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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이란 이름의 사료로 살찌는 인간이란 이름의 가축.
"무통이란 이름의 사료로 살찌는 인간이란 이름의 가축. " 내용보기
안락사나 낙태 등으로 개인을 위해 ‘생명을 희생시켜도 좋은’ 사회. 다시 말해 인권으로 둔갑한 ‘쾌락’과 ‘무통’을 위해 또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도 좋은 시대. 살해와 전쟁으로 타인의 목숨을 뺏거나 자살로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도 존엄성으로 가장한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정당화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선 생명마저 버리거나
"무통이란 이름의 사료로 살찌는 인간이란 이름의 가축. " 내용보기
안락사나 낙태 등으로 개인을 위해 ‘생명을 희생시켜도 좋은’ 사회. 다시 말해 인권으로 둔갑한 ‘쾌락’과 ‘무통’을 위해 또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도 좋은 시대. 살해와 전쟁으로 타인의 목숨을 뺏거나 자살로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도 존엄성으로 가장한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정당화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선 생명마저 버리거나 희생시켜도 된다는 발상이 보편화된 것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출산율을 높이려 안달해도 무리이다. 무통이 생명보다 앞섰는데, 반무통적인 ‘출산과 육아’가 장려될 수 있을까 ? “무통문명” - 20세기의 경고인 ‘자본증식’을 대신하는 21세기식 경고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전통과 윤리 행체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선진국가에서는 공통적인 저출산율 문제, 아울러 누구라도 한번쯤은 느껴보았을 ‘불편한 편리함’에 대해서 분명한 설명을 제시하는 책이다. 지은이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인간이 지닌 ‘신체의 욕망’으로 급성장한 무통문명이 역으로 인간을 신체의 욕망에 가둬놓는 위험을 경고한다. 생활 양식에서 심지어 곱슬머리 같은 유전인자 등까지 가축을 닮아가는 인간의 자기 가축화 현상, 자연과 비슷한 유사자연을 건설하는 비오톱 등을 통해 독잔는 가짜를 진짜로 바꾸면서 인간의 말초 신경만을 충족시켜주는 무통문명의 얼개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무통문명에 대한 저항으로 신체의 욕망을 억누르고 대신 ‘자신을 해체시켜나감’으로써 얻는 ‘생명의 기쁨’을 제시한다. 작위적인 이분법 같아 보이더라도, ‘신체의 욕망’ 대 ‘생명의 기쁨’의 틀은 무통문명 현상을 해석하는 명료한 틀인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인간의 자기 가축화, 시스템의 인간 지배 등은 순수하게 참신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모리오카 마사히로를 주목해야할 까닭은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비만의 제국인 미국을 비판하거나 자동화와 기술의 함정을 지적하는 대부분의 서구 지식인들의 한계는 그러한 문제점들을 사회 구조와 모순에만 돌리면서 개인의 각성이나 생각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데 있다. 자본주의화에서 기술지상주의로 치닫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서구와 달리 개인의 깨달음과 극기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똑같은 현상도 “시스템에 대한 인간 종속”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여 자아를 상실하는 무통문명”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배경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러한 장점은 양날의 칼이다. 맥도널즈 시스템의 문제나 자동화의 해악, 그리고 ‘방구석폐인’과도 같은 문제에 관심있지 않다면 무통문명이란 발제는 매우 낯설다. 게다가 지은이의 서술은 논리적인 오류를 찾아볼 수 없고 개념정의가 명료한 편인데다가 모범적인 만연체를 자랑하나, 끝까지 절정이라고는 없고 매끈하기만 한 나르시시즘적인 문체로 일관하는 데는 질리는 면이 없지도 않다. 무엇보다 그가 제시한 무통문명에 대한 저항이 적절한지도 회의적이거니와 ‘생명의 기쁨’ 제시가 보편적인지도 의심스럽다. 저자는 무통문명적인 행위를 극기와 성취로 살그머니 바꾸는 ‘전철화’, 무통문명 시스템에 불확정적인 요소를 심는 ‘빙의’ 등을 얘기한다. 여타 철학자와 달리 문제 진단에 머무르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태도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무통문명을 비판하는 잣대인 ‘생명의 기쁨’이 ‘신체의 욕망’보다 우월하다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게 치명적인 문제이다. 저자 자신의 주관적 가치관을 보편적 기준으로 강요한 혐의가 짙은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자아도취적인 경수필체 서술은 한 문장으로도 충분한 내용을 무려 한 쪽 이상 불려 책값을 높이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우지 않았나 싶다. 물론 핵심 주제보다는 영감과 발상과 분위기를 중시하는 독자들에겐 만족스러울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식상한 책들과는 격이 다르다. 무통문명론에 공감하든 공감하지 않든 비판자는 ‘무통문명’의 바람직함을 역설할 수 있을 지언정, 현재 문명이 무통적 특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에는 반론하기 어렵다. 성공한 철학서는 읽고 흡족함을 느낄 수 있는 ‘배부른 돼지를 위한 사료’가 아니다. 굶은 철학자도 벌떡 일으켜 논쟁에 빠뜨릴 정도로 도발적인 책이어야 하고, 그렇지도 못 하다면 적어도 독자들에게 산뜻한 충격을 줘야하는 것이다. 책장을 덮고나서 만족스런 미소에 3분간 감동하고 즐거워한 뒤 그 책을 책장에 꽂고 싹 잊어버리는 무통독서에 우리는 빠져있지 않을까. 게다가 대개 그런 책은 과거 사람들이 싸놓은 배설물에 인공향수만 뿌린 게 대부분이다. 이른바 ‘독자의 교양’을 위해서. 무통문명론은 이와 달리 ‘현재진행형’이다. 끝까지 읽고 느끼는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이 불량한 짜깁기 두루마기가 아닌 징표다. 그래도 무통문명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다음 책들을 추천한다. 조지 리치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는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물론 맥도널즈식 자동화 시스템의 만연을 실증적 사례로 조목조목 지적한 고발 서적이다. 타키모토 타츠히코의『NHK에 어서오세요』는 히키고모리, 즉 방구석 폐인을 통해 무통문명 하의 인간 몰락상을 그렸다. 죽을 때까지 고통과 고민의 축복이 가득하길 빈다.

