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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나는 책을 읽던 도중에 잠시 영화 <블랙>을 떠올렸던 것이 경솔하게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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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심이 깊은 목사와 눈먼 소녀와의 사랑이야기.
아름다운 사랑이 아닌 비극적인 사랑이지만 그래서 어쩌면 현실과 가까운지 모르겠어. 목사의 연민과 소녀의 신뢰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면서 고난을 겪게 되지. 목사는 이미 가정이 있는 나이 많은 중년이었고, 소녀는 세상을 너무 모르는 순진한 마음 뿐이었으니까.
만약 제르트뤼드가 정말로 선천적으로 앞을 못보는 사람이었다면 실제로는 이 소설처럼 상황이 전개되지는 않았을꺼야. 그래도 이 소설은 남녀간의 사랑이 어떤 종류의 감정인가를 보여주는 것에는 충실하다고 생각돼.
마음이 아무리 절실하더라도 감정은 그저 순간의 이미지에도 쉽게 흔들리는 것이니까.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마음만을 믿어서는 안되는거야.
쉽게 읽을 수 있는 중편 소설이지만 담긴 내용은 장편소설 못지 않으니..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야.
이 책을 읽고 아무 느낌도 없다면 사랑과 이별을 뼈져리게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전반부는 가능하면 천천히 꼼꼼하게 읽을것.. 후반부에서는 너무나 빠르게 모든 것이 폭풍처럼 끝나버리니 말이야. |
| 주인공인 나는 목사이다. 신앙심에 이끌려 어느날 '고아가 된 소녀'제르트뤼르'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 소녀는 가엾게도 눈이 멀었다. 따라서 아무것도 볼수가 없다. 나는 그녀를 가족들에게 소개시키고, 그녀를 돌본다. 그러다가 그 소녀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또 한사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아들. 자끄다. 그는 '자끄'의 사랑을 눈치채고는 다그친다. 자끄는 나의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개종'한다. 한 의사의 도움으로 눈을 뜨게된 제르트뤼르.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내가 사랑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자끄 였어요. 이 작품은 배경과 '인물'들이 잘 어우러 졌다. 그리고 눈이 먼 '주인공'인 '제르트뤼르'에 대한 '목사의 관찰'과 느낌. 회고로 작품을 전개 시키고 있는데, 서술이 매우 침착하고, 어떤 울림이 들리는 듯 하다. 아내가 있는 '목사.' 그것도 신과 가까운 위치에 서있는 '목사'인 '나'의 사랑은 엄연히 '신'에 대한 '배반'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정념'과는 '페이소스'와는 다른 사랑이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에서 들려오는 '사랑'과 같은, 그런 사랑이다. 나는 이 같은 사실에 주의하면서 작품을 읽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가 눈을 뜨게 되면서부터 작품의 분위기는 어두워 진다는 것. 눈을 뜨지 못하는 그녀는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희망에 차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런 '암전'의 예감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눈의 떠짐'과 함께 시작된다. 눈을 뜸으로 해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목사가 아닌 자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눈이 떠짐으로 '자신의 죄'를 느낀다. 자신이 차지한 사랑이 실은 누군가의 몫을 빼앗은데에 불과하며 그것은 죄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무릎을 꿇으며 흐느껴 우는 목사를 지켜보며 우리들은 다같이 눈물을 훔치게 된다. 가긍할 '사랑'을 직감하며 말이다. 앙드레 지드의 어느 작품보다도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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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집어드는 책마다 영~우울함이 분수처럼 샘솟는 작품 들만 손에 잡힌다. 맘이 영~심난한 모양인가보다. 살인자의 건강법(어멜리 노통), 폐허의 도시(폴 오스터), 1984년(조지 오웰), 좁은문(앙드레지드), 테스(T. 하디), 전원교향악(앙드레 지드), 타인에게 말걸기(은희경) 머 하나 상큼하고 시원 깔끔한 책들 하나도 없다. 전원교향악은 목사가 노파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노파의 집에 갔다 노파의 손녀로 추정 되는 눈먼소녀를 주워 오면서 부터 시작 된다. 노파는 벙어리 였고 소녀는 소경이었다. 게다가 소녀는 벙어리 노파와 살았던 지라 말이 아님 소리만을 웅얼 거릴 뿐이었다. 소녀를 복사는 일종의 목자된 도리로서 받아 들여야 할 시련이라 생각 하며 소녀를 지극 정성으로 키운다. 그러다 연민으로만 알았던 자신의 감정이 자랄 수록 아름다워 지는 소녀를 보면서 사랑의 감정을 키워 나가게 되고 소녀 또한 세상을 아름답게 꿈꾸며 목사를 사랑 하노라 고백한다. 어느날 목사는 소녀와 자신의 큰 아들이 함께 있는 것을 우연히 엿보게 되고 큰아들은 소녀를 사랑 하노라 이야기 하고 목사는 이에 심한 질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목사는 큰아들을 반대하고 큰 아들은 개종 하기에 이른다. 목사의 친구인 의사는 소녀의 개안 수술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소녀는 목사의 얼굴을 보게 될날을 고대하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할 날을 꼽는다. 하지만 개안 수술 후 소녀는 목사의 얼굴과 큰 아들(자끄)의 얼굴을 본 후 자신이 사랑한 얼굴은 자끄라고 고백하고 괴로워하기에 이른다. 