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다가 뜻밖에 빠져드는 책들이 있는데, <에드거 스노 자서전>이 그렇다. 그저 지난날 읽지 않고 지나친 <중국의 붉은 별>의 대체 정도로 여기고 읽어보려 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다. "장수란 햇수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생을 살았느냐로 측정된다"는 그 자신의 말이 맞다면 스노는 참 오래 산 사람이다. 여행객에서 기자로, 혁명의 동반자에서, 역사의 목격자로서의 삶을 살아냈다. 물론 기자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덧 기자란 곧 책상물림을 뜻하게 된 한국 현실에서 그 말만으로 그의 인생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요즘 유행하는 노머드 정도가 적절하겠다. 여행객과 유목민의 차이는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여행객은 단순한 목격자이지만 유목민은 머무는 공간에서 치열하게 살아낸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여행의 풍요로움은 속도와 양립하지 않는다" 충분히 느린 속도의 여행, 그것은 차라리 유목이기 마련이다. 처음 도착한 중국에서 "거리에서는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꼭지 대신 아편을 바른 사탕을 물려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지나치기만 하는 여행객의 몫이었다. 조금 오래 머무는 여행객에게는 좀더 살가운 풍경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글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었으며, 성을 앞에 붙이고 이름을 뒤에 붙였다. 서양에서는 작별할 때 사용하는 손짓으로 이들은 사람들 불렀으며, 작별 인사를 할 때에는 악수를 하지 않고 두 손을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사과를 깎을 땐 안쪽으로 돌려 까까지 않고 바깥쪽으로 깎았으며, 톱질도 밀어서 하지 않고 잡아당겨서 했다. 카드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돌렸고, 식사가 끝난 뒤에 수프를 마셨다. 더구나 예라고 말해야 할 것을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13년쯤 머무는 유목민은 좀더 단호한 진단을 내린다. "중국 황허 대홍수의 희생자는 수십만명에 이른다. 자연은 인간을 상대로 한 지각없는 실험을 무수히 해왔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인간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행할 권리가 없단 말인가." 유목민이 되기 위해서 꼭 13년이나 되는 시간까지는 필요없을지 모른다. 적어도 인도에서 내린 이런 통찰은 애정이 듬뿍 담겨 있기에, 그 땅의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탈레랑은 정치란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한 바 있거니와, 간디는 불가능의 예술인 종교와 정치를 불필요하게 혼동하고 있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탈레랑의 경구가 현상유지의 정치에는 적용되지만, 혁명적 정치는 실제로 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예술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이었다. 정직하게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이 양자를 결합시키려 한 데서 그의 천재를 볼 수 있었다." 함께 하는 호흡, 그것만으로도 유목민의 자격은 갖춰지리라. 하지만 스스로를 유목민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여행객에 불과하면서도 유목민스러운 말들을 뱉아내기도 한다. "국가로서의 역사가 짧은 러시아는 주로 교회와 정치가 하나였던 3세기에 걸친 키예프의 전통과 비잔틴의 법률 및 예술, 그리고 급속히 형성되는 제국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독재정치가 유리하다는 것을 가르친 2세기 반에 걸친 몽골의 지배, 여기에다 대중의 이익으로 간주되는 것을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 준 로마노프 왕조 치하의 3세기에 차르 제도 등의 집적이었다.내가 본 독일인에게서는 수치심이나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 몇 달 뒤 일본인들에게서 목격했던 겸손이나 깊은 도덕적 충격 같은 것도 전혀 볼 수 없었다." 빼어난 통찰력은 그래서 때로는 위험하고 자의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남한에서 사회혁명 세력을 최종적으로 패배시킨 것은 미국이 아니었다. ... 사회주의가 남한에서 실패한 것은 북조선측에 지시를 내린 소련 고문단이 구사한 전술을 남한의 사회주의 세력에게도 적용하려 했던데 있었다. ... 그들은 남한에서 의회제에 입각한 경쟁을 벌이더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들이 진 것은 미국이 남한에 남아서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떠나고자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노가 진정 유목민의 삶을 살았던 중국에서, 스노는 환영받았다. 스노는 중국을 사랑했고, 중국 사람을 사랑했다. 스노가 스쳐지나갔던 남한에서 스노는 한국을, 한국사람을 그저 바라봤을 뿐이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한 사람은 그토록 거침없는 말을 뱉어낼 자격이 없다. 한국에서 그는 유목민이 아니라 목격자였을 뿐이고 여행객일 뿐이었다. 그럼 진정한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유목민이 되어야 하나? 글쎄 그것도 쉽지는 않을듯 하다. 자칫 그것은 뿌리없는 해초가 될 위험이 다분한 탓이다. 스노 자신도 "자본이 없는 프리랜서란 이리저리 휘둘리는 노예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유목민의 삶에서 느끼는 감흥이란, 그래서 여행객이 차창으로 보는 풍경에서 느끼는 감흥을 벗어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