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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정말 아이들 수 만큼이나 다양한 성향의 아이들을 만난다. 몇 몇 아이들은 기존의 학원에서 모두 손을 들었다고 할 만큼 현재 공교육 및 사교육에서 행해지고 있는 (아이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교육의 틀 안에서 괴로워한다. 다행히 이 아이들이 여기서는 웃기도 하고 재밌어하고, 때로는 힘들어하지만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모든 학원들이 영재교육을 표방하면서 특목고다, 경시대회다, 영재교육원 입학이다 하면서 또다시 아이들의 원래부터 타고난 재능과 잠재력을 사장시키고 있다. 교육이라는 것...education... 20년전 영어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그 어원분석...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내 교육철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ex의 줄임말. out(밖으로) + duc(duct의 줄임말. 끄집어 내다 의 뜻) +ation 즉, 교육이라는 것은 지식을 그 아이의 뇌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많은 잠재적 능력들을 밖으로 꺼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교육에 관한 잡다한 책들을 읽으면서 '누가누가 이렇게 했다더라' 그러니까 이렇게 따라하면 좋다. 라는 식이 아닌 진정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원칙적인 분석과 연구를 한 책을 언제부터인가 더욱 신뢰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현업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내 판단이 옳았음을 더욱 굳게 믿게 되었다.
이 책은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지도하는 [교사]라면 반드시 한번 읽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책이다. 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지도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들이 여러분의 자식이라면 아무리 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가르치는 고충이 있더라도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라는 환경. 학원이라는 환경이 아이들을 문제아로 낙인찍고 산만하고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학부모와 상담한다. 그리고 이 아이가 문제이니. 교사인 나는 책임이 없다는 면피를 주장한다. 교사, 선생님, 교수...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처럼 똑같이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많은 직업 중에 사회적 책임이 막중한 직업들이 있다. 법을 다루는 사람,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이 세 부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의미 이상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생명과, 신체적 정신적 구속과, 자아실현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직업들... 그 중 특히 교사의 역할은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의 미래 뿐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미래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교실에서 교사의 교수방법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그 시험들의 성적이 낮다고 해서 그 아이가 커서도 열등한 채 살아가지는 않는다. 여러분의 어릴적 혹은 중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을 되돌아 보라. 정해진 틀 안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반드시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성실히 노력한 사람은 학창시절에도 사회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다해 낸다. 이러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수업시간에 산만하고 교사의 지시에 (아주 예쁘게) 순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무릇 교사라면 이러한 아이들의 내면이 어떠한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지 더 연구하고 관심을 가지고 그 아이의 미래에 대해 애정어린 마음으로 교육에 임할 일이다.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읽기 바란다. 내가 가르치는 학급에 산만하고 내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나의 교사 권위가 무너짐에 그 아이를 눈꼽만큼이라도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아이가 있다면 이 책이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 당신이 따뜻한 참교육의 손길을 내밀수 있는 진정한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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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유전자라니? 대략 이런 류의 유전자를 말한다. 산만하다, 지겨운 것은 못 참는다,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다, 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몸이 아주 민첩하다, 끊임없이 넘쳐 흐르는 에너지를 자기도 다 감당 못 한다. 자기가 관심있는 것에 대하여 생각 할 때는 남말 안 듣는다. 그런데, 또 어떤 때는 하나도 안 듣고 딴 짓 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 한 것이지 다 알고있다. 그래서, 요즈음 이런 증세가 심한 아이들을 일컫는 용어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라는 명칭으로 불리고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있고, 많이 퍼져있는 상식으로는 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학교 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기가 쉽고 "품행장애"를 야기한다는 것. 