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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목적을 네 가지로 나눠보면 어떤 종류의 글이건 대부분 그 안에 넣어 구분하는 게 가능하다. 작가가 네 가지 목적 중 특히 어느 한 가지를 꼽아서, 이를테면 '나는 미학적 열정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서 쓴다'라고는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읽는 이의 느낌과 감상을 근거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많이 알려져 있는 '조지 오웰'선생의 <나는 왜 쓰는가>에 글쓰기의 네 가지 목적이 나와 있다. 오웰 말고도 다른 전문가가 글쓰기의 목적을 분류해 놓았을 수는 있겠으나 아마 다른 목적을 찾아낸다고 해도 조지 오웰이 꼽은 넷 중 한 가지 목적에 일부가 포함되거나 여러 개에 중복으로 걸쳐있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학적 열정과 돋보이고 싶은 인정욕구, 역사에 무언가 남기고 싶은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 이렇게 네 가지 이유로 모든 작가들은 글을 쓰게 된다. 나는 조지 오웰의 책을 세 권정도 읽었는데, 그의 글이 주는 재미와 매력에 푹 빠질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소설이 참신하고 흥미로웠다고 말할 정도의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지 오웰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는 모든 글을 정치적 목적으로 썼다. 적어도 1936년 이후에는 말이다.
정치적 목적이라는 게 그리 거창한 이념이나 혁명적 행동을 선동하는 그런 글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글. 이것이 정치적인 목적의 글이다. 좋은 세상에 대한 모양과 색깔은 저마다 제각각일 테니, 정치적 글이라고 해서 모두 숭고하거나 존경할 만한 글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치적 목적의 많은 글들이 공론의 장으로 나오고 그것이 저마다의 논리와 장점을 가지고 서로 일합을 겨루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미학적 열정은 자신이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글에 담아 사람들과 나누려는 욕망이다. 예술적 글쓰기라고 말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거다. 존재의 근원을 묻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행위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서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진화적 관점이 전적으로 맞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린아이조차도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특성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고통은 피하고 쾌락을 좇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키의 글은 '미학적 열정' 쪽에 가까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을 오래전에 몇 편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의 감상을 복기해 보면 소설도 그랬던 것 같다. 한 개인이나 어떤 현상, 또는 특정 사건은 저마다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대개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모습만 보게 되고 더 깊게 보려는 노력을 특별히 기울이지는 않는다. 하루키는 한 발자국 더 다가서서 깊게 그리고 오래 보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쉽게 보지 못하고 놓치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글이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그리고 달리는 행위에 대해서 넓게 그리고 오래 들여다보고 거기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굴해낸다. 나는 하루키와 같은 '미학적 열정'의 글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 예술품을 감상하고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 특성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거니까. 그러나 나는 조지 오웰과 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본능이 인간을 지배하지만, 이성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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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이든 아니든 우리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달리다보니 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꾸준히 비가오나 눈이오나 달렸죠 책에서 처럼 너무 과하다 다친다는 주변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매일 10km를 러닝앱에서 확인하고야 출근했습니다 처음엔 살좀 빼볼까로 시작한게 체중조절이되면서 그 효용성이 습관의 틀로 만들어지고 사업의 실패라는 인생의 고비에서도 그래 내가 당장 할수있는거는 오늘도 그냥 달리는거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매일을 달렸습니다. 그런 새벽달리기가 정말 제앞에 많은 그리고 모든것들을 극복하고 일어서게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치열하게 60대 인생을 현장에서 살고 있지만 저자가 중요하게 말씀하신 심폐체력 최대산소섭취량 모두 제 또래 최상이라고 합니다. 계절마다 느꼈던 세상만물의 변화도 달리는자 만의 느낌으로 잘 표현해주셔서 준비하시는 분들께도 큰 동기부여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달리기를 주제로한 많은 책을 봤습니다 유튜브도 많이보구요 근데 이책에서는 달리기의 목적과 왜 달려야는지를 명쾌하게 사례중심의 사실들로 설명한 책이였던거 같습니다 어떤 달리기책에서도 몰랐던 처음으로 알게된 내용들이 많았고요 저자가 의사이신데 의학지식에 문학적인 서사가 읽는내내 저역시 달리며 느꼈던 공감과 앞으로도 계속 달려야하는 분명한 이유를 알게됐습니다! 