[인상깊은구절]
여덟번째 - 자발적 속박. 인간은 먹을 것과 안정, 쾌적함을 공급해 주는 사회 시스템과 자발저인 속박관계를 맺으려는 듯이 보인다. 예를 들면 지구 환경문제는 아무리 떠들어도 지금의 경제성장을 멈추거나 줄이지 않는 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스템에 묶여사는 것이 불편해도 지금의 생활수준과 안락함을 보장하는 시스템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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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생명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내용보기
'고통 없는 문명’ 이라하는 ‘무통문명’은 무엇인가? 이 책의 지은이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윤리학박사. 현재 오사카 부립대학 종합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생명학, 철학, 과학론 등으로 인문학의 연구 틀을 넓히고 새로운 인간학인 ‘생명학’을 제창하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중 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책머리에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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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문명’ 이라하는 ‘무통문명’은 무엇인가? 


이 책의 지은이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윤리학박사. 현재 오사카 부립대학 종합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생명학, 철학, 과학론 등으로 인문학의 연구 틀을 넓히고 새로운 인간학인 ‘생명학’을 제창하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중 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책머리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대사회는 ‘무통문명’이라는 병리(病理)에 삼켜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여서..‘끝없는 쾌락속의 불안, 기쁨을 잃은 반복, 출구 없는 미로속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 라고 적고 있다. 



지은이가 ‘무통문명(無痛文明)’이라는 말을 처음 떠올리게 된 것은, 어떤 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라고 한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그 간호사는 의식이 또렷하진 않지만, 죽은 것도 아닌 그저 ‘편안하게 잠자는’ 상태의 환자를 돌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현대문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지은이는 다시 질문한다. 현대문명이란 중환자실에서 편안하게 잠자는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활기차게 일하고 즐겁게 노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단지 편안하게 잠자는 인간들을 도시라는 이름의 중환자실 속에서 조직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와 같은 함정을 만든 것일까. 왜 문명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일까. 



지은이는 인간들이 문명을 끌고 온 것은 욕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욕망 중에서도 ‘신체의 욕망’이다. 이를 다섯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생각한다.


1) 쾌락을 찾고 고통을 피한다.


2) 현상유지와 안정을 추구한다.


3) 틈새가 보이면 확대 증식한다.


4)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5) 인생, 생명, 자연을 관리한다.


