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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견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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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보통 인간의 모습이고, 그것이 국가로 확대될 때에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된다 싶지만, 그것도 분수가 있지,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이 책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를 읽은 총체적 느낌은 그랬다.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책은 적나라하게 이스라엘의 실상을 까발린 책이다. ‘까발린’이란 말을 사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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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보통 인간의 모습이고, 그것이 국가로 확대될 때에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된다 싶지만, 그것도 분수가 있지,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이 책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를 읽은 총체적 느낌은 그랬다.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책은 적나라하게 이스라엘의 실상을 까발린 책이다. ‘까발린이란 말을 사용한 것을 용서하시라. 지금껏 읽은 책 중에서 이스라엘의 속사정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알려준 책은 없었고, 이제 알게된 진실로 인하여 받은 나의 충격을 표시하기에는 그 말 보다 더 정확한 말이 없기에 그렇다. 그만큼 실상 나는 이스라엘의 실상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아무래도 이 책의 원제가 의미하는 바처럼 부재자라는 말의 정의부터 짚고 가는게 좋겠다.

이 책의 원제는 부재자들의 이스라엘이다. 그 제목을 부연설명하자면 부재자들이 사는 이스라엘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에서 부재자로 명명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부재자가 살고 있다니? 부재자란 보통의 경우에는 있지 아니한 사람’,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니, 책 제목은 벌써 형용모순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거다. 책 제목이 형용모순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실상이 각종 모순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것을 낱낱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지향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재자의 사전적 의미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고 법률적 의미로는 주소지를 떠나 있어서 쉽게 돌아올 가망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두 번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부재자 투표’,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서는 그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 23, 24 쪽과 288쪽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 거기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있다. 이 책은 부재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부재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부재자는 곧 삶과 직결된다. 추상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 부재자라 불리면 이스라엘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부재자재산관리법에 따라 부재자로 간주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재산이 '재무장관이 임명한 부재자 관리인'이 관리하게 되어 있다. 이 법률에 따라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스라엘 땅에 남아있던 아랍인들 중 약 절반은 부재자로 간주되어 자신들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상실했다. 여기서 말하는 재산이란 부동산만이 아니라 현금이나 상품, 주식, 그리고 거주권이나 영업권, 사용권 등 모든 권리를 말한다. (288-289) 그래서 부재자가 된 사람들은 땅을 빼앗기고, 자기가 살던 정든 땅에서 다른 곳으로 추방되어 무일푼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부재자는 자기가 살던 땅을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쫓겨난, 존재하지만 부존재로 법률상 인식된 부재자를 말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그들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런 불행한 '부재자'들이 이스라엘 땅에 '현존'하고 '실존'한다는 것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부재자 이야기는 이쯤 해두자,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다음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나의 편견에 관한 것이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편견,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 - 그것이 어디 한두개인가? -을 낱낱이 밝혀내는 데 이 책은 일조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 편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하여 , 그것이 나의 편견이었구나하면서 무릎을 치며 읽을 수 있다는 것,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아직까지 성경 속의 땅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글은 의외로 느껴질 것이다.

 

북부 갈릴리가 문제되는 이유는, 이곳이 이스라엘을 건국할 때에 아랍인을 다 내쫓을 수가 없어 수많은 아랍인 마을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그리온이 북부를 시찰할 때 그곳이 전혀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처럼 보이지 않아 아연실색했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320)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이 단지 무지로 인한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기쁨, 그것이 이책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주제가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잘 읽힌다는 점이다. 하나씩 하나씩 편견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책 읽는 기쁨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저자가 매우 친절하기에 그렇다. 저자는 우리에게 낯선 주제를 친절하게 잘 요리하여서  제공하고 있다.

 

