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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다수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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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있어서 개인이란 무엇인가? 사유의 공간, 행동의 조건이 집단, 기관, 정부에 의해 규제되고 조정되어 진다면 개인이 진정 개인으로 존재하는가? 자아의 의지와 인식의 출발은 과연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삶과 개인의 성찰로 향하는 시발역이면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훈육된 의식이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는 현실의 종착역이다. 공간의 뒤틀림으로 시작과 끝이 맞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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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있어서 개인이란 무엇인가? 사유의 공간, 행동의 조건이 집단, 기관, 정부에 의해 규제되고 조정되어 진다면 개인이 진정 개인으로 존재하는가? 자아의 의지와 인식의 출발은 과연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삶과 개인의 성찰로 향하는 시발역이면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훈육된 의식이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는 현실의 종착역이다. 공간의 뒤틀림으로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듯한 우리는 과거와 미래,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다. 개선의 의지는 모호하며, 현실의 현상은 난해하다. 어쨌든 ‘오로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좋건 나쁘건 여기서 살려고 온 것(61p)’ 아니겠는가. 에티엔느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은 고도화 된 사회적 억압기제에 무기력해진 개인의 죽음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목표를 추구하기에 개인은 소외되고, 초라하고, 나약해진다. 그렇게 탄생한 흔해빠진 편의의 논리, 편의의 정치학은 경쟁이란 구도 위에서 무적이 되곤 한다. 그렇다 타산적인 이해를 부정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적 존재로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이다.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였고, 우리는 양심을 안락사 시키기 위한 독극물을 늘 염두에 두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목이 칼칼하지 않을까. 심장이 뜨끔거리고 식도가 타는 느낌에 밤잠을 설칠 것 같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존엄은 내 안에서 스스로 결정 해야 한다. 그래야 생의 의지가 되는 것이다. ‘윌든’에서의 녹색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개인의 양심, 자연적 도덕률을 깨우는 아침 수탉의 횃소리가 되기를 선언한다. 이름하여 ‘시민 불복종’.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도덕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우월한 지능이나 정직이 아니라 우월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쉴 것이다. 누가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155p) 전쟁에 반대하고, 노예제에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들의 힘보다는 자신의 양심의 목소리에 따르겠다는 그의 선언은 책 제목대로 세계를 뒤흔든다. 맑스주의자, 자유주의자, 환경주의자, 인권운동가, 히피 등을 비롯해 간디, 마틴 루터 킹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은 수많은 이들의 영감이 되었고 실천이 되었다. 150년 전의 선언은 현재에도 유효하기에 예언자로써의 그의 영향력과 선견지명이 놀랍지만, 그만큼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변화는 무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여튼 당시에는 비난과 왜곡된 평가로 무시되어온 개인의 목소리가 세계의 양심을 이끄는 초석이 되었다. 소로우가 말하는 저항정신,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의 힘에 현대인의 무기력증을 대입시키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시작이 얼마나 작아보이는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어떤 일이든 한번 제대로 행해지면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48p) 사실 현대인들은 결과를 두려워 한다. ‘결과가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를 본다면?. 시간낭비일수도 있고, 귀찮아!.’ 그렇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서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진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운명은 비극인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장미빛이었던 경우가 있었던가? 기득권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가슴 속에 공포와 좌절을 심어준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외친다. ‘나에게 힘을 달라. 내가 세상을 바꿔주겠노라.’ ‘당신의 표를 모조리 던져라. 종이쪽지 한 장이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져라. 45p’ 우리는 우리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를 못하고 있다. 양심의 목소리보다는 왜곡된 ‘상식’과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노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사슬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그 사슬을 더 견고히 하기에 바쁘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사상전향이나 병역을 거부한 양심수들일 것이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느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54p) 법과 질서, 제도와 정치는 인간을 위한 것이지, 그 자체의 존립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 하고 우리는 인간을 억압하는 데에 기꺼이 동조하는 경우가 있다. 빨갱이, 병역기피자로 보는 건조한 시선에서 느껴지는 기계적인 관성으로 보아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 국가주의적인 요소가 깊숙이 박혀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될 사회는 단결이 잘 되는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법을 잘 지키는 사회가 아니다. ‘국가가 자신의 권위와 권력의 원천으로서 개인을 더욱 고귀하고 독립된 힘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접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자유롭고 계몽된 국가는 없을 것이다.’ (125p) 다수가 하나인 사회가 아니라, 하나가 다수가 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게 산다면 수치스런 일이며,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지 않는데도 부귀를 누린다면 이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65p 소설가 공선옥씨는 그 수치스러움을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라는 산문집에서 제대로 느끼고 있다. 나의 배부름을 나의 부끄러움으로…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이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을 흔들 수 있는 힘이 개인에게서 나올 수도 있다는 역사를 담았기 때문이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개인의 힘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에 간디의 비폭력,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진리의 힘),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그리고 환경운동 등으로 확장되고 진보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개방성의 일면을 드러내려고 이 책은 친절하게 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사상의 배경’, ‘선언문’, ‘선언의 여파’. 크게 보면 이렇게 구성되어 있고 어느 곳을 펼쳐도 역사의 각 장면들을 선명한 칼라로 확인할 수 있다. 얇으면서도 강렬한 책이다. 안 읽으면 후회할 책.
k*******0 2005.07.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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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내 모습을 보며 내뱉는 일갈一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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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아- 무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뿐이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하네 (반란이)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하네." 혹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앞의 노래는 김호철이 작사 작곡한 '단결투쟁가'이고, 뒤의 노래는 김남주의 시에 누군가가 곡을 붙인 '죽창가'입니다.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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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아- 무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뿐이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하네 (반란이)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하네." 혹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앞의 노래는 김호철이 작사 작곡한 '단결투쟁가'이고, 뒤의 노래는 김남주의 시에 누군가가 곡을 붙인 '죽창가'입니다.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이 역사이다. (...)