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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기를 막 시작한 지금, 386세대인 내 나이는 140살에 접어들었다. 이 나이에 내가 울분을 터트리는 이유는 21세기를 돌아보는 구미의 역사서 어디에도 한반도의 중요성은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나는 국수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투철한 애국자도 아니다. 하지만 구미 역사가들의 타성에 젖은 역사기술 방식에는 강력하게 경종을 울려주고 싶다.
이 책만해도 그렇다. 21세기 역사서로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역사 21세기>는 영국의 과학저술가와 미항공우주국(NASA)의 손에 의해 쓰여졌다. 물론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역시나 아시아 역사는 없다. 다만 중국과 일본의 기록만 존재할 뿐... 통일국가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사의 변방일 수 밖에 없는가?
<한반도>라는 표현은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남한과 북한이 2048년 완전한 평화통일을 이룩함을써 탄생된 통일한국(대한민국, COREA)를 일컷는 말이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지 정확히 1세기가 흘러간 시점의 대사건으로, 당시 나는 감격에 겨워 밤새 울었다.
21세기 초 세계경제공황이라 할 수있는 <대혼란>의 10여 년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은 발빠르게 대화의 창구를 개설하였고, 한민족 대동단결의 기치는 급물살을 탔다. 2035년부터는 상대적으로 앞선 남한의 기술과 인프라와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이 완전히 결합. 가격과 품질면에서 절대적인 경쟁력을 가진 상품들을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이처럼 저렴하고 우수한 품질의 상품들은 통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한층 빛나게 하였다.
22세기 현재, 선진 각국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로봇의 70% 이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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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A history of the 21 century'입니다. 번역 제목에는 '가상역사'라는 말이 들어가있지만 원제에는 전혀 없죠. 저자들은 이 책을 가상역사로서 쓴 것이 아니라, 22세기 초반의 인문학자가 되어 21세기 세계사를 통사 형식으로 정리하고자 한 것입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도 21세기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두 저자의 말은 (공식적으로) 없습니다. 역시 22세기의 학자가 그 시기의 관점으로 쓴 것이죠. 뭐.. 그런 새로운 형식을 취하기는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이 책은 일종의 미래예측서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21세기 후반 로봇공학과 컴퓨터의 발달로 인해 바뀐 일반인들의 일상을 묘사한 부분이나 21세기 중반부터 후반으로 이어지는 통사의 서술은 그래도 다소 흥미롭게 볼만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의 몰락, 중국의 부상, 인도-파키스탄 핵전쟁, 21세기 중반의 대공황 같은 굵직한 사건들은 나름대로 앞뒤 사건들을 잘 맞추어 충분히 실제 있을 수 있을 만큼의 개연성을 확보했더군요.
그러나 500장이 넘는 내용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저자들의 심각한 과학만능주의였습니다. 한명은 과학 저널리스트이고, 다른 한명은 NASA의 연구원 출신이기 때문인건지 이들은 21세기에 이룩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성취에 대해 윤리적 관점이나 사회학적 이용 가능성에 대해 철저하게 무심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아를 이용한 실험이나 인간복제, 맞춤아기 제작, 가상현실을 이용한 오락 같은 것들에 대한 서술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지요. 분명히 제기될 수 있고 제기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망동'이었을 뿐이라고 폄하하거나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라고 두리뭉실하게 다루는 것은,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미래상을 그리고자 하는 욕심이 앞선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죠. 그렇다고 이들이 과학기술에 대해서 정확한 서술을 한 것은 또 아닙니다. 21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과학으로 생물학을 들었고, 그래서 총 6 chapter 중 1 chapter를 통째로 '생물학 혁명'이라는 주제로 할애하여 서술했습니다. 그런데 오류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단백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할 곳에 유전자를 쓰는 실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고, 기본적인 생물학 지식조차 갖추지 못하여 저지르는 실수 역시 꽤 많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의욕만 앞서 큰 틀만 잡고 세부적인 내용은 대충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죠. 번역한 사람이 과학 전공이라면 오류를 바로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번역가는 영문학 전공이었습니다.
또한 저자들의 역사 서술은 전형적인 영웅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일상적인 사람들의 21세기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놓고는, 실제 세계사에서 중요한 분기점들은 모두 한명의 영웅에 의해서 돌파된 것으로 쓰고 있죠. 환경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 어느 순간 각성해버린 어떤 부자였고, 우주시대를 열 수 있는 엔진을 개발한 사람도 천재 물리학자 혼자였고, 심지어 암을 정복하는 생물학적 발견을 한 사람도 천재 생물학자 혼자였답니다. 지금의 과학기술이 무슨 다빈치 시대처럼 혼자 연구해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닐터인데 너무 무심하게 고민없이 쓴 흔적처럼 보였습니다.
