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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이 책의 내용이 정말 가슴 가득이 밀려 올 거에요.
저는 줄거리를 이해 못하는 게 아니라, 가슴 미어지는 사랑을 아직 못해 본 관계로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가슴으로 느낄 수가 없어요.
물론 책의 중간 중간에 사랑을 정의하는 작가의 멋진 표현도 나온답니다. 저도 가끔 가끔은 인용하기도 하는 멋진 구절이지만.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마지막 장을 덮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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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있다. 그 안에 변하지 않는 관계의 구도가 있다. 서로에게 보내는 사랑의 크기가 똑같지 않을 경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또한 사랑은 사람을,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한적한 시골마을, 방적공장이 하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방적공장에서 일을 하는 환경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출퇴근을 하고, 하루하루의 일상이 그대로인 곳이다. 그 마을에서 6척 장신의 사팔뜨기 여자 아밀리아는 사료가게를 운영한다. 함께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밀리아는 더욱 억척스러운 여자가 된다. 그런 아밀리아에게는 열흘 동안의 결혼생활이 있었다. 원래 포악한 성격의 난잡한 생활을 하던 마빈 메이시는 아밀리아에게 사랑을 느낀다. 마빈 메이시는 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평범하고 선량한 소시민이 되어 아밀리아와 결혼한다. 하지만 마빈 메이시의 사랑은 열흘 동안의 결혼생활로 끝난다. 그리고 마빈 메이시는 다시 원래의 폭력적이고 난잡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악행을 일삼는다는 소문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시간이 흘러 아밀리아의 가게에 꼽추 멀리 라이먼이 등장한다. 금방 쫓겨날 것 같았던 멀리 라이먼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밀리아의 사랑을 받는 남자가 된다. 6척 장신의 여자와 140cm정도 되는 남자가 함께 할 수도 있다는 것.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듯 그녀의 가게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쉬어가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카페로 변한다. 그녀만이 제조할 수 있는 술과 안주를 만들고, 카페는 점점 밝은 분위기로 변한다. 사람들은 더 많이 자주 찾아오고, 그 공간 안에서 행복과 위로, 치유를 받고 간다. 그녀의 카페는 그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아밀리아의 카페의 변화는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가 받은 사랑이 아니라, 그녀가 ‘주는(하는)’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는 꼽추를 사랑했다. 모든 것을 내주었다. 심지어 아무에게도 하지 않던 아버지 얘기도 했다. 누구라도 그녀의 얼굴과 온 몸에 사랑이 깃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건 그녀의 카페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사랑은 그녀의 전남편 마빈이 다시 등장하면서 부서진다. 끝나버렸다. 동시에 카페도 끝나버렸다.
이 책의 사랑론에 따르자면, 사랑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사랑의 씨앗을 깨운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독하고 억척스러운 여자 아밀리아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밀리아의 안에 늘 있어왔던 사랑이 꼽추의 등장으로 깬 것이다. 꼽추 역시 마빈의 등장으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사랑이 깬 것이겠지. 사랑이 공동경험이라고 하지만 사랑을 주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은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고 했다. 비록 일방적으로 향하는 마음이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하는 쪽을 더 원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는 것은 불편한 마음이 더 크며, 사랑을 하는 마음이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선택한다는 것이다. 아밀리아를 향한 마빈의 모습이 그러했고, 꼽추를 사랑한 아밀리아의 모습이 그러했다. 꼽추를 사랑해서 모든 것을 내주었고 모든 것이 끝났어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끝났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을 꽁꽁 닫았다.
