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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개성있는 문체들이 너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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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후미오 라는 낯선 일본작가. 반신반의하면서 읽어보았는데 첨부터 그녀의 글을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이 플라나리야는 단편소설집으로 플라나리야는 첫번째 이야기 입니다. 너무 많은걸 알려주면 좀 재미없지만. ^^ 그녀의 개성있는 문체들이 속속들히 출현하며, 읽는 내내 이 작가, 여성의 마음을 사람의 심리를 너무 나도 잘 파악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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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후미오 라는 낯선 일본작가. 반신반의하면서 읽어보았는데 첨부터 그녀의 글을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이 플라나리야는 단편소설집으로 플라나리야는 첫번째 이야기 입니다. 너무 많은걸 알려주면 좀 재미없지만. ^^ 그녀의 개성있는 문체들이 속속들히 출현하며, 읽는 내내 이 작가, 여성의 마음을 사람의 심리를 너무 나도 잘 파악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요즘들어 일본소설의 흥미를 조금 잃어가는데 다시 불을 지펴준 고마운 소설입니다. 작가가 생소하다고 재미있을까? 고민하겠지만, 충분히 구입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랍니다. 정말정말 감칠맛 나는 그녀의 문학세계에 빠져보세요. 밑에 인상깊은 구절을 한번 꼭 읽어보세요. 조금이라도 그녀의 문체들을 느낄수 있으니 구입결정하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인상깊은구절]
p 132 나는 그렇게 충실하게 보냈다. 지금도 그 충실함이 잘못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디디고선, 그야말로 단단하게 믿어왔던 대지가 그렇게도 간단하게 무너져버릴 살얼음이었다는건 까맣게 몰랐었다. 그러나 얼음이 깨지면서 빠져든 물밑에서 이제 나는 꼼짝없이 얼어죽는구나 했더니, 뜻밖에도 거기에는 '남아도는 시간' 이라는 이름의 뜨뜻미지근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는 흥건히 누워서 지내는 일은 내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아늑했다. 더구나 나는, 그 밑바닥을 박차고 솟아오를 어떤 동기도, 어떤 목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8****4 2005.07.2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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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후미오라는 낯선 이름의 작가가 쓴 작품집.2016년에 새로 개정판이 나온 듯하지만, 양장본에 디자인은 이 판본이 더 나은듯하다.야마모토 후미오는 국내에서는 낯설지만,일본에서는 유명한 작가.그의 필체는 담담하면서도 신비롭고 강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준다.국내에도 몇편 더 소개되어 있는듯하니 찾아보시기를.번역을 맡은 양윤옥씨의 번역 또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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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후미오라는 낯선 이름의 작가가 쓴 작품집.

2016년에 새로 개정판이 나온 듯하지만,

양장본에 디자인은 이 판본이 더 나은듯하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유명한 작가.

그의 필체는 담담하면서도 신비롭고 강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준다.

국내에도 몇편 더 소개되어 있는듯하니 찾아보시기를.

번역을 맡은 양윤옥씨의 번역 또한 인상적이다.

m********n 2016.07.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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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감정 묘사가 탁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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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모험을 꿈꾸지만 실상은 안정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가는 음식점만 가고, 가는 술집만 간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 작품만 읽는 편이다. 하지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만큼 '나오키상 수상작'은 나에게 있어서 가는 음식점처럼 익숙하면서도 좋아하는 작가만큼 신뢰감을 준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플라나리아'작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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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모험을 꿈꾸지만 실상은 안정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가는 음식점만 가고, 가는 술집만 간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 작품만 읽는 편이다. 하지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만큼 '나오키상 수상작'은 나에게 있어서 가는 음식점처럼 익숙하면서도 좋아하는 작가만큼 신뢰감을 준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플라나리아'
작가에 대한 아무런 인지도 없는 상태에서 시놉시스도 전혀 보지 않게 선택했다. 단지 '나오키 수상작'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리고 다 읽게 된 지금,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낀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는 '플라나리아'는 '사랑 있는 내일', '네이키드Naked', '어딘가가 아닌 여기', '죄수의 딜레마'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도 전혀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각 다섯 편의 단편은 마치 한 편의 장편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르면서도 왠지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인물에 대한 감정 묘사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전혀 재미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을 주는 작가만의 독특한 상태 설정과 문체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한 편, 한 편 읽어나갈수록 작가에 대한 친밀감이 느껴졌다. 마치 그녀를 안다는 느낌... 이해하게 된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야마모토 후미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선정될 정도로 '플라나리아'는 정말 괜찮은 책이었고, 재밌는 책이었다.



