은 음악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지식인들이 주로 즐겼던 경성의 음악 스타일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식민지경성 #경성음악 #이중도시경성 #음악적경성



l******5 2025.05.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식민지경성/경성음악/이중도시경성] 음악적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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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식민지 경성의 배경으로 이중 도시 경성의 경성 음악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음악적 경성』이다. 표지부터가 옛 신문 같아 마치 그 당시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흥미롭다. 신문물이 받아들여지면서 경성은 흔히 말하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등장하던 시대고 전차가 다니고 전화가
"[식민지경성/경성음악/이중도시경성] 음악적 경성 " 내용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식민지 경성의 배경으로 이중 도시 경성의 경성 음악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음악적 경성』이다. 표지부터가 옛 신문 같아 마치 그 당시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흥미롭다. 

신문물이 받아들여지면서 경성은 흔히 말하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등장하던 시대고 전차가 다니고 전화가 사용되는 등의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선도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에 과연 음악이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모 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이 그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던 카페에서 당시의 최신 댄스를 추던 모습이 영화 말미에 다시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비록 그들 중 독립을 직접 맞이한 이는 몇 되지 않겠지만 하늘에서 그 소식을 듣는다면 그렇게 춤을 추며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싶어 오랜 여운이 남기도 했는데 이런 걸 보면 또 당시 경성에도 음악이란 존재했음을 알 수 있고 나름 춤도 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의외로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적이였던 경성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중도시라는 수식어가 왜 나왔을까 싶었던 궁금증은 종로와 혼마치라는 거리를 통해서도 일제의 철저한 계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종로의 발전을 늦추면서 혼마치는 서둘로 개조하는 식으로 둘을 비교하게 만들어 마치 조선이 미개한 것처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혼마치에 존재했던 다양한 레코드 상점이나 악기 상가 등을 통해서 당시의 음악적 경성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놀랍게도 당시 서양식 음악회가 있었고 학교에서도 음악을 배우는 모습이 사진 자료로 소개되는데 야외와 실내라는 공간적 상이함 속에서도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당시 경성에서는 어떤 음악이 연주되었고 어떤 음악 활동이 행해졌는지를 알아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게다가 해외의 음악가도 소개되지만 우리나라 음악인들이 소개되어 있는 점도 굉장히 의미있었는데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부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까지 다양했고 때로는 독주가 아닌 협주와 같이 여러 음악가가 함께 연주하는 모습도 사진은 물론 관련 설명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여전히 식민 지배를 받았던 시대, 그럼에도 음악이라는 요소들이 다양한 형태로 경성 곳곳에 자리했고 또 여러 계층과 다양한 사람들이 그러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경성을 음악이라는 요소로 들여다 본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적경성 #조윤영 #소명출판 #리뷰어스클럽 #식민지경성 #경성음악 #이중도시경성 #모던도시 #경성의음악회 #음악문화 #책 #독서 #도서리뷰 #책추천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g*****s 2025.05.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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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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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아픔과 비극으로 볼 수 있는 일제강점기,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의미에 대해 공감하거나 역사 및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자 한다면 이 책을 통해 접하며 다양한 관점과 판단력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의 심장으로 볼 수 있는 서울, 옛 경성을 통해 표현 되는 음악 및 예술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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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아픔과 비극으로 볼 수 있는 일제강점기,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의미에 대해 공감하거나 역사 및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자 한다면 이 책을 통해 접하며 다양한 관점과 판단력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의 심장으로 볼 수 있는 서울, 옛 경성을 통해 표현 되는 음악 및 예술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롭게 다가오는 정보나 지식도 많아서 많은 분들이 바라는 인문학적 가치나 교훈적 메시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배워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 경성> 특히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를 주요 시대 배경으로 설정해서 해당 분야를 전하고 있으며 다소 무거운 감정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독립을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런 과정에서 기이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경성의 변화상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 볼 수 있어서 해당 시기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배울 만한 의미가 많다는 점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문화 예술 분야의 변질이나 부정적인 의미도 많지만 긍정적인 요소도 함께 공존했다는 점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때로는 나라를 잃은 슬픔을 풍자, 희화화 하기도 했고 고통과 시련의 시간, 과정 등을 표현하거나 더 많은 사람들의 의식 계몽과 생각의 전환 등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이나 주요 사건들도 많아서 책을 통해 접하며 함께 판단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문화 예술 분야가 지금도 중요한 역량과 힘을 갖지만 당시에도 비슷한 위치에서 일정한 상징성을 가졌다는 점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시대적 소명이자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이들의 판단과 생각 등을 읽을 수 있어서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난, 혹은 확장된 개념으로 접하며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 경성> 지금도 우리의 수도인 서울은 다양한 분야의 중심지이자 핵심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비슷한 의미를 가졌으며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게 되는 공간적인 의미, 이상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도 알게 될 것이다. 어려울 수 있지만 역사 및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해 입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점이나 음악 및 음악이야기를 중심으로 배우고자 하는 분들도 해당 도서를 통해 알아 볼 수 있는 점들이 많다는 점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책을 통해 접하며 판단해 보자. 