주변에 같이 달리고 있는 많은 분들과 달리기를 준비하고 계시는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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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환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은 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인용된 문구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무언가에 몰두할 때, 어떤 일에 집중하게 될 때, 흥분되고 즐겁고 마음 한 켠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요즘 책에 다시 빠져들고 있다. 넷플릭스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이 있는 삶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책으로 나를 안내해 준건 운동이라는 사실은 또 센세이션하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출근한다. 근육량과 하루 먹은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내일의 운동시간이 빨리 돌아오길 기다린다. 십여 년 전 예스 블로그를 하면서 1년에 수백권을 읽었던 시절, 책만 있으면 세상 걱정하나 없었다. 책을 읽고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때의 독서들이 현재의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풍파도 겪었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고통에도 내몰린 적이 있었지만, 너무 아무렇지 않게도 나는 재기에 성공했다. 다시 일어났고 지금은 매일이 너무 행복하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것이 부유해졌고 풍요로와졌다. 고명환이 요즘 티비에 자주 보인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고 모진 풍파 다 이겨내고 그가 한 말은 책 속에 모든 답이 있다는 말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길이 보이고 책을 읽다보면 책이 알려준다고. 그런데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지금의 나 역시 과거 미친듯이 읽어대던 책으로 인해 현재의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덧없는 행위에 너무 시간을 낭비하고 살았다는 자각 때문이다. 넷플릭스 세계를 빠져나오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아침 잠이 없어 새벽 4에는 일어나는데 멀뚱멀뚱 핸드폰만 며칠을 보내다가 운동을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장점은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별고민이나 주저함이 없다는 거다. 헬스장을 등록하고 1년을 열심히 다녔다. 무작정. 과체중이라 근육이 없어 뭘 해야 할지 몰라 유투브를 틀고 따라만 했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마음에 드는 유투버가 있어 본격적으로 100일 프로그램을 다운 받았다. 지금은 근육이 많이 생겨 덤벨3kg를 들고 한다. 중량을 조금씩 올리고 바벨운동까지 하는게 현재 목표다. 무라키미 하루키의 오래전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런 책을, 달리기 이야기만 주구장천 해대는 이야기를 내가 재밌어 할 줄 몰랐다. 하루키가 마라톤에 집착하고 달려야만 하는 이유가 오래살고 싶어서가 아닌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키는 방법으로 선택한 일인 것처럼, 같은 시간을 살아도 보다 생동감있게 목표를 가지고 즐겁게 사는 것이 보다 낫다는데 동의한다. -책 속에서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p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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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부터 퇴근 후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2월부터는 걷기와 달리기를 병행하며 운동 강도를 조금씩 높였다. 그러던 중, 마라톤을 즐기는 직장 후배의 권유로 YMCA 10km 대회에 신청하게 되었다. 막상 신청하고 나니 ‘10km’라는 거리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몸소 느꼈고, 두려움도 밀려왔다. 그래서 퇴근 후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센터에서 매일같이 러닝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한 끝에 4월 13일, 떨리는 마음으로 10km 대회에 출전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 광화문은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축제의 장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대회의 흥분과 설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완주하겠다’는 한 가지 믿음만으로 달렸다. 이 경험을 계기로 달리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유튜브를 보다가 정세희 박사의 《길 위의 뇌》를 알게 되었다. 러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책들에 관심이 생겼고, 20년 넘게 달리고 있는 뇌질환 전문의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달리기가 얼마나 좋길래?’라는 호기심으로 책장을 열었다. 책을 읽던 중, 강원도 맛집 탐방 출장이 있었다. 첫날 도착한 강릉에서 러닝에 관심 있는 후배들과 함께 다음날 경포호 주변 4.4km를 뛰기로 했다. 새벽 6시 30분,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경포호의 고요한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리는 순간은 말 그대로 행복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달려서 약간 힘들긴 했지만, 몸이 마치 보약을 한 그릇 먹은 것처럼 개운하고 상쾌했다. 그날의 감각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책 속에서 저자는 달리기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선물을 누릴 수 있어 좋다. 매일 다른 풀, 꽃, 나무를 만나고, 공기에 실린 냄새와 살갗에 닿는 바람, 햇살의 강도까지 몸의 오감을 깨운다. 