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학 예찬》을 읽고서···.
《문학 예찬》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가 문학과 사회학의 관계에 대해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이들은 편지 형식을 통해 문학과 사회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심도 있게 논의한다. 많은 논평가들이 이 두 학문을 별개의 분야로 보았지만, 바우만과 마체오는 문학과 사회학이 공통된 목적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연구 방법이나 결과 도출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차이점이 오히려 두 학문을 보완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관계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그들의 논의를 통해 독자에게 문학의 본질과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이해하게 된다.
책의 전개 방식은 독특하다. 편지 형식으로 진행되는 대화는 격식을 벗어난 자유로운 문체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에게 두 저자의 사유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가 그들의 논리를 보다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문학과 사회학이라는 두 분야가 만나면서, 독자는 두 학자의 시각 차이와 공통점을 통해 깊이 있는 지식을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문학 작품과 소설, 그리고 영화나 음악 등의 현대 문화 콘텐츠를 인용하여 논지를 전개하는 점이다. 바우만과 마체오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현대적 예술 작품을 통해 문학이 사회를 어떻게 반영하고 해석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로 인해 독자는 문학이 단순한 예술적 창작물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학과 사회학이 다루는 주제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독자로서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바우만과 마체오는 문학이 사회적 문제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 작품은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해석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바우만과 마체오가 문학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 권력 구조, 도덕적 갈등을 탐구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독자는 문학이 문학 자체를 넘어서 사회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매개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강조되는 또 다른 측면은 문학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은 사회의 부조리와 문제를 드러내고 독자들이 그것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바우만과 마체오는 문학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중요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문학은 단순히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와 더불어, 두 학자는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들과 인터넷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바우만은 특히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인간의 관계와 소통 방식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온라인 세계에서 자신을 표현하면서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고, 피상적인 소통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문학과 같은 깊은 성찰을 요하는 활동이 온라인 공간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인터넷의 즉각적인 정보 소비와 빠른 피드백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점차 사유와 반성의 시간을 갖기 어려워지고, 이러한 환경은 문학과 같은 느리고 깊이 있는 작업이 주는 가치를 점점 더 간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문학 예찬》은 문학과 사회학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며 우리 사회를 깊이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독자는 문학이 예술적 창작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나아가 그것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사회적 문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해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깨닫게 해준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인디캣책곳간 #21세기문화원 #문학예찬 #지그문트바우만 #문학과사회학 #무농 #나무나루주인 #나무나루 |
|