다른 사람과 한 번이라도 같이 살아 보고 난 후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지독한 고문이다. 난롯불만 타고 있는 방에서 갑자기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멈출 때 느껴지는 정적과 텅 빈 집 안에 너울거리는 그림자-이런 혼자라는 공포와 마주하기보단 차라리 철천지 원수를 들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112페이지) 마빈을 받아들이고 이상한 삼각구도를 묵묵히 끌어안았던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이다. 혼자였을 때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그녀는 꼽추와 함께 한 시간들로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사랑을 함으로써 알게 된 하나의 체험이었다. 그게 혼자만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조금 기이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게 이들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다. 다시 찾아올 외로움이 싫었기에 이런 선택도 가능했던 것이다. 철저하게 그녀만의 생각, 사랑, 선택이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50페이지)’는 표현이 아주 잘 드러나 있는 글이다. 보통 생각하는 사랑, 우리가 평범하다 부르는 외모와 성정을 가진 주인공들이 아니었다. 거구의 사팔뜨기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난잡하고 폭력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키가 140cm정도 되는 꼽추를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는 것을, 꼽추가 난폭한 남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그게 상호간의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경우 철저하게 혼자만의 감정으로 진행되는 것은 당연하다. 꼽추를 향한 아밀리아의 감정은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오직 그녀만의 사랑이었다. 마빈을 향한 꼽추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은 동성, 이성, 아이, 어른 할 것 없는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상하고 기이한 사랑의 영향은 아밀리아의 카페에서도 볼 수 있다. 칙칙한 사료가게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저절로 찾아드는 카페로 변한 것은 그녀의 사랑이 만들어낸 또 다른 사랑이었다. 저절로 주어진 인생이라 여기면서 자신의 값어치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만들어주었다. 넉넉하지 못한 삶에서 하루하루가 견디듯 살아지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녀의 카페로의 방문은 삶의 또 다른 의미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사람 모두에게 그런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카페의 변화는 그녀의 사랑으로 이루어낸 것이고, 그로인해 사람들의 변화도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비록, 잠시 후에 다시 넉넉하지 못한 비루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라도 그녀의 카페 안에서는 그런 생각들을 잊었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이 끝났을 때, 카페 문을 닫았을 때, 마을도, 마을 사람들도 같이 닫힌 것이다. 사랑도 자신의 존재감도... ‘마을은 황량하기 짝이 없다.’로 시작했던 이 책의 첫 문장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사랑에 대한 이 슬프고도 외로운 멜로디가 그대로 담긴 책이다. 사랑을 했던 이들이, 사랑이 끝난 후에 부르는 노래. 사랑과는 상관없었던 이들 역시, 자신의 존재감을 느꼈던 순간이 끝난 후에 부르는 노래. 그래서 더욱 슬프게 들리는 노래다. 뜬금없이 덧붙여진 것 같았던 에필로그 ‘언젠가는 죽을 열두 명의 인간’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요약본 같았다. 사랑을 하면서 불렀던 기쁨이 담긴 목소리와, 사랑이 끝나고 모든 것이 떠나버린 후에 남은 고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언젠가 죽을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이란 것은 하나의 지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사랑이 고통과 아픔을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기쁨과 환희로 세상을 버티게 해주는 힘으로 작용한 순간들도 공존한다는 것을 들려주고 있다. 매순간 다를지라도, 그 순간의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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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책 읽기 차원에서 되도록 얇은 책을 골랐다. 한 권을 지루하게 며칠 씩 들고 있기 싫을 때가 있다. 읽을 책들을 거실에 나란히 세워둔 것에서 골랐다. 표지도, 제목도 스산하지만 번역가가 장영희 교수님이라 대단히 기대가 된다. 작가 카슨 매컬러스(Carson Smith McCullers, 1917~1967) 는 미국 남부의 여류작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고 한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사진은 없고 수식어가 정말 그렇다는 것만 확인했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데 이 책은 굉장히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었다. 무슨 이런 사랑이 다 있을까? 무슨 이런 이야기가 다 있을까? 읽으며 계속 들던 생각이다.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본질보다 현실에 비추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없는 일인가 하는 사실여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습관은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이다. 