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고용인으로 살았다. 고용이니 실업이니 하는 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말이다. 어찌 되었거나 사십 년 훌쩍 넘게 한 직장을 다닌다는 건 복 받은 게 틀림없지만, 그곳이 봄날이어서는 아니었다. 세상에 봄날만 있는 직장이 어디 있을까. 워낙 기복이 심한 업종이라 이직도 많고 툭하면 정리해고가 일어나는 곳이었는 데 용케도 살아남은 것이지. 그래서인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저자의 직책과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ILO의 고용정책국장 이상헌’, 그가 던진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라는 화두는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 독자를 의식해서였는지, 저자는 처음부터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따를 수 있는 실용적 지침을 제시하지는 않으며, 당신의 일하는 삶에 곧장 숨통을 트이게 할 만한 요술 방망이는 여기에 없다”며 선을 긋는다. 하긴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한 일이다. 그랬으면 이런 책이 나올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고용이니 실업이니 하는 건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지만 그것의 정의를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 학자나 정책 입안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일이니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고용의 기준점은 ‘일주일에 1시간 노동’이다. 생각보다 작을 줄 알았어도 이 정도라면 허를 찔린 느낌마저 든다. 이에 따르면 모든 아르바이트생은 고용 상태에 놓인 것이니 어쩌면 ‘완전 고용’도 멀지 않아 보인다. 동시에 ‘완전 고용’은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모두 고용”된 상태라고 정의하는데, 과연 ‘일주일에 1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이 과연 자신을 ‘고용’된 상태로 볼지는 미지수이다. 오래전에 본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에서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주인공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한다. 이 영화는 영국의 현대 복지제도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실업으로 인정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국제 사회에서 채택한 실업의 정의는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도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라고 소개한다. 문제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를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자리를 찾으려는 의지와 행동을 동시에 보여주어야 실업으로 인정한다는 것인데, 그러자면 일자리 찾는 걸 하나의 직업처럼 수행해야 실업자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사정과 개인적, 구조적 이유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 못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실업의 실제 규모는 훨씬 커진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4배에 이른다. 오랫동안 사우디에서 일하면서 지켜본 사우디 통계 중 가장 의아했던 게 바로 실업률이었다. 2010년대 당시 실업률이 10%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체감하는 것과는 서너 배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결국 한국의 4배라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고용의 정의에 따르면 고용 상태인 사람이 스스로 고용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결국 실업자가 되기는 쉽지만, 실업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고용과 실업은 경제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사람의 존재 의미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일기의 이름이 ‘잉여 일기’인데, 수년 전 귀국하고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 문득 자신이 잉여 인간이 된 느낌이 들어 그 좌절을 글로 쓰면서 붙인 것이었다. 저자는 2017년 미얀마 사태 때 방글라데시가 난민을 받아들였지만, 난민의 고용은 금지한 사례를 들어 실업이 존재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세계은행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던 난민에게 단순히 현금 지원을 하는 것 말고 좀 더 효과적인 지원 방법을 찾기 위해 시험적으로 취업을 허용하고 그 결과를 관찰했다. 그들은 정신 건강, 인지 능력, 위험 대응 능력에서 현금만 받은 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나은 결과를 보였고, 그 차이는 무려 4배에 달했다. 설령 현금 지원이 줄거나 없어진다 해도 계속 일하겠다는 난민이 70%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 결과를 설명하면서 “일자리의 가치는 월급봉투에 적힌 숫자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이어서 2010년대 초반에 중동을 뒤흔든 ‘아랍의 봄’ 이면에는 만연한 실업을 둘러싼 불만이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고등교육에 투자했던 학생들이 졸업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크게 좌절하면서 시위 전면에 진출했다는 것인데, 바로 지금 격랑에 휩쓸린 이란의 소요 사태 또한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니 실업을 어떻게 경제 문제로 국한해 생각할 수 있을까.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있는 최저임금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매우 흥미로웠다. 저자는 최저임금 관련 연구가 시작된 지 24년이 지났지만, 최저임금의 고용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고 말한다. 아울러 최저임금의 명백한 부작용은 찾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라고 설명한다. 