책에서 다루는 열 두 개의 주제는 아래와 같다. 1. 두 자매 2. 문학을 통한 구원 3. 진자와 칼비노의 비어 있는 중심 4. 아버지 문제 5. 문학과 공위기 6. 블로그와 중개자의 소멸 7. 우리 모두 자폐인이 되어 가는가? 8. 21세기의 은유 9. 트위터 문학의 위험성 10. 마르고 습한 11. ‘일체화’ 안에서의 긴축 12. 교육·문학·사회학 나는 사실 문학과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깊지는 않다. 그럼에도 쉽게 읽히지 않는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위에 목차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히 '아버지의 문제', '블로그와 중개자', '우리는 모두 자폐인이 되어 있는가?'라는 제목에서 이 책에 현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질문이 담겨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호기심이 생겼고, 책을 직접 읽어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이 책에는 인용문이 많아 다양한 추가 읽기자료를 제공 받았다느 점에서도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다만 인용문이 많은 만큼 두 저자가 왜 그 인용문을 가져왔는지 맥락을 이해해야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기에, 책을 한번 읽었지만 완전히 소화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인용된 소설과 사회학 저술을 찾아 읽어나간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현 사회를 관통하는 깊은 안목과 시선을 길러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스팸으로 거르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너무 많은 불필요한 기록과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랜만에 깊이 성찰하고 여운을 남기는 글을 만나 반갑다. 앞으로는 시간을 들여야만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를 자주 접해야겠다는 다짐도해본다. p134 온라인 안전지대가 내거는 복잡하고 난해하고 힘든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은 돌이킬 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사랑은 행복이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사례들이 보여 주었듯이 행복은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처럼 다 차려진 상태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아무 고통 없이 오지도 않습니다. 고통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힘겹게 고통을 이겨 내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관계에 필수적입니다. 고통 없는 사랑은 거짓말이고 사기입니다. p159 스테파노 타니는 스크린, 알츠하이머, 좀비 등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스크린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 알츠하이머는 자신을 비우는 것, 좀비는 자신을 변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p160 (...) 이것이 셀카 시대의 규범입니다. 이 규범은 극단적인 자기 중심적인 산물이자, 갈수록 더 위협적이고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세계에서 모두가 사회를 차단한 채 자기 자신과만 있고 그럴 때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실의 산물입니다. 그리하여 스크린은 일종의 거울이 되고, 가장 방어력이 좋은 자신의 연장이 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
<문학 예찬>은 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과 에릭슨 출판사의 편집자로 지냈던 리카르도 마체오가 24통의 편지로 주고받은 최후의 대화를 엮은 것이다. 이들은 문학과 사회학이 경계선을 나누는 것보다 협력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학과 달리, 19세기에 등장한 "사회학(sociology)"이 정체성을 주장하는 대신, 협력을 제안하는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사회학의 토대와 역량이 그만큼 두터워졌다는 방증이다. 문학과 사회학은 연구 방법과 결과를 제시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지만, 덕분에 각자가 빠질 수 있는 오류를 상호 보완하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인간의 경험과 체험은 이미 해석된 형태로 작가와 사회학자의 작업대에 도착한다. 즉, 문학과 사회학은 "이차적 해석'의 활동이다. 인간적인 갈등, 대립과 무관한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은 문학과 사회학에서 있을 수 없다. <문학 예찬>은 예술과 인문사회과학 간의 생생한 다면적 관계를 사회학적 시각에서 풀어간다. 말에 대한 압박이 증가하는 시대 흐름에 대한 마체오의 물음에, 바우만은 언어의 완성은 환상이지만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하므로 유용한 환상이라고 답한다. 혐오 발언보다 인간의 자유에 해로운 것은 '전략적 봉쇄 소송(= 입막음)'이라는 바우만의 지적은 언론 자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동시에, 자유의 가이드라인은 없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문학에서 구원을 모색하고 발견할 수 있지만, 실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소비 지상주의 시대는 재화들의 극심한 불평등 분배가 자리 잡고 있다. 소비를 부추기는 종소리만이 유일한 평등이다. "(물건을)사라"는 판매자의 대상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대중문화는 날마다 저속화와 이기주의 홍보를 통해 소비를 조장하며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고 있다. 오늘날의 개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소비자이지, 시민이 아니다. 바우만은 전근대(or 구체제), 근대, 오늘날의 액체 현대 같은 단계들이 서로의 단계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서로 공존하는 것이지, 서로 분리되어 있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바우만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뜻하는 '액체 현대' 외에 21세기의 대표적 은유로 마체오는 이탈리아 베로나 대학 문학 교수 스테파노 타니의 "스크린, 알츠하이머, 좀비"를 소개한다. 