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여 년 전 겨울, 남해금산의 정상 근처에 있는 부산여인숙에서 묶은 적이 있었다. 칠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네가 깔밋하게 끓여낸 된장국도 된장국이겠지만 특별한 조미료도 없이 나물을 버무린 솜씨도 보통이 아니시구나 하는 생각으로 음식 칭찬을 드렸더니, 노인은 대뜸 “ 맛이라니요? 에구 그런 말씀 마셔요. 손님이 시장하시니 그렇지요” 태연하게 말을 받는다. 말투엔 일체의 호들갑이 없었다. 다른 손님들도 맛있다는 말씀 많이 하시더라구요, 하는 정도의 은근한 자기 선전도 없었다. 맛이 있긴 뭐가 맛이 있냐, 맛이 있다면 모두 당신의 시장기 탓이라는 거였다. 허름한 상위에 놓인 음식들이 노인의 심성만큼이나 담백하게 느껴졌다. 십중팔구는 소슬하기 마련인 겨울 여행길에서의 하룻밤이 모처럼만에 푸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영어 단어 ‘companion'도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말에서도 ’한솥밥을 먹는다‘는 관용구는 가족을 의미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섭식 행위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먹음’의 행위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성을 회복한다. 물론 모든 먹음의 행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에 좇겨 허겁지겁 먹는 패스트푸드는 허기를 때운다는 수단적 의미 그 이상을 가지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일상적 현실이 아무리 우리에게 ‘빠름’을 강요한다 할지라도 음식을 먹는 행위만큼은 반자본주의적으로 한 번 에둘러 갈 필요가 있다. ‘밥’의 종국적 귀착지는 사람이다. 사람의 몸이 밥을 받고, 사람의 마음이 밥에 반응한다. 밥을 주는 사람의 마음과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밥상머리에서만큼은 수다나 너스레도 좀 떨어 보자는 이야기다. 배도 불러보고 마음도 좀 불러보자는 것이다. 꼭 이 정도의 ‘음식론’을 지지하는 독자라면 김형민이 소개하는 『마음이 배부른 식당』에 들러볼 일이다. 김형민의 식당에는 식도락가의 품위 있는 미각을 채워줄 만한 ‘럭셔리한’ 메뉴는 없다. 그 식당에는 자장면, 감자탕, 콩국수, 콩비지, 돈가스, 만두, 수제비, 삼겹살, 매운탕... 시장통의 한 구석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을 법한 음식 일색이다. 김형민은 흔하디 흔한 음식 속에서 흔하지 않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 이야기에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그 마음에 다시 몸이 움직인다. 그런 사연을 가진 음식이라면 어디 한 번 먹어보자 하는 호기가 발동하는 것이다. |
| 몰랐는데, [AM7]에서 연재되었던 글모음집이다. [AM7]때 부터 그의 에세이를 읽었던 친구의 집에 있길래 읽게 되었다. 처음, '냉면 속 고향'이랄지, '추억을 구워드립니다' 등의 글제목들을 보면서 다소 간지러웠다. '가난' 과 '과거'를 컨셉포장한 책이야 팬시 테마 레스토랑이 라이프스타일의 퀄리티와 동일시되는 '웰빙 시대'가 아니더라도 늘 있어왔던 상술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박한 손맛을 강조하다가 전통과 장인정신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겠지, 하며 읽어 나가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감탄한 것이 저자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풀어 내려가는 솜씨였다. 여기 소개된 맛집들의 음식처럼 담백하고 맛깔스러우면서도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거나 구태의연한 미덕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이 나라 소시민들의 삶과 정치와 문화 뒤켠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답지 못한 것을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게 골라내는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알고 보니 PD 이전에 여러 권의 에세이를 출판한 '작가'였다). 방위 설움은 방위만이 알아준다고, 방위들의 아지트에서 펼쳐지는 하루의 정경을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 낸 <방위들의 천국>을 보며 킬킬대다가도, 지방 콤플렉스를 사심없고 순박하게 드러내는 삼합 아줌마가 주인공인 <삼합으로 어우러지기 위하여>를 보면서는 가슴이 애잔해지다가, 급기야 조선족 할머니와 콩국수 할아버지간의 정겨운 실랑이가 벌어지는 <고집 센 콩국수>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면 오바일까? 