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간고사가 다가오기 얼마 전, 공부하려고 중도 열람실에서 책을 폈다가, 맘이 너무 싱숭생숭하여 덮어버리고 사물함에 교과서를 쳐박은 후, 자료열람실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제일 만만한 게 일본 소설류- 왠지 모르겠다.ㅋ 암튼 일본 소설이 있는 곳에서 두리번거리다, 어쩌다가 수필이 있는 곳까지 갔다.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 자그마한 하드커버에, 편지 봉투같은 디자인.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집어 들었다. 수필은 잘 읽지도 않는데.(..) ( 글쎄, 수필이라곤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밖에 안떠오르는 나로써는, 어떤 책일지 짐작하기도 힘들었음에도, 그냥 집어든거지.ㅋ ) 궁금했다. 일본 사람이 쓴 수필이라니_ 중도 구석탱이에 앉아서 천천히 읽기 시작했는데, 허허, 이 사람 글 한 번 맛깔나게 잘 적는다. (게다가 번역이 참 잘 된 걸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는 곧 중간고사 기간이라 잠시 버림받았다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틈틈이 읽혀지기 시작했다. '시오노 나나미', 어디선가 본 듯한 이름. 저자 소개에서 이 사람은 여느 대학을 학사로 졸업하여, 무턱대고 이탈리아에 가서 공부한 사람이라했다. 거기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그냥 공부했단다. (궁금하다, 돈은 어디서 났을까?ㅋ) 그러니까, 그게 1930년대이다. 난 당연히 남자일꺼라 생각했다. 그 시절에 여자가 홀홀단신으로 먼 이탈리아까지 가서 사는 건, 일본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책을 읽는 와중에 필자가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기모노를 입었다'라고 적은 걸 보고 의아해했다. 여자만 입는 거 아닌가-┎; 아뿔사,하고 다시 저자약력을 봤더니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란다. 요것도 많이 들어봤는데? 생각해보니 집에 있는 놈이다 -_ -; (집엔 책이 아주 많은데 정작 나는 집에 있는 책은 반의 반의 반도 못읽었다.ㅎ) 그 유명하다는(유명한 줄은 알았지만 저자는 몰랐던) '로마인 이야기'를 조금 읽었다는 동생한테 혹시 '시오노 나나미'란 그 작가가 여자냐고 물어봤다. '어, 그 책 맨앞에 할머니 사진 나와있던데?' 이런-┎ 이 때까지 작가가 남자일꺼라 생각하고 감정이입했던 나는 무어란 말인가_ㆀ 그러고 보니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글쎄, 화자와 성이 같아지고 보니 더욱 흥미롭기도 했고. 신기하게도, ㅡ 여느 '여행기'류의 책은 다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ㅡ 이 책은 가보지도 못한 이탈리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마치 내가 거기서 자유롭게 몇 년 쯤 산 듯한 기분. 그저 '환상'이 아니라 '실상'인 듯, 조그마한 동양인 여자가 느끼는 이탈리아의 실상. 그건 실상이지만 환상만큼이나 멋져보였다. 1권을 열심히 다 읽고, 2권을 빌렸다. 조금 읽다보니 느낌이 약간 다르다 싶었다. 이상하게도, 딴 사람이 쓴 듯한 느낌. 역시나_ 역자가 달랐다 -┎ 번역의 힘이 이토록 크단 걸 심각하게 느끼게 된 계기였다..; 뭔가 맛깔스런 문투가 완전히 배제된 기분, 참 안타까웠다. 글쎄, 내가 일본어를 아주 잘 해서 원서를 그대로 읽었을 때의 느낌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또 다른 독자들은 2권의 분위기가 더 맘에 들진 모르겠지만, 번역 하나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진다니.. 번역은 제 2의 창작임을 뼈저리게 느끼다 -┎ 결국, 2권은 제 때에 다 못 읽고 연장하는 시점까지 놓쳐버려서, 연체료 100원을 내면서 반납해버렸다. 다시 빌릴까 생각도 했으나 실행에 안옮긴 걸 보면 별로 안땡겼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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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에리 젠의 유언장만이 유독 특이한 건 아니다. 재산의 무의미한 분산을 방지하기 위해 남은 한쪽이 재혼하지 않는 한 사용권만을 누릴수 있게 한 유언장은 셀 수 없이 많다. - 총독 라니에리 젠의 유언장
1권은 이탈리아에서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기에 쉼없이 재밌다재밌다 하면서 페이지를 넘길수 있었다. 2권에서도 그런 전개를 기대했으나 일상 생활에서는 쓰고자 하는 소재가 그다지 없었는지 베네치아와 투르크 제국등의 역사적인 인물,사건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1권에 비해 읽는 속도도 더뎠고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가 아닌 정보를 토대로 이해를 바라는 역사적인 에세이가 되어버려서 두,세번 읽은 부분이 허다했다.