각각 미국과 영국 출신 사람들답게 거대 담론을 대하는 저자들의 자세도 그리 반가운 수준이 못됩니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반테러 전쟁에 의해 미국과 세계가 좀더 안전해질 수 있었다'라는 어이없는 관점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사회주의나 기타 좌파들의 관점, 멕시코 사파스티나 투쟁이나 남미의 반종속운동 같은 민중운동에 대한 냉소적인 관점은 저자들의 인식에 비춰봤을 때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21세기에 더 심해지는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나 중동, 동남아시아, 남미의 정정 불안 및 환경문제에 대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본질적인 책임은 전혀 서술하지 않은 채 당사국들의 문제로만 돌리는 것 역시 과거 역사와 사회학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한 것의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요. 물론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데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원조가 부족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라고 말은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문제 인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온정적인 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주제와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저자들의 편협한 자세와 빈약한 구체적인 묘사가 매우 걸리는 책이었습니다.
책과함께, Michael White & Gentry Lee 지음, 이순호 옮김, 532 page |
| 『오늘 아침은 정겨운 새소리가 울리는 울창한 숲 속에서 눈을 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예약해둔 아침 기상 프로그램에 맞추어 집 컴퓨터(house computer)가 가동되어 운치 있는 ‘숲 속의 정경’ 프로그램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구입한 미국의 글로브컴사의 가정용 3D 홀로그램 프로그램을 구입한 건 잘 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돌쇠가 차려놓은 아침식사를 했다. 돌쇠는 내가 지어준 우리 집의 가정용 안드로이드(인간형 로봇)의 이름이다. 아침식사를 하며 식탁의 홀로그램을 이용하여 오늘 뉴스를 보던 중 70년 전 오늘이 바로 21세기 최대 참사로 기억되는 인도, 파키스탄 핵전쟁이 발발한 날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6년 카슈미르 분쟁이 증폭되어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은 17기의 핵폭탄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특히 뉴델리와 이슬라마바드 등의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양국에서 모두 약 6백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대학시절 배운바가 있었다. 갑자기 얼마 전 업그레이드를 마친 가상체험기가 생각나 급히 식사를 마치고 가상체험에 들어갔다. 네트와 접속한 후 2016년 6월 6일 핵폭탄이 터진 직후로 가상체험 시간대를 맞추고 인도의 뉴델리로 가보았다. 폭심에서 1.5km정도 떨어진 도심을 거닐었는데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끔찍한 화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위로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들이 흩날렸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30분정도 가상체험을 끝내고 나왔을 때도 현실과 70년 전 뉴델리의 구분이 힘들었다. 하긴 요즘 가상체험 프로그램은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모든 감각이 현실과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잔혹한 핵전쟁을 가상체험으로 경험하고 난 후 집 컴퓨터가 예약해 놓은 대로 샤워를 했다. 오늘은 서울과 멕시코의 오악사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 때문에 멕시코로 출장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대기권 밖에서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보며 휴가를 즐기는 우주호텔로 쉽고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관광객을 보낼 수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는 2085년 완성을 목표로 세계 30여 개국의 각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난 서울지역의 프로젝트 팀의 팀원인데 우리 팀은 멕시코 팀과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자동차로 자동화 하이퍼링크를 이용해 100km 떨어진 파라볼라 여객기 전용공항에 3분 만에 도착하고 수직이착륙 대륙간 파라볼라 여객기를 타고 서울에서 멕시코까지 1시간 만에 도착했다. 1시간동안 손목에 차고 있는 컴퓨터(실제로 컴퓨터의 개념이 아니라 광대역 유비쿼터스이다)로 프로젝트에 관한 사항들을 체크하고 오악사카에서 멕시코 측 담당자와 우주엘리베이터의 기술상 문제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은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오후 1시쯤 되었다. 오늘 점심은 부모님과 약속이 있었다. 서울근교의 한 한정식 집에서 갈비를 먹으려 했지만 손목의 컴퓨터가 식당의 주방 컴퓨터에서 정보를 받아 오늘 갈비에는 내 몸의 유전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이 있다는 경고를 보내와서 닭백숙으로 메뉴를 바꾸었다. 그것도 첫 맛은 소갈비 맛이고 끝 맛은 닭고기 맛이 나는 이종교배된 고기로 말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간 식당은 안드로이드가 아닌 사람이 접대를 해주는 곳이어서 더욱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중대화는 주로 얼마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2036년에 시작된 대혼란기에 사회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당시에 받은 스트레스로 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워낙 경제사정이 어려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셨다. 