스크린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 알츠하이머는 자신을 비우는 것, 좀비는 자신을 변형하는 것을 의미한다. 3개의 은유가 모두 '자기 지시'라는 공통점을 가진 것을 포착한 바우만은 21세기의 모든 은유를 함축한 은유는 바로 '나르키소스'임을 언급한다. 나르키소스는 소비자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실존적 조건으로 인해 소비자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는 활동(자신을 바라보고 비워내며 변형)을 상징한다. 19~20세기의 원형이 장인의 피그말리온이라면, 나르키소스는 소비자의 원형이다. 액체 현대의 자아(self)은 "외주 제작된 자아"이다. 삶의 거의 모든 면에서 전문적인 카운슬러가 제공하는 (대부분 구매 가능한) 서비스를 통해 대충 만들어진 일종의 조각보 자아이다. 오은영 박사의 상담비가 10분당 9만 원이라는 뉴스처럼, 시장에서 유용한 조언/지침의 권위는 가격으로 결정된다. 자아는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결정을 도덕적 문제로 재생하는 실험실이 아니라 아디아포라화(불쾌감이 주는 잘못된 행동을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대상으로 만들어 윤리적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의 공장이 되고 있다. 누구의 노래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노래를 한다는 것이다. 트위터 문학은 꿈은 발전시키지 않고, 꿈의 실현을 상상하는 기술만 발전한다는 위험이 있다. 협력과 연대로 가기 위해선 세상을 공유하고 차이와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불편한 다양성을 회피하는 온라인의 피난처가 기술 습득을 방해하거나 회피를 유혹하지만, 이들을 오프라인 세계의 자폐증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들을 더욱 온라인 세상으로 은신하도록 만드는 우를 범한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하지만,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다양성을 우리의 공통된 인간성의 성과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지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다. 예술(사회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일생 동안 바우만을 괴롭힌 물음이며, 부정적 답으로 가는 증거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괴롭다는 심정을 첨언한다. 소비 중독이 행복에 도움이 될 거라는 유령에 감춰진 실체는 근본적인 실존적 문제이다. 문학과 사회학의 공동 소명은 이를 다시 공적 의제로 만드는 것이다. 둘은 서로 보완하며 끊임없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사회학의 최고 매력은 현시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문학 예찬>은 지그문트 바우만 사상의 입문서이다.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21세계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액체 현대에서 교육만 유독 불평등의 재생산을 야기하는 방향으로 고정되고 있다. "내적 모험의 전문가, 시간의 장인, 청춘의 카드 딜러"인 교사가 공평하게 카드를 나눠준다고 해도, 나눠줄 카드는 부족한 현실이며, 한발 앞서가기 전략을 지배하는 경쟁 사회가 교육을 통해 얻은 역량과 숙달을 제로섬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최상위 학교의 주목적은 지식 함양이나 학생의 행복이 아니다. 힘 있는 부모들의 지위를 물려받게 될 자녀들과의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를 읽어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을 알려준 출판사 21세기 문화원의 서평 모집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
|
【책 소개】
거의 외우고 싶은 문장들,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깊은 시선, 책에서 소개된 작가들과 철학자들······.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조르주 페렉, 밀란 쿤데라, 미셸 우엘베크, 수잔 손택, 마르셀 프루스트, 자크 라캉, 주제 사라마구 등. 그들을 인용한 문장을 읽고, 최고의 지성들이 해석한 것을 꼼꼼하게 읽다 보니 이 책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아주 꼼꼼히 읽었지만, 마지막 페이지에선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이 책은 사회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과 그보다 30년이나 젊은 에릭슨 출판사의 편집장 리카르도 마체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것이다.
주제는 문학·예술과 사회학의 관계이다. 이 주제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문학과 사회학은 얼핏 보기엔 편제가 분리되어 있지만, 실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둘을 "샴쌍둥이"라고 표현하며 "둘은 같은 일을 한다"라고 주장했다.
두 지성인은 서로의 생각을 편지로 주고받는다. 지금까지 유명하거나 숨어 있던 탁월한 문학가들의 작품과 내용을 예로 들며 세계 최고의 사회학자는 젊은 리카르도를 존중하며 그의 질문에 답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지적인 향연에 관객으로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유익하고 흥미로워 몇 번이고 계속 읽고 싶었다. 그러면서 다독하는 편인 나에게 해묵은 질문을 한다. "너는 책을 왜 읽어?“
친구나 지인들에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독서야!"라고 대답하지만, 실은 "지식의 바다에서 유영" 하고 싶은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이 생에는 다 못 읽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종종 한다.