달리는 동안 바람, 풍경, 내 리듬과 호흡이 뇌를 채우고, 머릿속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p.180) 너무나 공감되었다. 이쯤 되면, 달리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책에서는 뇌질환 환자들의 회복 차이를 설명하며, 병을 앓기 전 ‘운동을 했는가’가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달리기는 뇌 건강에 가장 효과적인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의학적으로도 명확하다. 뇌는 우리 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엄청나다. 몸무게의 2%밖에 안 되는 이 작은 기관이 전체 에너지의 21%를 쓸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뇌는 지방처럼 에너지를 저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신선한 혈액을 통해 산소와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공급받아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혈액이 잘 흐르지 않으면 뇌세포가 금방 손상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뇌혈관이 30초만 막혀도 뇌세포는 기능을 잃기 시작하고, 몇 분만 지나면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된다. 우리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뇌혈관의 총 길이는 무려 650km가 넘는다. 이처럼 방대한 혈관망이 있어야 뇌가 생생하게 깨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뇌세포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뇌세포와 혈관은 하나의 팀처럼 함께 움직이는데, 이를 ‘신경-혈관 커플링(NVU)’이라고 부른다. 이 구조는 혈류 흐름이 뇌세포 활동에 맞춰 섬세하게 조절되도록 도와준다. 즉,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뇌세포만이 아니라 뇌혈관도 같이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NVU를 튼튼하게 유지해 주는 것이 바로 ‘유산소 운동’이다. 특히 달리기 같은 운동은 심장이 더 열심히 뛰게 만들고, 폐는 더 깊이 산소를 들이마시게 해준다. 그렇게 들어온 산소는 혈액을 타고 뇌로 전달되어, 뇌 전체를 활기차게 만든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뇌혈류는 더욱 활발해지고, 뇌세포도 더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유산소 운동이 효과를 내려면 단순히 걷기만 해서는 안 된다.땀이 나고 숨이 차오를 정도의 ‘진짜 운동’이어야 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폐가 더 많은 산소를 들이마시는 상황, 이때 비로소 뇌는 운동의 진정한 효과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책에서는 ‘최대 산소 섭취량’을 강조하는데, 이건 우리가 운동할 때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산소의 최대치다. 이 수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강도가 있는 유산소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책은 중년 이후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자극을 준다. “중년이 되면 책임져야 할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몸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몸은 내가 살아온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건강하게 젊음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아프지 않을 때’ 운동 저축을 해두어야 한다. 특히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장수와 건강을 위한 최고의 선택임을 책을 통해 절감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어려운 의학 지식을 일상 언어로 풀어 설명하며, 작가 본인의 러너 경험이 신뢰를 더해준다는 점이다. 운동은 단순히 몸매나 체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체를 지키는 ‘지속 가능한 전략’이라는 메시지가 책 전반에 진하게 녹아 있다. 단순히 달리기 예찬서가 아니라, “지금 건강할 때 운동하라”는 진심이 담긴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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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잘 알지 못한다. 꽤 많은 마니아층을 보유한 일본의 유명한 작가 정도로만 안다. 작품을 읽어본 것도 없다. 다만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로 매일 꾸준히 달리고 정해진 시간만큼 직장인이 출근하듯이 꾸준히 글을 쓰는 루틴이 있고 그래서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들었다. 역시나 그의 글은 내가 상상하던 무라카미 하루키를 닮았다. 감정의 변화보다는 담담한 자기의 생각을 아주 짧은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달리기를 하게 된 계기나, 그리고 달리기를 하면서 아니 소설을 쓰면서 달리기를 시작하고 또 연마하는 과정에서 하루키는 어찌나 일상적인지! 글 속에서 보이는 하루키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달리기라는 주제보다는 달리기를 선택한 하루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많이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정말 뜬금없지만, 부인과 함께 열었던 바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썼던 소설을 통해 작가로 데뷔한 그 부분에서 어쩌면 인생의 다음스텝에 대한 작은 도전을 받았다. why not?! 더불어 글을 쓰거나 달리기를 하는 모든 것이 잘하는 것이기 보다는 좋아하고 무엇보다 자신과 잘 맞기 때문에 지속한다는 표현에서 공감이 되었다. 사실 의지보다는 자신과 잘 맞는지 여부가 지속성을 결정한다는 것에서도.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잘 맞는 것보다 견뎌내는 의지에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적으로 더 효과적인 선택을 늦출 뿐이라는 소리로 들렸다. 더 고생한다는 말로. 