사실 당시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60살이 넘어선 노년기에 간이 나빠질 것이라는 유전자 정보를 어렸을 때부터 알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유전자 암호로 이미 몇 년 전 국립중앙신체은행에 아버지의 간을 복제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간이 나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유전자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2050년경 개발된 유전자치료를 받았었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신체은행에 간을 보관할 필요는 없다. 식사 후 난 테니스 동호회의 사람들과 테니스를 즐기고 그들과 저녁식사까지 하고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와 가상체험기에서 생명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HR5587A 항성을 돌고 있는 유사지구를 탐사했다. 내 생각엔 유사지구에는 확실히 생명체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기술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몇 십년 안에 그곳의 생명체와 교류가 가능할 것이다. 오늘 하루는 꽤 바빴던 것 같다. 그만 글을 줄여야 겠다. 내일도 희망찬 하루가 되기를 빌며……. 2086년 6월 6일 』 위의 글은 “가상역사 21세기”를 읽고 2080년대를 살고 있는 삼십대 초반 직장인의 일기 를 가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책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형식을 고민하던 중 나도 한번 가상으로 미래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에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기를 써보게 되었다. 책을 펼치면 먼저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황당함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프롤로그가 2112년 3월에 씌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나는 이미 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과 비전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온 역사의 큰 줄기를 바탕으로 하고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과학에 이르는 방대한 인류문화의 현주소를 이해한다면 누구든 실현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고 각각의 개인이 생각하는 그 미래의 모습에서 공통된 부분들이 분명 존재 할 것이다. 물론 ‘가상역사 21세기’에서도 객관적으로 미래에 있을 법한 생명공학의 진보, 핵전쟁, 전 세계 주식시장의 붕괴로 인한 대혼란 그리고 21세기말에 보여지는 네트워크화된 인간생활과 우주정책과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내용에 푹 빠져 있었다. 21세기말에는 현대의 각 가정에 컴퓨터와 TV가 필수품이 듯이 가상체험기가 대부분 가정에 보급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가상체험기는 인간에게 현실과 거의 구분하기 힘든 체험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실상 나에겐 이 책이 가상체험기 역할을 했다. 책을 통해 2005년을 살고 있는 내가 21세기 전반을 넘나드는 가상체험을 했고 책을 읽고 있을 때에는 어김없이 2100년대를 살고 있었다. 작가는 21세기에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사건들을 단순히 시간적 순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 생명공학, 핵전쟁, 대혼란, 재편된 세계질서, 네트화된 사회, 우주와 환경이라는 굵직한 카테로리 속에는 사건에 흥미를 더하는 수많은 미래의 가상인물들(영웅도 있지만 시대에 크게 부각되지 않은 사회구성원들이 더 많았다)의 인터뷰와 자서전내용 그리고 가상의 뉴스와 가상의 통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들 사건들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내용 구성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특히 2016년 핵전쟁에서 영웅이 된 인도의 의사 쿠르마 박사의 이야기나 2043년 멕시코의 여성 대통령인 베니타에 대한 내용에서는 작가의 뛰어난 글 솜씨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분명 미래에 대한 예측은 여러면에서 비판 할 수 있고 이의를 제기 할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나 한국이 중국의 경제구도 속에서 일본을 추월한다는 내용 그리고 에너지 문제도 핵융합발전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중동에는 영구적인 평화가 또 유전자 맞춤형 아기가 현실화 된다는 미래상은 내 개인적인 관점과는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래의 100년을 이렇듯 흥미롭게 서술해 놓은 책에 분석적인 비판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접어버렸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냥 책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게다가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과학적 지식 또한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 <가상역사 21세기>. 제목만 봐서는 선뜻 이해 안 가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가상/역사/21세기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이 책에 대한 선호도가 분명해진다고 본다. 공상과학영화나 SF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당연하게도 ‘역사’쪽에 방점을 찍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난 한 편의 ‘가상’역사서로 읽어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읽은 역사서들은 과거의 일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방법과 고민 해결에 대해 해답을 던져주었다면, 이 책은 미래의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의 나열 속에서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가야만 할 것인가라는 성찰을 끄집어낸다는 미덕이 있다. 책 속에서 그리고 있는 핵전쟁이니, 대공황이니 하는 극적이고 영화 같은 상황들을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래 가능하겠군’이라고 느끼게 된 이유도 현재 우리가 충분히 그런 미래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21세기에 생을 마칠 우리가 우리뿐 아니라 우리 후대의 자손들에게 어떤 미래를 마련해주기 위한 해답에 대한 작은 실마리도 이 책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선진국적(?)