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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지급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헤르만 헤세를 생각하면 그의 작품은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을 느낀다. 헤세의 작품을 몇 권 읽으면서 생각이 드는 건 늘 부드러운 문장이었다. 작가의 생애와 성형마다 소설의 문장은 다양하다. 거친 표현이 없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은 읽고나면 내면의 강함을 종종 느꼈다. 또한 저자는 소설 뿐만 아니라 시와 에세이를 썼다는 점이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의 생각을 만날 수가 있다. 스스로를 방랑자라 했으며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반대를 했던 작가. 그 시간 속에서 혼란스러운 자신과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글을 쓰는 것 뿐이었다. 오늘 만난 도서는 헤세가 스위스와 독일 남서부를 여행한 것을 기록한 에세이다.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하는 헤세에게 낯선 곳은 어떤 감정을 주었을까? 미련을 남겨두지 않고 새로운 곳을 떠나는 그의 행보를 볼 때면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고향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을 해야했던 그 마음을 여행으로 위로를 받았던거 같다. 걷고, 산책하면서 자연에 감상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감상 등 글을 따라 읽다보면 여행이란 이런 것일까 싶다. 조급해하지 않는 문장과 유유히 흘러가는 ... 목적지가 아닌 그 순간을 느끼는 것을 또한 만날 수가 있다. '방랑을 위한 산책'은 거친 문장이 없다 오히려 너무 부드럽다.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어디론가 무작정 걷고 싶었다. 발길이 닿는 곳곳을 묘사한 글을 보면 진심으로 그 순간을 사랑하고 즐겼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음에도 이렇게 삶을 사랑하려는 헤세의 마음을 들여다본 도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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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을 위한 산책 - 헤르만 헤세가 걷고 보고 사랑했던 세계의 조각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헤세는 걷는다. 걷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쓴다. 편지도 쓰고, 글도 쓴다, 우리는 그런 헤세를 만난다. 이 책에서 헤세를 만난다, 걷는 그를, 그림 그리는 그를, 그리고 사색하는 그를 만난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조용하게 걷는 모습의 헤세가 떠오른다. 그는 앞에 놓여진 길을 차분하게 걷는다. 그런 길을 따라 걷고 싶어지는 글이다.
걷는 헤세를 따라 우리도 걷는다, 사색하면서.
이 책에서 만나는 헤세는 먼저 걷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책의 첫 구절을 음미해보자.
이 집에서 나는 작별을 고한다. 이제 오랫동안 이런 집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알프스를 넘어가는 고갯길에 가까워질수록 북부 독일의 건축양식도 끝나기 때문이다. 독일의 풍경과 독일어와 함께. (풍경과 소리가 동시에 보이고 들리는 기분이다) 경계를 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방랑자는 여러 면에서 원시적인 사람이다. 마치 유목민이 농부보다 원시적인 것처럼, (여기서는 인류 역사도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나 유목민은 정착을 극복하고 국경을 경멸하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미래의 길잡이로 만든다. 만약 많은 이들이 내가 느끼는 것처럼 살아있는 존재를 억지로 가르는 국경에 대해 깊은 경멸을 품고 있다면, 전쟁과 봉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국경보다 더 어리석고 증오스러운 것도 없다. 그것들은 대포나 장군과 다를 바 없다. (14-15쪽) (이런 글은 필사를 하고 싶어진다. 그저 읽기만 해서는 아쉽다. 그를 따라 걷는 마음으로 필사해서 옮겨놓는다,)
걷는 헤세, 그러나 그는 단순히 걷는 게 아니다. 걷고 생각하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은 또한 멀리 국경에 닿는다. 그 국경에 닿은 그의 생각은 또한 인류에까지 이른다. 인류에 닿은 생각은 인류애가 아니면 무엇일까. 그래서 그에게 걷는다는 것은 또한 사색이고, 인류를 향한 고뇌다.