저자의 친절함은 각주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보통의 책은 각종 부연설명을 편집상의 편의를 위해서 미주로 미루는데  비하여 이 책은 각주다. 그 페이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개념이나 사실에 대하여 바로 밑에서 자세한 해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읽다가 처음 접하는 사건이나 개념을 만났을 때 그것이 미주로 해설이 되어 있다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렇게 몇 번 잠시 책을 접고 뒤로 가서 미주를 찾아본 독자들, 불편을 참아내느라 책 읽기 어려웠는데, 이 책은 친절하게도 바로 밑에 해설을 해주어 읽기 편한 점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저자는 섬세하기도 하다. 243쪽부터 245쪽까지를 읽어보자.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의 막돼먹은 행동에 어쩔줄 몰라하는 저자의 딱한 상황이 잘 그려지고 있다. 룸메이트의 너절한 행동에 저자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조바심에 다음 페이지를 읽게 되는데, 저자는 어쩔 수 없이 룸메이트가 저질러 놓은 어지러움을 치우고 만다. 바로 그 때 이제 부엌도 깨끗해졌고 이제 내방으로 돌아가 한숨 돌릴 때면 그녀가 친구들을 데려오는 일이 징크스처럼 반복”(245)되는 상황이 전개되니, 딱하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책에서, 섬세한 글솜씨로 인하여 그녀의 딱한 상황에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니, 다른 글에서도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부엌에서 보는 이스라엘이라는 장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글쓰는 솜씨가 잘 드러나고 있다. 부엌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환경으로 넓혀나가는 저자의 글솜씨부엌이 작은 공간이라고 해서 작은 이야기가 아니다. 부엌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환경정책을 고발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태도는 실로 공분을 사기에 마땅한 일이다. 저자는 부엌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주제로부터 큰 이야기까지, 똘똘 뭉쳐진 저자의 속속들이 파고드는 탐구정신으로 발굴한 많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리고 단순한 고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또한 이 책을 매력있게 하는 요소이다. 그런 글을 써서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관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s***h 2014.10.04.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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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에는 어떻게 그들이 사는가? 앞으로는?
"그 땅에는 어떻게 그들이 사는가? 앞으로는?" 내용보기
제목과 저자의 국적을 보았을 때, 선입관에 유대민족을 편들어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손에 선뜻 잡히지 않았다. 그와 같은 성격을 지니는 글들은 많이 있었고 새로운 시각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읽다보니 관점이 전혀 다른 형태의 글이었다. 오히려 유대민족의 시오니즘을 부정적인 각도에서 보고 이야기
"그 땅에는 어떻게 그들이 사는가? 앞으로는?" 내용보기

제목과 저자의 국적을 보았을 때, 선입관에 유대민족을 편들어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손에 선뜻 잡히지 않았다. 그와 같은 성격을 지니는 글들은 많이 있었고 새로운 시각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읽다보니 관점이 전혀 다른 형태의 글이었다. 오히려 유대민족의 시오니즘을 부정적인 각도에서 보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내용이 상당한 흡인력을 가지고 나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책이 그렇게 흡족하게 읽히는 것에 감사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교섭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 졌다. 먼 미래, 아마 국제적인 압력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변해야만 진정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대중 의식의 변화가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가 큰맘 먹고 정치적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정치가 갖는 그런 실효성 때문에 정치와 정책 양상을 분석하는 작업은 두말할 필요 없이 유용하다. 글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끌어 가는데 저자의 확고한 생각이 들어있는 문장들이다. 결자해지라고, 맺은 사람들끼리 풀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즉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결단을 내리고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평화가 그 땅에 스며들게 하고 싶은 저자의 사상과 잘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을 부재자의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 당시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쫓겨나 난민이 된 사람과 또한 이주를 당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들은 자신이 오래 전부터 살아왔던 그 땅에서 살던 혹은 가자지구나 요르단 서안지구 등으로 쫓겨나 삶을 연명하거나 모두 이스라엘의 한 부분을 이룬다. 그렇게 살면서 그들은 타민족으로 인식되어 보호받지 못하고 더구나 억눌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일제시대와 비슷한 양상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권리를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평화,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소박한 삶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압제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황당한 자신들의 삶의 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비극적인 그들의 삶의 모습, 그들에게 이스라엘 건국은 마른 하늘의 날벼락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을 듯하다.

 