사실은 읽은 게 아니라 소비한 것이다. 작가가 평생을 고민하며 수없는 밤을 새워 남긴 글을 순식간에 소비하고, 내 시간도 내 삶도 소비하는 셈이다. 삶에 약간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내적 공허'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책만, 산책만, 산책만 하기. 그 길에 만난 풀과 나무와 바람, 오래 바라보기. 이것이 무위의 시간이다. 영감은 이럴 때 섬광처럼 나타날 것이다.
이 책 주제인 문학과 사회학의 사명,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잘 모르니 보이지도 않았다. 이런 인류를 저자는 소비시대 소비자라고 부른다. 이성적인 시민이 아니다. 책의 결론처럼 "인류의 근본적인 실존의 문제"를 늘 생각하며 책을 읽던, 영화를 보던 할 것이다.
'평소에 사용하는 말과 글이 곧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말은 개인뿐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의 말을 없애기 위해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일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팔순이 넘은 원로학자가 자기보다 30년 연하인 젊은 편집자에게 겸손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다. 그 겸손한 호기심이 60권이 넘는 저서를 쓰며 세상을 통찰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 밖에도 많은 지성인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무엇보다도 올바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는 바우만의 말처럼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며 적확한 단어를 쓰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mariakya?Redirect=Update&logNo=223617201381 |
![]() 문학과 사회학의 만남을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매’라 부를 만큼 중요한 이유를 말한다. 인간이 경험한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 가운데 문학과 사회학은 다양한 모델과 통계학과 데이터와 객관적 사실만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표현하거나 보여줄 수 없음을 말한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은유적이며 환유적이라서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다양한 모습과 성질들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문학이라는 장르는 책을 통하여 인간의 삶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오늘날 수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이 책은 두 저자가 30년이라는 나이의 간극을 비웃기라도 하듯 합이 매우 잘 맞는 연주자들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리카르도 마체오는 문학과 사회학은 ‘이차적 해석’의 활동이라고 말하면서 이미 해석된 것의 재해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대로, 문학과 사회학은 정말로 ‘자매’라는 주장에 힘을 보탠다. 그는 더 나아가 문학과 사회학은 그냥 자매가 아니라 샴쌍둥이 자매라고까지 한다. 이처럼 문학과 사회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공통체임을 다시 한번 주장한다. ![]() ![]()
이 책에서 특히 지그문트 바우만의 탁월한 통찰을 엿보게 된다.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시대를 거슬러 많은 질문과 더불어 시대상을 바라보게 한다. “연속과 불연속이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대립이라는 오랜 가정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세계 인식의 역사상 획기적인 분수령 중의 하나에서 본질적인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은 확률적 과정의 결과를 결정론적 성격을 지닌 과정의 결과로부터 분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운명론적 선택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다. 운명과 성격이라는 두 요인이 만나서 서로 변증할 때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것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네트워크 작동 방식처럼 우리에게 또 다른 대화의 기술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사실 책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읽으면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되는 기쁨을 누렸다. 저자가 이렇게 논지를 전개해가고 문학과 사회학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은 명작들을 언급하면서 깊이 있는 독서의 세계로 이끌었다. 현 시대의 조언이 그리 많지 않지만 이러한 책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말하는 그의 생각은 더 깊은 사색으로 이끌었다. 찬찬히 읽고 새겨볼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
|
세계적인 석학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들 속에서 그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문학이나 사회학은 결코 구분되어서 설명해야할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고 협력해야할 마치 샴쌍둥이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회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지그문트 바우만과 문학가인 리카르도 마체오는 그들의 나이차로 보면 30년의 긴 세월의 간극을 보여주지만 편지를 통해 보여주는 그들 사이의 공감과 동료애는 충분히 그들이 동지일수 있음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다고 할수 있죠. 