고용정책국장의 견해여서 더욱 신뢰할만한 의견으로 들렸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최저임금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OECD는 15년 후 입장을 급선회하여 ‘최저임금은 모든 일자리가 적정한 보상을 받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인정했다고 소개하면서 최저임금을 1달러 올렸을 때 노동 생산성을 4.5% 상승했다는 수치를 제시한다. 물론 기업의 이윤은 줄어들었다. 저자는 그것도 일시적인 현상이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에도 이익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저임금으로 이직률도 현저히 낮아졌다. 매출도 덩달아 늘었으니 기업으로서는 일자리를 줄일 이유가 없었다. 연구자들은 노동자들의 이직이 줄고 기업에 정착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의 이윤 축소는 단기적 현상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나는 최저임금이 성공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건 어떨까 싶다. 이에 대한 고용 전문가인 저자의 의견은 분명하다. “나라가 넓어 지역마다 물가와 소득 수준이 다르다면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 어렵다. 산업 간 격차가 커도 마찬가지여서 지역별, 산업별 최저임금이 적용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두드러진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처럼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역 편차가 큰 나라에서는 최저임금 수가 수백 개가 넘는다. 하지만 규모가 작고 동질적인 나라에서는 제도만 복잡해지고 효율성은 떨어진다. 한국은 굉장히 동질적인 시장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연구 결과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로 요약된다. 예전에 유보적인 국제기구들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대체로 최저임금은 소득을 증가시키면서 일자리를 희생시키지도 않고, 결국 저임금 소득층의 전체 소득이 늘어난다. 미국, 영국, 독일에서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이제는 차별의 관점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 돌봄노동과 장시간 노동에 관한 저자의 견해도 귀 기울일 만 하다. “국제노동기구가 추계한 전 세계 공짜 돌봄노동은 연간 164억 시간에 이른다. 약 20억 개 전일제 일자리와 맞먹는다. 이 돌봄노동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GDP의 9%에 이른다. 돌봄노동은 여성 고용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이다. 2023년 기준으로 약 16억 명의 여성이 경제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그중 7억 명이 돌봄노동 때문에 취업에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법정 유급휴가가 보장되어 있으나 2024년 평균 16.6일 연차휴가가 주어지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연차 소진율을 76%에 불과했다. 일주일에 55시간 이상 지속해서 일하면 치명적인 심장질환 위험이 커진다.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자 노동자는 일 양을 자동으로 조정했다. 8시간 일하던 노동자에게 갑자기 10시간 일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하면 일의 시작을 늦추거나 속도를 낮췄다. 흥미로운 것은 이걸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연장은 결과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가 된다.” 이 책은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정작 책에서는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첫머리에 이 책이 실용적 지침을 제시하지도 않고 여기에 요술 방망이도 없다고 말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오독한 것일까? 그런 가운데 저자의 다음 말은 고용과 실업이 해결하기 얼마나 지난한 문제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노동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실업을 줄일 수 있는 노동 정책을 개발한다는 건 정보와 능력, 그리고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시장에 맡겨 두면 시장 자동 조절 기능으로 해결되는가? 노동 시장의 역사와 경험을 보면 이런 믿음도 근거가 없다.” |
| 책이 쭉쭉 읽히지 않았어요. 무거운 내용도 있었고, 읽을 수록 고민이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면하면 안되는 문제들을 잘 설명해 주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
|
왜일까. 제목을 보면서 그래. 왜일까?라는 질문이 정말 당연하게 드는 책이다. 얼마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하던 우리나라분들이 이민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소위 그들의 마가세력 들이 외국인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말의 일환으로 이뤄진 긴급체포. 일자리란 무엇일까. 좋은 일자리란 뭘까. 일자리가 없는 상태 "실업"은 뭘까. 이 파트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애덤스미스가 바라보는 실업이였다. 흔히 자유시장경제의 아버지쯤으로 여겨지는 애덤스미스조차 노동시장은 가격논리이며, 힘의 논리가 다스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보았다는 것이다.내가 여기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시장경제 내에서 실업은 "물가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뭐랄까 의도적인 면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가는 실업보다 우선순위가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상품이 아닌 사람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노동시장"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반대로 고용에 대한 국제적으로 합의된 의미는 "주어진 기간 동안 소득이나 이윤을 위해 최소 1시간 정도의 재화를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놀라지 마시라. 최소 1시간의 단위는 "주당"이다. 주중 1시간이라도 일을 한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임금을 받는다면 그것은 고용에 해당한다. 그러니 반대로 "실업"률에 포함되는 사람이 실제의 수치간 괴리가 얼마나 클지. 