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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 얘기를 같이 하는 대학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사강을 읽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권만 읽는 사람은 없다더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읽고 나면 여운이 어마어마 하다더라 등등의 이야기를 했고 아껴 읽어야지 생각했던 게 벌써 2년전. 뷔페 가서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는 맨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두는 것처럼. 책표지가 너무 구려서 망설였지만.. 이렇게 유명한 책인데 왜 이런 표지 안에 담겨 있어야 하나. 구매욕구 떨어짐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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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작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읽어보고 좋아서 구매했어요. 근데 2013년도 인쇄된 책이 왔어요 ㅋㅋㅋㅋ 책 안이 바래서 종이가 누래요ㅜㅜ 가격 저렴해서 그냥 읽으려구요. 연애 소설 안 좋아하는데 사강껀 재밌더라구요.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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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어린 소녀 세실은 휴가를 맞아 아버지와 그의 아름답고 젊은 애인 엘자와 남프랑스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세실의 아버지는 광고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부유했으며 수시로 여자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다. 하지만 세실에게는 친구같은 너그러운 아버지였기에 세실은 아버지의 바람기, 젊은 여자친구들을 이해한다. 그러던중 죽은 어머니의 친구인 안느가 별장으로 온다. 그녀는 차갑고 냉소적이며 이지적이다. 이제껏 아버지가 만나왔던 머리는 나쁘지만 미모는 뛰어났던 그저 그랬던 여자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늘 3개월도 못가 여자를 갈아치웠던 아버지가 엘자를 옆에 두고도 안느에게 끌리는 것이 세실은 마음에 들지않는다. 그는 안느를 동경함과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었던것이다. 어찌보면 방탕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던 세실과 레이몽부자에게 안느는 새롭게 만들어진 규칙과도 같은 것이어서, 결혼을 하겠다는 아버지와 안느가 만들 가족이라는 것이 세실에게는 갑갑한 철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세실은 아버지의 욕망을 부추겨 안느와 헤어지게 하려고 엘자, 또 자신의 연인인 시릴을 이용하기로 한다. 하지만 소녀의 앙큼한 계획의 결과는 참혹한 비극만을 가져올뿐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대표작인 브람스를 아세요...도 의문형이 아니듯, 이 책의 제목 역시 안녕은 bye의 뜻이 아닌 반갑다는 의미의 안녕이다. 세실은 여름이 되면 안느를 떠올리고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세실은 아버지의 사랑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집중되는것이 싫었다. 본인이 인정했듯 지독한 에고이즘이지만 세실은 안느가 말했듯 성숙하지 못한 완전해지지 못한 17살의 소녀였다. 어리다고 모든것이 용서되지 않겠지만 약간은 이해가 간다. 어리기에, 원숙한 여인인 안느의 차가움에 두려워하면서도 그녀의 강인한 의지나 지적인 아름다움을 열렬히 동경하지않았을까. 어린날의 어리숙한 선택으로 슬픔으로 묻힌 안느. 어떤 사색적 고찰이나 메세지는 없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다만 오타나 꽤 많아서 한번씩 흐름이 끊기는 것이 조금 짜증났을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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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생활로 유명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첫 소설인 이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실제로 19세에 이 작품을 쓰기 전부터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낸데다가, 마약 도박 결혼과 이혼 파산 자동차사고 사기혐의 등 끊임없는 사건사고를 달고 산 탓에 , 개인의 자유에 대해 매우 관대한 프랑스인들사이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사강 - 이런 얘기만으로도 그녀가 쓴 작품을 '안 읽고도 알겠다'는 냉소적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어린 애가 쓴 글을 한참 나이가 많은 내가 읽어본다는 것에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3년 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을 때, 아 이런 것이 사강다운 그 무엇이구나 싶었고, 50년도 더 전에 (1959년 발표작이다) 이런 스토리를 24세의 여자가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에 좀 놀랐었다. 요즘에야 어디에나 통속적인 영화나 드라마가 넘치니까 '있을 법한 흥미돋우는 이야기'중의 하나라고 지나칠 수 있지만, 그 당시로서는'신선한' 화제성을 충분히 인정받았겠다 싶었다. 한 번 읽어 볼 만함 --이 정도였다, 내게는.