이달의 사락 m**********m 2025.05.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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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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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1910년 약 20만 명이었던 경성의 인구는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급격히 증가하여 1930년대 초반이 되면 두 배인 40만 명으로 늘어난다. 신분제가 탈피되면서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인식이 대두되어 교육의 힘이 무서운 기세로 전파되었다. (-17-)경성에서도 서양악기와 악보, 레코드가 유행에 민감한 모던인들의 취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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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1910년 약 20만 명이었던 경성의 인구는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급격히 증가하여 1930년대 초반이 되면 두 배인 40만 명으로 늘어난다. 신분제가 탈피되면서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인식이 대두되어 교육의 힘이 무서운 기세로 전파되었다. (-17-)





경성에서도 서양악기와 악보, 레코드가 유행에 민감한 모던인들의 취향에 맞춰 공급되었고, 서양악기 뿐 아니라 일본악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악기점과 일본악기를 가르치는 교습소까지 등장하여 재조일본인들은 음악적으로 내지와 동일하게 일본화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다. (-45-)





1920년대는 일제의 문화정치라는 식민정책 아래 민간신문사가 등장하였다. 언론의 제약이 많은 식민지 환경에서 신문사는 객관적인 보도를 요구하기 어려웠다. (-115-)





이처럼 음악회장은 대중의 집합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대중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가능한 공간이었다. 검은 옥의 일본인 경찰이 항상 칼을 지니고 강경한 자세로 대중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암묵적이나마 식민자로서 합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조선인을 피식민자로 낙인시키게 하였다. (-167-)





1910년 일제강점기는 조선으 수도 한성이 대한제국 황성으로,황성이 경성으로 바뀌던 시기다. 수도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 나라의 통치 체계에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인식이 바뀔 수 있고, 문화나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가장 큰 변화는 조선의 양반과 상민의 법도에 변화였으며, 신분제가 사라지게 되면서, 누구나 배워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은 큰 사회적 변혁이라 말할 수 있다.





책 『음악적 경성』은 1920~1930년대 우리의 삶의 변화를 엮어 나갔다.음아과 미술에 대해서,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서울 경성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일찌기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 자신의 문화를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1세기 전만하여도, 조선을 배워야 한다는 일본인이 이제, 조선이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음악하면 홍난파다. 재조 일본인이 경성에 살기 시작한다. 수탈의 목적도 있지만, 조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누리기 위해서다.자신의 입맛에 맞는 문화시설을 만들었고,향유하기 시작했다. 경성의 인구가 10년 사이에 두배로 늘어났으며, 연관 시설 뿐만 아니라 집이 늘어나게 되었다.교통수단의 발다로 인해 , 과거보다 더 편리해졌고,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이 없었다


 신식건물 뿐만 아니라 적산가옥이 추가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본과 조선,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두 나라의 국민이 서로 공생하게 된다. 우리에겐 망언이라 하지만,일본인에겐 조선의 근대화의 초석을 다졌다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달의 사락 k*******2 2025.05.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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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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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는 1945년까지 30여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이렇게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한편으로는 독립국의 국민이 아닌 식민지인으로서의 사람들의 일상도 이어졌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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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는 1945년까지 30여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이렇게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한편으로는 독립국의 국민이 아닌 식민지인으로서의 사람들의 일상도 이어졌습니다. 조선은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중국과 일본 등을 제외하고는 나라의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는데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었던 일본의 영향을 받아 미국이나 유럽의 문화가 급격하게 유입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음악적 경성' 은 당시 경성으로 불렸던 서울을 중심으로 음악적 관점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료를 곁들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때 모던보이, 모던걸이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이 단어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암울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서양과 일본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따라하면서 멋을 부렸다고 합니다. 해외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민지가 된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나타난 변화로 볼 수 있네요.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서양 악기를 파는 악기 전문점도 생겨났고, 독일의 악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그대로 우리나라로 가지고 와서 가르치면서 점점 악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도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악기 전문점이 있던 거리의 모습이나 연주회 홀을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당시 우리나라가 맞는지 잘 상상이 되지 않네요.