페사하라는 이스라엘 축제가 있다. 이 축제엔 시온주의를 미화하는 이야기가 행해진다. 이 축제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그들의 조상을 이주시킨 것을 기념하는 일로 각 가정에서 유월절의 행사와 음식나누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의식이 경건해 초대된 손님들이 힘겨움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유대민족은 이러한 일들을 통해 그들이 만든 나라의 정당성에 조금의 의문도 달지 않았으리라. 그렇기에 이러한 축제를 통해 선민사상은 더욱 공고해 졌으리라. 그러므로 유대민족이 세계로 흩어져 있다가 이스라엘로 모여온 것을 정당화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 그곳을 고향으로 인식하며 살고 있던 아랍인들에겐 너무나 황당한 일이다. 즉 그 축제는 결국 팔레스타인들에겐 자신들이 조상이 수천 년을 살아왔던 흔적지우기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이었으리라. 그러기에 이스라엘 건국이 서아시아에서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낳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당시 이렇게 된 문제는 팔레스타인이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힘이 있었으면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서 유대인의 책임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폭력적인 형태로 건설되었다는 데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이 같은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리라고 생각되어 진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경직된 모든 삶이 키부츠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없는, 집단만 존재하는 공동체 삶의 방식이 아랍인들의 삶의 터전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있고, 아랍인들이 그 땅에서 쫓겨난 후, 그 폐허 위에 세워지는 협동농장 등은 저자의 마음속에 안타까운 현상으로 인식된다.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다른 존귀한 생명들이 파괴되어 고통스럽게 된 현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말이다. 이러한 현상이 저자에겐 슬픔으로 다가온다. 또한 키부츠 세대의 이어짐은 그들을 방만하게 만들고 게으른 인물들로 만들어 가면서 노동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양산해 나간다. 이러한 가지는 것에 대한 문제점이 공산주의를 무너지게 만들었듯이 키부츠도 그렇게 되어 갔다. 그들의 나태함으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하니 아랍인을 불러들이는 현상이 빚어지고, 그것은 결국 같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아픔으로 나타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아랍계의 사람들은 자신의 땅에 살면서 노동을 착취당하는 존재로 전락해 가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팔레스타인들이 살던 땅에 이방인들에 불과했던 유대민족이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 의해서 나라가 건국되어 버렸다. 그러면 같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고 팔레스타인들은 추방과 노동 착취라는 형태로 그들의 삶이 이루어졌다. 팔레스타인들은 서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같은 계통의 아랍계다.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이스라엘이 그곳에 그렇게 들어서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이것이 오늘날 중동을 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세력이 비슷하면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가 한 쪽으로 기울면 여지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쟁은 많은 것을 황폐화시킨다. 전쟁으로 지킨 이스라엘이기에 그들도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들도 그곳에서 떠나 2 천년의 방황을 했던 민족이다. 그것을 버리고 어디로 갈 곳도 없다. 그러기에 이것은 풀길 없는 평행선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 곳에 살아야 하는 두 민족이 야기하는 갈등, 그것은 확실히 문제다. 생각이 다른 서로의 권리 주장만 이루어지고 힘으로 쟁취하려고 하는 일들이 이루어질 때 그들은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십 년 서로 싸우면서 흘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짜 문제는 역자에 해당하는, 실질적으로 그 땅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의 생활과 생존이다. 그들은 기아와 공포, 억눌림과 부자유 등이 함께하는 인권이 말살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북한처럼 같은 민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불평등이라도 문제가 되는데, 하물며 이민족으로 인한 일이랴. 지금 팔레스타인들은 최소한의 자유와 생활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마저도 무시되는 오늘날, 이스라엘은 많은 생각을 하고 그곳에 누가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일깨울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처럼 그곳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의 생존과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소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랍을 공부한 저자이기에 이처럼 색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인권의 문제에 있어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민족이 슬기롭게 공존하는 방법이 모색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j****3 2017.11.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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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정말 모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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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한 동안 미디어를 뜨겁게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책도 쏟아졌고 예전에 출간된 책이 재출간 되기도 했다.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는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짜 이스라엘에 살았던 사람이 이스라엘에는 진짜 누가 사는지 취재하고 인터뷰한 르포르타주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한창이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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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한 동안 미디어를 뜨겁게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책도 쏟아졌고 예전에 출간된 책이 재출간 되기도 했다.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는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짜 이스라엘에 살았던 사람이 이스라엘에는 진짜 누가 사는지 취재하고 인터뷰한 르포르타주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밤, 이스라엘 시민들이 마치 불꽃놀이 구경하는 것처럼 가자지구에 떨어지는 이스라엘군의 폭탄과 미사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떨어진 폭탄과 미사일로 인해 섬광이 발생하고 엄청난 굉음과 무언가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세계에 전해졌다.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온갖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사실 나는 나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만약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지금 저렇게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 그 폭탄과 미사일로 인해 죽어갈 무수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진심어린 반성과 자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신들 지금 제정신이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내 가족이 죽었다면 이럴 수 있느냐고!” 라고 그들을 향해 비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상대국이 공식적으로 정한 역사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원래 주민의 문화를 빼앗아온 자국의 역사에는 눈을 감는 일이다. 일본과 이스라엘 사이에 그러한 공범관계가 생기고 말았다는 것이 두렵다.” (p.277)