달리기처럼 맨몸으로 도구에 구애받지 않고, 홀로 할 수 있는 운동으로서 요가에 최근 관심을 갖고 있다. 하루키 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일주일에 3-4번씩 달리기를 뛰는 남동생을 통해서 달리기의 유익함에 대해 익히 들어왔고, 달리기만한 운동이 없으니 꼭 하라는 말도 귀에 생생하다. 최근 신경숙의 <요가다녀왔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요가를 통해 인생을 풀어낸,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듯이 요가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지속해 가는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달리기를 떠올렸다. 역시나 하루키에게 달리기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세월과 노화를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가고 완성해가는 과정인 것으로 이해했다.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인생사를 관통하는 해석의 세계관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살아가는 것으로, 또 꽤 오랜 시간 일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경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 자체도 본인의 철학을 가지고 임한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먹고사니즘이라는 더 큰 명분을 넘어서긴 힘들다. 결국 스스로 좋아서거나 혹은 잘 맞아서 오래 지속해 나가는 무엇. 그것이 인생을 살게 해주는 힘이고, 또 활력이 되는 것 같다. 삶이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걷거나 혹은 달리거나,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여정인 듯. 그러니 이미 그러하지만 더욱더 나만의 삶을 살자. 더욱 풍성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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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쓴 작품 중에 단 하나를 읽어야 한다면,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는 소지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취향을 타지 않을 거 같은 책이다. 실제로 하루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하루키에 대해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는 얘기를 몇번 들었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하루키를 꽤 존경하게 되었다. 착실하게 글을 쓰는 직업인의 모습들과 그가 운동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들을 보면 참고할 부분이 많다. 그것은 특출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간이 성실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고군분투기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위로도 받고 자극도 받는다.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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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뇌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현장에서 봐 온 사례와 함께, 뇌가 얼마나 쉽게 지치고 또 얼마나 잘 회복하는지부터 짚어줍니다. 그다음에는 달리기와 걷기 같은 움직임이 뇌혈류, 스트레스 반응, 집중력, 기억 같은 것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이 차근차근 이어집니다. 중간중간 몸의 컨디션을 만드는 수면과 식사, 통증과 부상 신호를 대하는 방법도 함께 다루고요. 뒤로 갈수록 중요한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꾸준히 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합니다. 결국 운동을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 습관으로 만들어야 뇌도 같이 좋아진다는 결론으로 정리됩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제 생활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바쁜 날에는 운동을 미루고, 대신 커피로 버티는 날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날이 반복되면 밤에 잠이 얕아지고, 다음 날 집중이 잘 안 되는 흐름이 따라왔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운동을 하면 좋다"가 아니라 "뇌가 안정되는 데 운동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었어요" 쪽으로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매일 하겠다는 계획 대신, 퇴근 후 20분만 걷고 중간에 1분씩 가볍게 뛰어보는 식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심장이 조금 뛰고 호흡이 바뀌는 순간이 생기는데, 그 다음에 머리가 복잡한 느낌이 덜한 날이 있었습니다. 또 좋았던 점은 몸의 신호를 과하게 참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해준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무릎이 불편해도 "운동은 참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는 통증을 기록하고 강도를 조절하는 쪽으로 안내합니다. 덕분에 운동을 중단하지 않고도 방식은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습관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맞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느꼈습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 이야기만 늘어놓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선택을 쌓는 방법을 계속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길 위의 뇌"는 달리기 책이면서 동시에 생활을 정리하는 책에 가깝습니다.