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유명한 〈공산당 선언〉의 처음과 끝입니다. 이러한 선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그저 그런 소시민적인 외침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처음으로 〈시민 불복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망설였습니다. 이미 150여 년 전에 씌여진, 그 당시에는 어떤 이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이 글을, 지금 내가 읽으며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을 '느껴야' 하다니요!!! 소로의 독백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저의 감각은 무디어져 있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많이 바뀐 듯 하지만, 시간이 흘러 21세기의 지금 세계는,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듯 보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가두는 정부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역시 감옥뿐이다"라는 소로의 말은,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영원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선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글로 정리할 수 없는 혼란함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제 자신을 원망합니다. 이미 새로운 사회를 향한 긴장을 상실한 이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글을 쓰려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심지어는 자유의 문제를 자유무역의 문제 뒷전으로 밀어 버린 채, 저녁을 먹고 나서 조용히 물가 시세표와 최근 멕시코 전쟁 소식을 나란히 읽고나서 필시 거기에 머리를 처박고 잠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어디선가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며 내뱉은 일갈一喝 같습니다. * 혼란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서평같지도 않은 서평을 써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n******8 2005.03.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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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소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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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학부모 영어 교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문학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딱히 떠오르는 작가가 없었다. 특별히 작가를 염두에 두고 읽지 않은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어린이 책이라면 훤히 꿰고 있어서 대답하기 쉬울 텐데). 그러다가 문득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떠올랐다. 예전에 그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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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학부모 영어 교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문학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딱히 떠오르는 작가가 없었다. 특별히 작가를 염두에 두고 읽지 않은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어린이 책이라면 훤히 꿰고 있어서 대답하기 쉬울 텐데). 그러다가 문득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떠올랐다. 예전에 그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어린이 책을 조사하면서 덩달아 소로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그리고 <월든>을 읽었고 많은 것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지식이 협소해서인지 <월든>에서 인용하는 수많은 책을 알지 못하기에 내겐 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대신 소로의 그런 삶을 동경했고 그의 자연주의적이며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사실 소로가 에머슨과 절친하게 지냈다는 것만 알았지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에머슨에 대한 책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여기서는 소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에 에머슨에 대해 많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원래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 소로와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였기에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초의 제목은 그렇지 않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시민 불복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는 그 원문과 그것이 나오게 된 배경, 그리고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자세하게 분석했다. 지금 수많은 미국인들이 소로라는 인물을 추앙하고 있지만 한동안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니 놀랍다. 고집스럽게 살다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소로.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에서 그를 인용하고 서로 자신의 주장에 끼워맞추려고 한다. 일각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소로가 원인제공을 한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단다. 명확한 길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구미에 맞게 인용한다는 이야기다. 워낙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고, 또 다방면에 지식이 풍부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조금씩 알고 있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 약간은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새로운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월든> 때문인지 자연주의자라는 생각이 더 강했는데 이제 비로소 소로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것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것 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간디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마틴 루터 킹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것만 보아도 소로가 단순히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푸념하듯 꺼내 놓은 것이 아니며,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주의적인 상념에만 사로잡혀 살았던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 그는 수많은 지식을 흡수하며 그것을 서로 연결시켜 자신의 생각을 마무리했던 것은 아닐런지. 그러기에 세태에 대충 안주하며 살았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의 우리는 어떤가. 마지막 부분에서 개인이 아무리 애를 써봐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조하는 요즘의 내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l*****8 2009.05.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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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시민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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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무조건적인 저항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나라나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의 이야기도 아니다. '정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미국의 핸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이하 소로)의 '시민불복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역사가 200년 간신히 넘어선 미국.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헌법의 내용에는 분명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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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무조건적인 저항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나라나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의 이야기도 아니다. '정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미국의 핸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이하 소로)의 '시민불복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역사가 200년 간신히 넘어선 미국.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헌법의 내용에는 분명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란 내용이 들어있다.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소로는 이에 덧붙여 "동의란 각 개인이 자기의 양심에 따라 내리는 도덕적 판단이다. 국민의 동의에 의존하 는 정부가 적합한 정부라면 국민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하며 더욱 중요하게는 정부는 국민 개인이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해야 한다."라고 했다.