아무리 소재가 좋더라도 넘치는 문체였다면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처럼 몇 페이지 못 가서 물려버렸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절제와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해 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책 한권 읽고 정말 좋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사귄 것 같은 경험은 흔치않은 것이다. 몇달 전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를 여행하다가 한 동네에서 우연히 십여 년간 동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음식점에 들른 적이 있다. 여행객으로선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푸짐하고 맛좋은 음식과 주인과 손님들, 테이블과 테이블, 일행과 일행의 경계가 없어 보였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부터 걸음마를 간신히 뗀 아이까지 허물없이 즐겁게 어울리는 그 곳을 나오며 우리 나라에도 이런 터줏대감같은 주인과 사랑방같은 공간이 아직 있을까, 싶었는데 이 책에서 해답을 찾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뒷면에 소개된 소개 맛집들의 전화번호 리스트가 있는 것을 보고 환호했다. 내가 사는 근방에도 한 곳이 있다는 사실에 이번 주말에 식구들과 한번 가 봐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
| 한나절 공들여 책을 읽어버렸다. 쉬는 법 한 번 없이... 좋은 차(茶)는 향내를 음미하며 느껴야 맛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고, 좋은 사람은 시간을 두고 조금씩 이해해야 진국을 우려낼 수 있다지만, 목마른 자에게는 다도(茶道)의 절차보다 수분공급이 우선일 수 밖에 없을 터이니, 정이 고픈 사람이 어찌 진국이 다 우려질 때가지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입천정 데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후루룩" 책을 둘러 마셔버렸다. 체면이니 염치니 하는 허례 나부랭이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스무살 약관의 나이에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던, 세파의 잔인함에 주눅들어 "꼬꼬댁" 소리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던 20여 년 전의 촌닭과 그 촌닭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던 이웃 어르신들이 책의 한 소절 한 소절 안에 그렇게 살아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난 20여 년.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객지생활 속에서 이따금 영혼의 배고픔을 왜 느끼지 않았겠는가. 그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삭막한 세상의 갈증을 날려보내 주는 맑은 영혼의 기억들이. "방을 구하신다? 작아도 된다면 우리집에 방이 하나 있긴 한데... 일단 살아보고 맘에들면 눌러 사시게. 방값은 그때 가서 결정하기로 함세." 길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촌놈의 딱한 사정을 듣자마자 미아리 달동네 그 전망 좋은 한 평 반짜리 쪽방을 선선히 내 주시던 자취방 주인아저씨. 그렇게 시작된 서울생활, 주인 내외의 보살핌으로 나는 외로운 서울생활 2년을 버틸 수 있었다. 북에서 혈혈단신 월남, <일일공부>를 배달하시며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게 유일한 낙'이라 하시던 그 모습이 여전히 건재하셨으면... "돈이 없어야? 그라먼 당구를 치지 말아야제. 정히 치고 잡으먼, 일단 실컷 놀고 다이하고 공은 깨끗이 닦아놓고 가거라. 그라먼 되제! 그란데, 너들 오늘 데모는 다하고 왔냐?" 전라도서 상경하여 정릉 큰길가, 시내버스 2번 종점 넓은 터 한켠에 자리한, 인심만큼 넓다랐던 학교 앞 당구장. 친구들 모두가 어머니라 불렀던, 꼭 우리 어머니같던 그 할머니의 온화한 미소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시는지... "미남! 아까 낮엔 안보이던데... 점심은 먹었어? 이거 갖고가. 참, 집에 냉장고는 있어? 없으면 주인댁에 부탁해서 냉장고에 좀 넣어달라고 해. 국물 흐르지 않게 조심하고!" 볼 때마다 군대간 아들같다며 사위삼아야 겠다며 농담을 건네시던, 다른 아주머니들 몰래 김치며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시던 학교 구내식당 아주머니의 싫지않은 반찬보따리가 그립다. 따님은 어떤 도둑에게 보쌈 당하셨는지, 바라시던 바대로 사위는 미남으로 얻으셨는지, 지금도 예쁘게 단장하고 봄 꽃놀이 다니시는지... 책을 읽으면서 줄곧 지나간 추억과 그래서 묻혀있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부모님에 버금가는 그분들의 한결같음이 오늘의 나를 키워내셨을 것인데... 모두다 묻어놓고 살아야만 했던 그날들의 추억들을 새삼 깨닫게 해준 [마음이 배부른 식당]. 참으로 안타가운 경험일 수밖에... 책을 덮으며, PD라는 직업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것참 매력있는 직업이 아닌가. 