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내 의지 문제로만 몰아가기 쉬운데, 뇌가 피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면 접근이 달라지더라고요. 건강이 걱정되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분,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서 머리가 자주 멍해지는 분, 운동을 시작했다가 자꾸 끊기는 분께 더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큰 결심 대신 작은 루틴으로 뇌를 관리하는 방법을 잡아보기에 좋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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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달리기를 좋아한다. 학창시절 중·장거리로 연습을 해오다 군에서 전역하던 해부터 몇 년 전까지 15년 이상 마라톤을 해왔다. 요 몇 년 달리기를 쉬었던 이유라고 한다면 무릎통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몇 번이고 대회 출전 도중 내가 달려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이유가 가장 컸다. 마치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고 해야 할 것 만 같은 공허함을 넘어 그 이상의 공황까지 느끼게 했다. 누군가와 같이 할 운동을 찾았지만 코로나를 거친 현재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덕분에 몸무게는 5㎏이상 급증했고, 나잇살이라고 치부하기엔 과하게 늘어지는 복부비만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드디어 8월 말에 결단을 내렸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그리고 대국민 독서챌린지에서 너무도 낯익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 책은 이미 십여 년 전에 완독을 한 바 있지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버금가는 재미없는 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달리기를 새롭게 시작하려 하는 이때, 나는 누군가의 격려라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니, 그때의 내가 느낄 수 있었던 문학적 깊이와 지금의 그것은 분명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지난 추석에 어떤 친구의 '달리기 예찬'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술자리를 마치고 주소를 물어 그 친구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이 책은 마라톤 입문서도, 특정한 건강법에 관한 책도 아니다. 하지만 긴 인생이라는 레이스를 두고 우리의 주된 직업으로부터 소소한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어떤 행위의 그러한 의미와, 달리기와 인생을 함께 놓고 들여다볼 때 이것이 가져다줄 철학적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최근에 많이 활성화되고 있는 '달리기크루'에 가입하고 활동할 수 없는 직업이기에 개인적인 달리기에 국한되어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인생을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기에 이 레이스의 여정은 내가 이끌어가는 것임이 분명하리라. 그래서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잘 다독여가며 매일같이 꾸준히 단련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은 격려와 도전을 함께 받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많은 것을 매주 저녁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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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다.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유명하다는 것은 안다. 소설만큼이나 그의 에세이가 좋다는 아니 소설보다 좋다는 말을 들었다.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독서토론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 이번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 책을 읽고 러너 혹은 마라톤에 입문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내용일까? 마라톤이 재밌고 유익하다는 말이 많을까? 나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좀 뛰게 되려나? 책을 읽기 전에는 달리기나 마라톤에 더 강점이 찍힌 책으로 생각했다. 왜 달리는지,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이유, 달리기의 효용 같은 것들을 기대했다. 물론 그런 내용들도 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는 하루키의 생각들이 담긴 책이다. 서문에서도 말한다.
글을 쓰지 않았을 때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철학들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매일 글을 쓰다 보니 하루키의 글쓰기에 더 눈이 간다. 머릿속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걸 꺼냈을 때 적힌 글은 다르다. 뭔가 이런 느낌으로 이렇게 전달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만 글로 적어두면 달라진다. 써봐야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 쓸수록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글쓰기다. 하루키의 글은 그런 면에서 대단하다. ‘솔직하게 꺼내 쓰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일단 생각이 잡히지 않는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걸 써볼까? 하고 하나를 잡아도 쓰다 보면 적히는 글이 적다. 뭔가 하고픈 이야기가 많았는데 쓰다 보면 몇 개 안 나온다. 이게 글이 될까? 싶다. 그리고 내 생각 정리가 안된다.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이게 내 생각인가? 이렇게 쓰고 싶었던 게 맞나? 하다 보면 글쓰기는 멀어진다. '난 글을 못쓰는구나'하고 접게 된다.