이다. 그리고 우리 같이 세계사의 변방(세계 경제 기여도에 비해 대미, 대일, 대중 의존도가 너무 크고, 외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변방에 머무르고 마는 것 같다, 내 생각에--; 분통터지게도 말이다)인 나라들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같은 것은 조금 불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네 세계사 시간에 아프리카나 남미, 동남아 역사에 대해 자세히 배우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쪽 역사에 관심도 없어하는 사람도 많고, 문제긴 하지만) 그래서 균형잡힌 역사적 시각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앞에서 말했듯, ‘가상’이나 ‘21세기’라는 좀 더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접근한 사람들은 이 책의 여러 장 중에서 1장이나 5장, 6장 등이 재미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2장이나 3장이 흥미로웠다. 어느 부분에서는 소름끼치도록 불안하기도 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 되어 눈물 흘리며 읽기도 했다(원래 내가 좀 잘 울긴 한다 --;).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 아니라 2장과 3장이 21세기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잘 그려졌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첨단 문명화되고,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는 미래라 할지라도 사람의 실수, 사람의 노력 그런 것들로 역사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은 미래의 역사 역시 ‘현재와 과거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짐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ps: 별점에 반 개가 없어서 좀 아쉽다. 간만에 재미있게 읽어서 후하게 5개를 주긴 했지만, 4.5개가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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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최초의 복제인간, 중국에서 탄생
2015 DNA 분석 완전자동화
암 유전자 완전 해독
2016 핵 전쟁
2018 에이즈 바이러스 백신 개발
2022 화성에서 화석 발견
2024 가상세계 프로그램 최초 개발
2031 세계인구 100억 돌파
2035 평균수명 증가-자발적 안락사 합법화
2036 주식시장 붕괴, 대공항
2037 미국 시애틀 대지진. 중국, 대만 무력합병
2038 아프리카, 물 전쟁
2039 빈곤국 기아 퇴치
2042 라이브 스포츠 경기 소멸, 시뮬레이션 스포츠 일상화
2048 기독교 악화되고, 동양 사상 세계로 확산
2050 미국 스러지고 중국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
2051 쾌락 마약 등장
2067 새로운 ‘4방향 결혼’합법화
21세기말 한국, 일본을 앞지르다.
‘2005년에 갑자기 2011년이라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야!’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의문은 ‘가상역사 21세기’라는 제목 앞에선 ‘그럼 그렇지..’하는 반응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다. 이 모든 이야기는 역사적인 증거로 증명할 수 있는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살고 있는 2005년 현재를 논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은 앞으로 인류에게 닥쳐올 미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반대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들에 대한 서술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논한 것이 정말 미래 인류에게 발생한다면 그건 인류의 미래를 예측한 역사적인 책으로 기록되어 인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이 책은 단순히 상상력이 지나치도록 풍부한 두 이야기꾼의 허황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2005년에 출판된 하나의 책으로 기억속에서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매력은 독자를 ‘21세기’를 여행하는 타임머신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가상역사 21세기’라는 제목과 535쪽에 달하는 책의 두께를 접하게 되면 책을 읽기도 전에 한 번쯤은 숨을 내쉬게 된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역사’라는 단어가 주는 지루함과 ‘535’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자는 편안한 공간에서 편안한 자세로 책장을 천천히 넘기는 것만으로 ‘21세기’를 여행할 수가 있는데, 때로는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를 듣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에 살고 있는 우리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21세기’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 접하게 되는 책들 중에서 작가의 풍부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뛰어난 지식에 압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 과학저술가인 마이클 화이트(Michael White)와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주임연구원인 젠트리 리(Gentry Lee)라는 저자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이 바로 이 책의 가이드들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라는 말처럼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차고 넘쳐서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때로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낙오자가 될 것 같아서 급변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두렵기 조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떨쳐 버릴 수 없는 유혹이 된다. 