현대사회는 인터넷시대로 모든 것이 직접적인 대면이나 만남보다는 간접적으로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가고 있어 더욱 개인은 파편화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편리해졌지만 감성을 찾아볼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존의 문제보다 물질의 가치에 대해 우리는 더 치중하고 있으며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이 두명의 석학은 주고받는 편지속에 우리가 근본적인 실존의 문제를 더 깊게 진지하게 다루어야함을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두 석학의 편지속에슨 수많은 작품들에 대해 자신들이 느꼈던 점들 역시 언급하고 있는데요. 워낙 지적사고와 독서에 근거한 두 사람간의 간접적인 대화라고 할수 있기에 우리가 그들만큼 깊이있게 그들이 나누는 지적대화에 참가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할 것들을 얻어갈수 있습니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작품속에는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고 작가가 천착하고자하는 이상사회라든지 현실에 대한 문제점 비판이 들어있다고 할수 있죠. 사회학 역시 사회 현상의 문제를 구조적을 분석하면서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더라도 문학과 사회학의 거리는 결코 먼 것이 아닌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존재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문학예찬>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 두 사람이 편지로 나누 대화를 엮은 거에요. "문학과 사회학의 연결과 협력은 그 이상입니다. 문학과 사회학은 편제상 분리되어 있지만, 실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 긴밀히 협력합니다." 주제가 넘 어렵다구요?! 긴밀히 협력된 문학과 사회학을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이야기해주고 있어 흥미진진해요.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이 주고 받는 편지들, 바로 담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담론 속에서 산다" 이 문장이 와닿네요. 담론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또 반성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 두 사람이 편지로 나누 대화를 엮은 이 책은 특별하네요. 책을 읽다보면 더 특별하게 와닿는 부분이 있잖아요. '문학을 통한 구원'이랑 '교육, 문학, 사회학'이 제 눈에 제일 띄더라구요. " 아피나티의 부모는 두 분 모두 고아이고 문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피나티는 부모님의 도움없이 시장 가판대에서 싸게 파는 책들을 직접 사서 읽으면서 문학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맨 처음 읽은 책은 헤밍위에였습니다. 헤밍웨이는 모험의 짜릿함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 푹 빠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소년.소녀들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런 소년.소녀들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 프란치스코 교화도 교사였습니다. 1970년대에 그는 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비틀즈의 노래를 연주하는 밴드의 결성을 후원했고, 여성들에게 대학이 주최하는 연극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함께 창작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문학이 어떻게 진정한 구원의 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맞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끼리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사회학과 문학 모두 안고 있는 문제이죠." 사회학과 문학 모두 안고 있는 문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갸느냐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날의 액체 현대 같은 단계들이 서로의 단계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서로 공존하는 것이지, 서로 분리되어 있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서로 분리되어 있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서로 공존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의 모습이 바로 '팔림프세스트' 같았어요. 발전/생성하는 것의 모든 스냅 사진은 말하자면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팔림프세스트 같은 것입니다. 팔림프세스트를 이루고 잇는 많은 층 중에서 전에 쓴 글자가 완전히 지워진 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위의 칠 밑에 완전히 겹쳐진 상태로 숨어 있거나 새로운 칠을 했는데도 비쳐 보입니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팔림프세스트는 또 다르게 말하면 인간 고유의 세계-내-존재 방식에 반드시 필요한 사교 기술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는 이 사교 기술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어요. 평소에는 안타깝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심각한 수준이더라구요. "개인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데서 우리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개인의 경험은 우리가 구매하는 상품 - '완벽한' 데이트, '완벽한' 생일, '완벽한' 결혼 등 -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신감이나 개인의 자율성 그리고 우리가 행사하는 전례 없이 광범위하고 다양한 개인의 자유는 손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문화와 삶의 지속에 반드시 필요한 전달이라는 기적이 갈수록 드문 일이 되고 있대요. " 전달은 결코 복사가 아닙니다. 전달 때문에 사람은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전달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꼭 필요한답니다. 