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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미치코와 함께 살고 있는 초로의 신사 히라야마. 히라야마는 친한 친구로부터 딸을 결혼시키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딸은 어리게만 보인다. 이후 중학교 은사와 친구들과 정겨운 술자리를 가진 히라야마는 완전히 취해버린 은사를 집까지 배웅하기 위해 은사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 옛날 아름다웠던 은사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를 걱정하며 늙고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있는 모습을 보고 딸 미치코를 떠올리게 된다. 히라야마는 결국 딸을 결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친구들이 추천하는 청년과 결혼시키려 결심한다.
노년의 쓸쓸함, 적막감이 깊이 묻어나는 작품. 나이를 먹고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게 된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를 잔잔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실로 묵직한 인생의 무게를 살아낸 거장의 유작이 될 만 하다.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무겁지만은 않게 다가온다. 유머와 담담함, 하지만 끝내 어쩌지 못할 외로움. 그걸 어찌 이길 수 있으랴. 마지막 장면, 어둡고 깊은 집에서 홀로 방안 이곳저곳을 비춘 후 히라야마의 외로운 뒷모습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여운을 깊게 남겨주면서, 인생이 이런 것이며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만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감독의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역시 오로지 남성중심적 시각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홀로 남겨진 여성보다 왜 유독 혼자된 남성이 더 처량해 보이는 건지, 그 이유가 과연 무엇때문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이 거장감독이 미처 가져보지 못했던 것일까? 테크니컬한 측면으로는 오즈 야스지로의 유명한 다다미 샷을 원없이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바스트 샷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장면이 인물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나오는 풀샷을 바닥에 가만히 얹어 놓은 듯한 카메라로 하염없이 비추고 있다 이런 카메라 앵글은 관객을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 놓고 현장감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몰래 살펴보거나 아니면 집안의 붙박이 가구가 된 듯한 기분이 들도록 한다. 이것은 더욱 그들의 인물을 관조하면서 바라보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생동감보다는 그저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 시간이 흐르듯, 인생이 흐르듯,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면서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복도나 골목 등과 같이 소실점이 등장하는 샷이 많이 등장하고 일본 전통 가옥의 구조 안에 인물이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도 오즈 야스지로 감독 영화의 특징이다. 가로 세로로 촘촘하게 짜여진 목재 건물의 구조, 격자 무늬 문살, 대나무의 수직선을 이용한 디자인 등과 같은 요소들이 인물을 격리시키거나 가려 놓는 느낌을 준다. 배우들은 그 안에 실제 갇힌 등장인물을 보여주듯 프레임 안에서 거의 움직임이 없는 연기를 펼친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언가에 억눌린 듯한 갑갑한 느낌이 드는 구도를 보여주고 낡은 아파트나 복잡한 술집 간판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골목을 자주 비춘다. 야외 중에서도 탁 트인 시야를 보여주는 것은 미치코가 몰래 좋아하던 미우라와 함께 전철을 기다리는 장면이 유일하다. 아주 잠시, 그들의 사랑이 시작될 것만 같은 암시를 주는 장면이지만 그나마도 별 의미없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때 미치코가 미우라에게 마음을 고백했더라면 그들은 사랑에 빠질 수 있었겠지만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은 꽉꽉 막힌 목재 가옥에서 남겨질 늙은 아버지와 철없는 남동생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다시 격자 구도 안으로 다시 들어오고 사랑을 놓치고 만다. 생각보다 재밌고 의외로 화질이 너무 깨끗해서 좀 놀랐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한국영화 <오발탄>과 전혀 다른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어 60년대 한국영화와 기술적으로 얼마나 큰 격차가 있었는지 새삼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