e******i 2011.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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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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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ラナリア:: 山本 文緖명절을 앞두고 시댁과 갈등을 빚었다. 여력도 없고 의미도 없는 집안 행사를 외며느리인 내가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 더 이상 하지 않겠노라고 파업 선언을 하면서 부터였다. 댓가 없이 노동력 착취를 당한다는 것은 그렇다쳐도 손에 물 하나 안 묻히는 시숙의 오만불손한 태도, 그것이 장남이기 때문에 용인 된다고 여기는 시부모님의 태도, 그에 비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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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ラナリア:: 山本 文緖

명절을 앞두고 시댁과 갈등을 빚었다. 여력도 없고 의미도 없는 집안 행사를 외며느리인 내가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 더 이상 하지 않겠노라고 파업 선언을 하면서 부터였다. 댓가 없이 노동력 착취를 당한다는 것은 그렇다쳐도 손에 물 하나 안 묻히는 시숙의 오만불손한 태도, 그것이 장남이기 때문에 용인 된다고 여기는 시부모님의 태도, 그에 비해 내 의견은 사소한 것이라도 무시 되는 상황의 연속에 인내 할 힘이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제사 라는 제도에 익숙치 않은데다 일반적 가족 환경에서 자라지 못해 '무작정 순종하는' 가부장 제도를 회의하는 성격이 되다보니 늘 부조리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그 모든 '가족적인' 것들이 눈가리고 아웅의 가식으로만 느껴졌다. 그렇게 납득하지 못하는 것을 어거지로 하다가 차츰 마음이 병들어 갔고, 마침내 명절만 앞두면 우울증에 걸리는 '명절 증후군' 에 몇 차례 시달리고 나서야 자포자기 반, 반발심 반으로 저항의 표시를 하게 된 것이다.

일이 고된 것보다도, 억지로 강요 되는 제도보다도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나를 이해 하고 인정 해주지 않는다' 는 것이었다. 시름시름 앓으며 눈에 띄게 여위어 가는데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 행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들 눈에 제대로 보이는 것' 이라 강조 하는 시부모님의 고집에 서운함을 넘어 상처를 받았다. 내 자라 온 환경을 모르시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보듬기는 커녕 흠으로만 여기고 어떻게든 고쳐 놓으려는 태도에 있어선 분노마저 일었다. '네가 멀쩡하지 않아서' 라는 말에 절망하고 자책 했고, 울면서 따라가면서도 왜 나처럼 살아 온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 해주지 않는지, 왜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이해 해주지 않는지 가슴을 치며 괴로워 했다.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몸이 고된 것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다만 바라는 것은 낯설어 적응을 잘 못해도 그걸 있는 그대로 봐주고 서로에게 맞도록 협조하여 조금만 방법을 바꾸는 것 뿐이었다.

타협점을 좀처럼 못찾게 되자 대척점에 있는 시숙이 그리도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시숙은 그리 멀쩡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변변한 일 없이 장가도 못 가고 부모님에게 얹혀 사는 주제에 빚도 지고 있는데도 전혀 주눅 든 내색 없이 가족들에게 횡포를 일삼고 있었다. 그걸 자기 손가락이라고 애써 보듬고 탓하지 않는 시부모님이 왜 나에게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못하는지 원망심이 들어 더더욱 시숙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기는 해도 저 사람도 저 상태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 받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고. 속사정은 알 도리가 없으나 나름 노력 했는데도 실패 밖에 할 수 없어 결국 자포자기 상태가 되버렸고 자신이 뭘 잘못 했는지 찾지 못해 주변에 투정을 부리면서 뻗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이에 맞지 않게 일도 못하고 장가도 못갔다' 는 것은 마찬가지로 '일반적' 이길 바라는 내 잣대가 아닌가.