어떻게 이렇게 고용의 정의는 느슨하고, 실업의 정의는 타이트한지, 정치적으로 실업률을 실제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범주를 까다롭게 만들어 강제적으로 낮춘것처럼 보이게 만든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였다. 사실 우리가 일자리라는 것에 계속해서 주목하는 이유는 일자리는 개인 한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한명과 함께 하는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파트에서 나는 일정에 읽었던 공지영 작가님의 <의자놀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대량 실업이 한 인간을 한 가족을 어떻게 파탄으로 몰아가는지를 취재한 르포타주였는데,,, 그 책을 읽은지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이 책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파트의 시작 제목 하단에는 의자가 놓여있다. 그렇다면 적정 임금이라는 것, 임금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최저임금이다. 개인적으로 최저임금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근거를 대라면 글쎄.. 싶긴했다. 말그대로 생계유지의 최후보루..정도로만 여겼던 최저임금에 노동조합이 연결될 줄이야. 결국 최저임금은 노동조합조차 만들수 없는 최전선의 저임금 노동자를 대신해 정부가 그들의 임금의 기준선을 만들어주는 것. 그렇다면 최저임금은 정말 시장에 해악일까? 아닐까? 이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1890년 호주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진 결과를 놓고 볼때, "조심스런 축복"이라고 말한다. 최저임금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경제적 예측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국제기구들도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보다 긍정적인 입장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노동시장은 여전히 자본가의 힘이 우위에 있는 시장이며, 그렇기에 최저선이라는 기준을 국가에서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은 긍정적. 다만 최저선이라는 기준이기에 그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지역, 업종별로 차등이나 그 자체의 복잡도가 높아서는 안되는 것. 또한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여도 기업가 노동자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요즘 핫했던 "노동시간"의 측면. 이 부분은 정말 '좋은' 일자리의 중요 요건 중 하나다. 재밌는 점은 하루 8시간, 주 48시간 노동 시간을 규정했던 것이 1919년이란다.. 우리 주 52시간도 최근이였는데,, 100년전에 만들어진 국제시간 기준보다 4시간 더 많다.. 그렇다면 단시간 노동은 이득일까? "단시간" 노동의 전제는 원하지 않는 단시간 노동의 측면에서는 "아니요"이다. 이부분은 일자리의 안정성 즉 비정규직 노동형태를 말한다. 불완전한 고용이며, 여건이 가능하다면 이 들은 더 오래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들의 임금은 완전고용 일자리의 노동자들보다 시간당 임금이 더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 적게는 10%, 많게는 30%에 육박하는 격차라니. 그렇다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경우 "임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아.. 뜨겁다.) 이 부분에서는 월급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 기업에서 생산성이나 향상전략이 더 한층 공격적으로 추진하기에 그래서 신규채용을 가능한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가시간이 늘어나기에 기존 노동자들의 소비가 늘어나는 명확한 효과도 있다. 다만, 이 부분에서 기업의 이득이 늘고, 투자유도가 이뤄지고, 이것이 고용으로까지 연결되는 요인까지..를 놓고 볼때는 "예측불가"라는 것. 이부분 역시 결국 "조심스런 축복"인 걸까..? 다만 지나온 시간을 볼때, 노동시간이 줄고도 임금과 일자리만 괜찮다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지금 다수의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곧 닥칠, 벌써 온 미래인 AI 시대 즉, "기술변화" 측면에서 바라본 일자리에 대한 파트. 기술변화 측면은 결국 과거를 통해 현재를 예측할 수 밖에 없어서 일까?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조건들이기에 저자의 글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러다이트 운동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는 몸소 체험하는 요즘이랄까. 다만 저자 역시 그 과도기는 반드시 정책적으로 빠르게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는 여러 지원들이 필요하다고 짚고 있다. 실업급여, 취업교육 등등.이런 부분들이 선제적, 공격적으로 빠르게 행해져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기술"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라는 측면에서의 지원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이밖에도 일자리를 놓고 여러 측면에서 다루는데, 한 파트씩 읽을 때마다 "일자리"라는 이 세 글자 뒤에 존재한 수많은 'Thing' 들에 놀라울 따름이다... 흥미로운 책. 추천! "일자리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 마리엔탈의 실험." p.275
|
|
왜일까. 제목을 보면서 그래. 왜일까?라는 질문이 정말 당연하게 드는 책이다. 얼마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하던 우리나라분들이 이민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소위 그들의 마가세력 들이 외국인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말의 일환으로 이뤄진 긴급체포. 일자리란 무엇일까. 좋은 일자리란 뭘까. 일자리가 없는 상태 "실업"은 뭘까. 이 파트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애덤스미스가 바라보는 실업이였다. 흔히 자유시장경제의 아버지쯤으로 여겨지는 애덤스미스조차 노동시장은 가격논리이며, 힘의 논리가 다스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보았다는 것이다.