외국 문학인데다 대부분의 장치가 작가의 의도가 짙게 배여 있어 낯설고 어색했다. 거기에 화자의 문체까지, 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문체도 익숙지는 않다. 객관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 듯하나 서술어에서 단정적인 맺음을 항상 하는데다 화자의 추측까지 들어간 문장이 많아 어떻게 보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모두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다. “마을은 황량하기 짝이 없다.”(9p)로 시작해서 인기척이라곤 없을 것 같은 마을을 묘사하다가 “이 마을에도 한때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11p) 분위기 전환을 하더니 시제를 과거로 돌린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주려나보다, 하는 기대와 설렘을 가져다주는 터닝 포인트 지점이 되었다. 세 사람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삼각형의 꼭지점에 서있지만 각자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마주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3. 그러나 이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관계가 아니다. 마치 열(列)로 서서 ‘앞으로나란히’ 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인데(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다른 이의 뒤통수만 바라본다. 짝사랑이다. 그래도 사랑이라고, 사랑하는 이를 향해 헌신을 다한다. 사랑을 하는 쪽과 받는 쪽, 누가 더 힘들까. 아니 힘듦의 강도로 이야기 하진 말자. 사랑의 관계에 있어 더 사랑하는 쪽이 덜 사랑하는 쪽에게 늘 헌신한다. 덜 사랑하는 쪽은 더 사랑하는 쪽에게 필요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태도를 취한다. 가슴을 그토록 할퀴어도 당장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미련을 보이는 곳은 더 사랑하는 쪽이다. 이 세 사람의 사랑의 부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그저 원처럼 빙빙 돌며 끝점과 시작점을 끝내 찾지 못한다. 희한한 건 이 세 사람은 하등 별 볼일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팔뜨기 6척 장신의 여장사인 아밀리아, 포악한 성격과 비윤리적 생활로 마을의 악의 상징이었던 마빈 메이시, 나이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한 외모를 가진 곱사등이 라이먼 윌리스. 사랑이 인생의 고독한 심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 사람이다. 악행만 일삼았던 마빈 메이시가 스스로 천사로 변신할 정도로 아밀리아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밀리아는 그와 결혼했음에도 남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자 자존심의 나락에 끝이 있다면 거기에 닿고도 남았을만큼 상처를 입었다. 다시 예전의 마빈으로 돌아간다. 온갖 악행을 휘두른다는 소문만 남긴 채 사라진 마빈. 그런 아밀리아 앞에 나타난 꼽추 라이먼이 왜 아밀리아가 그에게 사랑의 화살이 꽂히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도 의아한 일일 정도니까. 꼽추를 사랑하게 된 아밀리아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라이먼의 품에 안겨주기 시작한다. 아밀리아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황량하기 그지없던 마을 전체에 희한한 활력과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 구심 장소가 아밀리아의 카페다. 카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은 이야기가 있고 활력이 솟으며 여유와 정(情)이 오가는 소통의 장이 된다. 아밀리아의 사랑이 커져갈수록 라이먼의 의기양양함도 높아져 간다. 과거의 비굴했던 시간들은 아밀리아의 촉촉한 사랑과 보살핌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났다. 바로 마빈 메이시. 라이먼은 첫 눈에 마빈에게 반해버린다. 복수의 칼을 갈아온 마빈은 아밀리아에게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 그러나 아밀리아의 사랑의 표지판이었던 라이먼이 마빈에게 가버렸다. 사랑이 이렇게도 고통일수 있을까. 사랑이 이런 진창 속에 있는 것이라면 발도 들여놓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 조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키key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기에. 가장 붉은 곳에 숨어서 순식간에 쏟아 내버리기에. 그것이 고통을 가져다주든 감미로움을 선사하든, 이미 내 손을 떠난 결과만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랑은 누구에게나 온다는 것이다. 등이 굽어도, 눈동자가 바르지 못해도, 쓸모없을 만큼 못된 사람에게도 사랑의 자격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확실한 것 하나 더 보탠다면 사랑도 일방통행 할 수 있다. 사랑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헌신의 화살도 함께 나아간다. 무모함과 외로움이 빗발쳐도, 사랑은 일방통행 한다. 모든 사랑이 반드시 상호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방통행식 사랑의 끝은 처참하다. 모든 것을 걸고 맹목적으로 한 사랑일수록 그 끝은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파괴적이다. 아밀리아는 카페를 닫는다. 창문도 닫고 출입도 닫는다. 그녀의 마음도 닫힌다. 그리고, 빗장을 건다. 남들 눈엔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불과했던 꼽추 라이먼의 배신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리고 카페가 없는 마을도 순식간에 원래의 황량한 마을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 사람들의 웃음과 수다가 사라지고 흙먼지만 날리는 심심한 마을에 불과한 싱거운 바람만 분다. 