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다문화 인물 시리즈 - 7 <다문화 인물 시리즈>는 대한민국도 다문화시대로 접어든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다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기획된 책이라고 합니다.
![]() 들어가는 말 첫 번째 김충선 장군을 만나다 1. 우리는 가깝고도 먼 사이? 2. 녹동서원, 그곳에는 3. 그림 속 할아버지가 말을 건네셔! 두 번째 김충선 장군님, 당신은 누구신가요? 1. 항왜 사야가, 외로운 귀화인 김충선 2. 임진왜란, 그 참담한 전쟁 3. 임진왜란이 그를 조선으로 이끌다 4. 일본인 사야가, 조선인 김충선이 되다 세 번째 김충선 장군님, 감사합니다! 네 번째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가 되기 위하여
![]()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은 임진왜란 개전 후 조선에 투항하고 귀화한 일본 장수 김충선 장군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 난과 전투에서 공을 세워 벼슬에 오르기도 했으며, 그가 쓴 <모하당문집>을 통해서 조선을 사랑하고, 동시에 고향을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답니다.
![]()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너무 큰 슬픔을 안겨준 나라입니다. 우리에게는 일본이라는 인식이 반일감정으로 나쁘게 남아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고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모습 속에서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랍니다. 하지만 모든 일본인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바로 역사 속에서 김충선처럼 일본인이지만, 스스로 조선의 장수가 되어 일본과 싸웠던 분들도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장군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대구의 녹동 서원, 김충선 장군이 쓴 시집인 <모하당문집>, 항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등과 함께 김충선 장군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신의 나라가 아닌 조선에 와서 새롭게 조선인으로 살아간 김충선!! 선조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사야가에게 "바다를 건너오 ㄴ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라는 의미를 담아 김 씨 성을 주고, "충성스럽고 착하다"하여 충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조선이란 나라에 충선을 다했기에 이름 역시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며 "외로움"을 느꼈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조선이 외국인인 그에게 주요 관직을 제공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 조선에 힘이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김충선 장군이 더욱 겸손하고자 했으며, 주변 사람들과도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한 것처럼 서로 다른 다문화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며 다문화 친구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 초등학교 친구들에게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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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부모님과 역사 여행을 떠나는 쌍둥이 윤서와 윤지는 녹동서원에 들어서고, 잠시 차로 이동한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김충선 장군과 이야기를 하면서 김충선 장군에 ? 대해 이야기 해줄 여러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김충선 장군에 대해 알아갈 수있었다 ? ? ? 사가야 장군과 평생 함께한 경호무사 켄토와 ? 김충선 장군의 부인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선조임금과 김응서장군을 만나면서 임진왜란의 시대에 일본 장수였던 사가야가 볼모로 부모와 처자식을 잡혀 조선을 침략하고 귀화하면서 총에 대해서도 조선에 알리게 되고 조선의 삶을 살아가야했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일본이 아닌 조선을 사랑하고 일본이름 사가야를 버린 이야기까지 사뭇가슴이 아려왔다 ? ? ? 다문화로 이루어진 우리 옛시대를 생각하면서 다문화를 생각해봐야겠다 ? #김충선#작가와비평#다문화인물시리즈#서평이벤트#서평단모집#노자은 ? ? #김충선 #작가와비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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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물 시리즈에서 어쩌면 가장 의미있고 현재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에 귀순하여 참혹한 전쟁을 끝내는데 도움을 준 김충선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민족과 국가,그리고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진정한 조선인이기를 원했던 김충선의 이야기를 통해 다문화 시대에 개인의 신념과 선택을 존중하는 가치를 아이들에게 전파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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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사야가는다이묘인 주군을 따라 조선출병에 참전했으나, 평소 조선의 문명을 동경하였으며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이 거느린 병졸들을 이끌고 귀순하게 됩니다. 그 후 많은 전공을 세우며 김씨 성을 사사받고 지금의 경북 가창면 일대에 그의 후손들이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죠. 한일갈등이 심각한 현재 되새겨 볼 역사적 사례로 아이들에게 많은 귀감이 될 것이라 봅니다. |
