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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글을 읽고 있다. 그렇게 이 책까지 읽게 되었다. 크눌프, 사실 이 단어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온 아주 친숙한 단어다. 하지만 정작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라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헤세의 작품이 어떨 땐 살짝 딱딱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무척 힘들다. 자꾸만 그만 읽고 다음에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렇다. 특히 헤세의 작품 중에서도 읽기의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헤세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에 개인적 감정과 고뇌를 쏟아 넣은 작품이라 그런지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또 그래서 대중적 재미라기 보다는 작품적 가치에 더 방점을 둬야 할 것 같다. 그가 어린 나이에 갑자기 닥친 연정으로부터 버림받고 고뇌하고 다시 온갖 역경에 휩싸이는 이야기인데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려는 모양세가 우리 인간 모두의 공통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혼자인 존재다. 나의 사랑, 나의 우정도 영원할 수 없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우정과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참 씁쓸하다 못해 괴로운 일이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신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이 책의 주인공 역시 그런 과정을 겪는다. 우리 인간이 인간에게 사랑을 느끼고 의지하려 하다가 결국은 그 감정에 실망하고 배신당하고 상처입고 하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즉 신에게 의지하려 한다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동시에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의 무언가가 지극히 인간 개인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추구되어 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또다른 의미로 혼자인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방 그 속에 갇혀서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존재 말이다. 헤세의 여러 작품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결국은 인간은 혼자가 아니겠는가 하는 일종의 철학적 혹은 허무함이 느껴지는 그런 통찰이다. 특히 그가 싯다르타를 쓰면서 더욱 그런 향기가 진하게 풍겼었는데, 이 책 역시 그에 못지 않은 고독과 철학이 느껴졌다. 아마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헤세의 이런 철학적 메시지에 공감하고 그것을 제 3자의 입장에서 읽고 보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시간을 갖고 동시에 미래를 계획하는 것 같다 그래서 헤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으면 이 책은 헤세의 책 중 수작 중 수작이다. 하지만 헤세의 글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좀 더 편안한 (?) 헤세의 다른 작품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그만큼 어렵고 그래서 지겹기까지 하다. 자칫 헤세의 글이 모두 이런 식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헤세의 작품 중 최고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임에는 틀립없다. 그리고 많은 것이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담겨있는 작품이다. 담론 또한 만만치 않으며 관념적 표상 또한 다수 존재한다. 그런 만큼 천천히 곱씹어서 읽으면 그만큼 얻는 것이 많은 책이다. 시간 날 때 한번에 끝까지 다 읽기를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
|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의 영혼과 섞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일세. 두 사람은 서로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하고, 서로 함께 있을 수 있지. 그러나 두 영혼은 꽃과 같아서 각각 한곳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어떤 영혼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는 것이지. 그렇게 하려면 뿌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안되니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야. 꽃은 서로 가까이하기 위해 향기를 보내고 씨를 보내는 것이지. 그러나 씨가 적당한 곳으로 가게 하는 데에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네.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지. 바람은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단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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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헤세> 초봄 91p? 참된 것이라던가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 같은 문제는 각자가 생각해서 알 것이지, 책에서 배울 수 있는 문제라고는 나는 생각지 않는다. 111p--- 자기의 행복이나 미덕에 대해 자랑하며 떠들어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타인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과 추측이 맞다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물론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 진실과 진리를 알지도 모른체, 누군가를 경멸하거나 또는 시기하거나 질투한다. 반대로 누군가를 쉽게 동정하고 자기보다 못한 처지를 불쌍해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행복한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단계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며, 그로인해 자기의 위안꺼리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거나, 삶의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손해보고 어리석은 것인지 아느냐하며 잘난체한다. 정말로 이러한 것보다 더 어리석고 한심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만큼 소용없는 삶이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와 같은 길을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종말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독한 방랑자의 길을 걷는 것 이다. 그 방랑의 길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삶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이다. 인생은 때론 과거를 떠올리며, 그때는 그렇게 하고 저때는 저렇게 했어어야 했는데 라는 가정법을 우리는 자주 들먹이곤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한 생각을 가져 보지 못했다면, 기억과 추억이 현재와 단절된 그야말로 고립자의 삶을 살아왔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제 나의 방랑의 길도 내가 살아온 나날들의 세월의 절반쯤이 될지 안될지는 가늠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남아있는 험난하지만 아름다울수 있는 방랑의 길을 걸어야만한다. 나는 내 삶이 마감하는 그 순간 어떤 방랑자의 모습으로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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