사랑은 찰나였을지 모르나 순간의 기쁨과 행복과 열정은 영원한 상처로 깊이 패이게 한다. 장영희 교수는 이 난해한 작품을 이렇게 해석했다. “[슬픈 카페의 노래]는 사랑과 고독의 내적 드라마요, 제목 그대로 외로운 사람들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이다. 그것은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힘, 기적 같은 사랑의 힘에 부치는 찬송이요, 허무하게 가버린 사랑에 대한 비가(悲歌)이다. 기괴하고 이상한 인물들이 부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가는 모든 군더더기를 벗어 버리고 발가벗은 상태로서의 사랑과 맞닥뜨리고자 하는 시도이다.”(140p) 이 설명을 보는 순간, 다른 말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딱 이렇다. 읽는 내내 소화가 안되어 불편했던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남들이 극찬해서 나도 극찬해야할 것 같은데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기분이랄까, 어떤 식으로 동조를 해야 할 지 막막했다. 그런데 장영희 교수의 명쾌한 해석에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가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된다. 아밀리아의 카페 노래는 눅눅하고 어둑한 울음 같았다. 잠시나마 밝은 등을 걸었던 그녀의 카페는 다시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눈은 더욱 가운데로 몰리고, 창문의 빗장을 걸어버린다. 카페의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
|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한다. 그 한 남자는 또 그 한 여자를 사랑한다. 세사람의 등에는 부등호가 떠다닌다. 만약, 그들 중 한 사람이 뒤를 돌아서기만 해도 부등호는 날아가고 등호가 된다. 그것이 사랑이든 아니든, 단 한 사람만 돌아서면 지금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한 사람의 얼굴과 눈빛을 볼 수 있다. 누가 돌아설 것인가. 하루에 지친 몸을 끌고 와 쉬었다 가는 아밀리아의 카페는 마을의 자부심이다. 그들은 미스 아밀리아의 카페에 오기 전에 세수를 했고 카페에 들어올 때는 정중하게 문지방에 신발을 문질러 흙을 털었다.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만은 단 몇 시간 동안이라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세상에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쓰라린 생각을 조금은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순간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카페에 가기 위해 하루를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어딘가에 아직도 숨어 있을 것만 같은 아밀리아의 카페는 부등호 사랑이 싹트면서 운명의 순간을 맞이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카페는 영원할 것인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정녕 있는가. 낮은 목소리로 묻고 있는 음성은 이미 촉촉하게 가슴을 적신다. 가끔은 그런 사랑이 편하다. 등만 보고도 좋아 죽을 것 같은 설렘. 6척 장신의 아밀리아는 어느날 먼 친척이라며 찾아온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라이먼이 공감을 얻을 만큼 매력적인 남자는 아니다. 그런데 아밀리아는 그를 열렬히 사랑하여 자신의 재산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라이먼에게, 라이먼을 위해 바친다. 라이먼이 아밀리아의 집에 머물게 된 후로 카페는 활기가 넘친다. 사랑에 빠진 아밀리아, 아름답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 라고. 어리석은 자, 타인. 카슨 매컬러스가 설정한 인물들은 기기묘묘하다. 남자보다 더 큰 체구를 가진 아밀리아를 사랑하는 잘생긴 마빈 메이시, 그는 대신 파렴치하고 악랄한 성품의 소유자다. 그는 아밀리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온순한 양이 되버린다. 결국 아밀리아에게 쫓겨나지만 라이먼의 열렬한 사랑 덕분에 아밀리아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사랑의 참모습, 진실을 설정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뿐이다. 그들의 특권이다. 하나라도 주지 못해 안절부절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한번 물어보기를. 사랑에 빠지셨나요? 우리는 우리들의 친구가 자신의 연인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연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리석은 말을 내뱉는다. 니가 더 아까워. 쟤, 어딜 보고 맘에 든거니? 소문은 금세 퍼진다. 친구의 사랑이 더 짙어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보일 때 그 사람의 존재 이유까지 의심한다. 사랑에 빠진 적 없는 자들의 어리석은 소행이다. 사랑 앞에 내세울 것이 있던가. 지위, 명예, 돈... 그런게 소용있던가. 그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뒤돌아 나와 함께 고귀한 사랑을 나누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정말 있는가? 사랑은 사랑에 빠진 자만 알 수 있는 독선과 독단의 별이다. 그래도, 하루라도 그 별에서 살 수 있다면 축복이다.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주체, 인간과 인간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고 있는 것 또한 이 소설의 묘미다. 인간의 삶에는 아무런 값도 매겨져 있지 않다. 삶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졌고, 값을 치르지 않고 얻어진 것이다. 그러면 삶의 가격은 얼마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때때로 삶이란 전혀 가치 없거나 만약 있다고 해도 아주 미미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내가 처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 자신이 결국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이 밀려오지 않는가. 