유산이 없이, 안내자 없이, 타인들의 목소리 없이, 중요한 메세지 없이,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겠습니다? " "과거의 위계질서는 그 시대의 논리로 인한 약점이나 결함이 있을 수는 있었지만, '위대한 작가'는 여전히 어떤 위대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기만 하면, 그 위대한 지식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서점 주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 가져갈 책을 고르기 위해 주석들을 비교할 만큼 책에 대한 신중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오늘날에는 효울적으로 전사화된 만큼 동시에 비인간화된 대형 유통 체인에 밀려 독립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고, 우리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지식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책을 읽다보면 질문에 답을 찾아보게 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요. 우리는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야 해요.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는 현대 속에서 과거의 것으로만 치부하고 있었던 것은 없었는지요. "우리 문명의 문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그만두었다는 데 있다." 우리 시대가 직면한 난제는 결국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한 등한시나 거부 혹은 학습된 무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기술은 쇠퇴하고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
|
처음에 책을 읽는 것은 마치 남극에서 불을 붙이는 것과 같다. 최초의 독서는 책과의 친밀함을 데우지도 못하고 불 피우지도 못한다. 나에게 딱 맞는 말이다. 최초의 독서의 불꽃은 곧 이런저런 일상에 묻혀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서평단 마감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밀함도 없던 독서를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각의 글쓰기 온도는 0도였다. 처음에는 솔직히 '재밌었다'밖에 쓸 말이 없었다. 그다음에는 책의 내용을 거의 다 베끼고 내 의견을 한 줄 정도 적었다. 지금은 내 생각이 몇 줄 더 늘었지만 아직 서평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되는 부분이 조금 생겼다는 것이 엄청 뿌듯했다. <문학 예찬>은 서로 협력해야 할 문학과 사회학의 관계에 대해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이탈리아의 리카르도 마체오가 주고받은 편지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인데, 나도 단순하게 읽는 행위라면 잡지책은 많이 읽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생각을 하면서 읽은 적은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독서 예찬이라고 하지 않고 문학 예찬이라고 한 것 같다. 탁월한 문학 작품을 위주로 설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말은 수많은 광고 전단의 문구로 전락했고, 말이 점차 쇠퇴하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하면 이 기만적이고 위험한 장난감 나라로 언어를 끌어들이고 있는 이 거센 소용돌이에서 언어를 해방시킬 수 있을까? 정말 똑같은 말인데 어쩌면 이렇게 어렵게 표현을 할 수 있는지 존경스럽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소리가 음악 창조의 일부이듯, 언어는 개념 창조의 일부라고 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마르셀 프루스트나 케이티 페리나 라캉이나 모두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중요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학 작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거나 뭉클한 감동이 느껴질 때인 것 같다. 과거와 미래라는 비실재야 말로 물속의 물고기처럼 담론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붙잡고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실재다. 과거와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 이 비실재적인 실재를 경험이라고 한다. 경험과 체험이 같은 말인 줄 알았는데, 경험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고 체험은 우리가 그 일을 어떻게 겪고 버텨 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체험학습이라고 하지 경험학습이라는 말이 없나 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조금의 변형도 거치지 않은 있었던 그대로의 선험적이나 경험적 실재는 환상이라고 하는 것 역시 기억이 왜곡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미래는 상상으로만 존재하니까. 로베르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 학교>라는 작품의 주인공은 야콥이다. 그는 하인 학교에서 지배자와의 싸움에서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간단하게 행복에 이른다.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욕구하고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집안일을 싫어하는데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 이 일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원해서 하는 일로 만들고 그 일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면 더없는 행복에 이른다. 아디아포라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신경 쓰면 피곤하니까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려면 중요하지 않은 일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하고 싶어서 하면 된다. 