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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형조 좌랑 이었던 강항이 일본의 포로로 잡혀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당하다가 1600년에 귀국할 때까지 적국의 실태와 그들의 생활상을 낱낱이 기록한 것으로서, 우리의 국익에 보탬이 될 만한 것들을 조정에 보낸 내용들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상황을 일기로 작성한 ‘역사앞에서(창비)’를 읽어본지가 꽤 오래되었다. 전쟁은 국가간 이루어지지만 그 피해는 오롯이 국토안에 살고 있는 일반 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어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최고 권력가인 이 책에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선비인 강항이 일본에서 적국의 상황을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제도, 일반 백성의 상황, 포로들에게 알리는 격문, 환란생활의 비참한 상황, 일본 장수들에 대해 성격의 장단점과 이력까지도 기록하였다. 그만큼 조선의 입장에서는 적국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록이었다. 그동안 안네의 일기 등 외국 서적만 탐독했지만 한국에 이런 소중한 기록물이 있었다는 것에 작은 흥분이 일었다. 특히, 전쟁의 환란을 자세히 묘사한 부분은 현재 읽어도 가슴이 미어지고 원통스러운 부분도 있다. 사내며 계집이며 이놈 저놈이 서로 뒤섞여 질펀히 쌓인 시체가 산을 이루고, 하늘도 울부짖고 바다도 흐느끼는 성싶었다(192쪽). 가련(可憐)이는 둘째 형의 아들이다. 올해 여덟 살이다. 얼마나 목이 말랐던지 갯물을 들이켰는데, 그 길로 병을 얻어 토하고 설사하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런데 이놈들 봐라! 앓는 놈을 안아다가 물 속에다 내 던졌다. “아버지! 엄마! 아버지! 아버지!” 부르다 부르다 겨워 그 소리마저 물 속으로 사라졌다(196쪽).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출정장병들에게 이런 엄포를 놓았습니다. “사람마다 귀는 둘이요 코는 하나야! 목을 베는 대신에 조선 놈의 코를 베는 것이 옳다. 병졸 하나에 코 한 되씩이야! 모조리 소금으로 절여서 보내도록 하라.” 적괴는 산더미같이 실어 오는 코를 일일이 검사한 다음에 북문 밖 10리만큼 되는 데(현재 교토의 이총)에 쌓아 산 하나를 만들었으니 동포의 참변을 호소할 곳조차 없습니다(63쪽).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한 전쟁의 참화를 보는 것은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밖에 없지만, 이렇게 직접 그 생생한 현장을 눈으로 목도하고, 피붙이를 코 앞에서 직접 목격한 목격자의 진술은 그 만큼 전달하는 파괴력이 커진다.
<교토의 코무덤, 출처 : http://blog.daum.net/mokwon100/13736714 > 지금도 교토에는 코무덤(鼻塚)-비석에는 귀무덤(耳塚)이라고 되어있으나 이름이 너무 야비하고 잔인하다고 하여 원래 코무덤에서 귀무덤으로 바뀌었다고 함-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당앞에 방치되어 있다. 소금에 절인 코무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을 때 죽은 것을 알지 못하도록 몸 속에 소금을 넣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강항은 지도자가 주위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실력으로 인재를 등용하고 상벌을 해야 함도 건의하고 있다. 문관인가 무관인가에 국한하지도 마시고,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로 준례를 삼지도 마셔야 합니다. 역량있고 담대한 인물을 고르되 왜놈들과의 실전에서 공을 세운 이를 삼아야 합니다. 공이 있으면 등급만 올려주고 허물이 있으면 자격만을 깍아 버리십시오. 중상모략이 한 아름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가 실전에서 패하여 성을 빼앗기는 일이 일어날 때만 비로소 처벌하십시오(46쪽) 조선은 파벌간 줄서기 폐해가 많기에-지금도 그렇지만-그 폐단을 없애기 위한 충언도 하였다. 그러나, 그무관 출신이 시를 짓는 것을 보면서 놀라는 장면은 어쩔 수 없는 그도 선입견을 가진 사람임을 인정하고 있다. 여하튼 이 책은 포로의 눈으로 전쟁의 참화와 일본인 적국의 지리, 역사, 인물, 문화 등을 기록한 것으로서 |
| 이 책은 조선주의기의 성리학자로 이름 높은 강항의 정유재란시 일군에 의해 납치 일본 억류 이야기와 그가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조정에 보고한 문헌들을 엮은 책이다. 강항은 일본 억류시 후지와라 세이지에게 성리학을 전수해서 일본 성리학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끼치기도 한 인물이다. 아무래도 이런 전후사정 대문인지 강항의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좀 치우친 점이 없지않아 있다. 일본의 문화에서 취할 정점이 없진 않을진데, 그의 논평은 무시와 조소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국력과 사정을 논하거나 적장인 히데요시에 관해 이야기 할때는 그러한 무시속에 숨겨진 은근 한 저력과 배포에 관한 감탄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1998년 작고한 이을호의 1984년 번역을 재 간행 한 것이다.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보리 출판사간 박지원의 열하일기 번역에 대한 찬사가 들려오지만 아직 열하일기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을호의 번역도 그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해학적인 구어체를 섞어 번역한 이 책의 번역은 최상급이었다. 서해문집 오래된 책방 씨리즈 중에 하멜표류기와 함께 가장 만족도가 높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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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화 '명량'이 10일 자로 관객수 1000만을 돌파를 앞두고 있다. 공교롭게 요즘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것이 한 중 일의 역학관계의 역사를 더듬어 지금을 되돌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 공부할 자료도 많다. 그와중에 간양록을 구입해놓고 있던중 명량의 영화를 보고와서 간양록을 펼쳤다. 강항선생이 정유재란당시 (1597년) 남원에서 군량 보급에 힘쓰다 피신하게 되어 왜적에게 끌려가 일본에서 3년간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임금에게 편지로 쓴 내용이다. 그 이후 귀국하여 또 승정원에 나가 올린글도 있다. 옛 역사를 현시대에 와서 추측하여 쓴 글이 아니고 바로 그 당시 강항의 눈으로 본 사실이 쓰여져 있어 가공되어 지지 않는 느낌으로 글을 읽었다. 기존 책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살짝 살짝 느껴지는 그 당시의 실제 성리학적 사고방식. 요즘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시대이기에..
