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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난독증이거나 ADHD 인가를 의심했다. 책이 지루해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읽어내는 편인데 도대체 더블린 사람들은 잘 읽히지도 않고 진도도 못 빼고 그러다 보니 손이 더더욱 안 갔다. 앞에 읽은 걸 기억하고 있어야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계속 읽을 수 있는데, 이 책은 어제 읽은 게 오늘 기억이 안 났다. 안 그래도 안 읽히는 데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스스로가 수준이 낮다는 자괴감마저도 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제임스 조이스는 세계적인 문호로 불리는 작가인데다 작가들이 존경하는 작가들의 작가라는 대문호 아니던가. 유명하다고 해서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칭송해야 한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다만 그만큼 유명할 때는 반드시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일 텐데 도저히 그 지점을 못 찾겠기에 답답했다. 읽는 내내 책 속의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보면서 답답하다, 무기력하다, 이런 걸 순박하다고 하는 건가 모자란다고 해야 하는 건가 등의 뭔가 정체돼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에 나의 진도도 잦은 정체를 겪으면서 겨우겨우 꾸역꾸역 끝내 읽기는 다 읽었다. 얇은 편에 속하는 책을 읽는 데 두 달이나 걸렸다. 그러다 이 책의 마지막 편인 "사자(死者)"에서 그것도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가브리엘이 나였고 내가 가브리엘이었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죽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은, 아는 줄 알았는데 아는 게 아닌. 세상의 모든 감정과 행위들을 한데 묶어서 표현하자면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닌. 그게 가브리엘이었고 더블린 사람들이었고 알고 보니 나였다. "사자(死者)"를 읽고 나니 답답했던 "더블린 사람들"의 모든 단편들이 여러 개의 먹거리를 꿰면서 관통하는 꼬치 요리의 꼬챙이처럼 그 정서와 감정들이 한 번에 쭈욱 관통하면서 이해가 됐다. 이런 작품을 쓰겠다는 작가의 의도에 존경심마저도 들었다. 내가 느낀 바로 <더블린 사람들>은 잔재미가 있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지루할 수 있다. 책에는 어려운 어휘는 전혀 없다. 복잡한 감정 묘사 같은 것도 없다. 그러니 문장 자체는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는 글이다. 큰 사건 사고나 뚜렷하게 문제 될 것 없는 하찮을 수 있을 누군가의 일상을 보면서 그들 각자의 감정을 독자가 스스로 느끼면서 찾아야 한다. 게다가 작가는 인물들의 감정을 이해시키려는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더블린 사람들>의 가치이지 싶다. 내 생각에는 책에 작품 해설이 실려있다면 그걸 먼저 읽고 작품을 접하면 내가 느꼈던 정체감 같은 건 덜 느끼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번역자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 같은데 다른 건 안 봐서 함부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내가 읽은 출판사의 것은 추천하지 않겠다. 한국어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너무 오래된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어색한 느낌에 읽다가 봤더니 초판이 1977년이었다. 가장 최신의 다른 출판사의 것을 다시 한번 읽어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