<슬픔이여 안녕>도 줄거리만 훑으면 '뻔한' 소설일 수 있다. 같은 상황에 처한 비슷한 연령의 독자라면 공감도 더 가고 더 몰입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사랑이든 만남이든 그다지 드라마틱하거나 강렬하지 않더라"를 이미 깨우친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책의 중반 정도에 이르면, 어서 결론을 알고 끝내고 싶을 수 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 기질을 다분히 가진 여자아이가 아버지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면 자신이 지금껏 누려온 자유뷴방한 생활을 잃고 질서와 교양의 틀 안으로 끌려들어갈까봐 지레 겁을 먹고, 아버지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말도 안 되게 이 함정에 모든 사람들(주인공보다 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다)이 빠져들고 등등. 억지로 '소설'이라고 읽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먹을 만큼 나이 먹었고 간접적으로라도 이런저런 인생사를 다채롭게 접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놀라운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출간 당시 기성작가가 대필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이유를 잘 알겠다. 19세 사강의 생각과 감성의 폭이 너무 넓고 그 섬세하고 예리한 표현에 "아 이래서 작가는 타고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군"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벌써 이 나이에 이 첫 작품부터 이렇게 쓰기 시작했다면 이런 감수성과 이런 통찰력으로는 '정상적-평범한' 삶을 도저히 살아낼 수가 없었을 거라고, 사강의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대기가 너무 잘 이해되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을 파괴시킬 권리가 있다"라던 사강의 선언이 그저 잘 난 척하며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너무 어려서 출세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소설가의 변명으로 들리지 않는다. 남과 다른 날카로운 감수성과 정곡을 짚어내는 날선 눈초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얄궂은' 재능이 주어진, 한 '평범하지 못하여 외로운' 인간의 고백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이 책의 제목에 대해 너무 오래동안 '오해'를 했다. 무지라고 봐야한다. 이 책의 번역가도 작품설명에서 맨 처음 이 오해를 벗어던지라 한다. <슬픔이여 안녕>의 안녕은 'good bye'가 아니다.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가 아니다! 이제서야 보니 프랑스어 원제목이 <Bonjour Tristesse>이다. 슬픔에게 만날 때 하는 인사'안녕'를 보내는 것이다. 자기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었고, 자기가 그토록 싫어해서 쫓아버리고 싶었던 '안느'(이 책에서 유일하게 논리와 지성, 교양을 갖춘 인물이다)에게 비록 죽음이라는 비극이 왔지만, 결론은 자신(주인공의 이름은 세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기에 그 양심을 괴롭히는 사건과 그로 인한 일말의 '슬픔'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래서 더욱 더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 이것이 아니었다! 이 진실을 알고 나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또 읽게 된다.
겨울이 끝나가려 한다.우리는 예전처럼 별장을 빌리지는 않겠지만, 주앙 레 팡 근처에 있는 집을 한 채 빌리게 되리라. 다만 내가 침대 속에 있을 때, 자동차 소리만이 들리는 파리의 새벽녘, 나의 기억이 이따금 나를 배신한다. 다시 여름이 다가온다. 그 추억과 더불어 안느, 안느! 나는 이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되풀이한다. 그러자 무엇인가 내 마음속에 솟아나고, 나는 그것을 눈 감은 채 그 이름으로 맞이한다. 슬픔이여 안녕!
이제는 여름과 적막은 세실에게 '슬픔'이다.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 온 인생에 슬픔이 표면으로 떠올랐고 아마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때까지의 모든 좋았던 기억마저도 이 새로운 '슬픔'에 의해 자주 압도당할 것이며, 이 '슬픔'의 무게로 때로는 앓고 헤메는 인생길에 들어선 것이다.
기쁨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슬픔. 슬픔을 혼자 삼키며 잠재우는데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인생. 각자 걸어가는 인생길이 달라도 언젠가는 마주쳤고 그 이후로 우리 삶의 방식 중 하나로 굳은 자리를 튼 슬픔.
사강 자신도 주인공 세실처럼 소르본 대학의 교양 과정 시험에 떨어진 후 집에 처박혀 두 달 만에 써 낸 작품이고,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으나 문학 비평 대상을 받음으로 세계적 신화를 창조했다는 역시 드라마같은 일화가 이 '슬픔'에 대한 자각에 더 큰 진정성을 부여한다.
언젠가부터 슬퍼도 그대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어리고 따라서 더 솔직하고 꺼릴 것이 없는 세실 -사강의 눈을 통해 잠시 '슬픔'의 근원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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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를 읽고 다시 찾은 사강의 책이다. 브람스보다는 덜하지만 잘 읽었다. 인물 설정이 다소 미흡하다는 말에 공감하지만 감정 묘사가 굉장히 섬세했다. 딱 그 나이 또래에 누구나 겪어 봤을 법한 감정의 소용돌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정서, 하지만 글로 표현할 길이 없는 감정을 잘 표현해냈다. 19살의 나이에 이처럼 한 인간의 감정, 냉소, 잔인함, 이중성을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다니 놀랍다.
세실은 결국 아버지를 가장 사랑했던 것 같다. 아버지로부터 안느를 떼어놓으려는 질투심, 안느가 '아버지지와 나'를 망쳐버리려 한다는 불안감, 지금까지의 생활이 파괴되고 간섭받는다는 느낌,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안느의 감정이야말로 사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복잡하게 뒤섞인다. 결국 세실은 아버지와 안느를 떼어놓으려는 음모를 벌이고, 아버지를 떠나가던 안느는 자동차 사고로 죽고 만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세실은 안느의 이름을 되풀이하며 마음속에 솟아나는 슬픔을 맞이한다. '슬픔이여 안녕'
스스로의 치기에 취해 음모를 벌이고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당황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러면서 삶의 근원적 슬픔을 마주하고 결국에는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겠지. 그렇게 '연애는 각기 독립된 감각의 연속'으로 생각했던 세실은 '끊임없는 애정과 정다움이 있고, 어떤 사람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한 발자국 성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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