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트릭"이라는 일본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사람들을 홀리는 미신 같은 트릭들을 주인공들이 과학과 논리를 동원하여 밝혀내는 추리극이다. 여기서 주인공이 상대하는 대상들은 종종 상당히 비과학적이고 비문명적인 집단으로 묘사되곤 한다. 과학은 문화마저도 경계짓는 도구인 것이다. 색도 다분히 문화적인 것이 아닐까?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옛날에는 없었던 색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블루, 색의 역사"에서 본 것처럼 옛날 유럽에서 청색은 존재하지 않는 색이었다. 청색이 ''발견''된 이후에야 문화적으로 의미가 부여 되었다. 파란색에 비한다면 빨간색은 훨씬 그 역사가 깊고 의미가 다양하다. 빨간색의 의미에 대한 이책에서의 탐구를 보고 빨간색이 상징하는 의미의 넓은 폭 때문에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대에 빨간색은 태양의 색으로 통했다. 그리고 쇠의 색깔로 통했다. 태양은 하늘이며 신과 같았다. 쇠는 땅에서 나는 것이고 철분이기 때문에 피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들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빨간색은 곧 생명으로 통했다. 이렇게 고대에 빨간색은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것이었으며 생명을 관장하는 중요한 색이었다. 그런가하면 중세에는 빨간색은 권력과 욕망의 상징이었다. 중세까지도 유럽에는 검은색, 흰색, 빨간색이 주류를 이루었다. 빨간색은 그리스도의 피의 색과 통하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인지 빨간색은 권력을 가진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빨간 구두"에서처럼 빨간색이 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빨간옷을 입는 여자는 창녀로 통하기도 했다. 그래서 빨간색은 욕망이나 에로티시즘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근대는 혁명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란색이 청교도의 색이었다면 빨간색은 혁명하는 이들의 색이었다. 아마 빨간색 자체의 성질이 혁명과 들어맞았고 의미상 혁명이 피와 결부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혁명과는 전혀 반대편으로 느껴지는 자본주의 역시 빨간색이 주도했다. "코카콜라"를 위시한 자본주의 선두주자들은 빨간색을 광고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소비를 부추겨왔다. 산타에게 빨간옷을 입힌 것 역시 겨울에 콜라 매출이 감소하는 것의 대안으로 산타를 내세웠던 "코카콜라"라 하지 않던가. 태양(하늘)/ 쇠(땅), 권력/ 욕망, 혁명/ 자본주의. 이렇게 역사를 통해 빨간색에 부여되어온 의미는 대립적이어보인다. 이런 것을 보면 색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자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어떤 의미라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파란색의 의미 폭이 좁은 반면 빨간색의 의미 폭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도 있을 것처럼 넓은 것은 각 색깔이 갖는 역사의 길이와 그 의미 폭이 비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색의 의미가 문화적인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을 던졌던 것이다. 진중권이 "미학오디세이"에서 텍스트와 이미지가 공존하는 책 구성에 있어서는 자신이 선두주자임을 자신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책은 그 구성이 "미학오디세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시 같은 작품들을 끌어와서 빨간색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색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이야기를 가볍게 만드는 것 같았고 마치 책의 분량을 늘려보려는듯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전에 읽었던 파란색의 의미를 탐구했던 책과 비교해서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