왜 놈... 도요토미 헤데요시 일본내의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키며 명의로 가는 길을 트고 인도까지 가겠다는 전쟁~ 그로 인한 백성들의 환란의 세월~ 그때도 왜의 백성이나 조선의 백성은 희생양이었다. 기득권의 안녕을 위해 모두가 희생당했던 세월 지금은 그떄 보다 나은 세상이겠지?~
1. 1번은 장소성 전투 (오다 + 도쿠가와 vs 타케다)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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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일본군에게 잡혀 일본에 건너가 4년간 포로생활을 했던 강항의 기록.
여전히 당시 일본을 굉장히 무시하는 태도(이건 지금도 여전하다만)와 그 사이에서 약간의 반성의 기미를 느낄 수 있는 책. 임진왜란은 (조선의 입장에서) 당시 국제정세에 둔감하던 조선시대 양반들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더 큰 책임은 임진왜란 이후에 있지 않나 한다. 조선이 지나온 시대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책봉-조공' 체계의 외교가 핵심을 이루던 시기였으니 군비 지출에 많은 힘을 쏟아 부을 필요도, 또 그럴 여력도 없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왜'가 조선을 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꿈이었을테니. (몇몇 징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문제는 전쟁을 겪은 후다. 조선은 당면한 문제들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정당화'하는데 모든 힘을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의 주장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단계(혹은 경지?)에 이르렀으니. 물론 당시 조선사회에서 그런 식의 해결책(?)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충격도 아니고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된 전쟁을 겪고 나서의 해결책이 극단적인 복고주의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도 존재하는 '옛날이 좋았지~'라는 복고적 낭만주의의 기원이 여기인걸까?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 ㅎ)
포로로 잡혀 갔다가 결국 귀국하지만, 당시 강항은 적지 않은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이다. 대놓고 비판은 하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이 책은 강항의 제자들이 엮어서 낸 책이다.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하는 강항의 원제를 고쳐서 책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역시 기록하는 자, 그 기록을 전하는 자, 또 그 전해진 기록을 읽는 자. 이 셋의 삼각관계는 여전히 단순하지 않다. 어떤 기록이든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100%의 객관성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다만 각자의 주관성이 시대에 따라 타당성을 달리 가져가는 것일 뿐.
이런 이야기가 역사에 대한 비관론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르게 생각하면 '진리'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재미있는 규칙 아닌가!
어찌됐든,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인 강항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마련. 포로가 되어 생활하던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렇게 기록을 남겨놨던 인물임을 보면 역시 그가 '먹물'은 먹물이었나보다. 정말 임금과 나라를 위해 기록을 했을 수도 있고, 또 행여나 귀국을 하게 되었을 때 뭔가 변명거리 한두 개는 있어야 했을테니. 그리고 가장 중요하면서도 뻔한 사실. 당시 먹물이 포로가 된다고 해서 할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억울해도 글쓰기요, 그리워도 글쓰기요, 부끄러워도 글쓰기요, 변명을 해도 글쓰기였을 터.
최근에 나온 간양록으로는 '서해문집'에서 나온 바로 이 간양록과 '보리'에서 간양록이 있다. 서해문집의 간양록은 이을호 선생의 번역으로 꽤 오래전의 번역이지만 되려 읽는 맛이 있다. 간간히 사진이나 그림도 추가되어 있어 보기에 편하다. 보리에서 나온 간양록은 북한의 국문학자인 김찬순 씨의 번역으로, 무난하게 번역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원문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가격이 2배 이상 비싸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나는 서해문집의 것을 사고, 보리의 것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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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뜻과 생각이 멀고도 깊기 때문에 절조와 의리를 중히 여겼는데 요새 와서는 뜻은 바쁘고 생각은 좁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만을 중히 여긴다라고 남헌 선생은 좋은 말씀을 하셨다. 인격자란 닥쳐오는 운면에 제 몸을 털 오라기처럼 여기고 마음은 구두쇠같이 간직하여 죽고 사는 일을 제 마음대로 못하는 수도 있겠지만, 절조와 의리는 나 하기에 달렸다는 태도를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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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을 통하여, 조국을 떠나 이방땅에서 억울한 삶을 살아야만 햇던 이가 바라본 조국의 그리움이 묻어 나는 역사 이야기, 한편 당시 좀 더 객관적으로 조국의 정세를 바라볼 수 잇는 기회를 가졌던 이의 역사 이야기. 이런 역사를 통하여 좀더 다른 시각에서 당시의 상황을 유추 해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