“2008년, 2012년, 그리고 2014년. 지난 6년 동안 세 번의 전쟁, 가자의 아이들은 폭격과 죽음에 둘러싸인 세계밖에 알지 못한다.” (p.13)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그녀는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일본과 일본사람들을 생각한다. 가자지구에 떨어지는 폭탄과 미사일을 향해 환호하고 박수를 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쟁은 너무나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 한 적이 없었다. 그간의 독서와 쌓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은 당연히 나쁜 놈들 이라고 생각만 했다. 이스라엘이 건국 이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땅과 생명을 빼앗아 온 역사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벌인 제국주의 역사를 병치시킨다. 나아가서 공범관계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극우단체와 세력들이 자국의 제국주의 역사와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역사 교과서를 여러 번 개정하려고 할 때마다 한국과 중국 사람들은 분노했다. 명백하게 드러난 역사마저 부정하고 왜곡하려 하는 일본의 오만함에 분노했다. 그런데, 자국의 제국주의 역사를 직접 겪지 않고 원자폭탄이 본토에 떨어진 것을 기껏해야 할아버지에게 몇 번 들은 것에 불과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역사 교과서의 일부분쯤 개정하는 것에 대해 외국(한국과 중국) 사람들이 난리를 치면서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이 황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학교에 다니면서 전쟁을 겪고,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에게 직접 아랍국가들의 공습과 탱크에 대해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우리와는 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하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단지 미디어와 몇 권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계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 엄마는 기독교도, 아빠는 유대인이죠. 저는 유대 커뮤니티 안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이에요.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저는 유대인이 아니에요.” (p.232)

“어쨌든 유대인은 다들 이스라엘로 가야 한다고 온가족이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족이 모두 시온주의자였으니까요.” (p.234)

 

지금의 이스라엘에 대한 인상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지만큼이나 단순하다. 중동에서 유일한 유대국가, 강한 군사력, 강한 예비군, 국가에 대한 철저한 충성과 사랑, 키부츠 정도? 저자가 예전에 알게 된 러시아 출신 유학생의 가족은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이스라엘인이다. 유럽의 전역과 북아프리카 러시아에서 유대인들이 몰려든 것을 몰랐다. 시온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필수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어떤 도시에서, 러시아의 농촌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해도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입식자들이 찾아와 빼앗은 것은 단순히 팔레스타인의 땅과 문화만이 아니었다. 선량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주한 이스라엘인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원래부터 자신들의 땅이니까. 야훼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비로소 도착했으니까. 원래 그곳에서, 그 땅에서 발붙이고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사는 한방에 싹~ 지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그들의 당위가 되었다.

 

 

“이집트의 유대인은,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민족의식보다 사회의 상류에 속하는 유럽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p.48)

 

책의 저자는 좀 더 내밀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알고 싶었다.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만난 후 알게 된다. 앞서 말한 이스라엘에 대해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단순한 생각들이 사실과는 많이 다른 것이라는 점에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지 않고 국가에 대한 사랑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세대에 따라 다른 경향을 보인다. 젊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그냥 내가 태어난 나라 정도?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졌던 선민의식과 어렵게 되찾은 나라와 땅에 대한 애착은 세대를 지날수록 희미해 졌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단카이 세대와 68세대를 부모로 둔 젊은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선조가 가졌던 전쟁에 대한 기억, 경제부흥에 대한 기억만큼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기까지 했다. 그간 다른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용이다. 이스라엘은 당연히 단일 민족이고 모두가 백인 내지는 아랍인과는 다른 민족구성을 가졌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스라엘에도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과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아랍인, 다른 중동의 아랍인들 사이의 갈등도 알게 되었다.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에 살고 있고 이스라엘의 젊은이들과 함께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랍인 젊은이들이 갖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또 많이 달랐다.