인간은 신체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욕망을 꽃피우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냈다. 그 때 인간은 바깥세계와 인간 자신을 조절하기 위해 ‘콘트롤(Control) 이성’을 사용했다. 콘트롤 이성이란 미리 예상된 틀 속에 일들의 운행방식을 담아두는 지혜와 기술을 생산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자연환경과 인간자신을 관리하기 위한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이성을 신체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인간 안팎의 자연을 인간이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이성’의 역할을 지적하고, 이것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불렀다. 



무통문명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은이는 ‘생명의 기쁨’을 설명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나는 어떤 조직에서 일을 하므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 안정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지금의 일이 가져다주는 수입과 안정을 지키고 싶은 것은 ‘신체의 욕망’이다. 그런데 일을 계속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모순이 자신의 안팎에서 축적되면, 나는 점차 어찌할 수 없는 불안이나 초조함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을 얼버무리기 위해 일의 양을 늘리거나, 술에 빠지거나, 혼외정사를 하거나, 자해행위를 반복한다. 일시적으로 괴로움이 사라져도 또 엄습한다. 일이 가져다주는 수입과 안정을 확보한 채, 거기서 비롯되는 괴로움을 얼버무리기 위한 선택을 끊임없이 준비하는 것이 고통 없는 문명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생명의 기쁨은 내가 얻으려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그 기쁨의 정의와 범위를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잘 산다는 것’이 꼭 평수 넓은 아파트에 고급 외제 승용차, 온갖 가전 신제품등은 물론 소위 호화로운 삶이 행복의 정의로까지 간다면 ‘살다 가는 삶’ 이외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래도 이 땅에 살다갔으면 무언가 향내 나는 흔적이라도 남기고 떠나가야하지 않겠는가? 즉, 생명의 기쁨에 대한 정의조차도 내가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얻고자하면 얻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편 무통문명론에서의 ‘고통(痛)’과 ‘무통화’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지 짚어본다. “‘고통’에는 육체와 정신의 아픔이 다 들어있다. 많은 글에서 ‘고통’이란 단어는 그런 의미에서 사용된다. 한 인간에게 무엇이 아픔과 고통이 되는가는 다른 사람이 외부에서 정의할 수 없다. 무엇이 아프고 괴로운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사람은 아픔과 고통을 겪는 당사자뿐이다.(...) ‘무통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확실히 비판해야 하는 무통화다. 그것은 예방적 무통화와 눈가림구조를 이용하여 고통에서 계속 도망치는 무통화다. 나는 그런 무통화와 싸우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무통문명’하에서의 인간적인 소통은 어떤 양상을 띠게 될까?


“무통문명에서는 현재 자신의 쾌적한 틀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서로 그것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한다. 그러므로 만약 서로의 조건이 맞지 않을 때는 부분적으로 관계를 조정한다. 물론 각자의 쾌적한 틀은 손대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안될 경우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청산한다. 지금의 쾌적한 틀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기분 좋은 자극만을 골라 서로 제공하려는 사랑의 관계. 이에 반해서 지은이는 ‘조건 없는 사랑’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무통문명에선 가능하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정념(情念)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 정념이야말로 무통문명 하에서 지금의 쾌적한 틀을 일격에 부수어 버릴지도 모를 파괴력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무통문명과의 싸움. 그것은 ‘신체의 욕망’과 싸우는 일이다. 신체의 욕망은 우리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따라서 무통문명과의 싸움은 우리들 내부에 존재하는 ‘신체의 욕망’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욕망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무통문명을 추진하는 연쇄(連鎖)를 도중에서 단절시키는 것만을 목표로 해야 한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내면이 바뀌는 것만으로는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무통화 장치’의 해제가 필요하다.


무통화장치란 나의 외부와 내부에 존재하며, 우리들의 신체의 욕망을 계속해서 ‘무통격류’로 끌어들이는 ‘장치’이다. 이것을 ‘장치’라고 부르는 것은 외부의 영향으로 간단히 파괴되지 않는 안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고, 스스로 내부에 인간을 끌어들임으로써 자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부에 인간을 끌어들이는 과정은 개개인마다, 각 사회적 여건마다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은 내 스스로가 이끌고 가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외부적인 조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며 함께 휩쓸려가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나의 의지가 어떻게 서 있는가를 점검해봐야한다. 외부의 힘에 얼떨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선 나의 내면을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양의 무리처럼 앞의 양이 뛰니까 덩달아 달려나가 벼랑끝에 추락하지 않기 위한 내부적 브레이크를  점검해봐야 한다. 



s******5 2012.01.02.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