이 글을 읽으며 못쓰는 글을 매일 쓸 자신감을 얻는다. 나는 어제보다 약간 더 잘 쓰고 싶다. 어제의 나보다 아주 조금 더 나아지면 좋겠다. 잘 써서 쓰는 것이 아니라 못쓰기 때문에 쓴다. 잘 쓸 유일한 방법은 계속 쓰는 것이니까. 왜 나는 글이 쓰고 싶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내 안에 어떤 소리가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창작의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누구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미술로, 누구는 글쓰기로 발현된다고 느낀다. 미술과 음악보다는 글쓰기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할 수 있는 나’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니 거룩해진다. 솔직하게는 내 생각을 정리하려고 글을 쓰기도 한다. 머릿속에 엉킨 뒤죽박죽인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며 정리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아 그게 그런 기분이었구나. 쓰면서 깨닫는다. 글을 쓰며 정리하고 돌아보고 다짐한다. 글쓰기 시간은 명상의 시간과도 비슷하다. 하나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시간. 매일 이 시간을 보내고 한편 발행하고 나면 오늘숙제 하나를 잘 마친 기분이 든다. 못 쓰는 글이지만 오늘도 썼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걸려서 나오지 않는 단어들을 어쩌든지 꿰맸다. 달리기를 하듯 매일 하다보면 점점 숨쉬기 편해지고 다리근육도 붙듯이, 글쓰기 근육도 키워지리라 믿으며. 책 읽으면서 나를 본다. 이 책을 글쓰기로 읽는 모습에 요즘 여기 빠졌구나 알게된다. 쓸수록 진심이 된다. 시작은 얼렁뚱땅했지만 오래 같이 하고싶다. 하루키의 달리기가 나에게는 글쓰기이길 바래본다. 그는 멋진 소설가가 되기위해 달리기를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글 쓰며 나는 분명 즐기고 있다. 그것으로도 지금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거면 글 쓸 이유 충분하다고 믿어본다. 독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못 쓰는 글을 매일 쓰는 사람의 변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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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에 대한 하루키 최초의 본격적인 회고록이다. 서양의 문학이 주를 이루는 세계문학계에서 최초로 그 중심 무대에 우뚝선 동양인 작가라는 평을 받을 만큼의 대작가인 그의 최초의 회고록인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 테마가 달리기이다. 작가라는 종족과는 왠지 다른 성질을 지닌 달리기라는 행위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 하루키에게 있어 달리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며 그 행위를 하나의 메타포로 설정하고 결부시켜 자신의 인생과 소설가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를 풀어내는 것을 읽고 있으면 이질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자아 또는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먼저 하루키가 소설가가 된 경위 부터 흥미롭다. 와세다 대학을 마치고 역 근처에서 재즈 클럽을 경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자영업이 그렇듯 하루키도 클럽을 운영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하루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으로서 진구 구장으로 이 팀의 경기를 보러 갔다고 한다. 시간도 정확히 기억난다고 한다.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경기가 진행되는 중 상대팀의 외야수가 안타를 쳤고 재빠르게 1루 베이스를 돌아 2루를 여유 있게 밟았는데 이 때 하루키는 소설을 써보자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너무나 뜬금없는 고백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큰 야심 없이 시작한 일이기에 짬짬이 시간을 내서 무작정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완성된 원고를 어떻게 할까하고 고민하다 문예지의 신인상에 응모했고 그 결과로 군조 신인상을 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작품이다. 후에 좀 더 제대로 된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경영하고 있던 가게를 접고 본격적인 집필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작품이 <<양을 쫓는 모험>> 이라는 장편소설이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이 하루키에게 있어 전업소설가로의 첫 출발점이 된 소설이라고 해도 될 거 같다.