다가올 미래사회가 2005년 현재보다는 많은 것이 다를 것임은 확실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 변화들이 인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은 할 수가 없다. 현재 우리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과거와 비교해서 ‘진보’니 ‘혁신’이니 ‘발전’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렇다고 지금 이 시간 2005년 4월을 살고 있는 인류가 1999년에 비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과거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을 수도 있다. 세상은 혁신적으로 진보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변모한다고 해도 역사 이래로 인류가 반복하고 있는 생로병사의 한계는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21세기의 역사는 그 누구도 아닌 2005년 4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 의해서 결정이 될 것이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대, 미래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가를 보라! 그곳에 그대와 나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백년 전 사람들보다 지금 사람들이 더 행복할까? |
| 역사에 가정은 없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학의 명제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과거가 아닌 미래의 역사를 서술하겠다니, 무속신앙적인 예언서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저자의 시도가 아주 잘해봐야 흥미를 돋구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결과론적인 가치판단이 앞서기에 그러한 선입견을 어떻게 떨쳐내려 했는가는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또 다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 후자가 이 책을 펼치게 된 대부분의 이유였을 것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종교적 신앙에 기반을 둔 예언서에 불과했다. 무엇을 믿고 숭배하느냐? 과학 저널리스트라는 저자의 직업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과학 기술’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론은 흥미를 나름대로 잘 돋구었으니 성공은 했다고 본다. 종합한다면 들이킬 때는 청량음료처럼 시원한데, 마시고 나면 살만 찐다. 두세번 읽을 만한 영양가가 있는 책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영양가가 없어도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학교 앞의 불량식품이 히트 상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하니까. 시각을 자극하는 화려한 인공색소, 미각을 자극하는 화학성분, 그리고 턱관절과 턱근육을 흥분시키는 탄력적인 질감은 단점이면서 장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선상에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 봐야 할 ‘자세’를 이 책은 필요로 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은 치밀한 상상이 돋보인다. 생뚱맞은 내용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적 개념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기술들을 기반으로 하여 확장된 미래를 펼쳐놓기 때문이다. 유전자 공학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줄기 세포나 배아 복제, IT산업에서는 유비쿼터스, 나노 로봇, 인공지능 로봇, 양자 컴퓨터, 우주 공학의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우주엘리베이터, 우주 여행 등 이젠 너무나 흔한 주제가 되어버린 것들을 다룬다. 어떻게 보면 식상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 식상함을 덜어주는 것은 대중성을 의식해서인지 일반인들의 생활 풍경을 소설 쓰듯 표현했다. 그렇게 해서 딱딱하기 쉬운 기술 동향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읽기 쉽고 친근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면서 읽어 본 독자들이 ‘생생하다’, ‘영화같다’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부분이 가장 뛰어나게 표현된 곳은 1부 생물학 혁명과 2부 핵전쟁이다. ‘치밀하다’, ‘현실감 있다’라는 표현 이외에는 적당한 표현이 없다. 1부 생물학 혁명에서는 근래에도 많이 이슈가 되었던 생명 윤리에 관한 논란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인간 복제의 상업성에 매몰된 과학자와 순수하게 인간 생명의 가치를 지키면서 기술을 접목시키려는 과학자. 이 두 형제 과학자들을 통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지만 적절한 비유,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거의 대부분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고 긍정적으로 바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휴머니즘과 상업성의 조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 기적의 항암제라는 초국적 기업 노바티스사의 글리백이라는 약품을 두고 일어났던 사회적 논란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생명권이 기업의 이윤에 희생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그늘은 유전자 공학이 주는 달콤함 열매에도 해당 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책 전체적으로 봐서는 기술의 발전과 생활 풍경에 대한 상상이 치밀한 반면에 그것을 받쳐주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상상은 빈곤하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예를 들면, 지적 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제도와 법규, 시민 의식이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산업, 유통, 기술, 소비자, 문화의 균열은 점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정보 사회의 최첨단을 걷고 있다는 한국 사회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 정도의 문제는 독자의 판단과 고민에 맡겨도 되는 사안이지만, 3부 대혼란, 4부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어리숙한 국제감각은 황당하게 펼쳐진다. 