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이다운 작가가 있을까? 그의 작품 어디에도 젊은이들이 머릿속 가득, 가슴속 가득 채우고 있을 법한 고뇌들이 넘치도록 가득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그만큼 젊은이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젊은 작품을 꼽는다면 나는 "데미안"을 꼽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젊은 작품이 있다면 "수레바퀴 아래서"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가장 젊은 작품이 아니냐고? 아니, 그래도 나에게는 여전히 "데미안"이 가장 젊은 작품이다. 나에게 이 작품은 젊은 작품이라 하기에는 "젊은"이란 표현이 이상하다. 그저 "젊은 작품보다 더 젊은 작품"이라 해야만 할 것 같다. 나의 표현력의 한계때문에 이 말을 어떻게 이해시킬지... 이 작품 특유의 젊음에 공감해본 사람은 이해할까? 그것도 개인차이가 있으니까... 어쨌건 헤세의 작품이 교훈성이 충만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히려 젊은 시절에 만나면 많이 고뇌하게 하고 많은 혼돈을 일으키는 아픈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헤세를 만나보지 않은자와는 젊음을 논하고 싶지 않아진다는 것이 그의 작품을 강하게 추천하고픈 이유이다. |
|
책을 접하게 된 것은 논술학원의 과제 때문에 처음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인지조차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이 책을 한 번 더 읽게 되었을때 나도 주인공과 같은 고 민을 하던 나이여서 그런지 공감이 갔고, 성인이 되어서 책을 다시 읽어보아도 읽을 수록 새로운 것을 느끼고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
| 수레바퀴 아래서... 이 책 안에서 교장선생님이 한스에게 말한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머리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한스는 머리도 좋고 성실해서 자신이 원하던 학교에 가게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진정으로 그 학교가 좋아서.. 간절히 원해서 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주변에서 강요했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한스는 2등이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학교에 합격되어 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그는 하이너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른친구를 또 사귀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하이너가 한스가 무너지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스는 그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결국 학교를 떠나버리자 한스는 말라가는 꽃송이처럼..점점 시들어가는 것이다.. 왜 다른 친구를 사귀고 즐겁게 지내지 못했을까.. 왜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걸까.. 그가 삶을 포기하게 만들고.. 결국은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 같던 아버지..선생님들...그들은 한스라는 한 소년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한스의 재능만을 사랑했던 것이다. 결국 한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마을로 돌아왔지만 죽음을 택하게 된다. 나는 이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며칠동안 우울하게 지냈다. 정말 나도 한스처럼 수레바퀴에 깔리게 되는것은 아닌지.. 너무 공부공부하며 능력이상을 기대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에게..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왜 이 한스라는 재능있는 소년이 죽음을 택하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
|
중,고등학교때 데미안, 지와사랑의 저자 헤르만 헤세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고 유명한 작가이다.나또한, 그의 작품을 몇 개 읽었으나 '수레바퀴 아래서'는 처음 읽는 것이라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영리하고 성실한 아이가 사회의 요구와 기대에 길들여지면서 결국에는 힘들어하다 슬픈 최후를 맞는다는 이야기의 구성에서 솔직히 대가라고 일컬어지는 헤세의 글이 그리 감동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죽은 시인의 사회'와 뭔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성장기 아이들의 고뇌와 갈등을 다루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역시 글 중간중간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묘사한 독일 시골 마을의 자연 풍겨은 한 폭의 그림을 본 듯 여운이 남는다. [인상깊은구절] 주위는 아주 조용하였다.다리를 건너가는 마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고 뗏목 기둥에 물이 닿아서 빙빙 도는 낮은 소리만이 들렸다.물레방아의 덜그덕거리는 소리도 여기서는 아주 멀리 들릴 뿐이었다.그리고 하얗게 거품이 이는 독의 조용하고 그침 없는 소리만이 평화롭고 서늘한 졸음을 가져다 주는 듯 울려왔다. |
| 어릴적 누구나 한번쯤은 똑똑한 아이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 시절을 지나면 결국 다른이와 같아지지만... 이 글의 주인공인 한스는 똑똑한 아이라는 인식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일대기를 그린 것만은 아니다.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는 한 인간의 고뇌와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사는지를 되묻고,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죽었는지,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 서정적인 면만을 느끼고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난 지금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또, 난 누구를 위해서 사는가? 라는 짧지만 대단히 심오한 이런 질문을 각자에게 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끔씩 마음이 급해지고 일에, 시간에 쫓겨다닐 때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
| 해마다 몇번씩 읽는 책이지만, 항상 이 생각이 난다. 불쌍한 한스. 완벽함을 추구하는 주변인물들의 희생양, 혹시 내가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그는 안쓰럽다. 그가 태어나서 원하는 걸 몇번이나 해 봤을까... 나에게 기억나는 것은 오직 시험이 끝난 후 처음으로 한 낚시다. 정말 그에게 그만의 인생은 없는 것일까... 헤세는 이 글을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만의 한계를 넓혀간다. 한살이면 한살만의 한계-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열다섯살이면 열다섯살의 한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스는-물론 내 생각뿐이지만-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동안의 스트레스, 자신에게 쏠리던 기대, 친구를 빼앗아간 사람들, 자신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는 부모. 모든 것이 그에게는 짐이었다. 헤세의 글을 읽고 나는 자살충동까지 느꼈다. 나도 언젠가 한스처럼 되지 않을까... 차가운 개울물에 빠져 유유히 홀로 떠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헤세는 분명 사람들에게 자살충동을 심어주려 글을 쓴건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자신의 한계를 좀 더 넓히라는 그런 뜻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