한용운의 복종이라는 시에서도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라며 내 스스로 원해서 하는 복종을 자유보다 달콤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복종하기 싫지만 마음을 비우고 복종해 보자. 하기 싫은 공부도 즐거워지지 않을까? 어차피 학생들은 공부하는 게 의무니까. 복종해야만 하니까. 매우 어려울 것 같지만 인생 마음먹기 나름이다. 반면 알베르 카뮈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라고 했다. 야콥도 하인 교육을 받으면서 어떻게 말도 안 되는 명령과 상황에 열받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반항할수록 본인만 더 고통스럽고 힘들어졌다. 그래서 불공정한 명령에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다. 진심으로 기꺼이. 그리고 그는 복종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문학을 예찬하는 이유는 내가 이렇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옛날에는 대학 나오면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정년퇴임까지 고체처럼 세상이 탄탄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액체처럼 유동적으로 흐르고 빠르게 변한다. 이렇게 불안정한 세상을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현대라고 부른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앞지르는 것이 성공이다.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사람이 아닌 스크린과 보낸다. 짧은 메시지 교환에 숙달된 사람들은 갈수록 대화의 기술을 상실한다. 사교 기술은 사라지고 친밀한 인간관계도 줄었다. 소속감과 유대감도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지루한 자아의 발견보다 진정한 자아로부터의 도피에 있다. 자신을 파고들기 보다 자신을 다른 존재로 변신시키는 것에 더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가라오케 문화가 생겼다. 일본어로 가라(空)는 비었다는 뜻이고, 오케는 오케스트라의 약자인데 이 둘을 합쳐서 실제 오케스트라 없이 녹음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노래방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 그러나 늘 과한 것이 문제다.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자신의 버전으로 부른다. 소통보다는 개인의 즐거움에만 빠지게 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1위는 만화이고, 2위는 소설을 각색한 책이다. 우리는 이해하기 쉽게 정리된 손쉬운 해결책과 전문가들의 짧은 조언을 듣는다. 우리나라에서 웹툰이 인기가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휴대폰 소설(携?小?)이 인기다. 어쩌면 문학이라고 부르기 힘든 문학만이 출판 시장에서 살아남게 될지도 모른다. 작은 아씨들은 작은 뱀파이어 아씨들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좀비 나라의 앨리스로 바꾸어서 말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앨런 커비(Alan Kirby) 교수는 이런 사이비 문화를 '사이비 모더니즘'이라고 한다.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단순하고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표현을 반복해서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저하시킨다. 가치도 감성도 빼앗기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믿음도 없게 된 세계에서 워너비, 도플갱어, 닮은 꼴, 아바타 등이 만들어 낸 사이비 문화라는 얄팍한 현상은 사회학자에게 흥미와 우려의 대상이다. 세컨드라이프라는 가상 현실 플랫폼에서는 사용자들이 아바타를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린든 달러라는 가상 화폐로 사용자들은 아이템과 서비스를 판매한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는다. 아무런 위험도 없는 편안하고 안전한 세계다. 에피소드가 맘에 안 들면 다른 에피소드로 가면 그만이다. 나의 아바타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우리의 판타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액체 현대를 구성하는 유일한 요소는 선택이다. 나도 홈페이지에 가봤는데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았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근본적인 실존적 문제를 다시 공적 의제로 만드는 것이 문학과 사회학의 공동 소명입니다. 이런 문제를 찾아 제시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사회학은 일치합니다. 둘은 서로 보완하고 끊임없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p.265) 문학과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방향을 제시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줄 수는 있다고 본다. 내가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생각이란 것을 단 한순간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바우만은 문학과 사회학은 운명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같은 일을 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다. 상상력과 분석이야말로 사회학과 문학의 공통된 운명이라고 한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사회학은 문학을 통해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한다. 문학과 사회학이 상호 보완해 간다면 우리의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이다. 결국 이것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받는 것에서 주는 것으로, 파괴에서 창조로, 상점에서 사랑과 일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로 유명한 주제 사라마구는 "태초에 이 세계는 그저 현상이었고 표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보이는 대로 존재했습니다. 신은 우주의 침묵이고 인간은 그 침묵에 의미를 부여하는 외침입니다." 라고 했다. 