![]() 코로나19로 학교와 학원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초등 고학년이라 걱정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말이에요. 특히 한국사공부는 미리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요즘 아이들과 한국사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어보는 중이랍니다. 특히 작가와 비평에서 출간한 다문화 인물시리즈를 통해 몰랐던 우리 역사를 다시 한 번 만나는 중이랍니다. 이번에 읽어본 책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입니다. 일본과 우리는 역사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늘 감정이 좋지 않은 나라인데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죠. ![]() 이번에 등장한 친구들은 윤지와 윤서 쌍둥이 자매 ! 저희집에도 쌍둥이는 아니지만 연년생이라 윤지와 윤서처럼 매일 티격태격이라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뜨끔하게 한마디 하기도 했어요. ㅎㅎ 윤지와 윤서는 부모님과 함께 모하당 김충선 선생을 기억하며 세운 서원인 대구 늑동서원에 방문을 하면서 그림속 김충선할아버지와 만나게 되지요. ^^ 일본 이름은 사야가인 김충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지휘하던 장수였어요. 장군은 명분없이 침략하려던 전쟁을 알고 있었기에 조선의 우병사였던 김응서 장군에게 글을 보내 귀화를 요청했다고해요. 당시 장군의 나이는 22세였다고 해요. 어린 나이에 조선으로 귀화한 장군은 조선군을 훈련시켜 부족했던 군사력과 전투력을 높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 다문화시리즈를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 사람들이지만 부족한 나라에 힘이 되고자 사랑을 베풀고 희생했던 많은 분들로 인해 지금 우리가 존재함을요. 전쟁 속에 또 전쟁이었던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에 큰 도움이 된 인물 김충선을 만나면서 지금까지도 복잡한 일본과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 속에서도 김충선 장군처럼 우리나라와 좋은 인연이 있었던 분들도 많이 계셨을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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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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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귀화한 모하당 김충선 장군을 그리며 기억하기 위해 정조 13년에 세웠지만흥선대원군이 치워 없애라는 명령을 내려 1884년에 사라지게 되었어요.시간이 흐른 후 1914년에 다시 세울 수 있게 되었고,좀 더 이후인 1971년에 원래의 장소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현 위치로 옮겨 늘려 지었답니다. 이 지역 안에는 겹쳐마 팔작지붕의 강당과 겹처마지붕의 녹동사, 향양문,그리고 임진왜란 4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신도비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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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은 중앙대학교 청소년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관계,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현재 관련 대학 강의와 연구를 진행 중이다.<한국사회의 소수자들 : 결혼이민자>,<한국사회와 다문화>,<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다문화 한국사 이야기>를 썼으며, <청소년의 신뢰 : 구체적신뢰, 일반신뢰, 공적신뢰>,<청소년 다문화수용성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국내 거주 중국 동포 청소년의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질적 연구>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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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선 장군은 조선 시대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로 귀화한, 조선의 문물을 사랑한 사야가라는 일본인 장수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의 삶을 다문화 시대에 맞춰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이시도의 전제는 첫째도 둘째도 김충선 장군은 외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조선은 외국인인 사야가에게 주요 관직을 제공하고, 그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외국이인 사야가는 김충선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국가에 힘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고, 그러면서도 더욱 겸손하고자 하였으며, 주변인과의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녹동서원과 김충선 신도비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귀화한 모하당 김충선 장군을 그리며 기억하기 위해 정조 13년에 세웠지만, 흥선대원군이 치워 없애라는 명령을 내려 1884년에 사라지게 되었어요. 시간이 흐른후 1914년에 다시 세울 수 있게 되었고, 좀 더 이후인 1971년에 원래의 장소에서 100m정도 떨어진 현 위치로 옮겨 늘려 지었답니다. 이 지역안에는 겹처마 팔자지붕의 강당과 겹처마지붕의 녹동사, 향양문, 그리고 임진왜란 4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신도비가 있습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218로 ) 일본은 당시 조선의 부산성을 침략하기 위해 조총부대를 준비시켰는데, 그 선봉장으로 사야가, 즉 김충선 장군을 내세웠단다. 사야가 장군이 이번 전쟁에 찬성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일본군 지휘부는 장군의 가족을 볼모로 잡고 장군에게 출병하여 이 침략 전쟁을 이끌 것을 협박했어. 상부로 부터 그러한 명령을 받았을 때 장군님은 조선으로 귀화할 결심을 하신 상태였단다. 이미 가족은 볼모로 잡혀 있었고,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험한 전쟁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출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 결국 조선으로 귀화하셨고, 이후 일본군을 상대로 한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셨단다. 이 사실이 일본에도 전해졌지. 일본 입장에서 배신자인 자신의 가족을 일본에 있는 다른 장수들이 그냥 놔둘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군님은 단 한 번도 일본에 건너가지 못하셨어. 사야가는 왜군들에게서 가져온 조총으로 조선군을 훈련시켜 조총부대를 만들었어요. 그는 자신감이 덜어진 관군을 격려하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참여한 의병들을 끌어들여 부대를 새롭게 훈련시켰어요. 이때 조총의 사용법뿐만 아니라 조총과 화약 만드는 기술을 전했답니다. 이후 조총으로 장비를 갖춘 조선의 군사들은 겨우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군과 비슷하게 맞서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답니다. 평생 학문을 닦으시며 후학을 양성하셨다. 그리고 조선에 오신지 50년이 흐른72세에 제2의 고향인 조선에 묻히셨다.