차라리 쓰지를 말았어야 했다. 미국의 MD가 중국 견제용이 아니라 깡패국가 이라크와 북한 때문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미국인과 영국인이 썼다는 걸 너무 티내는 것 같다. 1조 달러 이상을 써도 될까 말까한 MD사업을 하는 이유가 1달 만에 점령한 이라크와 국제 지원 없이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북한 때문이라니… 그 외에도 중국의 위세에 눌린 일본의 외교 자세 또한 엉성한 누더기의 형상이다. 미국 몰락의 전조를 나타내는 부분은 유치함의 극을 친다. 화산, 지진, 주식 시장 급락, 심지어 점술가와 사이비 종교 지도자까지 등장하여 불안을 외친다. 마치 그것 같다. 국운이 쇄하면 신성한 나무가 울고, 부처상이 피눈물을 흘리고, 샘이 마르고… 이처럼 정상에 있는 자들이 느끼는 불안의 공통점은 정상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전교 1등 하는 학생이 2등 했다고 자살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투머로우’는 사실 공포 영화였다. 세계 최강의 부국이 자연재해로 멕시코에 신세를 진다는 상황 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설정인가! 헐리웃의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불안은 늘 영웅을 필요로 했고, 이 책 또한 영웅을 생산해 낸다. 개인의 삶을 비춘다지만,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가상의 인물들은 엘리트적 영웅들의 모습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환경을 위해, 국가를 위해 리더가 되어 불안을 잠재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반세계화를 외치고, 국가 정책,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자들을 아나키스트, 반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을 생산하는 세력이니까! 불안은 공공의 적이니까! 본인처럼 이것저것 따지면 재미없는 책이다. 상상이란 즐기는 데에 있다는 점을 숙지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따라가면 몰입감은 꽤 클 것이다. 분량도 꽤 되고, 많은 정보를 다뤄야 했지만, 저자가 즐겁게 썼다는 것을 글에서 은근히 느낄 수 있다.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빠져드는 가상의 역사 아닌가. 청소년기의 성적인 상상처럼 말이다. 쥘 베른 서거 100주년이라고 한다. 쥘 베른이 상상했던 오늘. 그리고 이 책이 상상한 미래.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미래에 대한 상상은 자기 투영이다. 자기가 바라는 유토피아적 환상. 내가 발견한 그곳에는 내가 바라던 것들이 있기를 기대하는 그런 심정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당신들과 우리가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아닌가 한다. |
| 숨 가쁘게 책 한 권을 읽고 난 뒤의 허탈함이라니... 세상의 모든 역사가들과 작가들은 절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언제나 주관적이고 자신들이 알고 경험한 것에만 바탕을 두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다. 이 작품의 가상역사가 그때 진짜 일어날 일일지도 모른다. 한번 장마다 따져보자. 제1장에서의 유전자 혁명으로 대부분의 병이 치료되어 불치병이니 난치병이니 하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것은 가상역사를 쓰는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쓰는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또한 복제 인간이라던가, 안락사에 대한 얘기도 지금 논의되어 가는 이야기니 역사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내용일 뿐이다. 제2장에서 핵전쟁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일어나리라고 적은 것은 아주 약은 자기 기만적인 방법이었다. 왜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 핵협상 때문에 연일 오르내리는 북한에서의 핵위협은 거짓인가? 아님 건드리기 애매한 상황이라 피해가고 안전한 쪽에서의 핵전쟁을 가상으로라도 일으키자는 속셈인가... 물론 이 지역은 오랜 분쟁지역이고 이 두 나라가 핵을 보유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러시아도 핵보유국이다. 그럼 이들이 그들보다 우매하단 얘기 아닌가. 참으로 편리한 작가의 생각에 분노할 뿐이다. 제3장의 대혼란은 예측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붕괴도 있을 수 있다. 테러가 더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지금의 미국이 계속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뒷장에서 미국은 여전히 천년만년 잘 살고 있다. 그러니까 혼란도 다른 누군가의 문제일 뿐이고 1929년의 미국 대공황 때처럼 잘 살 인간은 계속 잘 살 거라는 얘기 아닌가. 중국이 새로운 강자가 되리라는 건 지금도 알 수 있다. 일본이 지는 해라는 것도. 그러면서 이 책에서는 계속 일본, 일본, 일본이다. 일본이 망한다며? 하지만 작가는 모순에 빠져 자기가 앞에 쓴 내용을 잊고 뒤는 새로 붙인 것 같다. 이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제4장과 5장은 별로 할 말도 없다. 전혀 생생하지도 않고 지금의 이야기를 연도만 바꾼 것 뿐이다. 마치 잘 쓴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의 편협함과 읽은 내 편협이 상충해서 열만 날 뿐이다. 한국이 20세기 내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그 짧은 한 줄에서 작가가 알고 있는 지식의 편협함과 서구인들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일본에 노동력이 딸려 북한 사람이 일하러 간다고? 남북은 통일되었는데 잘 살게 된 중국 놔두고? 또 일본은 한국에 마저 추월당한다며? 그러니까 이 작가들은 아무 것도 객관적으로 모르는 상태다. 책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남의 나라 역사에 참견하고 미래까지 참견하는 것이라면 역사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작가들은 이 책을 도대체 왜 쓴 것일까... SF 소설을 읽어도 이것보다 잘 쓰인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날 수 있다. 21세기의 초에 우리는 2099년의 일을 알기는 어렵다. 그때까지 살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의 판도로 예측은 할 수 있다. 누구나 말이다. 책을 쓸 때 작가는 사실은 사실에 기초해서 써야 한다. 사실이 아니면 쓰질 말던가. 