시부모님의 기준이 다소 편파적이기는 해도 다른 집의 '일반적' 며느리의 조건을 바라는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분들께 나의 '다름' 을 인정받고 싶다면 나도 시숙의 '다름' 을 흠잡지 말아야 했다. 상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 나도 상대에게 절대로 이해 받을 수 없다. 자신에게 있어 전혀 위회감이 느껴지지 않는 타인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누구나 하나쯤은 '일반적' 이지 않은 것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선택 해야 하는 것은 '단절' 인가? 아니면 무턱대고 적응하자는 '체념' 인가. 있는 그대로 인정 받고 싶고 이해 받고 싶어 멋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나' 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대척점에 있는 타인을 '일반적' 기준이라는 것으로 아전인수 하여 비난하고 이해 하려는 시도조차 안하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타협과 양보, 중용은 무엇으로부터 시작 되는 걸까. 타인의 '다름' 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부터가 아닐까?

힘든 병을 앓았거나, 이혼을 당했거나, 가세가 기울어 버거운 집안 일을 맡게 된 이 단편집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좌절한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 받길 바란다. 회복의 의지조차 잃어버릴 정도로 고통을 겪었는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이젠 좀 기운내야지?' 하면서 억지로 일어나기를 종용한다. 그런 상처를 겪었으니 괴로울만 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래도' 라고 말하면 어쩐지 자기 고통을 별 것 아닌 것처럼 폄하 하는 것 같아 겉치레의 동정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저쪽에선 정말 안됐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오히려 실망으로 받아 들이는 자기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뒤틀린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그 자기 비하를 이겨 보고자 더더욱 자기 멋대로인 모습으로 겉껍질을 두텁게 쌓게 된다. 비슷한 절망을 이겨내는 사람이 어디에는 있을진 몰라도 자기처럼 너무 버거워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은 없을까? 이렇게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게 그렇게도 잘못된 일일까?

어렸을 때 일반적인 가정에서 안자랐다고 무조건 가족적인 것을 꿈꾸는 건 아니다. 앞날에 대비 없이 산다고 꼭 불행 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남다른 일을 겪었다고 대단히 비극적인 것도 아니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견딜 수 없는 고통 이라는 것도 있다. 어떤 사람에겐 쉬운 일이 나에겐 어려워 하루 걸릴 일을 1년이 넘도록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한데 내가 잘하는 걸로 남에게 잣대를 들이대면서 남이 그의 주특기 잣대로 나를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여긴단 말인가? 아무도 절망만 하고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힘든 것을 그대로 끌어 안고 평생 자학하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두 하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닐까. 위로 하고 도와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시간을 주세요, 다그치지 마세요, 나름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 안되는지 아직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미래를 믿을 수 있겠죠, 변할 수 있겠죠,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실제로 이혼을 겪었던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는 다섯 개의 단편에서 나오는 제멋대로의 여성들의 자포자기적 심정을 보듬고 이해 해주면서도 '어리광만이 능사는 아니다' 고 부드럽게 충고 해준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내버려 달라' 고 말하면서도 사실 그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냐, 열심히 했다 생각하면서도 안된다고 절망한 것은 그만큼 댓가를 바랐던 것이 아니냐, 오히려 성공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며 늘 투덜댈 수 있는 안전한 약자로 남아 있고 싶은 것이 아니냐고. 스스로 모자란 것을 잘 알고 적어도 당장은 그 모자란 그대로를 인정 받고 싶다면 그걸 바라고 요구하는 만큼만이라도 비겁함을 버리고 용기를 내자. 타인에게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차라리 자신의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을 꺼내 그에게 맞춰보자. 그러면 작은 면적이라도 이해하고 양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그 자리에 편히 앉아 '나도 너와 같으니 이해 해달라' 고 제안하여 타협점을 도출해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YES마니아 : 로얄 q****e 2008.09.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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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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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전에 읽은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이 확실히 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었다. 나름, 야마모토 후미오 작가의 팬이라 왠만한 건 다 가지고 있어서 당연히 이 책도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서 무척 당황했다. 이상하다.. 혹시 누구한테 선물했나? 빌려줬나?? 책의 소재는 기억 안 나고, 내용도 기억 안 나고.. 일단은 읽고 싶다는 급한 마음에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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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전에 읽은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이 확실히 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었다. 나름, 야마모토 후미오 작가의 팬이라 왠만한 건 다 가지고 있어서 당연히 이 책도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서 무척 당황했다. 이상하다.. 혹시 누구한테 선물했나? 빌려줬나?? 책의 소재는 기억 안 나고, 내용도 기억 안 나고.. 일단은 읽고 싶다는 급한 마음에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렸다. 어쩌면 전에도 이렇게 읽었을지도..^;;ㅋ

이 작가의 <내 나이 서른하나>처럼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었다. <내 나이 서른하나>는 책속의 여주인공들이 서른한살의 나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이 책은 눈에 띄는 공통점이 없다. 적어도 지금 내가 읽은 이 순간에는 보이지가 않았다.