더불어 그는 인간 내면의 신성을 중시하여 올바른 개인이란 개념을 강조하였다."어떤 악, 심지어 가장 극심한 악일지라도 악을 뿌리뽑는 데 자신을 바치는 것이 한 사람의 당연한 의무는 아니다. 사람은 그밖에도 다른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악에서 손을 떼고 설령 악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악을 뒷받침하는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의무이다."라며 '올바른 개인'은 정의를 알고 실천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국가에 대한 불찬성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이때문에 그의 사상을 '시민불복종'이라 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노예제를 인정하는 정부에 반대하여 인두세를 내지 않아 감옥에 가기도 한다. 노예의 정부는 자기의 정부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당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노예의 인권을 위한다는 순수한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면에는 또다를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링컨도 사실은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주들에 대한 대응으로 노예제 폐지를 내걸고 남북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가 주장한 노예제 폐지는 전혀 순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로는 달랐다. 어디까지나 양심과 도덕성에 비추어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였다. 노예제는 당시 정부가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정치적 이념은 후에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 인도 간디나 미국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저항운동이나 미국의 1960년대 반체제 운동들의 사상적 기초가 된다.

 

19세기 후반의 소로는 자기가 살았던 당시보다 죽고 난 후에 행동하는 실천적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더 많이 끼쳤던 사람이다. 44년 짧은 인생이었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의 사상은 살아남아 있다. 아마도 국가나 정부가 살아있는 한 그의 사상도 함께 존재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t*****i 2007.08.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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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를 이어가는 사람들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소로를 이어가는 사람들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내용보기
이 책도 지난 주(1월 25일) 공부모임의 부교재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을 주제로 하여 [시민불복종]의 등장배경과 지은이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입장과 초월주의에 대한 소개, 당대의 소로에 대한 평가, 소로에 대한 진실, 그리고 [시민불복종]의 유산과 현대로 이어지는 소로 신념의 여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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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지난 주(1월 25일) 공부모임의 부교재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을 주제로 하여 [시민불복종]의 등장배경과 지은이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입장과 초월주의에 대한 소개, 당대의 소로에 대한 평가, 소로에 대한 진실, 그리고 [시민불복종]의 유산과 현대로 이어지는 소로 신념의 여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저자는 [시민불복종]을 매개로 하여 소로에 대하여, 전후 여파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역자는 당초 에세이의 제목이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던 [시민불복종]이 미국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단편일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강연제목은 "정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
지금까지 수십 종의 판본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각급 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에도 올라있다고...
 
저자의 생각으로는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과정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미국의 탄생과 당시 사회역사적인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1775년~1783년의 독립전쟁으로부터 태어나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작성한 건국 문서 위에 세워진 미국은 이상적인 국가, 즉 국민을 위한 국민의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새로운 대륙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미국 앞에는 정복을 기다리는 험악한 변경이 놓여있었고 국민들은 그들이 가진 자원을 바탕으로 어떠한 도전에도 응전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미국의 독립 선언서와 미국 헌법, 권리장전에는 소로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몇 가지 개념들이 있다.
그것은 '행복추구권'과 '인민으로부터의 권력' 개념이다.
이는 소로에게 있어서 '개인에 대한 강조'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근거가 되었다.
 