김충선 장군은 일본의 가족을 등지고 조선에 정착하면서 안타까운 조선군사의 조총과 화약등 만드는 기술 사용기술을 알려주면서 임진왜란을 같이 치룬 조선의 장군이였다. 가족의 미안함으로 일본에 가보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을 보내시면서 후학을 양성하시는데 힘쓰신 분이시다. 헌데 일본사람이란 이유로 많이 알려지지않아서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너무 즐거운 독서였다. 우리나라를 지키기위해 많은 분들이 희생하신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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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의 제목은 <조선을 사랑한 일본장수 김충선> 입니다.
<작가와 비평>출판사에서 펼쳐낸 다문화 인물시리즈 중 일곱번째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노자은 님으로 관계,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관련 대학 강의와 연구를 진행중이시라고 하네요. 일단 제목부터가 띠요요요용~~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 일본 장수가 조선을 사랑했다니.. 흐음.. 이 무슨.. 그래서 더욱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윤지와 윤서 쌍둥이 자매입니다. 부모님과 떠난 역사 여행에서 대구의 '녹동서원'을 방문하죠. 이 곳은 모하당 김충선 선생의 그리며 기억하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정조 때 세워졌지만 흥선대원군이 없애라는 명령을 내려 사라지게 되었고 이후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고하네요) 그림속의 김충선 할아버지와 만나게 된 자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지요. 김충선 장군님의 일본 이름은 사야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지휘하는 장수였지요. 이 전쟁이 아무 명분이 없는 침략전쟁임을 알고 있었기에 당시 조선의 우병사였던 김응서 장군에게 글을 보내어 귀화를 요청하였고(당시 나이가 22세였다고 합니다...와...) 귀화 후 그는 조선군을 훈련시켜 전투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외국인이면서도 조선의 장군이 된 김충선. 선조는 전쟁에 큰 공을 세운 사야가에게 '바다를 건너온 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는 의미를 담아 김씨 성을 주었고, '충성스럽고 착하다'하여 충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름 그대로 평생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함께 예의와 염치를 가풍으로 삼고 살아간 김충선 장군님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일본인일수도 한국인일수도 있다는 생각을요. 귀화를 했지만 그렇다고 귀화하기 전까지의 삶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조선이 외국인인 그에게 주요 관직을 제공하고 그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수 있도록 해준 동시 그 또한 자신을 받아준 조선에게 힘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더욱 겸손하고자 했으며 주변사람들과도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요. 서로 다른 문화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문화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배워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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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물시리즈 10권 중, 저는 다섯 권을 읽었는데, 모두 재미있더라고요. 역사 속 인물을 정해서, 그 인물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가다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적 배경 지식도 탄탄하게 배울 수 있더라고요. 또, 책 속 주인공 어린이들이 꿈속에 휘말려 들어가 역사속 인물들을 실제로 만나고 오는 설정들도 실감나서 장면에 몰입하여 더 집중이 잘 되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나머지 다섯 권도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노자은 글, 이은혜 그림, 작가와비평)
이 책의 주인공 윤지, 윤서 쌍둥이의 가족은 주말마다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살아있는 역사를 배우는데, 이번에는 녹동서원에 가서 김충선 장군에 대하여 배웠어요.
김충선 장군님은 이순신 장군님과 같은 시대를 사셨던 분이예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강력한 무력을 통해 세계 대륙을 정복해야겠다는 야심을 품고, 일단 가까운 한국과 동맹을 맺어 중국을 치려고 계획했지요. 그러나 한국은 동맹을 맺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런 싸움을 왜 해야 하는지, 왜 도와야 하는지 우리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였겠지요. 거절당한 일본은 화가 났을 것이고, 일단 한국을 쳐야겠다고 생각했겠지요.
일본은 사야가 장군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쳐들어와서 제일 먼저 부산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 장군이 바로 김충선 장군입니다. 김충선 장군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피난 가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껴요. 전쟁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던 본인의 뜻을 더욱 확고히 했어요. 그리고 항왜, 즉 한국에 항복한 일본인이 된 것이죠.
한국에 항복한 일본인 장수가 한국인 병사를 이끌고 일본군대와 싸워야 하는 장수로 변한다는 게 참, 양쪽 다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편이었는데, 이제는 우리에게 총을 겨누다니... 하면서 일본군도 황당했을 것이고, 일본말을 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이끄는 장수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하는 우리 군대의 내부 사정도 분열이 살짝 있지는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래도 진심은 통하는 법! 왜군에게 가져온 조총으로 조선의 전투력을 높이니 장군에 대한 믿음도 높아졌겠지요. 전쟁이 끝난 후, 선조왕은 벼슬도 내리고 한글 이름도 선물했대요. 그 이름이 바로 '김충선'
윤서와 윤지는 여기에서 배운 내용들을 바탕으로 정리하여 다음 날 학교에서 발표수업을 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역사 현장에서 김충선 할아버지 그림 속으로 들어가 직접 듣고 온 이야기를 발표까지 하게 되다니, 윤서와 윤지의 머리 속에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역사의 기억이 될 것 같아요. 역사 속 인물과 함께 역사도 배우고, 다문화의 의미와 사랑, 그 소중함도 함께 느끼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