하지만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행위가 의외로 체력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앉아서 작업을 하다 보니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체중도 느는 것 같아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무슨 운동을 할까 하고 고민하다 선택한것이 달리기였다. 당시 살던 지역에는 마땅한 운동시설이 없었는데 달리기는 땅만 있으면 되며 장비도 따로 필요없어서 선택했다고 한다. 달리기라는 행위는 소설을 쓰기 위한 체력증진과 건강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20~30분 정도의 달리기에도 쉬이 지쳤지만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임한 결과, 이 회고록이 출간 될 당시 풀마라톤을 25회나 완주했을 정도로 진정한 의미의 러너가 되어있었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달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루키는 이 행위가 자신의 천성과 잘 맞아서일거라 말한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p.73
하루키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이 됐는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p.25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혹은 프라이드와 비슷한 것)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p.26
자신의 성질과 달리기의 성질의 일치점을 얘기하며 소설쓰는 작업에 결부시켜 말한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며,...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p.26
하루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재즈 클럽을 경영할 당시 오롯이 혼자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1시간 정도의 달리기에서 자신만의 공백을 찾는 다고 한다. 직업으로서 소설 쓰기도 그렇고 달리기도 그렇고 혼자 하는 고독한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천성과 맞아 떨어졌고 잘 해내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달성을 위해 끈기있게 노력한다.
하루키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하루키는 가장 중요한 자질로 재능이라 말한다. 하지만 재능은 선천적인 것이다. 자신은 문학적 원천이 샘에서 한 없이 솟아나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대신 후천적으로 노력해 얻을 수 있는 다른 소설가의 자질을 설명한다. `집중력` 과 `지속력` 이다. 이것은 러너로서 달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달리기와 관련 된 근육을 강화하고 체형을 만들어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육체노동이라고 인식한다는 하루키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고 한다. 스스로 선택한 고통인 달리기를 통해 격정적 순간을 인내한다거나 내부의 집중의 정도등을 배우고 소설쓰는 작업에도 분명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p.128
하루키의 달리는 삶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하다. 책에서는 다양한 풀코스마라톤에 출전한 경험에 대해 말하는데 특히, 훗카이도 시로마 호수에서 열리는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출전했던 경험에 대한 회고는 간소하게 이야기 하지만 읽는내내 진의 다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완전히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해낸다. 하지만 이 때 러너스 블루를 경험했다고 한다. 러너스 블루는 러너스 하이의 반대 되는 개념으로 하루키가 만든 개념 같다. 달리는 것에 권태 같은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후에 트라이애슬로인라는 종목에 잠시 외도를 한다. 참 하루키도 하루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 앞에 하루키는 점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젊었을 때 했던 훈련양을 똑같이 소화해도 나이가 들수록 경기 성적은 점점 나빠져 갔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무릎 통증도 경험하게 된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키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면 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설령 기록이 더 떨어진다 해도 나는 아무튼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다는 목표를 향해서 예전과 같이-때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은-노력을 계속해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의 나의 성격인 것이다. p.227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의식에 다다를 수 있다. p.256
이 책은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다른 일을 하면서 짬을 내어 조금씩 써내려갔다. 그래서 그런지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대 작가의 회고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위트있는 문장으로 유쾌함을 느끼게 되고 무엇보다 울림이 있는데 그것은 이 책이 그만큼 진실되기 때문일 것이다. 인내심과 노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도전하면 성공한다는 따위의 훈계나 교훈은 전혀 느쪄지지 않는다. 하루키 자신이 자신의 삶을 관조하여 러너라는 자신의 정체성,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생각, 나아가 인간의 삶에 대해 소박하지만 진실 된 언어로 두런두런 얘기를 해주는 듯하다. 어느 대목을 대충 펴고 읽어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책이다.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었던 것도 러너로서의 정체성을 얻었던 것도 특정한 야심이나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가 소설을 쓰기 위한 체력증진이라는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덧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식적 행위가 되었다. 소설가가 직업이라면 러너는 대체할 수 없는 하루키만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지속해 온 결과물인 것이다. 타인과는 구별 되는 행위. 외부적인 요소에 인정을 받는 행위가 아니라 인정의 기준을 자신의 내면에만 설정해 그것에 만족하기 위해 해온 행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결부 시켜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삶 전체를 쉽게 풀어 쓴다.
8장 말미에 이 회고록의 결론이라고 할만한 대목이 나온다.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 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 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는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 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p.228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하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선을 향해야만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안쪽인 것이다. 나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이 보일까? 아니,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나의 성격일 뿐이다. ...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p.229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테마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테마를 자신의 삶과 결부시켜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없다. 애초에 하루키 같이 꾸준히 해온 행위 자체가 없다.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규정해 주는 나만의 정체성이 없다는 생각에 조금은 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라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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