당시의 초월주의 역시 소로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엄격한 청교도주의와 칼뱅주의에 대한 반발로 유니테리언주의가 탄생하였고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이러한 유니테리언주의에서 종교적인 배경을 벗어나 초월주의를 창시했다.
소로는 에머슨을 처음 만나 제자가 되었다.
 
소로와 에머슨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전해진다.
처음 만난 후 에머슨이 소로의 스승이었고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소로를 많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에머슨의 사상은 소로의 열정과 독창성에 자극받은 것이었고 문화적 계몽이 실현되리라는 소로의 통찰력도 에머슨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철학이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고 초기에 나타난 서로에 대한 존경과 이상이 사라졌다.
 
[시민 불복종]이 당시에 특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개인의 적절한 관계에 대하여, 개인의 양심과 국가의 법과의 상충 문제,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자유의 양도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많은 입장과 관념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로의 독특한 점은 그의 '문체가 가진 힘'과 '몸소 행한 실천의 상징적인 힘'이었다.
소로는 자연을 중심으로 사고만 하지 않고 직접 '월든'에 들어가 2년 넘게 생활하였고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에 대한 부당성을 글과 강연으로 주장하였으며, 부당한 정부에 대한 항의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단 하루일지라도...)
 
소로의 정치학의 토대는 도덕률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요구, 인간 속에 있는 신성, 인간 영혼의 진리성 등이다.
국가에 대한 그의 저항은 이러한 삶의 방식이 불가능하게 되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소로가 콩코드 문화회관에서 [시민불복종] 강연을 한 이유는 미국 북부에서 노예제 지지전쟁이라고 비판한 1846년의 멕시코전쟁과 노예제에 대한 가슴속에서 우러난 반감 때문이었다.
 
소로의 글은 당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세기 내내 그리고 20세기에 접어들어서까지 철저히 무시되었던 소로의 작품이 미국에서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20년대에  주로 야생 자연의 찬양자이자 자립적인 삶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옹호하는 낭만주의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로가 정치사상가로 미친 파급력은 유럽과 인도에서는 지대했으나 미국에서는 1960년대의 급진운동을 통해 그의 글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미미한 정도에 머물렀다.
 
영국에서 소로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은 사회주의 언론인이자 독립노동당의 창건자인 로버트 블래치퍼드, 사회주의동맹에 가입했던 에드워드 카펜터, 신생활협회 회원인 헨리 솔트 등이 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로의 저작을 처음 접한 이후 1906년 경 [시민불복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진리의 힘'이라 불리는 간디의 [사티아그라하]를 이끌어냈다.
간디는 감옥에 들어갈 때마다 소로의 저작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소로에 대한 대접은 극과 극이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즘' 광풍은 전세계 미국 문화원에서 소로의 저작을 폐기하도록 만들기도 했고 1960년대에 일어난 반전운동과 마팅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로의 영향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줄어들지 않았고 911 테러전쟁 이후 시민저항 운동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민불복종] 뿐 아니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의 역사와 국가/국민 개념이 다소 다르다 하더라도, 나는 정부와 시민(국민)에 대한 관념과 입장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한국에서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관계 정립,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 정부의 정당성과 부당성의 한계,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질서(법)의 경계, 부당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대응, 비폭력과 폭력의 경계와 구분 등에 대해 폭 넓은 사회적 공감대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논의나 공감대는 정부나 정치권, 언론이나 학계가 먼저 공론화시키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1세기는 바야흐로 개인의 인식과 행위의 완결성이 점점 커져가는 시대다.
한 사람 한 사람부터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와 개념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공개하고 서로가 의견을 나누면서 전체적인 공감대를 키워야할 것이다.
 
[ 2011년 1월 27일 ]
c****n 2011.04.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국가라는 괴물에 복종할 수 없는 이들의 정당한 저항을 응원하며...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국가라는 괴물에 복종할 수 없는 이들의 정당한 저항을 응원하며...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내용보기
빌 브라이슨에 흠뻑 빠져 있는 아내는 현재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는 중이다. 그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도 꽤 두껍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은 꽤 얇은데...) 슬쩍 들여다보다가 그 책 읽으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되는 거야, 라고 물으려는 찰나 아내가 선수를 친다. 왠 시민불복종에? 왠 소로야? 갑작스러운 질문이 당황스럽다. 그러게 조용히 소설 나부랭이나
"국가라는 괴물에 복종할 수 없는 이들의 정당한 저항을 응원하며...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내용보기