자신의 아팠던 과거로 순간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노악취미를 가진 '플라나리아'의 하루카와 '사랑 있는 내일'에서의 손금을 보는 민폐객 스미에, 서른여섯 무직 그리고 이혼녀인 '네이키드Naked'에서의 이즈미와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서 대학생 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토 씨,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고만 미토.. 그녀들의 이야기가 예전처럼 술술 읽히지가 않았다. 엄청 꼬들꼬들한 밥을 먹는 것처럼 문장을 한 줄 한 줄 씹어 삼키느라 생각보다 많이 천천히 읽혔다.

사람들이 다 나았다고 생각하는 유방암이 아직도 여전히 아픈 하루카에 대해, 정규직일은 싫지만 내킬 땐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하는 전직 노숙자인 스미에에 대해, 나름 다른 사람들에게서 알아주는 엘리트 여성이였다가 이혼과 동시에 백조 생활을 하게된 이즈미에 대해, 남편의 구조조정으로 파트타임 전선에 뛰어든 전직 전업주부 가토 씨와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은 그녀의 딸 히나에 대해, 그리고 사랑은 하지만 결혼은 모르겠는 애인이 있고 애인과 하지 않는 섹스를 직장 동료와 하는 하고 싶은 미토의 심리에 대해.. 나는 때로 공감했고, 때로 회의적이였다가, 때로 뜨끔했고, 때로 발끈 화가 나기도 했었으며, 때로 알 수 없음에 답답했다. 예전에 나는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도무지 기억이 나지가 않는다. 정말 나는 이 책을 읽기는 했는가~ 슬금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래서 리뷰를 꼭 써야 한다고 자책을 하기도 했다.

하루카가 유방암을 훌훌 털어 이겨낼 수 있기를, 스미에와 마지마 씨의 사이가 이전보다는 좋아지기를, 이즈미가 꼭 복수는 아니더라도 백조 생활에서 무사 탈출할 수 있기를, 세상의 모든 딸들이 당장은 친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친한 친구가 되어가기를.. 특히 가토 씨와 히나도 그리 될 수 있기를, 그리고 미토가 지구에 발을 붙여놓을 수 있기를.. 다 읽은 책을 덮으며 기도했다. ㅎ 어이없게도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얘기하면서 대체 누구에게 이렇게 기도를 하게 되는 건지.. 나도 나를 모르면서 무얼 그리 알겠다고 알고 싶다고 이렇게 책을 읽어대는 건지.. 스스로 황당하고 당황스러운데, 그러면서도 막상 내 방에 쌓여있는 책을 보면, 새로 나온 신간을 보면.. 빨리 읽고 싶어 살짝 흥분이 된다. 내 서재방의 가득가득 쌓여있는 책을 보면 내 빈 저금통장이 부끄럽지가 않다. ㅎㅎ 어쩌면 나는 책변태일지도..^;;;ㅋ 

 