이렇게 푸근한 마음의 본원을 찾아 헤메는 동안 그는 얼마나 보람되고 산뜻한 생활을 만끽하였을까. 학창시절도 아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시골 가마솥에서나 "폴폴" 풍겼을 법한 사람냄새를 실컷 맞고 다녔다니 적잖이 부러운 직업인 것을... 누구보다 먼저 PD선생 본인이 몸소 그 따뜻한 풍광들을 실컷 체험할 수 있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직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최소 30년 전통쯤은 돼야 취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오만함이 차라리 일리있어보이는, 그의 너스레가, 그 애교가 맘을 가득 채운다. 아, 이를 어쩌랴! 마음이 배부른식당들, 영혼을 밥먹이는 이웃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이 나라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30년 후에도 아니,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 맥빠진 마음에 데운 술 한잔 기꺼이 대접해 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여전히 건재하기를 염원한다면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하지만 내 어찌 뿌리칠 수 있겠는가. 마음이 배부른 식당이 넘쳐나는 이 나라를, 영혼의 꽃내음 진동하는 이땅을 내 아들딸들과 함께 살아보고싶은 이 마음을. 생각만 하여도 영혼이 배부른 그런 한세상을 꿈꾸는 어리석음을. 그 따뜻한 그림들을, 내 마음의 고향들을... |
| 맛집 가이드 서적은 '시골 하늘의 별만큼' 많다. 하지만 냄새와 풍경까지 전해주는 책은 '서울 하늘의 별만큼' 드물다. 리얼코리아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맛집들을 소개했고, 방송이 끝나니 책이 나왔다. 뻔한 수순 아닌가. 내용도 뻔히 짐작되지 않는가. 그러나 서점에서 이 책이 내 눈길을 끈 건 통속적이게도(!) 추천사 때문이었다. 띠지에 적혀 있는 노회찬의 추천사를 보고 처음엔 픽 웃고 말았다. 맛집 가이드 서적에 이렇게 진지한 추천사를 써주다니 참 오지랖도 넓은 사람이로군. 아니면 출판사나 저자와 무슨 커넥션이 있나? 어쨌든 그래서 펼쳐본 책의 목차는 제법 그럴싸하게 보였다. 그리고 선 채로 '고집 센 콩국수'라는 한 꼭지를 읽었다. 어라? 주택가에 숨어있는 초라한 국수집의 어느날 하루 풍경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다니, 참 별 일 아닌가. 사실 책 내용보다는 나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어 한 권 샀다. '바보들의 감자탕'까지 읽고 나니 그제서야 노회찬의 외도에 대충 수긍되는 바가 있었다. 김형민이라는 이 사람, '정치적으로 올바른' 맛들을 찾아다녔던 거로군. 모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독서였다. 그리고 약간은 특별한(특이한?) 독서였다. |
| 사람들의 미각이 갑자기 발달한건지, 아니면 불경기에 내수 경기를 살리는 방법으로 식욕을 자극하기로 한건지, 요즘 사방에 맛집을 소개하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배부른 식당'은 절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신장개업한 식당에서는 나오기 힘든, 역으로 이야기 하자면 오래된 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과 따뜻한 마음이 어우러진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가장 가슴에 다가온 에피소드는 자신이 잘 가던 작고 허름한 (하지만 맛은 좋은) 미래의 장인 어른을 모시고 갔던 이야기 였다. 나 역시 미래의 장인 어른과 몇번 식사를 했지만, 언제나 가격만 비싸고 맛을 느낄 수 없었던 자리 였기에, 조금은 나와 익숙하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그 맛이 검증된 작고 허름하지만(역시 맛은 좋은) 그런 식당에서 그 분을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받는 즉시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몰아친 꽃샘 추위에도 가슴이 훈훈해질만한 책이었다. |
| 예전에 시청자의 위장을 농락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된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종종 있었다(지금도 있나?). 볼 때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요란스럽게 먹어대던 그들의 입에 거짓이 담겨 있지 않은가?였다. 본인이 불신사회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 게시판이나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곳을 가보면 ‘그 집 가봤는데 맛 없다’, ‘불친절하니깐 더 맛 없다’, ‘양은 적고 가격만 비싸다’, ‘방송국에 어떤 로비가 있었는가?’라는 글들을 꽤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도 있는데 가서 먹어보니 평범했다. 