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면적 안정과 도덕을 버리고 내면의 열망을 좇아 타히티로 떠난 화가 스트릭랜드의 강렬한 삶. 그의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숭고한 헌신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인간의 욕망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던지는 매혹적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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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능
나: (당신이 노력한다 한들, 기껏해야 삼류화가일 뿐입니다.) 스트릭랜드: 사회적인 동물로서 인간의 삶의 길은 다양하거나 열려있지 않다. 우리를 품고 있는 이 사회와 세상은 대부분 우리의 삶의 길을 넓히기보단 좁히고, 가볍게 하기보단 무겁게 만들며, 가능성을 제시하기보단 제한하는 경우가 더 많다.
2. 사랑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에 찬 것이며,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위선이 숨겨져 있고, 고결한 정신 속에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숨어 있는지, 또 사악한 마음 속에는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깃들어 있는지, 그 무렵의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p62) 더크 스트로브는 참으로 모순된 인물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책 속의 표현처럼 그저 '광대'같은 인물이라 생각했다. 다음 번 읽을 때는 의문이 들었다. '이 선량한 사람에게 일어난 그 모든 고통과 비극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작가는 왜 이 인물을 끊임없이 조롱하며 결국엔 파멸에 이르게 만든 것일까? 나는 그 비극의 씨앗이 더크 스트로브와 블란치의 관계 속에 있다고 본다. "여보, 난 당신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요. 그런 대접을 받고도 당신은 화가 안 나는지, 그 사람 그림을 그렇게 좋게 말하다니 정말 모르겠군요." p111. 이 대사에 대한 블란치 스트로브의 표정이나 태도가 묘사되있진 않다. 그저 애정어린 투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후 냉혹하게 더크 스트로브의 차갑게 버린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진심에 대한 완곡하게 표현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외에도 그리 많지 않은 블란치의 대사들이 종종 나타난다. (블란치가 싫어하는 스트릭랜드를 집으로 데려오겠으며, 그 간호는 블란치가 해야한다고 더크가 블란치에게 말함) "비록 그림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도 최소한 예의쯤은 지켜야 할 것 아니에요. 그가 당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보란 듯이 겉으로 나타내는데 당신은 마치 강마지처럼 그 사람 손을 핥고 있잖아요. 난 그런 사람은 정말 싫어요."(p144) "제발 부탁이에요. 나 좀 그냥 내버려두세요. 이러다가는 당장 미쳐버릴 것 같아요"(p145) 그녀의 간곡한 이야기들에 대한 더크 스트로브의 태도는 한결 같다. 그녀에 대한 부정과 무시였다. "당신은 몰라서 그래."(p111) 더크는 타인의 말을 듣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부잣집 아들의 아이를 임신하고 배신당한 블란치를 자기가 구해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크는 사실상 블란치를 자신의 소유물로서 생각하고 있었던 건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생판 남인 스트릭랜드를 위해 자신의 전부인 블란치에게 이런 말을 할 순 없었을 것이다. "당신도 언젠가 몹시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받아 본 경험이 있었잖소.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당신도 잘 알 거요. 기회가 있으면 당신도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싶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소?"(p147) 더크는 이 말 한마디로 블란치는 자신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동시에 교활하게도 블란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다시 더크의 말들을 읽으면 그 말들이 블란치에게는 얼마나 소름끼는 것이었을지 짐작되기도 한다. 그녀는 저항하지 못한다. '아니 창백해진 정도가 아니라 죽은 사람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손까지 하얗게 변했으며 온몸이 파르를 떨렸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아내를 안으려고 했으나 그녀는 그를 피했다.'(p148) 나는 블란치가 불행했을 것 같다. 물론 처음에 다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건실한 화가에게 어느정도의 애정과 감사가 뒤섞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관계에서 지속된 완곡한 표현의 부정과 무시는 그녀에게 끊임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사람들의 시기어린 뒷담화와 조롱을 다 견디면서도 항상 사람들을 돕던 더크 스트로브인데, 왜 그토록 아내 블란치의 심적 고통들에 대해선 무관심했던 것이었을까? 항상 조롱을 받던 그였기에 블란치가 받는 마음의 상처도, 그러려니 했던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대부분들이 다 논리적 비약을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었던 것 같다. 가장 단순한 결론은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잘 낫지 않고, 앙금처럼 마음 속 심연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다 마음 속 바닥까지 뒤집어지는 큰 심적 혼란이 발생하면 싸였던 그 모든 앙금들이 전부 일어나 온 마음 속을 그 뿌연 가루들로 전부 채우고야 만다. 더크 스트로브는 상처받은 마음을 예술에 대한 이상화를 통해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자신이 가진 전부나 다름없는 아내도 보지 못하고 천재라든지, 위대한 작품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그리도 집착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처음 책을 읽을 땐, 블란치의 죽음 역시도 의아했었다. 스트릭랜드와 만났다고 하기도 애매할 만큼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자살을 하다니.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이해가 된다. 그녀에겐 스트로브에게 돌아가는 것 말고는 그 사회 속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모든 걸 버리고 스트로브와 같이 살던가, 최소한의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스트로브와 벼랑끝의 블란치의 사랑의 결말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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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고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고전을 읽다 보면 작가와 나, 그 시대와 나의 세대차이를 느끼면서 항상 뭔가 불편했었다. 하지마 달과 6펜스는 읽기도 편하고 적지 않은 페이지 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소설이라 그런지 진도가 느리지 않았다. 책에서는 당연히 그 시대를 반영하기에 어쩔수 없는거지만. 참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ㅋ) 하지만 소설 그 자체로만 보았을때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데, 그래서, 그렇게 어떠한 형태로든 살았을때 나는 행복했을까?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많은 이유 중에 나는 어떤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달과 6펜스.. 그 가치가 다르다고는 못할거 같다. 나에게 모두가 소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