비오는 날에도 걸어보자. 나는 머무는 여관 근처의 강변을 걷는다. (43쪽)
굳이 더 인용할 필요가 없다. 독자들은 그저 헤세를 따라 차분하게 걷는다. 걸을 수 있다. 책 속으로 들어가, 헤세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면서 그가 남긴 생각들을 같이 음미하면 된다.
헤세의 다른 글 어느 하나 그러한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글은 없지만, 이 책의 글들은 더더욱 그렇다, 독자들을 무한 생각의 경지로 이끌어간다. 그러니까 헤세다.
헤세가 언급한 인물들
이 책에서 헤세가 언급한 인물들은 많다. 그런 중에서 이 사람은 특별하다.
페루치오 부조니가 떠오른다. (22쪽)
그는 부조니를 떠올린다. 부조니를 만났던 때를 말해준다.
당신은 참 시골사람처럼 보이네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 다정한 사람이 약간의 아이러니를 담아 내게 말했다. (22쪽)
부조니가 누구인가? Ferruccio Busoni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작곡가다. 그를 우리는 그의 이름을 딴 콩쿠르로 기억한다. 그의 사후 몇 년이 지난 1949년부터 그를 기리는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개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음악가들도 많이 입상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부조니를 헤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또한 구스타프 말러 (23쪽)도, 또한 이런 말도 하니,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음악도 들을 수 있으니, 일석 몇 조인가. 베토벤과 니체같은 위대하고 고독한 존재라 할 수 있다. (39쪽)
그림 그리는 헤세
또한 독자들은 그림을 그리는 헤세를 만난다. 몇 몇 다른 책에서 그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직접 여기서 듣게 된다.
나는 이 집을 노트에 그린다. (15쪽) 나는 우물에 기대어 목사관을 스케치 했다. (34쪽)
심지어 그는 꿈에서 본 여인을 위해서도 그린다. 그녀를 위해 작은 노트에 마을과 탑을 그린다. (25쪽) 오늘 나의 자리는 호숫가 나무 옆이다. 노트에 가축이 있는 오두막과 몇 개의 구름을 그렸다. 그리고 보내지 않을 편지를 썼다. (53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내가 젊었을 때 신학을 얼마나 경멸하고 조롱했던가! 하지만 지금 내가 알게 된 것은 신학이 우아함과 마법으로 가득 찬 학문이라는 것이다. 신학은 은혜와 구원, 천사와 성서와 같은 내밀하고 사랑스럽고 축복받은 것들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룬다. (30-31쪽)
불행 속에서 사람은 심오해진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 존재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으며, 생각은 놀이처럼 가벼워진다. 사람들은 그저 느끼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아름답고, 삶은 짧다. 모든 소망이 잠들지는 않는다. 나는 더 많은 눈과 폐를 가지고 싶다. 나는 저 풀밭에 다리를 뻗은 채 내 다리가 더 길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37쪽)
그런 문제가 없다고 느낀 이곳은 어디일까 가난한 농부들이 살고 있는 농가이다. 그곳에서 헤세는 평안함을 느꼈다. 얼마나 편안함을 느꼈는지, 풀밭에 다리를 쭉 뻗은 채 그 다리가 더 길어졌으면 하는 바람까지 비치고 있으니, 그의 편안한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우리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이 책은
독자들은 이 책에서 헤세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편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말을 독자에게 건넨다.
