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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사회가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 사회에서 제것을 챙기기도 어렵고 자기의 위치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사회의 자원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 증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박탈감을 느낀다. 앞선 세대는 이미 가질 것 가지고 챙길 것 챙겼거든. 그렇다고 자기 몫 챙겨달라고, 콩도 나눠먹자고 목소리 높이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못한다. 이른바 스스로 '쩌리'라고 단정하고 찌그러들고 대세에 순응한다. 청년의 보수화는 그렇게 진행된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사회는 동력을 잃는다. 『청년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은 '임꺽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백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백수를 잉여가 아닌 자유로운 인간으로 상정한다. 그들이 그래서 주체적으로 비전을 탐구하고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건넨다. 임꺽정 무리들의 거침 없이 내지르는 행보를 통해서다. 고미숙이 건네는 임꺽정과 그의 친구들은 그야말로 놀 줄 아는 청년백수들이다. 물론 그 시대와 지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나, 임꺽정의 시대가 신분과 계급에 얽매였음을 감안하면 지금도 얽매게 하는 요인이 다를 뿐 갑갑한 현실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은 다르지 않다(고 보자). 그리하여, 먹고사니즘에 지배당하지 말 것. 지금은 유동하는 시대다. 점차 늘고 있는 인간 수명을 감안하면 우리는 하나의 직업에만 종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평생 직장은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일 뿐, 이모작 삼모작 등 인생의 다작은 불가피하다. 백수는 그런 것에 미리 대비할 수도 있고, 사람의 본성에 더욱 충실한 상태다. 특히 정규직에 목을 매단 상황은 세상이 쳐놓은 정규직 논리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논리나 삶의 주체성이 아닌 다른 기득권이 쳐놓은 그물에 스스로 달려드는 셈이다. 거미의 망으로 향하는 날파리의 비행이다. 많은 이들이 정규직이 되지 못하면 낙오될 것 같은 공포 속에 산다. 그것은 '노예의 도덕'이다. 무서워서 뭔가를 원하거나 하려고 한다. 두려움을 통해서만 자기 인생을 끌고 간다. 이것이 정규직 논리다. 하긴 그것이 직업뿐이겠는가. 결혼도 이 논리에 편입된다. 정규직이 아니면 결혼도 못할 판이라고 부르짖는다. 결혼 전 따지는 조건은 사랑이 아닌 정규직 여부다. 시절인연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을 인연으로 맺고자 발버둥 친다. 임꺽정 무리는 그냥 꽂히면 살자고 했고, 합궁했다. 시절인연에 따랐을 뿐이었다. 결국 지금의 청년백수는 많은 경우가 삶의 자율성이 없는 상태로 학원에 매달리고 자기소개서에 삶을 구겨넣는다. 자발적으로 공부해서 지성을 누리고 결과로 어떤 직업을 갖고, 누군가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코스가 아니라 성공해서 누릴 수 있는 쾌락으로 화폐에 끼워 맞춰진 삶을 산다. 백수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는지 그것부터 고민해야 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그것이 때로는 하고 싶으 일을 하는 자유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왜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까. 임꺽정 무리라고 그것을 부러 고민하진 않았겠지만 그들은 천성적으로 노는 인간들이기도 했을 것이다. 고미숙은 자유롭게 살다가 돈이 필요할 때 접속하는 것이 직업이면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직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소유하려고 스스로를 노예로 몰아넣지 말고, 돈에 대해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경제 주인도 되고, 목적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하긴 대부분 배움의 끝에는 늘 돈이 있는데, 목적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은 어떤가. 그게 뭐야, 공부가 목적이 있어야지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앎에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요, 앎은 그 자체로 희열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길을 나서는 것은 중요하다. 방안에 독서실에 쳐박혀서 시험 문제만 풀 것이 아니라 유람을 해야 한다. 순례를 해야 한다. 본디 인간은 먹고사는 것과 상관없는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우주로 우주선을 보내고, 지구 밑을 판다. 끝없이 알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다가 이런 말을 던진다. 사표 던지고 여행 가고 싶다. 왜 하나 같이 이런 말을 할까. 말인즉슨, 죽을 때까지 뭔가를 탐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먼저 인간에게 각인됐다. 먹고사는 것은 다음이었다. 백수를 잉여로, 쩌리로 만드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느냐고. 국가의 부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백수로 규정함으로써 좀 더 나중에 부려 먹기 좋은 임노동자로 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고, 그 세력이 정치적으로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백수가 국가의 부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에 좌절할 필요는 없겠다.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국가경제니 국익이니 하는 대부분의 말, 허풍이다. 백수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무런 경제 대가가 없어도 존재가 충만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유람하도록 놔두는 것. 자신에게 충만한 일을 하는 것. 고미숙은 그러기 위해 몸을 많이 움직이라고 권한다. 빙고. 돈을 위해 활동을 잠식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행하고 책을 보는 자유. 그것은 정규직이 늘 궁극적으로 바라는 미래를 선점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직장 그만두고 뭐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렇게 말들 하잖나. 물론 지금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백수가 자긍심을 가지기는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고미숙은 직업과 내가 맺는 관계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것을 위한 핵심은 화폐를 조절하는 능력을 터득해야 하는 것.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의 주인이 되는 것. 그는 직업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삶을 조율할 수 있는 기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업이나 화폐 따위로 자신을 내세우는 인생은 위태롭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백수일 때라는 것. 그러니 임꺽정에서 배우는 것도 괜찮겠다. 길 위로 나서서 자기만의 스텝과 코스로 발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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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고미숙 선생님의 글을 즐겨읽고 있습니다...
달인시리즈 1,2,3권 / 호모큐라스 / 그리고 이번에 청년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 까지...
역시나 고미숙 선생님의 통찰력은 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글을 읽고 고미숙 선생님께서 서두에 쓰신 글 처럼 발전하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석골 칠두령의 배짱과 의기를 터득하고, 갖바치의 눈부신 비전과 지성에 접속하고, 무엇보다 밥과 우정과 유머로 이어지는 '달인들의 향연'을 만낄하라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내내 임꺽정에 관한 소설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꺽정에 관한 소설과 번갈아 읽으면 그 효과가 배가 될거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