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해전에 이승은, 혀현선씨의 '엄마 어렸을 적에'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연탄을 새끼줄에 메어서 두장씩 들고 오는 장면이며, 옛날포스터, 대포집, 겨울철 교실의 모습, 빨간내복과 집안의 벽 위쪽 한켠에는 어느집에서나 볼 수 있는 액자하나에 무수하게 든 사진들, 푸른색셔츠를 입고 머리엔 손수건같은 것을 쓰고 있는 공장누나, 언니 들의 모습, 다 찌그러진 원통의 철재 물통을 들고 서서 우물인지, 물을 대는 차가 온 것인지..거기에 줄을 주욱 서있던 모습, 할머니가 등물을 쳐주던 모습, 지하 배수관으로 쓰일 시멘트로 만들어진 원통의 구멍안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모습, 그 모든 것 중 과연 내가 실제로 살아오면서 체험한 것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을 옆에서 보았던 그런 시기는 지나 온 것이었다. 그런 내가 인형으로 만들어진 모습일지라도 보면 추억의 한 장면 한 장면들이 생각이 나는데 그것을 직접 체험했던 어른들에게서 그 전시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김주영의 '젖은 신발'을 보면서 사진작가와 김주영씨가 실제로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작가의 사진 한 장, 한 장은 지난 날의 잊혀진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게 하는데 충분(모두가 그렇게 쓸수는 없다고 하더라도)했고, 그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그 모든 일들은 시간이 흐른뒤에 또다른 의미로 개개인에게 남겨지고 더러는 감사하고, 그리워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단순히 육체적 성장이라 할지라도 어른이 되어 그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일은 그래서 누구에게든 기쁜 일일 것이다. 서론이 장황했던 것은 바로 이 영화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공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영화. 아직 그의 스타일을 포착하기엔 단지 '환상, 꿈' 혹은 '네오리얼리즘' 의 스타일과 그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영혼'에 관한 것과 '인간의 욕망' 에 관한 것만 줄잡고 있던터였는데 어제 본 영화 '아마코드'는 그가 자주 영화속에서 함께 하던 배우들 외에는 지금까지 본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 영화가 발표 될 당시에도 사람들은 펠리니가 다시 이전의 자신의 영화세계로 돌아왔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카사노바>나 <여인의 도시>에서 처럼 정치적인 성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을 하였다. 영화는 펠리니의 어린시절의 추억을 담은 자전적인 영화이다. 그 영화속에는 너무도 개성이 뚜렷한 종교, 수학, 역사, 외국어 등의 선생님들의 모습, 막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소년이지만 여전히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반바지를 입히며 보호가 필요한 아이로 보는 것, 마을 사람들로부터 모든 환심을 사는 여인에게의 관심, 그리고 자신들은 들어갈 수 없는 무도회장을 엿보는 모습,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 학교를 방문하자 마스게임을 하고 그를 위한(환영한다는 표지로) 거대한 초상을 꽃으로 장식한 것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탈리아가 만들 거대한 타이타닉 같은 배가 자신의 마을을 지난다는 것을 알고 적은 배를 다 나눠 타고 밤이 가도록 그 배를 기다리는 장면은 펠리니가 말한 당시의 이탈리아의 정치적인 상황을 잘 보여준다. 거대한 배를 보고 그들은 그 장황함에놀라고 환호를 하지만 정작 그 배는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 여전히 가던 길을 간다. 마치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그런 거대한 물줄기는 소수의 지배자들이 만들어 낸 소시민드로가는 관계없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티타(펠리니의 어린시절의 모습으로 선저오딘)의 아버지를 통해서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성실함으로 사장이 되었다. 그는 그저 그런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민이지만 어느날 파시스트 들에게 잡혀 거짓진술을 강요받고 결국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그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은 시는 이러하다. '우리 할아버지는 벽돌을 구웠다네.. 우리 아버지도 벽돌을 구웠다네.. 나도 벽돌을 굽는다네.. 그러나 우리집은 어디에..." 그런 시를 함께 들으며 티타의 아버지는 열심히 하면 집을 얻을 수 있을거야. 나도 그랬다네 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런 성공신화(myth)는 사라졌다고 '거세된 희망'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 외에 자신의 삼촌이 정신병을 앓고 있던 모습도 그의 기억속에는 남아있다. 그는 이제 어린아이에서 사춘기 소년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어머님의 죽음으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이라는 것을 거치게 되면서 그의 삶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지겨운 겨울이 끝나감을 민들레 홀씨가 온 마을에 찾아들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불꽃놀이를 통해 겨울을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영화의 마지막 다시 어머니를 보내고 바다에 잠시 머문다. 그래..바다.. 나 또한 바다를 보니 바다같이 넓은 어머님 마음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다시 민들레 홀씨는 날아오고... 펠리니의 어린시절은 우리의 어린시절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렇게 개별적이고 유일성을 가진 개개인에게 원초적으로 내재된 개개인이 겪게 될 일들을 갖게 함으로서 동질성도 느끼게 한다. 그것은 마치 융이 '집단무의식'이라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일정한 정도의 공포심이나 두려움, 우리를 '휴먼'이라고 집단적(그로 인해 왠지 더 편안한)로 부를 수 있는 것처럼, 그런 것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다. 어제 같이 본 언니랑 나오면서 사실 자전적인 영화이긴 하지만 저 영화속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캐릭터에 신경을 쓴 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참으로 즐겁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