처음에는 아마추어 연주자 위주였지만 악기가 보급되고 연주자들의 수준도 올라가면서 1년에도 수십 차례의 전문 음악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종로에 있던 기독교청년회관과 일본인들의 거주지 근처에 세워진 경성공회당이 대표적인 연주회 홀이었으며 이외에도 미쓰코시 백화점, 화신 백화점 등 백화점에도 다목적 홀을 갖추면서 서양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네요. 이 홀에서 오른 연주자 중에는 크라이슬러나 하이페츠도 있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으로 연주 여행을 왔다가 식민지였던 경성도 끼워넣기로 들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떤 이유로든 당시 세계적인 유명 연주자들의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니 신기합니다.

하지만 서양 음악은 아직 사람들에게는 낯설었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태도에서도 현재와 차이를 보입니다. 요즘은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가보면 연주를 하는 동안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다가 악장이 끝나고 새로운 악장이 시작할때 잠깐 사이에 관객석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들리고 다시 연주를 시작하면 조용하다가 모든 악장이 끝나면 박수를 칩니다. 과거에는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주 중에도 수시로 야유를 퍼부었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도 예사였습니다. 홍난파와 듀엣으로 활동하였던 피아니스트 김영환은 한 연주회에서 관객이 보인 반응 때문에 연주도 하지 않고 나갔고 이후 연주회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짐작이 되네요.

서양 음악이 대접을 받으면서 집집마다 비싼 피아노를 들여놓으려는 세태를 꼬집는 만평이나 흑백 사진이지만 화려해 보이는 연주회 홀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서양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읽어볼 수 있었네요.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는데 새로운 시각으로 경성을 바라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식민지경성 #경성음악 #이중도시경성 #음악적경성
이달의 사락 p***s 2025.05.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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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도시 경성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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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산골에서 자란 제가 피아노를 처음 본 것은 중학생 음악 시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풍금으로 음악수업을 받았기 때문이죠. 생경한 피아노 소리에 맞춰 잘 나오지 않던 목소리로 실기시험을 봤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음악은 늘 제게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고요. 그런 음악이랑 친하게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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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산골에서 자란 제가 피아노를 처음 본 것은 중학생 음악 시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풍금으로 음악수업을 받았기 때문이죠. 생경한 피아노 소리에 맞춰 잘 나오지 않던 목소리로 실기시험을 봤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음악은 늘 제게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고요. 그런 음악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책입니다. 오랜 서먹함을 날려줄 책이 될까요?


저자 조윤영은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박사 논문으로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 근대음악사입니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계속해서 우리 음악문화의 비어 있는 틈을 메우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죠. 주요 연구서로는 <서양의 소리, 경성의 공간을 침투하다-호텔과 백화점에서의 서양음악과 그 영향>, <식민지 조선 여성 음악가에 대한 인식적 고착화-결혼제도에 따른 여성과 음악의 한계>, <식민지 조선에서 베토벤 수용-음악 활동에 관한 사회문화적 접근>등이 있습니다.

저자의 박사논문에 큰 틀을 두고 수정 보완 한 책입니다.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악회가 활발하게 나타나는 1920년을 기점으로 1935년 말까지의 경성의 음악에 대해 싣고 있어요. 음악회의 시작과 장소, 조선인 거주지와 재일본인 거주지인 혼마치와의 차이점이 연도별로, 장소별로 음악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자료와 수치를 첨부하여 사실성을 높이고 있어요. 근대 도시인 경성의 이중성이 1장에 2장은 서양식 음악회에 대해서, 3장은 이중 도시 경성의 음악회 특징과 음악적 경성의 면모가 4장은 도시와 음악 문화에 대해 실려있습니다. 사진과 삽화 등도 실려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죠. 친하게 지내려고 고른 음악 이야기가 나오는 책인데,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두었다니, 저 이 책 읽기 괜찮을까요?


일본이 추구한 경성의 근대화는 궁극적으로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인은 문명이고 조선인은 야만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일제는 조선을 차지하고 조선인을 억압했다. (p24)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수도인 경성을 근대화 시키는 것에 자신들의 속내를 숨기고 조선인들을 교모하게 억압합니다. 자신들이 즐기는 음악회나 음악들이 수준이 높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조선의 창가나 관람 문화가 후진국이라고 치부하죠. 식민지의 팍팍한 현실을 음악으로 잊어 보려 했던 순수한 조선인들을 일본은 억압하고 이용했어요. 일본의 바람에 따라 경성은 급격하게 근대화되고 있었지만,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곳인 혼마치와 조선인들 거주 구역인 종로는 큰 차이를 보이죠. 일본은 일부러 혼마치를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꾸며 조선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게 만들어요. 보이는 건물과 문화를 통해서 우리 민족은 지배를 받아야만 마땅하다는 인식을 만들어 우리의 자존감을 낮추고 억압했습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음악을 즐기고 음악을 배우며 그 시절을 견뎠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바이올린과 라켓, <러브>라는 책을 들고 여학교 앞을 걸어가는 중등학생의 그림은 당신의 유행하는 학생상을 보여준다. (p39)