 

 

“입식자들은 자신들의 토지라고 주장하는 그 토지의 지속 가능한 발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입식지 자체도 팔레스타인의 토지를 빼앗아, 파괴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올리브 밭이나 과수원 위에 세워진 것이다.” (p.255)

 

분명히 이스라엘 입식자들에 의해서 땅과 문화, 역사를 빼앗기고 무분별한 개간과 개발을 통해 심각한 환경오명의 문제도 대두되었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 안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은 평화를 원한다. 마치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같은 아랍인들에게 비난을 받고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랍인만의 권리는 주장하는 게 아니라오. 아랍인이 행복하면 유대인도 행복하게 될 테니 말이오. 아랍인의 재앙은 유대인에게도 재앙이오. 이익은 공통되는 것일 게요.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아니겠소?” (p.286)

 

이익은 공통된다는 어느 이스라엘 거주 아랍인 할아버지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체에 맞지 않게 지금껏 살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변 아랍 국가들은 함께 행복하게 될 것을 꿈꿔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이스라엘과 중동을 둘러싼 각종 이권과 이해관계, 국제정세가 복잡하고 첨예하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이 분쟁에 놓이기를 원하는 세력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심각한 분쟁을 통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이득과 이익이 실제로 분쟁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면 좋으련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일까?

 

 

“원래부터 이 마을에 살던 아랍인은 이 마을에 두고 온 재산까지 몽땅 빼앗기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부재자’ 상태로 있는 것이다.” (p.303)

 

어쨌든 가장 큰 피해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같은 이스라엘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다. 분명히 같은 땅을 밟고 살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부재자’인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거듭될수록 팔레스타인 거주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금은 한쪽 구석에 몰린 상태다. 이미 그로기 상태에 빠진 상대에게 줄곧 카운터블로를 날리는 꼴이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공격이 멈춘 상태지만 언제 또 반복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가졌던 만큼의 강성한 시온주의자들은 아닐지 몰라도 어려서부터 겪은 전쟁의 기억과 배운 배타적 역사의 기억은 태도의 변화를 더욱 더디게 할지도 모른다. 당연시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이 더욱 심각하다.

 

l****h 2014.10.1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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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 - 다나미 아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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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현암사의 서평 이벤트 지원으로 읽은 책입니다. >    최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화제가 되었다. 불완전한 휴전으로 일단 진정은 되었지만, 예전부터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대립을 뉴스를 통해서 자주 접하였다. 왜 이들은 서로 불화와 대립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에 대하여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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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현암사의 서평 이벤트 지원으로 읽은 책입니다. >

 

