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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가 아닌 법학자이기 때문에 진화론을 과학 이론으로 비판하지 않고 진화론이 전제로 하고 있는 철학 자체를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 진화론을 비판해온 기존의 책들은 대부분 창조론도 과학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증거들을 제시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진화론자들이 사용하는 게임 룰을 사용해서 창조론의 타당성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진화론이 사용하는 게임 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적진을 향해 직접적인 딴지를 걸고 있다. 1장에서는 흔히 종교는 비이성적이며 세속 철학은 이성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실상은 세속 철학도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2장에서는 최근 '만들어진 신'이란 책을 쓴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다윈주의자들이 정보를 늘려주는 돌연변이나 진화 과정의 예를 들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정보를 생성하는 진화는 결코 경험된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증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론은 논리만으로도 입증될 수 있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 없다는 ‘비과학적’인 주장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3장에서는 캔자스 주 교육위원회가 내린 새로운 기준안에 대한 반대에서 진화론자들이 과학을 지켜내기 위해 과학적 방법으로 증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철학적 기반인 자연주의의 권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진화론자들은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상 전혀 과학적 방법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장에서는 신학자들은 유물론자가 만들어주는 영역과 타협해서는 안 되며 “독립적 지식의 출처”에 대한 가정을 분명히 하여 신학이 지식을 제공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과학 자체가 유물론자들의 세계관 놀음으로 과학적 절차까지 내버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5장에서는 과학적 유물론자들이 가진 환원주의자들이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이 한 더미 뉴런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있는 신경세포와 분자들의 활동에 불과한 것으로 끌어내리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확신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6장에서 저자는 지적설계 운동에 대한 옹호론과 비판론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비판론자들이 지적설계에 대한 과학적 측면에서의 정당한 비판을 하기 보다는 핵심적인 논쟁점들을 회피하고서 풍자와 조롱만을 일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7장은 상대주의와 증거주의라는 서로 상반되는 현대의 사상들을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토대가 얼마나 모순적인가에 대해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성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8장에서는 ‘유물론적 자연주의’가 물질을 넘어 서서 “인생의 도덕과 의미의 기초를 제공”하려는 시도를 한 결과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로 인해 인문학은 몰락하였으며 그들이 시도했던 물질을 넘어서는 “인생의 도덕과 의미의 기초”라는 영역은 공백으로 남았으며 그 공백을 “상대주의와 정치화”가 들어앉게 된 것이다. 세속 철학이 ‘이성적’, ‘과학적’이라는 무기로 우리의 신앙을 공격해 올 때 우리는 기껏해야 ‘종교는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무엇인가 있다’는 정도로 대응하면서 세속 철학이 이성적이며 과학적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세속 철학이 규정하는 그대로 우리의 신앙을 아주 신화적인 것으로 또한 비이성 적인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세속 철학이 더 비이성적일 수 있다는 저자의 통찰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논쟁에서 마치 이성적 사고를 통해서 인간이 이성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지적설계 같은 이론이 인격적 존재에 의한 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해도 그 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결국 궁극적 전제는 이성에 의해 도출될 수 없으며 계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