당신도 헤세와 함께 걷는 마음으로 이 책에 잠시 머물게 되기를 바란다. 목적지를 향해 걷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방랑자처럼. (9쪽) 헤세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 충분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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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쓴 글입니다.>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은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고 어른이 되어서 다시 독서모임과 여러 책들을 통해 더 친숙해진 이름이기도 했다. 헤세가 주는 종교적인 부분, 가르침, 배움 등은 우리 일상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방랑을 위한 산책> 역시 너무나도 궁금했다. 헤르만 헤세의 스위스에서 독일 남부까지 방랑의 기억을 어떻게 풀어놓고 이야기를 해주는지 말이다. 나도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10대, 20대, 30대, 40대에 같은 장소를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헤르만 헤세 역시 나이가 들수록, 여행을 거듭할수록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여행이라는 것이 도피라는 것이다. 걸음걸음 하나하나를 깊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무의미한 발걸음은 없다는 것이다. 처음 몇 장을 넘겨 볼 때는 내가 생각했던 내용의 전개가 아니라서 다소 지루하고 답답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중간으로 가면 갈수록 무릎을 치게 되고 많은 생각들과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깊게 통찰하게 되고 사색하게 되었다. 역시 헤르만 헤세구나 싶었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방랑자의 사색 2장은 고요한 산의 노래 3장은 여행은 단상 며칠 전 티브이에서 태어나서 세계 일주 4에서 에베레스트산의 풍경이 나왔다. 기안84가 셰르파의 삶을 엿보고 잠시 경험해 보는 것이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구상의 제일 높은 산, 자연의 허락이 있어야만 등반이 가능하고, 심지어 보는 것조차 가능하다는 말을 보고 웅장함, 위대함, 장엄함 등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에베레스트산에 가기 위해서는 입장료, 즉 입산료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올해는 더 인상이 된다고 하고 산을 등반하기 위해 1억 가까이의 돈이 든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지구상 가장 높은 산을, 높은 곳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라니, 위험을 동반한 책임까지, 그리고 환경오염까지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일지.... 헤르만 헤세의 방랑을 위한 산책과 약간 대비되는 에베레스트산의 등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선입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사색하는 방법, 통찰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자신의 끝을 알아보고 싶고 도전하는 정신이야말로 멋진 일이 아닌가. 또 한 번 헤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던 시간들이었다. #헤르만헤세 #방랑을위한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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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여행 후기 모음집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헤르만 헤세가 걷고 느꼈던 순간의 이야기들이다. 그가 걸었던 곳을 가보고 싶고 그가 느꼈던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내 눈으로 보고 싶다. 지금 현대의 여행 이야기가 아닌 적어도 몇 십 년은 훌쩍 지난 이야기들이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아마도 유명한 작가의 여행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특히 더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그 시절은 전쟁이 일어난 전과 후를 모두 겪었던 사람이 이야기라서 더 그렇다. 전쟁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여행을 떠나고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다시 글을 쓰고, 그는 멋진 삶을 살다 간 것 같다. 작가로서 먹고 살 걱정만 없다면 나도 그처럼 여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그가 다녔던 곳은 그리 화려한 곳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는 자연친화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여행기에는 주로 자연의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처음 등장했던 알프스곰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들이야기는 많지는 않지만 여행의 묘미라고 느껴졌다.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맺게 되는 일회성인 관계들 그런 가볍지만 특별한 인연들이 있기에 여행이 더 빛나는 것 같다. 검독수리를 만난 이야기 역시 그의 관심이 어디에 가있는 지 말해준다. 내가 여행을 했다면 검독수리는커녕 그저 새를 봤다는 기억만 있었을 것이다. 관심사가 다양해야 여행을 통해 더 깊이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는 정말 산책 같은 여행을 한 것 같다. 그가 쓴 글들에는 수많은 자연환경이 묘사되어 있다. 숲, 오두막, 나무 등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소도시에 살아서 화려한 도시의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나도 오솔길이 있는 탁트인 곳이 좋다. 