어딘가에 명소로 존재하고 있다면 꼭 한 번은 가고 싶어지는 아밀리아의 카페 묘사는 어떤 착한이가 한 점 한 점 수놓는 것처럼 아름답다.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겨울밤에도 카페는 따뜻하고 아늑해서 이 마을의 중심이 되었다. 불빛은 어찌나 환하게 비치던지 5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카페 뒤편에 있는 커다란 무쇠 난로는 타타닥 소리를 내면서 타올라 곧 벌겋게 달구어지곤 했다. 미스 아밀리아는 창문에 빨간색 커튼을 만들어 달았고, 마을을 지나가는 장사꾼에게서 생화처럼 보이는 종이 장미를 사서 꽂아 놓았다. 낯선 여행지에 가면 나름의 분위기를 갖고 있는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 마시고 싶다. 주인이 하품을 하며 인사도 없이 무뚝뚝하게 메뉴판을 던져놓고 뒤돌아서도 주인을 탓할 겨를도 느끼지 못하고 카페를 둘러본다. 주인에겐 이미 싫증난 애물단지일지도 모를 장식품에도 신기해하며 카메라에 담아놓는다. 사랑은 그런 것 아닐까. 내 눈에만 띄는 특별한 신기루. |
|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리스/장영희 열림원 2005년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을 읽는동안 사랑이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했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인데, 그 공동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일지도 모른다. 한 여자가 있다. 아밀리아..6척장신에 사팔뜨기이고 여성미라곤 전혀 찾을 수도 없으며 남성적이고 모든 일에 능숙하지만 사람관계에서만은 그렇지 못한...그런 아밀리아를 사랑한 남자 마빈..아밀리아보다는 조금 키가 작지만 180이 넘는 큰 키에 근육질의 몸, 잿빛 눈, 잘생긴 외모에 누구에게도 굽실거릴 필요가 없을만큼 부자인 마빈. 그는 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아밀리아를 사랑하면서 그성격을 버리고 아밀리아와 결혼까지 한다. 여기에 마빈을 사랑하게 된 꼽추 라이언이 등장한다. 폐병에다가 아밀리아의 허리밖에 오지 않는 키에 부랑자인 라이언. 그는 마빈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빠진다.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하는 것처럼..아밀리아 역시 그렇게 보잘 것 없는 라이언을 사랑하게 된다. 아밀리아는 라이언을 라이언은 마빈을 마빈은 아밀리아를...사랑하지만 모두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 라이언을 사랑하면서 사람관계에 부족했던 아밀리아는 조금 변한다. 마빈이 아밀리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사악함에서 인간다움으로 바뀌듯이 아밀리아는 라이언과 카페를 열면서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가 편안해진 것. 아밀리아의 카페는 이제 마을사람들의 행복한 모임터가 된다. 일에 지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하며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마을의 중심으로..하지만 이 책은 제목처럼 슬프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 고통이란 사팔뜨기든 꼽추든 사악한 성격의 소유자이든 누구에게나 가슴아프고 힘든 일이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렵고 견디기 힘든 과정이지만 사람들 누구나 잘 이겨내고 잘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밀리아처럼 슬픔에 잠겨 더 할 수 없는 고통속에 사는 길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약간 쌩뚱맞지만..책을 읽으면서 영화'몬스터'에 나온 에일리언을 떠 올렸다. 덩치 큰 '샤를르즈 테론'이 분한 그 모습이 꼭 아밀리아를 연상시키는..^^; 행복한 연애소설만 읽다가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읽으면 기분이 좀 가라앉지만..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큰 힘을 가졌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도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49p] |
| 표지가 매력적이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잘 감상했다.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이다. 가끔, 제 뭐하냐? 라는 의문을 가질때가 있다. 내 친구의 얘기다. 친구의 여자 친구가 승용차로 네 시간 거리에 떨어져서 살고 있었는데, 여자 친구가 밤 12시에도 술 먹고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고 오라고 주정(?)을 한다고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재미있는건 내 친구다. 전화를 받으면 밤 12에도 차를 끌고 네 시간을 달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잠깐, 술 주정 들어주고 아침에 싸우나 하고 돌아온다고 한다. 그 짓을 삼 년 하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여자가 지겹다고 그만 헤어지자고 말했다고 한다. 한 육개월간 아파트 창문이 높이뛰기바로 보였다고 한다. 이 소설은 말한다. 결국, 저마다의 사랑 방식이 있을 거라고. 제 삼자는 절대 이해 못하는 무엇이 있을 거라고. 그럼, 우리는 왜 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읽고 있을까. 아마, 무섭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이. 글쎄. 모르겠다. 하여간 무섭다. 180페이지 안팎의 짧은 소설이 가슴 한가운데를 아주 오래도록 지그시 누른다. 이런 소설이 좋다. 짧고 명쾌한 얘기지만 여운이 너무나 길고 슬프고 고통스럽게 이어지는 소설. fever skin을 듣고 있는데, 소설과 잘 어울린다. 소설 내용과 관계있는지 어떤 지는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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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有)
1.