아름 다움이란 이토록 사람을 어리석고 바보 스럽게 만드는 것인가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소설이다. 목사는 소녀의 아름다움을 보고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소녀는 눈을 뜨고 자신이 사랑 하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했던 얼굴이 자끄라는 사실에 오열하고. 문체의 수려함이나 묘사력에 흡입력이 강한건 사실이나 어째 읽고 나면 주인공들을 싸잡아 싫어 지게 만드는 소설 이라고나 할까. 2004.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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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 따라 감상이 다르겠지만 내게 이 소설은 아름답다거나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 소설이 내게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감정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었다. 어렵거나 지적인 단어 하나 등장하지 않고 얇은 분량이지만 쉽게 읽힐 수 없는 진지함은 담고 있다. <빙점>이란 소설을 보면 입양한 딸이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자 문득 이성의 눈길로 딸을 대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추한 본능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거북한 입장을 느낄 수 있다. 혈육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라면 사랑이라는 것이 때로는 죄책감을 유발하게 되는 통속적인 감정의 한계에 머무르게 되는 걸까.
길잃은 나약한 양을 보살펴 주는 일에 성직자된 자긍심까지 느끼던 목사가 어느덧 자신의 경건한 감정의 포장지 속에 숨겨진 것이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감정임을 알았을 때의 수치심이 느껴진다. 난 성직자는 육체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이 순결하고 경건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성직자라는 입장에서 자기 부인이외의 다른 여성을 사랑하는 감정은 엄청 파격적이었다. 성서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간음하지 말라'는 교리가 있다고 들었다. 정신적 간음은 육체적 간음보다 죄가 깊다고 본다. 육체적 간음은 순간의 쾌락으로 소멸하지만, 정신적 간음은 벗어나기 어려워 영원히 지속가능할 수도 있으니.
그러나 목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으로 여생을 가슴 속에 죄의식을 지니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동정이 가고 가엾기까지 하다. 목사를 동정할 수 있는 반면에, 난 궁극적으로 소녀는 동정할 수가 없다. 소녀는 순진무구하다고 하지만 나에게 소녀는 목사만큼이나 어리석은 존재로 여겨진다.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을 때 자신이 목사를 사랑한다고 믿었으며 그 감정을 목사에게 고백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눈을 뜨고 나서 청년의 얼굴을 처음 대하는 순간, 곧 자신이 사랑한 대상이 목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순진했던 소녀에게조차 결정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결국은 '외적인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소녀만이 그랬던가. 목사도, 청년도 소녀의 외모가 아름답지 못했다면 사랑의 감정이 생겨났을까. 더욱이 소녀의 마음이 진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눈을 뜬 후 자신이 목사의 부인을 괴롭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목사에게 고백하는데, 그보다 더 소녀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청년의 젊고 아름다운 얼굴과 목사의 늙고 피로한 얼굴의 비교에서 오는 실망이 아니었는가. <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상상하고 있는 목사님 얼굴... >, < 이젠 나가 주세요. 헤어져요. 당신 얼굴 보는게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어요. >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지금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여주인공에게 애착심을 가져보지 못한게 이번이 처음이다. 참된 사랑은 외모가 아니라 영혼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 게 아닌지. 하여튼 난 소녀에 대한 목사의 사랑이나, 청년에 대한 소녀의 사랑이 진실되게 다가오지 않았다. 눈이 먼 상태에서는 영혼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있지만 우리에게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는 이상, 외모의 호감이 불러 일으키는 감정이 곧 사랑에 빠지는 시초가 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사랑이 진행되다 보면 외모보다 내면에 비중을 두게 될지라도..) 소설을 통해 간접체험을 하게 되면 될수록 내가 지닌 어리석음, 즉 인간의 어리석음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눈을 뜨고 자끄를 처음 봤을 때 내가 사랑하고 있는 분은 목사님이 아니고 그 분이었다는 걸 곧 깨달았어요. 그 분은 목사님하고 똑같이 생기셨더군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상상하고 있던 목사님 얼굴......아아! 목사님은 왜 내게 그분을 뿌리치게 하셨나요? 나, 그 분하고 결혼할 수 있었을텐데......빙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