편하게 써내려 간 그의 글이 참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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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행과 방랑을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끝에 다다르면 오늘날의 여행이 아닌 과거 세상으로의 여행이라는 의미를 방랑으로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방랑은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님을 뜻한다. 딱히 정해지지 않는 세상으로의 여행을 위한 산책에서 나,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독일계 스위스인 문학가이자 예술가인 헤르만 헤세는 자신을 경계를 넘는 방랑자로 인식한다. 그가 살아 온 과거 삶의 족적들이 독일과 스위스의 경계에 위치한 것을 생각해 보면 그의 방랑을 위한 산책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판단해 본다. 자신은 농부가 아닌 유목자이고 지키는자가 아닌 탐색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전하는 방랑을 위한 산책의 의미를 그의 사색이 담긴 글로 마주해 본다. 이 책 "방랑을 위한 산책" 은 헤르만 헤세의 삶의 과정 속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방랑으로의 여행들에 대해 그기 의미 있게 생각한 사유를 밝혀 독자들에게 방랑으로의 여행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책이다. 흔히 우리는 여행을 꽉 짜여진 상태로의 구속력을 맛보는 시간으로 인식해 철저한 계획과 행동력으로 실수 없이 효율과 효용을 얻고자 하는 여행으로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그러한 여행이 과연 나, 우리에게 만족감과 충만함을 떠나 영혼의 성장과 내면의 성숙함을 위한 자양분이 될까 하는 의심을 해 본다면 아마도 '글쎄' 라는 대답을 들을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가 그러했듯이 세상의 폭력을 자신에게 가하며 구원으로 가는 길을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은 어쩌면 오늘을 사는 나, 우리 역시 그러한 상태로의 세상의 폭력에 물들거나 빠져 버린 모습으로의 존재를 목도하게 한다. 그러한 세상으로부터의 폭력에서 나,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쉽게 답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라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것이 있다면 방랑으로의 여행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구원으로의 방랑은 실질적으로 세상의 모든 곳으로의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나, 우리 내면으로의 여행을 지칭하기도 하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오직 그곳에서만 신을 찾을 수 있고 오직 그곳에서만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하니 세상 그어떤 곳으로의 방랑을 떠나기 보다 나, 우리의 내면으로의 방랑이 더욱 진실한 방랑이자 여행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말을 타고, 차를 타고, 둘이서, 혹은 셋이서도 함께 갈 수 있지만 마지막 한 걸음만은 오직 혼자 걸어야만 한다" 시(詩) '혼자'의 일부를 생각해 보면 헤르만 헤세의 진솔한 여행은 세상으로의 여행이라기 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향한 방랑에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오늘의 나, 우리 역시 나, 우리 자신에 대한 존재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에 부쳐 보면 나, 우리를 향해 떠나는 방랑의 시간들이 오롯이 세상을 향해 떠나는 방랑 보다 월등히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충실한 만족감을 갖게 한다. 헤르만 헤세의 방랑을 위한 산책은 그의 방랑에 대한 나름의 의식을 에세이 형식으로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여전히 우리의 방랑은 끝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그의 방랑을 위한 산책의 의미가 더욱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길 위가 아닌 내면으로의 방랑길, 두려워 하기 보다 더욱 애착을 갖고 떠나야 할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다독의 이유를 밝혀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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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헤르만 헤세가 스위스는 물론 독일 남부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담고 있는데 초로의 작가는 여행에 대한 감상도 젊은 시절과는 다르게 느꼈다고 한다. 뭔가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그래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추구나 탐구라기 보다는 결국엔 내면으로 향하는 사색의 의미라고 보면 더 맞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삶을 담아내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들은 이런 에세이적 여행기에서 더욱 잘 그려진다. 여행 속 다른 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든, 아니면 홀로인 순간이든 그는 주변의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생각 속에서 느끼는 바를 담백하게 잘 담아낸다. 소설에서는 다소 철학적인 분위기가 있어 그 내밀한 메시지를 오롯이 이해하기에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이러한 에세이에서는 확실히 화가의 솔직한 감정이 더 잘 표현되어 있어서 색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새롭고도 신비한 것들을 감상하고 그것들을 감탄하는 것도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 될테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면 조용히 걷거나 가만히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관광명소 속에서 차분히 시간을 보내길 좋아해서인지 헤르만 헤세가 밤의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강가를 산책 한다거나 빈 시내를 산책한다는 등의 문구를 보면 이토록 위대한 작가는 어떤 모습으로 산책하듯 도시를 방랑했을까 싶은 상상을 해보게도 된다. 