'제 눈의 안경'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정말 쟤는 못생겼다 싶은 친구지만 사랑에 빠진 그의 애인은 원빈 장동건 보다도 그 친구가 멋지다고 이야기 합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이게 무슨 호랑이 채식한다는 소리냐 싶지만, 사랑이 주는 콩깍지가 무척이나 달콤해서인지 당사자들은 무척이나 행복해 합니다. 이렇듯 사랑은 무척이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입니다. 그 취향에 있어 공통적으로 선호되는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 시각에서 사랑을 시작합니다.
'윌리엄 포크너'와 더불어 미국 남부 문학을 대표하는 '카슨 매컬러스'의 사랑론은 바로 이런 사례에 기반합니다. '사랑의 가치나 그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는게 그녀의 지론이지요. 그녀는 사랑이 신비로운 이유는 사랑이 서로 주고 받는 상호적 경험이 아니라 혼자만의 것이기 떄문이라 주장합니다. 고통을 수반하고, 외로움을 심화 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그녀의 작품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요. <슬픈 카페의 노래>는 무척이나 기괴한, 우리가 그로테스크 하다 말하는 인물들의 엇나간 사랑이야기 입니다.
2.
주인공인 미스 아밀리아는 무척이나 억센 여자입니다. 평범한 여성들과 달리 남자 같은 덩치에 힘도 세고 싸움도 잘하는 아밀리아는 소송걸기를 좋아하며, 재 때 돈을 갚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쳐들어가 돈이 될 만한 걸 무엇이든 가지고 나오는 지독한 여자입니다. 모든일을 잘하지만,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서툰 그녀에게 어느날 낯선 손님이 찾아옵니다. 자신을 아밀리아의 이종 사촌지간이라 주장하는 꼽추 ‘라이먼’. 사람들은 그가 아밀리아에게 어떻게 곤욕을 당할까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쳐다보지만, 생각외로 아밀리아는 라이먼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활발한 라이먼은 혼자 살던 아밀리아에게 삶의 활기를 되찾아 주는데요. 얼마 뒤 아밀리아에게 테이블을 놓고 술이나 음료를 파는 카페를 하자고 이야기 합니다. 라이먼 말이라면 무엇이든 듣는 아밀리아는 곧 카페를 열고, 그 카페는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마을 명소가 되지요.
한편 라이먼은 거칠고 위협적인 마빈을 바라보는 순간 사랑에 빠집니다. 누가봐도 악인인 마빈을 동경하고 따라다니며 아밀리아를 멀리 하지요. 그렇게 가까웠던 라이먼이 자신을 멀리 하면서 다시 혼자가 된 아밀리아는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짓밟는 마빈과 결국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3.
이야기는 아밀리아 - 라이먼 - 마빈의 어긋나고, 기괴한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비극적입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카페의 노래는 슬프게도 더이상 울려 퍼지지 않고, 아밀리아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사랑은 두 사람의 공동경험 이지만, 그 공동 경험이 항상 같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입장과 생각이 항상 같을 수는 없을테니 말이에요. 엇갈린 그들의 사랑은 이러한 '매컬러스'의 사랑론을 더욱 공고히 합니다.
