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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서평을 쓰기 위해 20여일 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웃기는 사람일까, 할 일 없는 사람일까? 어쩌면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이야기는 지금 쓰려고 하는 [다 빈치 코드의 진실]에 관한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 글을 쓰는 나의 심리상태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시골사람(촌놈)인 나는 선물과 초코파이의 유혹에 이끌려 아주 어려서부터 교회를 들락거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교회가 주는 풍요와 친구를 찾아 나섰던 것이 전부였는데, 차츰 전도사님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 분이 쥐어주신 파란 껍질의 신약성서 한 권을 받은 후부터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크리스찬>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세례도 받았고, <주의 종>으로서의 활동에도 열심히 임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서울의 기업형 교회들에 실망하여 <기독교 독학생>을 자처하며 줄곧 살아오고 있지만, 비록 삶 자체를 성서(聖書) 대로 살았노라고 말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성서의 도덕적 기준에 맞춰 살려고 애써 왔노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서양인이 쓴 소설 한 권을 접하면서 이렇게 혼란에 빠지게 될 줄이야...!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DVC)]를 접했을 때,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그럴싸한 근거와 재기발랄한 구성들에 이끌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독서를 끝냈을 때는 허구 세계 저편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허전함을 채우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고, 내 종교의 뿌리를 확실히 하고 싶다는 생각때문에 문제의 [다 빈치 코드의 진실]이라는 이 책에 손을 대고 말았다. 우리 집안의 <족보>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느꼈던 긴장감과 거의 동일한 무게의 그것을 느끼면서...
소설 [DVC]에 관한 모든 궁금증들을 한데 모아, 묻고 답하고 또 반박하기를 거듭하는 600여 페이지...
정론과 이론(異論)이 서로를 뒤집어 가는 논증과 자료들 그리고 그 <입씨름>들은 나에게 복종과 인내를 요구했다. 이정도 분량의 책을 읽는다는 것, 정독을 하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수 십시간을 투자해야만 완주할 수 있는 여러 차례 거듭되는 마라톤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 읽을 수 있을까?' 약간의 두려움도 앞섰지만, <지적 호기심>은 두려움을 깨치는 폭발력을 갖고 있었다. 그 추진력으로 한줄한줄 색을 입혀가며 조용히 그리고 찬찬히 책을 섭렵해 나갔다.
감사하게도 책은 [DVC]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참고가 될만한 사항들을 낱낱이 나열하고, 그 의미와 해석들을 철저히 <해부>하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와 잃어버린 복음서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성립 과정, 템플 기사단과 시온 수도회 그리고 오푸스 데이, 레오나르도의 생애와 작품들... 마치 <기독교>라 불리고 있는 종교의 뿌리를 캐려는 듯, 각종 사료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SECRETS of the CODE(원제)]를 읽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 내용이 단순한 역사의 차원을 뛰어넘는-내가 마음으로 신뢰하는 어떤 것에 관한 것이고, 또 그 내용 속에 나의 신뢰를 깨트릴 수도 있는 또 다른 <진리>가 숨겨져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하는 독서는 두렵고 살 떨리는 경험일 수 밖에.
마치 얇고 투명한 얼음판 위를 조심조심 걷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되돌아 가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들어와 버린 빙판 위. 미끄러질 수도 "풍덩!" 빠질 수 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며 여기까지 왔기에 돌아가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그래서 또 앞으로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빙판 아래 물이 깊다고 느끼면 느낄 수록 조여드는 긴장감...
다행히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고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쪽 발쯤은 이미 빠져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철저히 복종하고 받아들였기에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나의 종교적 정체성. 그 속에 오류가 없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이미 한쪽발은 빠져버린 게 아닐까?
크리스찬이 되어있는 <나>에게 묻는다.
"너희 조상 <단군>은 신화 속의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왜 <예수>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한가?"
"그 외국인 때문에 <이단>이 되어버린 너희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머리말에 쓰여진 댄 버스틴(엮은이)의 한 마디가 다가온다.
"자료는 내가 제공하지만, 판단은 읽는 이에게 돌린다"는...
조용히 묵상한다.
"주여, 믿음(信仰)과 역사(歷史)는 결코 나란히 설 수 없는 것이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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