빌 브라이슨에 흠뻑 빠져 있는 아내는 현재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는 중이다. 그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도 꽤 두껍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은 꽤 얇은데...) 슬쩍 들여다보다가 그 책 읽으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되는 거야, 라고 물으려는 찰나 아내가 선수를 친다. 왠 시민불복종에? 왠 소로야? 갑작스러운 질문이 당황스럽다. 그러게 조용히 소설 나부랭이나 읽으면서 말랑말랑 해피하고 싶은데 조금 있으면 총선이잖냐, 게다가 세상이 워낙 어수선하니 이런 글도 읽게 되네, 라고 대꾸한다. 총선과 시민 불복종이 무슨 상관, 이럴 줄 알았던 아내는 하기는, 한숨 섞인 말과 함께 자고 싶다며 그 두꺼운 책을 나에게 내민다. 난 얌전히 아내의 책과 안경을 받아서 침대 바깥에 챙겨둔다. 세상이 이 밤처럼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느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 소로의 <시민 불복종> 원문 중


하지만 이러한 평화의 염원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리 오래갈 리가 없다. 이른 아침 페이스북을 열자마자 밤사이 제주에 사는 선배 누나가 올린 글들이 주루룩 올라와 있다. 드디어 바로 오늘 강정마을 주민들과 사제들, 그리고 평화운동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그 자리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드러내는 발파 작업이 임박하있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글이었다. 그리고 오전부터 올라온 기사에 따르면 이미 발파는 시작되었고, 이를 막기 위한 사람들의 위험천만한 저항 또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행하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가급적 많이 그리고 강하게 다스리고자 하는 국가 (혹은 MB 정권) 사이의 충돌을 보면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소로는 ‘정부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나은 정부를 원하며, 그것도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실현되기를 원한다... 소로는 시민의 저항이 갖는 한계, 시민과 국가 관계의 우연적 성격을 인정한다. 실제로 소로는 개인과 사회가 때로는 타협해야 한다고 인정하지만, 정부가 부도덕한 행동을 하여 충성받을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시민은 그 정부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백 오십여 년 전 미국의 사상가이지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도 소로는 미국 독립 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의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가장 좋은 정부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이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대중 강연을 하였다. 이 강연의 내용은 이후 <시민 불복종>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이 강연의 내용 어디에도 ‘시민 불복종’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으며, 원래 글이 출간될 당시의 제목은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다. ‘시민 불복종’이라는 제목은 1866년 소로의 단편집에 수록되어 재출간될 때부터이며, 이는 당시의 편집자들이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제목이 남부연합의 반란이나 남북전쟁을 상기시키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책의 저자인 앤드류 커크는 짐작한다.)


“... 원래 『시민 불복종』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심술궂은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옥에 갔다온 기인(奇人)이라는 평을 듣던 한 사람이 메사추세츠 주의 어느 마을회관에서 한 강연에서 츨발한 것이다. 그런데 결국에는 미국의 에세이 가운데 가장 많은 판을 거듭하면서 가장 널리 읽히는 글이 되었고, 그 지은이는 자유와 정의라는 미국적 가치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되었다.”


앤드류 커크의 이 책은 이러한 소로의 선언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그 원문 (생각보다 굉장히 짧다. 물론 그 문장이 가지는 힘은 백 오십 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여전하고, 세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후 이 선언문이 미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사실 소로가 처음 강연을 하고 그것을 책으로 출간한 당시의 미국 사회에서는 별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처음 이 소로의 연설문은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목받았다. 그리고 대영제국에 대항하는 간디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다시금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마틴 루터 킹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반전시위대, 환경운동가(사실 소로는 『시민 불복종』보다 월든 호숫가에 직접 지은 집에서 보낸 2년간의 기록을 담은 『월든』이라는 책으로 더욱 유명하다), 평화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나체주의자, 히피 등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오히려 그의 사후 19세기와 20세기를 아우르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 혹은 그 역사적 인물들에 의하여 거론되면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세계를 뒤흔든’ 선언의 반열에 올랐다.