 최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화제가 되었다. 불완전한 휴전으로 일단 진정은 되었지만, 예전부터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대립을 뉴스를 통해서 자주 접하였다. 왜 이들은 서로 불화와 대립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알아보려는 시도는 별로 가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과거 나치 독일로부터 핍박을 받고, 수천년간 방황한 끝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그들에 대한 동정심과 함께 거대한 아랍의 세력으로부터 자신들의 나라를 수호한 이스라엘에 오히려 호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중동 전쟁 당시 타국에 있던 유대인은 고국으로 복귀하여 전쟁에 참여를 하였으나, 아랍인들은 오히려 해외로 도피를 시도하였다는 편파적인 내용도 수업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오히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압박하는 시기가 도래하였으므로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그들에 대한 왜곡되거나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끝까지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조차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라는 책은 이스라엘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켜주는 존재라 생각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이 책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치 상황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유일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진 유태인이 세운 국가이기에 어쩌면 이 책의 질문에 대한 답은 유태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책을 완독한 시점에서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잘못된 것인지 알게 해준다. 또한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 책에서 여실히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이스라엘의 어떤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전체적으로 저자인 다나미 아오에의 시선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왜 저자는 이러한 시선으로 책을 집필한 것일까? 우선 저자는 시리아에서 아랍 문학을 공부하다가 이스라엘로 건너가서 이 책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는 점이 하나의 열쇠가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그녀는 시리아에서 공부를 하면서 아랍에 대하여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로 이웃의 이스라엘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스라엘에 체류하면서 그들에 대하여 연구한 내용을 바로 이 책으로 펴낸 것이다. 또 그녀에게서 엿볼 수 있는 역사의식도 이 책의 집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여진다. 바로 이스라엘의 모습에서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식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처럼 직접적으로 분쟁 지역과 접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 시절에 이웃 나라에 가한 폭력적인 전쟁 행위와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극단적인 우익세력의 대두가 이스라엘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느끼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는 아랍에 대한 친근감과 일본의 과거 역사 행위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무장한 저자가 편향적인 시선으로 쓴 책일까? 사실 서문에서 미리 저자가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밝혔다는 점은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음을 밝힌 것이라 생각된다. 도리어 그러한 관점과 의식을 감추고 책을 쓴다면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미리 그러한 부분을 선언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자신이 이스라엘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서술하면서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생각을 이끌어낸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독자가 판단할 사항이다. 이 책이 저자의 편향적 시선에 의한 책인지 아니면 실제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인지를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이스라엘에는 유태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랍인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태인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시오니즘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건국한 이스라엘에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아랍인은 자녀들을 많이 낳기 때문에 유태인은 그러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부분에서 벌써 나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지를 느끼게 된 것이다. 아무리 유태인이 건국한 이스라엘이지만, 원래 그들이 건국하기 이전부터 살고 있던 아랍인들을 간과하고 있던 것이다. 나 자신도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에 무의식적으로 세뇌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이스라엘은 자신의 국경을 조금씩 확장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과 대립을 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내부에 존재하는 아랍인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면서 격리시켜 최종적으로는 국외로 추방하는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유태인과 그들로부터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아랍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저자가 곧바로 경험할 수 있었던 사례가 눈길을 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히브리어가 아닌 아랍어의 사용은 비주류로 취급받는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인 언어로서 이스라엘은 오로지 히브리어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심지어 동양인인 저자가 손님으로 대접받다가 아랍어로 말을 하는 순간 묘한 경멸감을 내비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아랍인이 겪는 모멸감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내부의 아랍인은 병역의 의무도 수행할 수 없다. 병역이 단순히 의무로만 끝난다면 큰 문제가 없으나, 이스라엘에서는 병역을 수행한 사람에게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것은 아랍인에게 차별적인 수단으로 적용되고, 이스라엘이라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만든다. 즉, 이스라엘은 아랍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통제당하고 하층민의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가장 기본적인 거주에 대한 차별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스라엘이 건국의 과정에서 기존의 팔레스타인을 쫓아내면서 그들의 재산을 부재자재산이라 하여 마음대로 처리를 하면서 원래 주인이었던 아랍인들은 토지를 잃고 도시의 외곽 지역으로 쫓겨나고 유태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심지어 저자는 시오니즘에 의하여 해외로부터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로 이민을 온 사람에게 그들로부터 빼앗은 토지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대하여 역겨움을 토로하고 있다. 저자가 인터뷰한 이스라엘의 아랍인은 유태인과의 공존을 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태인에세 더이상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들은 이러한 바램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유태인은 그러한 요구에 대하여 그들의 건국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시오니즘에 근거하여 무시를 하고 있다. 제3자가 바라봐도 극명한 차별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유태인에게 화해와 공존의 제스쳐를 취하는 아랍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이스라엘에 의하여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조각상도 아랍인 단독으로 만드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여서 형식적으로 이스라엘 조각가와 협력을 하여 만들고, 거기에 '공존'이라는 단어를 새겨 넣은 것도 아랍인이라는 사례를 보아도 이스라엘의 태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소수가 아닌 소수 민족 아랍인.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정책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일반 유태인에게 아랍이라는 단어는 경멸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아랍인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차별이 아닌 정당한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 저희가 '소수자'라고 불리는 것은 잘못되었어요. 현재의 이스라엘 인구 통계에서 보면 확실히 소수자이긴 합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역사적 과정을 그렇게 숫자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유대인을 단일민족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폴란드계 유대인, 루마니아계 유대인, 이라크계, 이란계, 모로코계, 이런 식으로 유대인 중에도 다양한 민족성이 존재하고, 각각이 소수자로서 이스라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수파인 유대인과 소수파인 아랍인이라는 이항 도식은 성립하지 않죠." - p. 310 -

위의 말은 유명인이 말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길거리에서 만난 한 아랍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이스라엘의 아랍인이 요구하는 것이 과연 거창한 것인가?

 

 구약성경의 한 구절과 역사 속에서 핍박을 받고, 2차 세계대전에서 경험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동정심을 바탕으로 건국된 이스라엘.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다. 수천년간 고난을 받은 민족이 원래 자신이 살던 땅에 나라를 세운 것이 이스라엘이라 생각되었지만,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타민족을 배척하는 강력한 시오니즘을 신봉하는 그들에게 어떻게 공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자국의 아랍인에게 가하는 차별대우는 나치 독일에 의하여 다윗의 별을 달고 게토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였던 그들의 과거를 고스란히 재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랍인이 요구하는 공존이 약자이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는 주장이고, 강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념인 시오니즘에 의하여 주변국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통용될 수 밖에 없는 모습인가?