신의 의미이자 외침인 인간으로서 오늘 지금이 순간 최대한 행복하자. ♥ 인디캣 책 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문학 예찬』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가 편지로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책의 부제는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이다. 21세기 사회학 거인 바우만과 소설가 마체오는 ‘악명 높은 논쟁거리, 즉 문학(그리고 예술 전반)과 사회학(과학적 지위를 주장하는 인문학의 한 분야)의 관계’(p9)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다. ‘유동성’의 사상가 바우만은 문학과 사회학은 적대 관계는커녕 경쟁 관계에도 있지 않으며 이 둘은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우만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소설가와 사회학자는 우리 세계를 서로 다른 시각에서 탐구하고 상이한 유형의 ‘데이터’를 찾고 생산해 내지만, 그 생산물에는 같은 원천에서 나왔음을 보여 주는 명백한 흔적이 담겨 있다’(p17-18)고 말한다. 바우만은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협력할 경우에만 인간 조건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저서로 리카르도 마체오와 주고받은 총 24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우리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사상가 바우만은 이 책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우먼이 서문에서 설명한 문학과 사회학의 관계는 이 책의 첫 번째 대화 <1. 두 자매>로 이어진다. 마체오는 '오늘날 우리는 현란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지만 사실은 공허하고 생명 없는 말들을 배가 터질 정도로 강제로 폭식당하고 있다'(22페이지)라고 말한다. 이미 분신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으로 24시간 동안 온갖 말들에 침식당하고 있지만 어째선지 나는 나의 삶을 온당하기는커녕 적당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온갖 매체에서 온갖 분야의 유용한 말들을 해대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공허하다. 나는 이러한 말들에서는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찾을 수 없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처드 로티, 마사 누스바움, 휴 드레이퍼스 등 많은 이들은 우리의 대화를 내가 읽어보지 못한 문학을 지팡이 삼아 시작했다. 나는 뭉툭한 나의 사고로는 결코 파악하기 힘든 이 세상을 그들의 언어를 거쳐 조금이라도 빨리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왜 읽지 않는 문학 작품 때문에 책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나의 읽기에 먼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음을 느꼈다. 한참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소설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온갖 사상가들이 논했던 담론들이 소설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상가들이 말했던 사회적 조건과 시공간의 우연성이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주인공들을 통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상가들의 언어는 인식적 이해를 넘어선 체험이 되어갔다. “ 문학과 사회학은 정말로 '자매'입니다. 더 나아가 문학과 사회학은 그냥 자매가 아니라 샴쌍둥이 자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양분의 공급 기관과 소화 기관을 공유하고 있어 외과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쌍둥이 말입니다. 자매로서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 경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샴쌍둥이 자매로서 문학과 사회학은 운명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같은 일을 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__지그문트 바우만 두 사람의 대화에는 바우만의 주요 저서들과 사상을 비롯하여 세상의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찢어내고자 시도한 사상가들과 이 베일을 그려냈던 문학작품들이 계속하여 등장한다. 이 책은 300그램이 채 안 되는 B6 크기의 작은 크기지만 책의 밀도는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높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
![]() ![]() ![]() 문학과 사회학은 샴쌍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저서인 이 책은 액체 현대의 인류를 위한 세계적 석학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가 편지로 나눈 최후의 대화를 엮은 이 책은 '문학과 사회학의 관계'라는 아주 논쟁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논평가들이 문학과 사회학을 근본적으로는 다른 분야로 보았다면 바우만과 마체오는 이 두 분야가 공통의 목적과 주제로 함께 묶여 있다고 주장하는데 저도 문학과 사회학은 어찌보면 꼭 닮아있고, 닿아있는 샴 쌍둥둥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문학과 사회학은 연구 방법과 결과를 제시하는 방식에서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문학과 사회학의 목적 면에서는 서로 보완적이고 그래서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됨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잘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세계적인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저서라는 점 문학과 사회학의 다면적 관계를 추적하고 규명한 책이라는 점 문학 작품과 바우만의 주요 저서를 소개한 입문서라는 점에서도 아주 매력적인 이 책을 한 번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