그리고 세상과 타인을 대하는 자신의 취향, 관점 등이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를 고백하기도 하는데 결국엔 솔직함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또한 여행 과정에서의 좋았다거나 아니면 불쾌했던 순간들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은 위대한 작가의 인간적이여서 더욱 매력적인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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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방랑자 헤르만 헤세에게 젊은 날의 여행은 인간 본질에 대한 탐색이자 자신을 마주하는 여정이었다. 노년에 이르러 모든 방랑과 여행이 사실은 현실 도피, 그가 발 딛고 있는 시대, 기술과 돈, 전쟁과 탐욕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의 도피였다고 고백했다.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정 자체를 살아가며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우연한 만남과 찰나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던 헤세와 함께 걸으며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방랑자의 마음을 전하는 책이었다. 헤세에게 나무는 늘 가장 인상적인 설교자였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나무가 무리와 가족처럼 모여 살아가는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나무의 나이테와 옹이 속에는 모든 투쟁과 고통, 질병, 행복과 번영이 충실히 기록되어 있다. 가장 단단하고 고귀한 목재는 가장 좁은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 우리보다 더 긴 삶을 보낸 나무가 들려주는 고요한 생명의 교훈에 귀 기울이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젊은 시절 갔었던 장소를 나이가 들어 다시 가게 되면 감회가 새롭다. 헤세는 어디를 가든 모든 곳에서 과거와 자신의 얼굴과 본질이 자신을 바라본다고 했다. 과거에도 같은 풍경을 보았던 자신의 모습을, 서른이 되기도 전에 배낭을 메고 즐겁게 무더위 속에서도 수 km를 걸었던 자신과 마주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해가는 내 모습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기억과 망각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잊힌 것과 버려진 것들, 기억에 남은 것들과 마주하는 순간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충분한 위안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모든 노인은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과거를 찾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형태의 과거를 재발견하는 방식으로 수십년 후에 예전에 더 젊고 다른 모습으로 알고 사랑했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미 지나간 모든 것들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플 때도 있다. 헤세는 특히나 평화로운 세계가 붕괴되고 전쟁을 겪은 세대라 자신이 살던 아름답고 유희적이던 세계가 공포의 장소로 변하는 전쟁의 잔혹함을 경험했기에 그 시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자신의 시대와 갈등을 겪는 사람은 시대로부터 도피하거나 투쟁한다. 삶의 야만성과 빈곤함에 대한 마음의 저항을 여행을 통해 흘러가게 한 헤세의 여행, 방랑을 위한 산책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헤르만헤세 #방랑을위한산책 #헤세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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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세계 문학의 거장인 헤르만 헤세하면 '데미안'이나 '유리알 유희'와 같은 떠오르는 대표적인 소설들이 워낙 적지 않다보니 헤세의 작품은 거의 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헤세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다작을 했고, 소설 뿐 아니라 에세이 등, 다양한 형식의 집필활동을 했다는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접했던 헤세의 작품은 대부분 소설 뿐이었는데 이번에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 스위스와 독일 남서부를 다니며 쓴 소회라기에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최근 몇년 나는 잦은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나만 해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 풍경을 접하고 나면 저녁에 일기장에 쓸 말이 많아졌기 때문에 헤세의 문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장마다 다양한 제목으로 에세이가 담겨져 있다. 헤세가 여행을 하는 길을 머리 속에 상상하며 같이 걷고, 헤세가 보는 모든 아름다운 풍경들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읽으려고 애썼는데 나이가 들어서 상상력이 떨어지는지 굉장히 집중해서 천천히 읽어야 가능했다. 그래서 읽는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에세이 한편은 2,3장의 분량인 것이 내겐 다행이다. 헤세가 외부의 풍경 (특히 자연의 풍경들) 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했을지가 이 책을 통해 기대하던 바였는데 나처럼 문학적인 감수성을 흠뻑 느끼고 싶은 분에게는 이 책을 추천한다.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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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방랑을 위한 산책은 단순히 여행기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내면의 고요한 독백이 흐르고 있는 에세이입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헤르만 헤세 특유의 여유롭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진 문체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풍경일지, 어떤 단어로 감정을 표현할지가 궁금했습니다. 