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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벌어먹기 위해 일상으로 찾아드는 출근길, 몇 정거장 되지 않는 지하철을 오고가며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은 이순원의 생활 산문집이다. 엽편이라고 할만한 한 페이지 분량(그림을 넣어 두 페이지가 되고는 있지만)의 짧은 글들이 가족, 추억, 이웃, 세상이라는 네 개의 카테고리에 차곡차곡 잘도 쌓여 있다. ‘어린 시절 나는 할아버지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고 말하는 작가는 대관령 아래 산골 마을 시절의 아슴프레한 추억에서부터 도심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것들을 추억한다. 작가 스스로 ‘한 편 한 편을 짧은 소설’처럼 썼다는 산문은 ‘내 안에서 추억될 때 따뜻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 짧은 이야기들이 따뜻하게 다가가 그를 나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이야기로 함께 추억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램처럼 따뜻한 추억 되새기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런... 아버지는 내가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길 소원하셨다. 출신의 미천함으로 원하는 계급까지 진급할 수 없었던 자신의 꿈이 나로 인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뜻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학을 하고 싶었던 나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글을 쓴다, 학생운동을 한다, 아버지가 원하는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때깔이 나는 삶과는 한 뼘 두 뼘 거리를 두는 것으로 이십대를 보냈다. 보안사에서 장교생활을 했으며 육군본부에서 자신의 군생활을 마무리 하던 아버지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화염병을 만들거나 나르거나 던지는 것으로 세상을 향한 분노를 키워가던 나는 결국 정면으로 맞서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로부터 십여년 동안 어떤 화해의 제스처도 없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마저도 아버지의 직장이 서울에서 대전으로 옮겨가고 난 이후에는 거의 끊기다시피 하여 일년에 서너 차례 명절날을 제외하고는 얼굴 보기조차 힘든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이제 아들이 서른을 눈앞에 두고 있던 어느 날, 볼 일이 있어 서울에 들렀던 아버지가 내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전날 술에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를 위해 태어나 처음인 듯 잠자리를 봐드렸던 나는 아침 일찍 해장국을 끓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말을 섞지 않았던 아버지와 나는 밥상을 앞에 두고도 눈길조차 마주치기 힘이 들었다. 이윽고 밥 한 그릇을 모두 비운 아버지는 내가 밥상을 물리자마자 옷을 챙겨 입으시기 시작했다. “과일이라도 좀 드시고 가시죠.” “아니다. 점심은 집에 가서 엄마랑 먹어야지.” “...” 그렇게 또 서먹하게 옷을 입으시는 동안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아버지는 아파트의 현관문을 막 나서려다 문득 뒤롤 돌아 내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아직도 그 소설인지 시인지를 쓰고 싶은 거냐?” “네? 네...” “그래... 쓰고 싶으면 써야겠지. 그렇다면 말이다. 나는 네가 누가 읽어도 이해할만한 글을 썼으면 좋겠다.” “...”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아비지의 소원이었던 육군사관학교에 가지도 않았고, 누가 읽어도 이해할만한 글을 써서 필명을 날린 것도 아니지만 이제 아버지와 꽤 사이가 좋아졌다. 물론 이제는 내 생활이 바빠 아버지와 자주 만나지 못한다. 간혹 이런 통화를 할 뿐이다. “아버지. 건강은 어떠세요?” “난 다 좋다.” “저번에 병원 다녀오셨다고 그러던데요.” “병원은 무슨. 그건 그렇고 저번에 볼 때 너 얼굴에 뭐가 났던데, 그거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니냐?” “아니에요.” “몸 아껴라.”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깨에 별을 단 장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어차피 글을 쓸 것이라면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읽어 이해할만한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이젠 없다. 이제 아버지의 소원은 나의 몸이 아버지의 젊어 시절보다 훨씬 튼튼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작아진 아버지의 소원마저 지켜드리기가 여의치 않으니... 그러니까 이순원의 짧은 산문을 읽다보면, 잠시 잊고 살던 과거의 한 토막쯤은 금방 낚여 올라온다. 사실 그렇게 낚여진 추억의 탁본을 뜨는 일,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쯤으로도 난 내가 품었던 문학에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소박하게 만족한다. 이런 나의 만족감이 아버지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