반성 없는 역사의식과 미래 예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라크 침략에 대해 어떤 반성도 안하고 망하는 듯 하는 제스쳐만 쓰다 살아나고 아프리카와 남아시아는 여전히 궁핍하다. 아, 내 서평도 자제심을 잃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고나니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결국은 그래도 미국과 서방 선진국은 변함없이 잘 살리라가 이 책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가상역사가 아니라 자기들의 바람일 뿐이다. 이 책에 어떤 유토피아도 없다. 있다면 그들만의 유토피아일 뿐 지금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세상이 유토피아인가... 남아시아 지진 때 각국의 선진국들은 앞 다투어 서로 지원금을 많이 내겠다고 공언했다.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진짜 가상이며 작가만의, 미국식 유토피아일 뿐이다. 요즘 한 드라마를 본다. 스물아홉의 여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열여덟로 기억이 후퇴한 이야기다. 그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은 인터넷이 아닌 PC통신을 얘기한다. 휴대전화는 사용해본 적도 없어 마치 조선시대에서 온 사람처럼 행동한다. 단지 11년의 변화일 뿐인데 말이다. 1960년대 일본인이 예측한 2000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중 대부분을 그는 맞췄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과학적 변화의 나열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고 말하기 쉽지만 한 나라를 꼬집어 그 나라가 어떻게 되리라 말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와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만행이 사라질 때의 일이지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그냥 슬며시 들어갈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를 만들어라. 어차피 유토피아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니. 하지만 남을 기분 나쁘게 하지는 말지어다. |
| 100년후 누군가가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역사를 쓴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이야기 책이다. 이 책속에는 인간복제 이야기와 경제공황속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중국의 경제권속에서 경제공황을 피한 한국의 이야기가 나온다. 본인은 이 책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2006년 경제대예측, 부동산전망, 2010년의 역사등의 예측하는 책들을 보았을때 우습게 넘어 간것이 사실이다. 누가 관연 미래를 예측 할수 있으랴. 그 많은 증권 전문가들도 틀리고, 미래학자들도 틀리는 이야기를 누가 섣불리 예측 할수 있으랴는 간단한 가정에서 모든 사람들의 예측을 무시 해왔고 이 책또한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만 읽었엇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의 이야기가 허구로 밝혀 지면서 우리나라 모두가 생명과학자가 될정도였다는 얘기가 나올정도로 샘명공학에 대한 얘기가 신문에 나와서 나또한 그런 사람이 되었고, 어느날 회사 화장실에 있었던 1990년도에 나온 미국 경제의 미래를 진단하는 책을 본적이 있엇다. 그후 1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그 책속에 나와있던 예측 대로 변햇고, 생명공학도 그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실현이 되고 있었다. 학자들마다 조금은 예측치가 다르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글에는 진실에 대한 예측이 어느정도는 가능하겠구나 라는 생각과 과거의 역사 속에서 현재의 사건을 이해하게 된다는 옛사란들의 이야기가 맞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가상역사 21세기를 읽고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에게 읽을라고 준 다음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불확실함 보다는 책에나와 있는 역사를 예측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무지한 인간이 되엇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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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100년 전의 세상보다 더 행복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물론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생활이 편리해지고, 의학이 발달하여 오래 살 수 있게 되었지만, 환경을 점점 나빠져만 가고, 더해지는 스트레스로 삶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그럼, 100년 후의 세상은 어떨까?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 항상 미래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나 영화의 이미지는 회색빛의 삭막하고 기계적인 모습뿐이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고, 생명이나 인격에 대한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계속적인 과학기술로 생활은 점점 더 편리해지지만, 육체적인 편리는 정신적인 불편을 낳는다. 끔찍한 전쟁과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경제침체기. 끔찍한 환경문제. 인간의 존엄성은 바닥에 떨어지고, 우울하기만 한 미래가 펼쳐진다. 물론 점점 발전하는 과학기술들로 생활이 편리해지고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장미 빛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지만, 너무나 비극적이고 끔찍한 모습들이 묘사되어 있어서 이 책이 보여주는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그런데 이 책에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사람들과 연도는 어떻게 만들어낸 걸까? 정말.. 미래의 어느 한 순간으로 날아가서 그 곳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 구체적인 묘사들로 이 책은 채워져 있다. 그래서 더 무섭기만 하다.
단 하룻밤의 전쟁으로 몇 만 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전쟁과 또한 침략 전쟁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환경의 보복. 완전한 빈곤으로 세상을 밀어 넣은 대혼란.