 이 책 한권으로 이스라엘을 모두 표현했다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실이 정말 저자의 편향적인 시선에 의한 것인지 실제 이스라엘의 현실을 다룬 것인지는 아마 이 책을 다 읽은 독자에게 남겨진 또하나의 생각해봐야 할 과제일 것이다.

g*******7 2014.10.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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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한 나의 기대평에는 이스라엘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과의 영토 분쟁과 종교적 분쟁으로 잠잠할 날이 없는 나라이면서도 이전에 우리가 책에서 배워왔던 키부츠와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한 의무 징집제와 공동생활체에 대한 기억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나라라고 했다. 주위에서 유대인을 볼 수 없고 종교적인 믿음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사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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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한 나의 기대평에는 이스라엘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과의 영토 분쟁과 종교적 분쟁으로 잠잠할 날이 없는 나라이면서도 이전에 우리가 책에서 배워왔던 키부츠와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한 의무 징집제와 공동생활체에 대한 기억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나라라고 했다.

주위에서 유대인을 볼 수 없고 종교적인 믿음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사실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초중고 시절 역사나 사회시간에 배운것 밖에 없는것 같다.

커가면서는 쉰들러의 리스트와 2차 세계대전중의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홀로코스트를 피해 독일 땅을 벗어나고자 했던 민족이고 아인쉬타인을 비롯한 키신저등과 같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사람들 만을 기억할 뿐이다. 지금도 세계 경제의 대부분을 유대인들이 쥐고 있다는 뉴스등을 접한것 외에는 특별히 아는바가 없는것 같다.

나는 2년전 우연한 기회에 호주에 살고 있는 유대인 대학생 한명을 홈스테이라는 형식으로 1개월간 같이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서툰 영어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유대인에 대해 설명을 들은 바가 내가 아는 유대인에 대한 지식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학생의 말로는 아프리카에도 유럽에도 아시아에도 유대인이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흑인중에도 유대인의 핏줄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유대인이라는 민족 아니 부족이 되는 기준이 무었인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성경상의 이야기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닌가? 그런데 여러 인종이 섞여 있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와 전 후에 홀로코스트와 유럽인들의 핍박을 피해 이주한곳이 현재의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한다. 도서중의 이스라엘의 연대기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한 준비가 1890년대 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히 시온주의파들이 그런 바램을 옮긴것으로 이해된다.

시온주의란 무엇인가 ?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유대인 지식집단들이 추구한 팔레스타인 이주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주지역이 팔레스타인 지역이었을까? 이는 성서에 기초를 둔 사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유대인들의 근원지는 어디인가? 이 도서를 읽으면서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역사적으로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해도 현재의 이스라엘은 어떠할까? 이 도서가 나에게 주는 답변일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에는 유대인들만이 생활하고 살아가는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근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땅 밑에 파놓은 팔레스타인 지역과의 연결 땅굴을 모조리 없애버렸다는 뉴스와 더불어 땅굴의 존재의 조사크의 저널리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에 땅굴이 필요했던 원인을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 도서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국민이면서 팔레스타인에 친척과 가족을 둔 아랍인들이 그들과의 교통을 위해 파 놓은 것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랍인이 이스라엘의 국민이 된다는것......

일본인으로서 이스라엘에 유학하면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바를 정리한 것이라 어느 정도 사실적인 측면에서 한쪽 측면으로 치우쳐 있을것이란 생각을 저자가 애초부터 서문에 적어 두었기에 편중된 사실도 있을 수 있을것이란 생각을 하였지만 사실을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저자의 관점에 편향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

이전의 일본 아니 현재까지의 일본과 이스라엘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아랍인과 한국인에 대해....

이렇게 이스라엘의 현재를 통해 일본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저자의 입장이라면 나로서는 객관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저자가 바라보는 이스라엘에 대해 객관적 사실일까라며 반론을 제기할 수 있고 문제점을 지적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모든 관점이 옳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그것이 나에게는 사실이 될것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저자는 이미 나에게 많은 지식을 알려주었다.