내가 여기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시장경제 내에서 실업은 "물가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뭐랄까 의도적인 면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가는 실업보다 우선순위가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상품이 아닌 사람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노동시장"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반대로 고용에 대한 국제적으로 합의된 의미는 "주어진 기간 동안 소득이나 이윤을 위해 최소 1시간 정도의 재화를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놀라지 마시라. 최소 1시간의 단위는 "주당"이다. 주중 1시간이라도 일을 한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임금을 받는다면 그것은 고용에 해당한다. 그러니 반대로 "실업"률에 포함되는 사람이 실제의 수치간 괴리가 얼마나 클지. 어떻게 이렇게 고용의 정의는 느슨하고, 실업의 정의는 타이트한지, 정치적으로 실업률을 실제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범주를 까다롭게 만들어 강제적으로 낮춘것처럼 보이게 만든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였다. 사실 우리가 일자리라는 것에 계속해서 주목하는 이유는 일자리는 개인 한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한명과 함께 하는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파트에서 나는 일정에 읽었던 공지영 작가님의 <의자놀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대량 실업이 한 인간을 한 가족을 어떻게 파탄으로 몰아가는지를 취재한 르포타주였는데,,, 그 책을 읽은지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이 책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파트의 시작 제목 하단에는 의자가 놓여있다. 그렇다면 적정 임금이라는 것, 임금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최저임금이다. 개인적으로 최저임금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근거를 대라면 글쎄.. 싶긴했다. 말그대로 생계유지의 최후보루..정도로만 여겼던 최저임금에 노동조합이 연결될 줄이야. 결국 최저임금은 노동조합조차 만들수 없는 최전선의 저임금 노동자를 대신해 정부가 그들의 임금의 기준선을 만들어주는 것. 그렇다면 최저임금은 정말 시장에 해악일까? 아닐까? 이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1890년 호주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진 결과를 놓고 볼때, "조심스런 축복"이라고 말한다. 최저임금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경제적 예측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국제기구들도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보다 긍정적인 입장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노동시장은 여전히 자본가의 힘이 우위에 있는 시장이며, 그렇기에 최저선이라는 기준을 국가에서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은 긍정적. 다만 최저선이라는 기준이기에 그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지역, 업종별로 차등이나 그 자체의 복잡도가 높아서는 안되는 것. 또한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여도 기업가 노동자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요즘 핫했던 "노동시간"의 측면. 이 부분은 정말 '좋은' 일자리의 중요 요건 중 하나다. 재밌는 점은 하루 8시간, 주 48시간 노동 시간을 규정했던 것이 1919년이란다.. 우리 주 52시간도 최근이였는데,, 100년전에 만들어진 국제시간 기준보다 4시간 더 많다.. 그렇다면 단시간 노동은 이득일까? "단시간" 노동의 전제는 원하지 않는 단시간 노동의 측면에서는 "아니요"이다. 이부분은 일자리의 안정성 즉 비정규직 노동형태를 말한다. 불완전한 고용이며, 여건이 가능하다면 이 들은 더 오래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들의 임금은 완전고용 일자리의 노동자들보다 시간당 임금이 더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 적게는 10%, 많게는 30%에 육박하는 격차라니. 그렇다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경우 "임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아.. 뜨겁다.) 이 부분에서는 월급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 기업에서 생산성이나 향상전략이 더 한층 공격적으로 추진하기에 그래서 신규채용을 가능한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가시간이 늘어나기에 기존 노동자들의 소비가 늘어나는 명확한 효과도 있다. 다만, 이 부분에서 기업의 이득이 늘고, 투자유도가 이뤄지고, 이것이 고용으로까지 연결되는 요인까지..를 놓고 볼때는 "예측불가"라는 것. 이부분 역시 결국 "조심스런 축복"인 걸까..? 다만 지나온 시간을 볼때, 노동시간이 줄고도 임금과 일자리만 괜찮다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지금 다수의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곧 닥칠, 벌써 온 미래인 AI 시대 즉, "기술변화" 측면에서 바라본 일자리에 대한 파트. 기술변화 측면은 결국 과거를 통해 현재를 예측할 수 밖에 없어서 일까?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조건들이기에 저자의 글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러다이트 운동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는 몸소 체험하는 요즘이랄까. 다만 저자 역시 그 과도기는 반드시 정책적으로 빠르게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는 여러 지원들이 필요하다고 짚고 있다. 실업급여, 취업교육 등등.이런 부분들이 선제적, 공격적으로 빠르게 행해져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기술"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라는 측면에서의 지원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이밖에도 일자리를 놓고 여러 측면에서 다루는데, 한 파트씩 읽을 때마다 "일자리"라는 이 세 글자 뒤에 존재한 수많은 'Thing' 들에 놀라울 따름이다... 흥미로운 책. 추천! "일자리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 마리엔탈의 실험." p.275
|
| 일자리가 무엇인가.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 아니면 정말 내가 하고 싶고 나를 발전시키며 내게 정말 소중한 일. 어떤 일을 하는 자리가 좋은 일자리일까. 노동자에게 좋은 일자리? 사업주에게 좋은 일자리? 관점을 다르게 하면 또 다른 답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