결국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것이니 그 암울한 미래가 아미 현재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일 텐데 제발 이성적이고 인간적인 판단으로 그런 암울한 미래를 만들지 않길 바란다. |
| 고등학교때 국사를 비롯해 세계사는 나의 취약과목이였다. 내 몇십년의 인생도 복잡하고, 갈피를 못잡겠는데 수천년전 게다가 수많은 나라의 모든 역사를 알아야할 필요성도, 중요성도 느끼지못했으니 흥미가 없을 수 밖에.. 그러다보니 수업시간은 언제나 지루하기만했고, 대부분의 아이들도 수업내용보단 졸음과 선생님의 감시(?)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께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사자성어를 말씀하지않으셨나싶다. ‘옛 것을 알면서 새 것도 안다’ 곧 새로운 것 만큼이나 지나간 역사도 중요하다는걸 강조하고싶으셨으리라. 그런데 그 역사라는 것을 백퍼센트 믿을 수 있을까? 세상 모든 기록물엔 완벽한 객관성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니깐 말이다. (학자들이 정사(正史)만큼 야사(野史)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추세로 말미암아 먼 미래엔 아마 교과서의 내용도 달라지지않을까싶다) 그러니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의 내용이 과연 아이들이 줄긋고, 달달외울만큼 가치가 있는것일지 의문스럽다. 이렇듯 끝없이 쏟아지는 질문을 안은채 <가상역사 21세기>를 읽는 난 점점 더 안개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2112년. 지금이 2005년이니깐 지금으로부터 107년후.. 그럼 난 세상을 하직(?)해 흔적도 남아있지 않겠지? 나의 아들 손자 며느리가 누릴 그 세상을 미리 본다고하니 몰래 뭘 훔쳐먹는 것처럼 설랬다. 혹시 또 아는가? 책의 내용처럼 생명연장의 꿈이 실현되어 지금과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증손자들과 대화할 날이 올지.. 아무튼 첫 프롤로그부터 흥미100% 충전시킨채 스타트!!! 챕터별로 나눠진 책은 현재 우리가 겪고있는 일들에(모든 역사는 과거와 연결되어 흘러가는데 당연한 것이니깐) 과학적, 의학적인 지식을 더해 발생가능한 일들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사실감을 더하기위해 특정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덧붙이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미래(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에 대해 쓰여진 금서를보며 놀래는듯하다고하면 대충 비슷한 표현이 되려나? 복제양 돌리에서부터 시작된 기술이 마침내 완벽한 복제가 가능해져 암정복을 하고, 자신의 좋은 점만 닮은 아이를 선택해서 낳을 수 있으며 원한다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비핵화선언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을 앞세워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머지 않아 핵전쟁이 현실로 일어나는 것. 대혼란이 일어나 거대 미국이 몰락하고, 중국이 세계의 최강 자리에 오르며 한국은 일본을 앞지르는등 세계질서의 판도가 바뀜에도 여전히 부의 재분배는 불가능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악화되는 것. 유비쿼터스가 현실화되어 네트없는 생활은 존재할 수 없을정도로 기계의존성이 커지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들의 지구파괴가 극에 달해져 지구가 아닌 유사지구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등 책을 읽다보면 많은 일들이 머지 않아 실제로 일어날 것만같다. 과학의 발달은 해가갈수록 빨라지고, 사람들의 적응속도를 발맞춰가니말이다. 하지만 과연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진시황이 바라던 영원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고해서, 아프지않은 똑똑한 자식을 선택해 낳을 수 있다고해서, 매일 일터로 학교로 가지 않아 시간활용을 더 많이 할 수 있다고해서, 사랑조차 가상프로그램으로 해결해버리고마는 주저할 것없이 너무나 간단해져버린 삶이 과연 행복할까? 지금도 우린 인터넷, 휴대폰이 눈에 보이지않으면 불안에 떨고, 사진을 찍은후 현상될때까지 기다리는 설레임보단 바로 찍어 볼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에 열광한다. 사람들과의 인간적 유대감보단 컴퓨터속 가상세계에서 더 행복을 느끼고, 모든 것을 네트로 해결하려고만하는 심리. 나 역시 몇 년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살아가는 내 모습이 문득문득 어색하기도하지만 그 중독성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기에 더 무서운것일지 모르겠다. 네트가없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과거를 상상 할 수 없을정도로 더 빠르게 편하게를 부르짖다 책에서 말하는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질 않길바란다. 혹 내가하는 말을 먼 미래 나의 손자, 손녀들이 괜한 노파심이라 비웃더라도 지금 내 마음은 그렇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 불편을 불편이 아니게 받아들여 꼭 필요한 발전은 이루더라도 푸른 숲과 인간성을 잃지 않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 빠르게 돌아가는 생활만큼 더 많은 사랑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어 유사지구가 필요없는 업그레이드된 지구가 되어주길말이다. 그러기위해선 2005년 지금부터 노력해야될것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