“... 나는 마침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고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중할 수 있는 국가를 기쁜 마음으로 상상한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초연하고 국가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국가의 품을 뿌리치더라도 이웃과 동포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한, 국가의 평온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국가 말이다...” - 소로의 <시민 불복종> 원문 중


자신이 쓸모 있다고 생각된다면 언제든 자신을 사용하라고 하였다는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정신을 (아마도 미국의 태평양 전선 강화를 위한 입김에 의하여 입안되었다고 여겨지는)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반대에 이어 붙이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소로의 강연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인간의 문명화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이루어졌지만, 그럼으로써 인간은 오히려 그 인간이 지녀야 품성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말았다. 소로가 원하였던 전혀 ‘다스리지 않는 것 같은 정부’는 오히려 이제 전혀 다스리지 않는 것처럼 전 세계의 국가 그리고 전세계인을 짓누르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괴물은 그 아류를 낳게 되니, 지금 이 순간에도 제주에서는 그 괴물 혹은 그 괴물의 아류와 인간 사이에 불가피한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자 이제, 인간된 자라면 누구든 (소로의 목가적인 사색의 잠언서인 『월든』을 읽지 않더라도) 강정마을 구럼비라는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해가면서, (소로의 인간적이기 그지 없는 강연인 『시민 불복종』을 읽지 않더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전쟁 수행을 위한 군사 기지의 건설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저항하는 이들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들의 저항이 국가의 평온을 해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연이어 연행되고 있는 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소로가 바라던 ‘국가’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바로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2.05.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내용보기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 세계를 뒤흔든 시민불복종. 소로우를 처음 접한 건 ‘월든’ 에서였다. 동양철학에 심취하였으며, 1700년대에 이미 환경보호 및 채식주의를 주장한 추월주의의 대표자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책을 처음 접할 당시, 놀랄 만큼 놀라운 자연에 대한 관찰력과 표현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글의 말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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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 세계를 뒤흔든 시민불복종.

소로우를 처음 접한 건 ‘월든’ 에서였다. 동양철학에 심취하였으며, 1700년대에 이미 환경보호 및 채식주의를 주장한 추월주의의 대표자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책을 처음 접할 당시, 놀랄 만큼 놀라운 자연에 대한 관찰력과 표현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글의 말미부분의 한 문장이 그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었고, ‘월든’을 다시 읽게 하였다.

그 문장은 류시화의 잠언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에서 ‘다른 북소리’란 제목으로 인용되었다.

 

만일 어떤 이가 그의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박자가 고르거나 또는 늦거나

그로 하여금

그가 듣는 북소리에 발 맞추게 하라

 

‘월든’ 에서 다시 이 구절을 확인하는 순간, 그가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사람만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다시 읽은 ‘월든’은 자연을 찬양한 글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삶만이 아니라 다른 삶도 있음을, 타인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삶, 경쟁하고, 더 많이 소유하느라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스스로의 북소리를 찾으라는 그의 글이 내 가슴을 치면서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또 다른 저서라는 시민불복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시민불복종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월든 보다 훨씬 더 소로우 자신의 생각과 삶이 들어간 글이 아닌가 한다. 멕시코 침략전쟁에 반대하기 위한 연설문이며, 그 길이 또한 길지 않지만 그 글에 나타난 그의 생각은 오히려 ‘월든’ 에서 보다 훨씬 강력하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가 행한 행동(인두세 거부로 감옥에 가게 된 것)과 맞물려 한 개인에 불과한 우리가 더 큰 힘에 의해 행해지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침묵하기 보다 행동하라고, 말 없이 동의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두려워하기 보다 용기를 가지라고 이야기 한다. 이 글은 오히려 멕시코 침략 전쟁을 치른 미국 시민이 아니라 자신의 국가를 침략 당한 멕시코 국민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란 느낌마저 든다. 이 글이 실제로 영향을 미친 것이 자신의 국토를 영국으로부터 침략당한 인도나,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노예로서 밖에 대접받지 못한 흑인들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래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시민불복종 자체를 읽었을 때는 막연한 느낌으로 그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책 세계를 뒤흔든 시민불복종을 읽으면서 그의 글이 가지는 더 큰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이나, 그의 글이 간디와 마틴 루터 킹에 의해 어떻게 실행되는지 읽는 것은 참 흥미로웠다.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을 읽으면서 결국 더 강한 것은 소로우였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그는 한 개인에 불과했고, 살아서 그는 멕시코 침략전쟁도 막지 못했고, 노예의 해방도 이루지 못했고, 심지어 그의 글은 동시대인에게 어떤 의미의 존경도 받지 못했지만 ‘나는 누구에게 강요 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라고 당당히 말하던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이상 스스로 강요 받기를 원하지 않을 때 세상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지금까지 간디를 통해서, 마틴 루터 킹을 통해서 보아 왔고,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m******1 2008.03.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