아랍인 배두인과 유대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그들 사이의 종교....영토분쟁...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대립의 형국으로 갈때 그 속에서 고통받아야 할 아랍인들의 고통이 우려되고 언제나 이런 문제들이 평화적으로 해결될지......

l*****7 2014.10.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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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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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탈무드, 유대인의 교육방식 등등 좋은 이미지, 위대한 이미지만 떠오르곤 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가슴 아픈 사건들도 있다. 학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지혜로운 민족, 토론을 좋아하는 민족, 민주주의 국가 등등 그들의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내가 알고 있고, 느끼는 '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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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탈무드, 유대인의 교육방식 등등 좋은 이미지, 위대한 이미지만 떠오르곤 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가슴 아픈 사건들도 있다. 학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지혜로운 민족, 토론을 좋아하는 민족, 민주주의 국가 등등 그들의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내가 알고 있고, 느끼는 '유대인'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이스라엘 건국에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랍인들의 끊임없는 전쟁 이야기. 이 책의 주요 관심사는 부재자로서 존재하는 이스라엘의 아랍사회이다.


'부재자'란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있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동시에 그 자리에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전자는 팔레스타인 나민 그리고 이스라엘 국적을 얻기는 했지만 원래 팔레스타인에서 살았고 이스라엘이 세워지면서 그 곳에서 추방된 사람들과 그 자손을 포함한다. 후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변해버린 지역에 남아 다양한 일을 겪으며 끝내 이스라엘 국적을 얻은 사람들과 그 자손을 가리킨다. (p22)
 지은이 다사미 아오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이스라엘의 머무는 동안 관찰하고 관련자료를 훑으며 묶어 냈다. 사회, 문화를 조사하기 위해 그는 그들의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실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문화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약자의 편에 서 있는 작가의 태도는 사실 문체에서 드러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스라엘 국기'를 말하는 대목이었다. 흰색 바탕에 파란색 그리고 가운데 다윗의 별. 어찌 보면 시원해보이지만 그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시각의 폭력'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써있다. '때 묻지 않은 결벽성'을 상징하는 조합, 즉 팔레스타인을 말살하는 '소독', '무균 상태'이미지와 결부된다고 했다.
 하나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기에 아무리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자료를 모았다고 해서 공정하지는 않다. 우리가 몰랐던 부분들을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가 얄밉지 않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과거들을 그리고 지금도 소리없이 '부재자'를 만드는 일들을 하는 것을 반성하는 태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누군가는 자신들의 과거를 왜곡하여 교과서를 만들고 세계의 시선을 돌리려고 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 일본과 한반도의 역사, 수세대에 걸쳐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한국, 조선일들도 다시 만났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그의 글이 더 떳떳해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이 책을 읽을 때 한쪽으로 치우쳐서 본 것 같다. 하지만 누가 옳고 그르다를 따지기 전에 내가 보는 시선과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지녀야 겠다.
k*******7 2015.03.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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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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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와 이스라엘에 유학했던 저자가 이스라엘을 들여다 본다고 했는 데...   시리아에 유학, 아랍문화을 즐기던 저자.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잇던 저자가 이스라엘에 유학하면서 좀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내용은 좀 산만하다. 이스라엘의 정치,사회,문화를 아주 조금 이해한 이야기, 일본과 이스라엘을 비교해 보는 수박겉핧기  정도. 정치도, 사회도,문화도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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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와 이스라엘에 유학했던 저자가 이스라엘을 들여다 본다고 했는 데...

 

시리아에 유학, 아랍문화을 즐기던 저자.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잇던

저자가 이스라엘에 유학하면서 좀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내용은 좀 산만하다.

이스라엘의 정치,사회,문화를 아주 조금 이해한 이야기,

일본과 이스라엘을 비교해 보는 수박겉핧기  정도.

정치도, 사회도,문화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들여다 보지도 못하고 예기는 끝난다...

 

일본과 이스라엘이 비슷할 지 모른다.

죄책감을 못 느끼고, 가해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잇지 않다.

누가 뭐래도 둘다 가해자가 명백하고 , 하나는 과거형인 데 비해 하나는 현재진행형일 뿐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국가들을 독립시켜 주면서,

아무 고민없이 인종이나 역사에 관계없이, 책상에서 지도에 선을 그어 독립시켰듯이,

영국의 수상 디즈레일리가  무심코 저지른 게, 몇억의 아랍권에 크나큰 고통을 주고 있을 뿐

이스라엘내부에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회를 들여다 봐야 뭔가 해결책은 없다.

집없는 노숙자한테 집을 주고, 명의이전해 줫는 데  그 사람이 미쳤다고 나가겠는 가...

 

주제를 집중해서 일본과 이스라엘의 가해자 심리와 배경에 대해 고찰을 해 보던 지..

결론은 없는 산만한 예기가 되 버리고 말앗다..

 

 

YES마니아 : 로얄 d******3 2014.11.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