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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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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부터 꾸준히 읽고 있는 영화 잡지 의 초대 편집장이었던 분이 조선희님이다. 영화보기를 즐겨하다보니, 영화에 대한 소식을 읽는 일도 너무나 재미있다. 5년만에 씨네의 편집장을 그만두고 소설쓰기에 전념하고 싶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는 그녀의 소식을 듣고는, 아쉬움과 용기에 부러움을 느꼈다. 이제나저제나 소설을 기다리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앗!
"제주 바보 이야기" 내용보기
창간호부터 꾸준히 읽고 있는 영화 잡지 <씨네 21="">의 초대 편집장이었던 분이 조선희님이다. 영화보기를 즐겨하다보니, 영화에 대한 소식을 읽는 일도 너무나 재미있다. 5년만에 씨네의 편집장을 그만두고 소설쓰기에 전념하고 싶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는 그녀의 소식을 듣고는, 아쉬움과 용기에 부러움을 느꼈다. 이제나저제나 소설을 기다리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앗! 그런데 한권의 책이 있었다. <마흔에 밭을="" 일구다=""> 드디어 책을 내셨구나! 반가워라. 기다림끝에 손에 넣은 책은 아뿔사! 동명이인의 책이었다. 조선희라는 성명삼자는 동명이인이 틀림없이 있을터,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은 그만큼 그녀의 책을 기다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인연따라 손에 넣은책이니 읽어보자.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는 남편의 간절한 소원을 12년동안 외면해 왔던 조선희님은, 드디어 도시살이를 접고 제주도로의 귀농을 결정한다. 그러니까 내가 손에 든 책 <마흔에 밭을="" 일구다="">는 그녀나이 마흔초입에 귀농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 책이었다. 참. 인연을 실감한 것은, 마이너스건강클럽에서 이 분을 또 만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제주도에서 무농약으로 감귤농사를 짓는 추천농산물코너의 지킴이님 가운데 한 분으로 말이다. 반가운 마음이 클 수 밖에. 해마다 감귤을 먹을 때면 잊지 않고 사서 먹는 단골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작은 홈피도 마련하여 편안하게 주문도 하고 쥔장이신 조선희님의 맛깔난 댓글도 읽으면서, 작년겨울부터 지금까지 맛있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고 있다. 귀농하여 6년동안의 농사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책이 <제주 바보="" 이야기="">다. 저자의 맛깔스러운 글맛에 함께한 구수한 그림을 보는 재미도 너무 좋다. 현재 서귀포에서 작품을 그리고 계시는 이 왈종님의 그림이다. 왈종님의 그림을 보면, 아! 이분! 금방 알아볼 수 있게끔, 토속적이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화평한 그림체를 갖으신 분이다. 반갑고 감격스럽기까지 한 마음으로 열어 본 책의 첫머리는, 가슴아픔이었다. '망건 쓰자 파장'이라더니 귀농 첫 해부터 폭락하기 시작한 감귤값 탓에 으례 한해 농사는 도청 앞 농민시위로 마감되곤 했다. 격한 농민 시위끝에 겨우 얻어내는 것은 농협대출금 상환 연장이었고 그렇게 해마다 나이를 먹듯 빚도 쌓여갔다. 슬픈 일이었다. 분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진달래 산천인 봄날의, 녹음이 하늘을 가린 여름날의, 색색이 단풍 옷 갈아입은 가을날의, 고사목게 눈꽃 피는 겨울날의 한라산 한번 재대로 오르지 못한 채 고개 처박고 농사만 지었건만 느느니 빚이라니, 좋은 것은 죄다 내다 팔고 팔지도 못할 것만 골라 먹고 살았건만 느느니 빚이라니, 원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혹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아! 그러셨구나. 눈물이 핑 돌았다. 하루에 절반의 양을 읽어나가면서 나도 함께 농사를 지었다. 하루가 빠듯한 농삿일에 동동거리면서, 틈틈이 글을 고르고 골라 아름답게 써낸 저자의 일상은, 겨우 밥해 먹는 살림살이에도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내가 비추어져서 어찌나 부끄럽던지... 빨래하고 청소하기...똑 같은 일상에 지쳐하는 주부들에게 이 책은 정신 번쩍 들게하는 겨울아침의 찬 바람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렇게 나는, 한 사람의 도시인이 귀농하여 농사를 짓는 절절한 경험들을 시간차를 두고 길게 지켜보게된 흔하지 않은 <독자>가 된 셈이다. 뿐인가!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먹을거리인 감귤, 감귤즙, 무와 감자의 그 단맛까지 경험했으니, 복 많은 독자이다. 입에 맞는 맛있는 먹을거리를 아껴서 먹듯 책을 다 읽고나니, 조선희님의 삶이 더 가깝게 살뜰하 게 다가온다. 농사짓기의 힘든 고행길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곱디 고운 다음 이야기들을 기다린다.

[인상깊은구절]
제주 섬에 살면서도 여름철 해수욕 한번 해본 적이 없다. 한라산 눈꽃 축제에 가본 적도 없고, 들불 축제에 가본 적도 없다. 하다 못해 우리 옆 마을에서 열리는 고사리 꺽기 대회, 유채꽃 잔치도 모두 남의 잔치다. 우산 장수가 비 맞고 다니는 꼴이다. 인파에 떠밀리는 일이 죽기보다 싫은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내가 살아가는 이 날들이 모두 축제인 까닭이다. 바다에 푹풍주의보가 내리면 나는 일부러 길을 에돌아 바다를 끼고 달려본다. 파도 축제다. 앞뒤 분간도 못하게 안개가 끼면 아무도 달리지 않는 길을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가본다. 안개 속 술래잡기 축제다. 감귤꽃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린 봄날 과수원에 나가면 온몸에 향내가 배어 나도 모르게 몽롱하게 취한다. 감귤꽃 향기 축제다. 우산 장수가 비를 맞고 다니는 건 쓸 우산이 너무 많아서일 게다.
y*****g 2005.04.02.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