맛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척도 중의 하나이니깐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길을 가다 가끔 보이는 ‘어느 방송국에 소개된 맛집’이라는 간판들을 보면 머리 속에 물음표, 느낌표 백만스물한개가 둥둥 떠다닌다. 맛의 향기보다는 돈 냄새가 더 나는데 어쩔 수 없다. 그냥 가는 길 계속 걷는다. ‘요리왕 비룡’이라는 에니메이션을 보면 ‘요리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 있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하물며 아이들이 즐겨 보는 에니메이션에도 철학이 담겨있는데, 수 십년이 녹아 있는 장인의 요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고작 맛이란 말인가? 오락성에 찌든 방송의 가벼움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것 같다. 사실 맛만 따진다면 엄마의 음식을 따라 올 수 없다(물론 예외는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이전과는 차별화 된 성격을 지닌다. 맛보다는 사연, 인생, 철학, 마음을 퍼주는 식당들을 소개한다. 식당이라기보단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소개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먹는 장사가 남는 장사’라고 현대 사회에 있어서 음식점이란 상업성이 빠질 수 없는 경제활동이다. 그러나 욕심이 있었다면 나눌 수 없는 것이고, 철학이 없었다면 깊이가 없었을 삶이 아닌가.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은 음식이지만,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마음 뿐이란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훈훈한 인정을 엿볼 수 있다. 좋은 내용을 담은 좋은 책인데, 조금 불만족스러운 점은 저자가 PD라서 그런지 카메라를 들이대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인터뷰를 하고, 장면을 설명하고, 마무리를 짓고… 방송에서 보던 그대로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사실적이고, 현실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어서 어쩌면 이 책의 성격에 잘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용의 빈약성을 드러낸다. 분량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듯(마치 방송시간처럼) 이야기를 하다 말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설마 그것이 전부라고? 읽다 보면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접어야 하는 사태를 맞이한다. 많은 이야기를 소개하려는 저자의 욕심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더 듣고 싶은 나의 기대가 커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짧아서 더 좋을 수도 있고, 간결한 메시지만을 전달해서 좋을 수도 있겠지만,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먹는 것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소화 능력에 따라 그 시간이 좌우된다. 위에 들어 갈 수 있는 음식물의 양은 대략 2리터라고 한다(‘스티프’ 메리 로취 저). 그 이상을 먹으면 위가 터진다. 인간의 욕심은 우주의 끝까지 도달할 만큼 무한한대 겨우 2리터라니 좀 허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인생의 단골이 되어 찾게 되는 그 식당들에서는 생물학적 시간은 무의미하다. 게다가 마음의 배부름은 누적되고 영혼에 각인되어 이렇게 책으로도 널리 퍼진다. 마음은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심그릇의 크기를 가늠해 보면 알 것이다. |
|
2년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느끼게 만든 <썸데이서울>의 저자 김형민씨가 쓴 또다른 책이다. 구성이나 문체는 대동소이하다. SBS '리얼코리아' PD였던 글쓴이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꼈던 뒷얘기를 풀어놓는 식인데,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사람냄새'다. 글쓴이는 고된 삶의 한 가운데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는 사람과 음식, 그들에게서 피어오르는 향기로서의 '맛'을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스토리를 살떨리지 않도록 적당한 '냉소'와 버무려 유쾌하도록 맛깔나는 문장으로 비벼낸달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이런 글일 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