사실 처음엔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제 생각보다 더 심오했고, 진지했으며 동시에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고 통찰력이 깊었습니다. 정말 헤르만 헤세 답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았기 때문에 그의 글도 부드럽고 아름다웠던 거겠죠? 헤르만 헤세는 이 여행을 도피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글에서는 무기력이나 절망보다는 오히려 생기와 여유,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고, 즐거움과 행복이 모두 다 묻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는 자신의 고단함을 감추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여행은 현실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껴안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불안한 감정조차 시적인 언어로 그려낸 그의 문장은 마치 고요한 숲길을 걷는 듯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위로하고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힘들다는 걸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고통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이 책에서 삶의 모든 순간을 진솔하게 마주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때로는 불안한 마음조차도 그대로 꺼내놓습니다. 책 속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자주 나타나는데요. 단어들과 문장 속에는 그의 고뇌와 경건함이 담겨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아버지가 선교사였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이 믿는 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의 종교적인 성찰은 삶 전체에 걸친 과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종교적 통찰이 깔려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신앙을 강요하거나 이질적인 느낌은 아닙니다. 그저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의 삶과 신념에 따라서 다양한 울림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교 친화적인 무교인인 저 역시도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헤르만 헤세와 종교적인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이 읽으면 무언가 느끼는 것이 다르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들기는 했습니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만이 담긴 책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헤르만 헤세의 성찰의 기록입니다. 작은 풍경 하나에도 멈춰 서서 의미를 찾고, 짧은 만남과 사소한 인연 속에서도 삶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헤르만 헤세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로는 철학적이고, 때로는 시적이며, 때로는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의 글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헤르만 헤세가 바라봤던 아름답고 경의로운 장소들에 대한 상상도 하면서 말이죠. 책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여행과 산책을 떠나는 기분으로 조용히 떠났을 것 같다고요. 그리고 진짜 천국이 있다면,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걷고 있고,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곳에서 마주한 모든 것들을 여전히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가 표한하고 말하는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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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방랑을 위한 산책, 방랑, 유랑.. 헤르만 헤세는 자신을 방랑자라고 지칭했다. 물론 향수조차 느끼지 못하는 순수한 방랑자는 아니었지만 목적 없는 배회, 햇살 가득한 휴식,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방랑자였다. 이 책은 그런 그가 스위스와 독일 남서부를 여행하며 쓴 방랑자의 일기이자 깊은 내면의 소리이다. 글을 읽을수록 헤르만 헤세와 함께 걷고 보고 생각하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그가 걸으며 보고 느끼는 것들을 오롯이 함께하는 조금은 생경하지만 마음 편한 자유로움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자연을 홀로 걸으며 만끽하는 자유로운 사색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그의 필력에 새삼 반하게 되기도 했다. 그가 앉은 벤치 옆에 같이 앉아 푸른 산을 언덕을 나무를 하늘을 보며 태양빛을 쬐는 기분이랄까. 번역도 매끄럽게 잘 하신 덕도 있겠지만 헤르만 헤세의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드럽고 유연한 글은 문장 하나하나 부드럽게 술술 읽힌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거침없이 매끄럽게 훑어 나가는 느낌, 그러니까 읽는다기보다는 보았다 혹은 보인다는 표현이 더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여정에 동행하여 함께 방랑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하면 좀 과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점점 그려지듯 풍경이 보이고 그와 같은 기분을 느끼듯 공감했노라고 하면 아마 이 글을 읽은 이들은 분명 고개를 끄덕여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우회로를 갈 것이고, 많은 성취가 또다시 나를 실망케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젠가 그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대립이 사라지는 곳, 그곳이 열반이다. 나에게 그것들은 아직 밝게 타오르고 있다. 갈망의 사랑받는 별들이여.' p 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