근대 문물의 영향과 서양 음악의 전파로 인해 조선이들 사이에 바이올린과 테니스 라켓을 들고 다니는 남학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유행하는 모습은 있는 모양이에요. 그때에는 바이올린과 테니스 라켓을 들고 <러브>라는 잡지까지 들고 있으면 최고 인기 있던 남학생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허세 부린다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겠지만요. 혼자 웃다가 요즘 학생들은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해 봐요. 초등학생도, 중고등학생도, 젊은 청년도, 나이 든 중년들도 모두 스마트폰을 봅니다. 걸어가면서도 앉아서도 대화 소리 대신에 스마트폰을 보고 말소리가 없어요. 이렇게 가다간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줄이는 것보다 서서히 문제의식을 갖고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생각 없이, 비판 없이 좋아 보인다고 흡수하다가 보면 삽화에 나오는 학생처럼 웃긴 모양이 될지 모릅니다. 보이는 것에 너무 신경 쓰다 보면 말이죠.


책은 어렵습니다. 시대 상황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고, 일제 강점기라고 해도 경성을 중심으로 음악에 대한 것만 나오니까요. 또한 책이 박사 논문을 큰 틀로 했다고 하니 수치도 많이 나오죠. 자료도 다양하게 많이 나옵니다. 삽화에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소설이 예문으로 나오기도 하고, 기사도 나오고, 사진도 많이 나오고요. 음악회 횟수가 장소별로 정리된 표도 나옵니다. 식민지 경성의 이중성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공부하기에는 좋은 책입니다. 박사 논문을 쓰려면 이 정도의 자료조사와 글쓰기를 해야 하는구나 느끼면서 몇 번이나 책을 덮기도 했죠. 그럼에도 읽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배려한 듯 각장에 따른 속지의 색깔도 다르고, 다양한 자료들로 인해서 그 시대를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음악이랑 친해지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천천히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대를 건너게 해준 음악의 힘이랄까? 그 시대에도 유학을 하고 음악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우리 민족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깔끔한 요즘 노래보다는 지지직거리는 LP 판이 생각나는 것 보니 아주 잘못 읽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h*****o 2025.05.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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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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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접기/펴기음악적 경성  음악적 경성저자조윤영출판소명출판발매2025.04.30.오늘도 안녕하세요,네이버 블로거 '조용한 책 리뷰어''조책' 입니다 :)#책추천 #책읽기 #책스타그램 #책리뷰 #서평 #서평단 #도서서평 #독서노트 #독서일기 #독서 #서평 #서평단 #신간소개 #식민지경성 #경성음악 #이중도시경성 #음악적경성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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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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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경성

 
 
음악적 경성
저자
조윤영
출판
소명출판
발매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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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윤영은 예술과 도시, 식민지 역사와 대중문화를 교차하는 문화비평가이자 도시음향연구자로 일제강점기라는 무거운 시대를 '소리와 음악'이라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틀로 바라봄으로써, 기록되지 않은 감정과 감각의 역사를 복원해 내는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소개한다.

백의와 흑의처럼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다른 꿈을 꾸듯 이중 도시 음악적 경성의 모습

 






1930년대 경성(현재의 서울)을 중심으로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문화적, 정치적, 심리적 풍경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책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경성은 단순히 도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식민 지배와 근대화, 일본 제국주의의 전략과 조선 민중의 정서가 엇갈리는 공간이었다.



조윤영 작가는 경성에서 울렸던 음악—방송, 거리의 유성기, 유행가, 군가 등—을 추적하며 그 안에 스며든 권력과 감정의 흔적을 분석한다.



음악은 어떤 사람에게는 근대 문명의 상징이자 어떤 이에게는 저항 혹은 정체성 상실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듣는 감각, 그 시대의 자화상, 책은 단순히 “어떤 음악이 있었다"라는 기록을 넘어, 그 음악을 누가, 어떻게, 왜 들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 음악은 시대를 감각적으로 구성하는 일종의 언어였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흔히 ‘식민지 시대’ 하면 정치적 억압과 경제 수탈을 떠올리지만, 이 책은 그 속을 살아간 사람들의 ‘감정과 감각의 기록’을 음악으로 복원해낸다.

“식민지의 청취자들은 음악을 통해 근대를 동경했고, 동시에 식민 현실을 감췄다.”

또한 이 책은 ‘음악’을 감상이나 예술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 역사적 증언, 감정의 경로로 바라본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일상 속 소리에 더 민감해진듯하다.





요약

감정과 감각의 기록

음악이라는 언어

1930년, 경성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e****e 2025.05.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