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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이 슨 칼로 베이는 상처
"녹이 슨 칼로 베이는 상처" 내용보기
척 팔라닉의 소설은 늘 두근두근하다. 자자, 이번엔 또 어떤 심연으로 나를 이끄시렵니까. ''다이어리'' 는 제목 그대로 주인공의 일기이자 식물인간이 된 남편 피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리고 웨이텐시 섬의 저주 혹은 축복의 기록이기도 하다. 팔라닉의 ''질식'' ''서바이버'' 에 이은 세 번째 본격 공포소설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팔라닉의 소설들은 모두 ''공포스럽다'' 라고
"녹이 슨 칼로 베이는 상처" 내용보기
척 팔라닉의 소설은 늘 두근두근하다. 자자, 이번엔 또 어떤 심연으로 나를 이끄시렵니까. ''다이어리'' 는 제목 그대로 주인공의 일기이자 식물인간이 된 남편 피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리고 웨이텐시 섬의 저주 혹은 축복의 기록이기도 하다. 팔라닉의 ''질식'' ''서바이버'' 에 이은 세 번째 본격 공포소설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팔라닉의 소설들은 모두 ''공포스럽다'' 라고 느껴져 굳이 이렇게 구분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더럽고 깊은 곳에 도사린 어둠을 불친절한 문장들로 끄집어 내는데 팔라닉을 따라갈 자 누가 있으랴. 녹이 슨 식칼로 깊숙히 베이는 상처, 더러운 주사기로 팔에 구멍을 내는 마약과도 같은 그의 작품들. 한 치의 틈새도 허용치 않는 냉소의 주먹과 그 어둠의 긴장감은 역시나 이번 작품에도 여전한 매력을 발한다. 물론 서바이버나 질식과 같은 전작들에 비하면 강도는 조금 순화되어 얼굴을 움찔거리게 되는 상상의 시각적 충격은 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섬과 섬 사람들의 아래에 ''무언가 있다'' 라고 자연스레 의심하게 되는 순간, 마네킹의 미소가 무서워보이는 그 순간과도 같은 섬뜩함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평화로운 휴양지로 포장되어 있는 웨이텐시 섬, 주인공 미스티가 더러운 트레일러에서 꿈꾸던 화려함과 포근함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그 섬이 실은 거대한 괴물이었음을 우리는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소름돋으며 목도하게 된다.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못알아먹을 신변잡기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점점 후반부로 갈수록 그 공포스런 형체를 드러낸다. 희미한 안개같았던 의구심들이 하나의 뚜렷한 형태로 독자를 덮쳐온다.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이 재능이란!) 이곳 저곳의 서평은 이 책을 ''예술이 곧 금전'' 이 되는 현대의 예술에 대한 독설로 해석하고 있다. 나 역시도 ''다이어리''를 읽고 떠올린 것들 중의 하나는 예전에 이글루에서도 돌아다니던 예술과 쓰레기에 대한 구분 테스트였다. 뒤샹이 설치해 놓은 화장실 변기는 비평가의 찬사와 예술가의 논리와 미디어의 힘을 입어 엄청난 금액으로 치환된다. 그러나 뒤샹의 변기와 우리집 화장실에 있는 변기 중 어느 것이 예술이며 어느 것이 쓰레기냐를 금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문장이 뒤샹의 예술에 대해 비하하는 의도를 가진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집의 변기도 ''내 수많은 고통과 어두움의 배설구''로써 기능하는 것이라며 미디어의 힘을 약간만 빌리면 꽤나 값나가는 예술로 돌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통을 자양분으로 하는 영감이 빚어낸 주인공의 그림 역시 미디어가 목도하는 가운데 일어난 집단적 스탕달 신드롬에 의해 ''예술'' 이 되었음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외부로부터 섬을 지켜낼 수 있는 자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돈벌이의 예술, 제조업 공장과도 같은 예술가의 몸. 그러나 이 예술에 대한 냉소의 메세지보다 더 끈질기게 나를 따라붙는 잔상은 ''집단적 광기'' 였다. 평화로운 섬 사람들의 얼굴 뒤에 숨겨진 음모와 광기. ''운명'' 으로 묶여진 주인공의 삶은 정말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집단적 광기로 인해 운명으로 묶여버린 것일까. 오컬트적 미신은 실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 인해 오컬트적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책은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명쾌한 해답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파울로 코엘료를 읽으면 된다) 그 어느 쪽이든 공포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f********k 2006.02.2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