YES마니아 : 로얄 j*******7 2016.02.28.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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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일탈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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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말을 한다. 훔친 사과가 맛있다느니, 놓친 버스가 더 아깝다느니. 진짜 그럴까? 에 나오는 주인공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직도 산다는 게 어떤 건 만만해 보여?’라고. 플라나리아처럼 유방이 잘라도 다시 생겼으면 좋겠지. 등 뒤의 살을 베어내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요지는 그건데 당신이 플라나리아로 태어났는데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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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말을 한다. 훔친 사과가 맛있다느니, 놓친 버스가 더 아깝다느니. 진짜 그럴까? <플라나리아>에 나오는 주인공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직도 산다는 게 어떤 건 만만해 보여?’라고. 플라나리아처럼 유방이 잘라도 다시 생겼으면 좋겠지. 등 뒤의 살을 베어내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요지는 그건데 당신이 플라나리아로 태어났는데 실험실에 잡혀가서 온갖 이상한 실험 대상이 된다면 플라나리아가 된 당신은 또 이런 생각을 할 거야. ‘플라나리아보다 더 단순하고 남의 눈에 더 안 띄고 더 편하고 그런 거 뭐 없나?’ 당신은 괜찮아. 그 가슴 드러내고 비키니 수영복 입고 수영장 갈 생각은 왜 못해? 남한테 유방암 환자라고 말은 하면서. 사실은 아니고 싶은데 돼서 속상한 거지. 안 겪어보면 모를 일들. 그래서 가끔은 ‘체험 수기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이런 책 보면 짜증이 확 밀려오잖아. 그런데 말이야. 다른 사람들도 다 거기서 거기라고. 비키니 못 입는 사람들 많고, 일 안하고 사는 사람도 많고 자기 단점이 장점인 냥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아. 단지 그런 얘기는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당신 얘기는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야. 보통이 아니면 안 되는 세상이라서 말이지. 자장면도 보통이 있고 곱빼기가 있고 보통도 남기는 사람도 있는데.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작가는 마지막에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플라나리아>에서도 그 뒤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는지, <사랑 있는 내일>에서 주인공들이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네이키드 Naked>에서 주인공이 일자리를 찾았는지 그 남자와 다시 만나는지,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서 마이 페이스로 어떻게 딸과 아들,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어떻게 했는지, <죄수의 딜레마>에서 그 뒤 다시 만난 건지, 결혼만 안하고 만 건지 모두 알 수 없게 만들어 놨다. 왜냐하면 인생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고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 또한 작가가 마침표를 찍어주지 않는 한 계속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공식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살건 그건 개인의 문제다. 그것이 사회의 문제가 되지 않는 한.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버거워 한다. 그것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일탈을 죄악처럼 여기게 교육시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의 의무를 비롯한 의무와 책임이라는 것을 지고 살고 있고 남에게도 똑같은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심 한번쯤 이런 삶을 꿈꾸지만 선뜻 할 수 없기에 손가락질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은 이들만의 삶을 산다. 그러니 보통이 좋은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만끽하기를. 어차피 이들도 선택에 의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니까. 일탈과 일상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방황하고 있다. 한번쯤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에 매달려 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똑같은 일만을 하다가 모든 둥근 것만 보면 조이고 싶어 하는 채플린처럼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동일하게 살기를 요구하고 있다. 아니면 낙오자, 사회부적응자 등의 이름으로 그들을 분류해 내서 가지치기 하듯 잘라낸다. 작가의 삶이 이 단편들 속에 점점히 박혀 있는 것을 느낀다. 작가의 체험이지 싶은 내용들로 전 단편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지치기 당할 만 하다 싶다. 럭비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지 못하듯 우리네 삶이 어떻게 될지는 죽을때까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죄수처럼 인생 가지고 남과 함께 저울질 하지 말고 그냥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사는 게 뭐 별거냐고. 플라나리아처럼 살고 싶으면 살면 되는 것을...

[인상깊은구절]
57p "깨끗한 시냇물 속 돌 같은 데 붙어 살아요. 그다지 귀여운 편이 아니니까 주목받을 필요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도 살아갈 수 있어요. 게다가 잘라도 재생이 가능하다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잖아요? 섹스 같은 거 하지 않아도 그냥 가만 놔두면 자라서 두 마리로 나워진다는 것도 심플하고요." 86p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디찬 길바닥에 혼곤히 붉은 빛으로 떠 있는 선술집의 종이등이 편의점보다 훨씬 따뜻하게 보였던 것이다. 거기에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간들과 말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그냥 함께 묻혀 술을 마셨다. 그게 내가 이상으로 삼은 가게였다. 149p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남아도는 시간'' 이라는 게 어떤 상태이며 어떤 느낌이 드는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따분함과는 조금 다르다. ...... 의미있는 것과 의미없는 것. 참으로 오랫동안 내게는 그 두 종류의 시간박에는 없었다. 그것 이외의 시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279p 헤어질 만한 이유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그때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까어서 걸어가기도,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가기도 화가 나는 상황에 처한 것만 같았다.
d*****g 2006.04.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