그렇기는 해도 아내란 무서운 존재요. 영웅을 순식간에 별 볼일 없는 남자로 만들어버리니. - 오디세우스의 한눈 팔기
말미에 보니 79년~81년 사이에 잡지에 기고한 컬럼을 책으로 엮었다고 소개되어있는데 2권에서는 그녀의 문체가 여실없이 드러나는게 주특기인 역사 이야기가 주로 나와서인듯 싶다. 1권에서 내가 느꼇던 솔직한 필력은 다분히 주관적인 신변잡기적 주제여서 격앙된 감정이 그대로 노출이 된게 느껴졌다면 2권에서는 수많은 사료에서 뽑아낸 정보를 토대로 시오노 나나미라는 필터를 거쳐서 전해진다는 느낌이다.
대사 모로시니는 한 꾸러미의 카베라 불리는 씨앗을 가지고 본국에 돌아왔다. 이 매력적인 투르크 음료는 조금씩 베네치아 상류사회에 확산되어갔다. - 대사와 커피
신사상이 베네치아에 어느 정도 침투했는지 감시하는 스파이도 있었다. 타락한 풍속에 정통한 카사노바는 특기르 살려 그 방면의 정보를 수집했다. - 스파이 카사노바
다재다능한 천재란 작가에게 난감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레오나르도처럼 자연과학 분야에 재능이 뛰어난 경우는 작가들을 절망감에 빠뜨린다. - 레오나르도 내 사랑
2권이 읽기 힘들었다고 해서 그 재미가 떨어지는것은 전혀 아니다. 책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단편적인 역사적인 사건들과 인물들이 등장해줘서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베네치아의 수로에 넘길서리는 곤돌라들의 색이 온갖 장식물로 번쩍이던 모양새에서 검은색으로 바뀌게 된 이유라던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트의 흉상이 20대 중반의 것만 남은 이유라던지 카사노바의 스파이 활동 경력이나 투르크 제국의 하렘 시스템, 노예에서 재상으로,노예에서 여왕으로 즉위한 여인 수녀원에서 하렘으로 팔려나가 술탄의 어머니가 되어서 임종 직전에 이교도인 크리스찬의 예배를 받을수 있었던 프랑스 여인 세계 최초의 문고본을 만들어낸 베네치아의 출판인 등등 시오노 나나미씨 정도의 왕성한 호기심과 고문서 해독력이 있었기에 이렇게 문자화된것이 아닌가 싶다.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이 안토니오에게 던진 분노를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양자로 상징되는 두 개 공동체의 대립으로 그리고 있다. - 샤일록의 친구들
그녀의 글에서는 현재의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베네치아에 이르는 그 땅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사랑하는 인간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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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작가가 관련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 수집을 하고 여행을 하고 했나 보다. 그래서 그 경험등을 모아뒀다가 그걸 바탕으로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썼나보다. 뭐 특별히 재미가 없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살로메의 유모 이야기, 세도시 이야기 전 3권을 모두 빌려와서 차례로 읽었었는데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1과는 좀 다르게 2에는 앞서 읽은 책들의 내용들이 일부일부 쓰여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읽은지 얼마 안되는 나에게는 이 책이 뭐지 하면서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도 내용이나 조사들은 작가 나름대로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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