기이한 인물들의 기이한 사랑. 작품을 만들어낸 '카슨 매컬러스'의 삶을 살펴보면, 그녀의 사랑 역시 순탄치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가 지망생인 '리브스 매컬러스'와 결혼했지만, 작가로서의 재능이 부인에게 뒤지고 항상 그녀의 그늘에 살아야 했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못했습니다. 둘은 각자 동성의 애인을 사귀어 이혼하기도 하고, 다시 재결합 하기도 하며 애증의 관계를 유지했는데요. 작품에 드러난 그녀에 사랑관은 아마 그녀의 삶에서 연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모습은 무척이나 다양하다고 다른 책을 설명하며 이야기 했던것 같습니다. 사랑의 모습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그 방식과 결과까지 사랑이라는 범주안에 담아 넣는다면 아밀리아의 사랑 역시 우리가 함부로 평가할 수 없을겁니다. 사랑은 항상 행복하고,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기괴한 인물들의 사랑 속에서 사랑의 오묘함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 작품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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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50-1쪽) 윌리엄 포크너와 더불어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 카슨 매컬러스(Carson McCullers, 1917-1967). 소외된 영혼의 열망과 고독을 주제로 한 그녀의 [슬픈 카페의 노래] (The Ballad of the sad cafe)를 읽었다. 역자 사랑이 문제요 희망이다. 모든 문제의 발단이자 해결책이 사랑에서 시작되어 끝을 맺는다. 카페의 시작은 사랑 때문이었다. 추녀의 꼽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카페의 끝맺음 역시도 사랑 때문이었다. 그것도 사랑 가운데 가장 흔한 사랑, 삼각관계 때문이다. 아밀리아는 자신의 친척을 사칭하는 갈 곳 없는 떠돌이 꼽추 라이먼 윌리스를 사랑하게 된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고,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둘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연인이었다. 라이먼에 대한 사랑이 카페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꼽추 라이먼은 아밀리아의 전남편이자 사악한 꽃미남인 마빈 메이시를 사랑하게 된다. 라이먼과 메이시가 떠나자, 카페의 문도 닫혔다. 그리고 아밀리아의 기나긴 자기유폐가 시작되었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도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반드시 결혼반지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젊은 남자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 아이,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49-50쪽) 슬픈 카페의 노래는 비논리적인 사랑의 시작과 끝, 그리고 사랑이 남긴 트라우마의 끔찍함을 경고하는 발라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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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참 흔하면서도 마치 한번도 갖지 못한 것처럼 희소한 감정이다.
그래서 아픔을 여러번 겪은 사람조차 그 끈을 놓지 못한다.
누구나 한번도 가지 않은 길처럼 설레고 영원할것처럼 행복하지만 여지없이 슬픔과 허무가 들이닥칠 것을 예상해야만 하는 것.
그러나
그가 만드는 사랑 얘기는 지독하게 슬프다. 놀라운 점은 숨이 컥 막힐 정도로 모질게 스토리를 엮어가는데... 책 장을 덮고 나서 '지독하게 아름답다'는 여운만이 남는 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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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카페의 노래'를 다 읽은 후, 잠시동안 멍하니 있었다. 흔히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믿는 사랑이야기에서 빗겨 나간 듯한 기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세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슬픈 카페를 이끌어 나간다. 가장 중심인물인 우리의 아밀리아는 6척에 가까운 장신에 거구의 몸을 가진 억센 여자이며 사팔뜨기이다. 외모에서 보여 주듯이 아밀리아는 호락호락한 여자가 결코 아니다. 허나 사랑 앞에서는 한 없이 약하고 그 사랑때문에 삶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여인이다. 아밀리아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인물은 떠돌이면서 아밀리아의 먼 친척으로 우겨대는 비열함이 몸에 배여 있는 꼽추 라이먼이다. 그는 아밀리아의 사랑을 맘껏 이용할 줄 아는 뻔뻔함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다. 황량하기 그지 없던 마을에 아밀리아로 하여금 '카페'라는 것을 열게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처이자 자부심이 깃든 공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마빈 메이시는 아밀리아의 단 열흘동안의 남편이었던 인물로 장신에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혹성때문에 교도소에서 장기복역을 하고 출소한 인물이다. 그가 마을로 돌아와 아밀리아와 라이먼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렇듯 주인물자체부터가 다른 소설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작가 카슨 매컬러스는 윌리엄 포크너 뒤를 잇는 남부 작가로 알려져 있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사실 중반부터는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를 많이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슨 메컬러스는 담담하게 아밀리아의 사랑과 슬픔을, 꼽추 라이먼이 마빈을 향한 사랑의 몸짓을, 마빈 메이시가 보여주는 사랑의 잔혹성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그 여운의 무게만큼은 오래 갈 듯하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은 너무 많지만 직접 찾아보시길 바라며, 한 구절을 적는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지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