품행 장애는 곧, 반사회적 장애로 비행청소년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약물치료를 하고 행동수정을 해서 얌전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이 아이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처방이었다. 이 책을 쓴 톰 하트만은, 이러한 생각을 뒤집자고 말한다. 자극에 민감하고 활동적이고 창조적이고 늘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이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약물에 의한 치료일까. 그렇게해서 얻게 되는 것보다 잃게 되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것. 하트만은, 인간의 조상은 본래 유목민이고 사냥꾼이었는데, 농경을 시작하면서 정착을 했다. 정착을 한 농경민들은 정착하여 살기에 적합하도록 진화를 하였다. 씨을 뿌려서 거두어서 먹기까지의 기나긴 농사의 기간동안 기다릴 줄도 알아야했고,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수고하고 일을 해야 하였다. 그 일들은 지루하고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농경민의 삶을 거부하고, 사냥꾼의 본래 속성을 버리지 못 한 조상들이 있었다. 그들의 피가 지금의 에디슨 유전자라고 보면 된다. 그러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돕기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루고있는 책이 이 책이다. ADHD판정까지는 받지 않더라도 아이가 산만하여 감당이 안 된다고 말하는 부모들은 많다. 또 학교의 획일적인 교육방식에 적응하지 못 하는 숱한 부적응아들이 우리 주변에 흔히 있다. 20세기적인 사고를 하는 부모들과 교사들은 문제를 아이들에게 돌리지만, 실은 우리의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트만은 말한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몇 시간씩 한 자리에 단정하게 앉아서 한 시간이나 두 시간만에 과목을 바꾸어 가며 공부하는 방식을 유일한 교육 방식처럼 여기고 있지만 현실 세계의 직업 가운데 그건 교육제도에 잘 적응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 119쪽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과 같이 학교에 가서 종이 치면 수업을 시작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과목으로 넘어가는 식의 방식이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 의무교육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민중을 잘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몇 가지 방법이 도입되었는데, 우선은 종이 치면 수업을 시작하고 다시 종이 치면 끝나는 방식이었다. 다음으로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해도 됩니까?"라고 선생에게 물었어야 했다는 것. 그리고, 선생은 가르치고 아동은 앉아서 듣는 방식을 도입한 것, 일정시간마다 다른 과목을 강의하는 규칙을 만들어낸 것. 등등. 그래서 어른들이 기억 할 것은 부모든 교사든 너무 많은 책임감을 느끼지 말 것. 열성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느낄 것. 우리는 느끼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 책 속에는 말레이시아에 살았다는 "승오이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얘기가 나온다. 이 부족은 상당히 영적이었는데, 예언의 꿈을 꾸며 고요히 있는 것으로 느끼고 배우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한 사례가 나오는데, 승오이족을 연구하는 학자가 어느 때에 승오이족의 젊은이 한 사람을 데리고 바다가 있는 곳에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젊은이는 새벽에 일어나서 바닷가에서 두시간여를 서 있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었던 자기 민족에게 바다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설명을 하더라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바다를 잘 이해했냐고 물었더니 바닷가에 서 있었더니 누군가가 나타나 말을 해 주었다고. 그래서, 배운다는 것은 느끼는 것이고, 그것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이것은 몬테소리 교육을 창안한 몬테소리 여사가 한 말이다. 책 속에는 자발성에 기초한 교육의 한 모델로서 몬테소리 교육과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학교가 나온다. 특히, 많은 대안학교와 홈스쿨링이 슈타이너등의 자유학교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에디슨 유전자를 지닌 아이들에는, 자아를 존중해주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적절한 운동은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자기 조절 능력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좋은데, 저자는 걷기를 아주 좋은 운동으로 추천한다. 꾸준한 걷기를 통해 우울증을 치료 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걷는 동안은 생각도 하지 말고 주위의 사물들에만 관심을 갖도록 하게. 걷기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네. 많이 걷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게 유럽 사람들은 말을 길들여 탈 줄 알게 된 것을 무슨 인간 문명의 대단한 발전이기나 한 것처럼 자랑스러워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인간이 말을 타게 되면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네. --제퍼슨-- – 155쪽 참, 제퍼슨은, 말을 타게 된 것에 대하여서도 이렇게 말을 하는데, 지금의 자동차 시대를 보면 무슨 말을 할까. 또 하나, 에디슨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에게 뿐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나쁜 것으로 텔레비전을 들 수 있다. 하트만에 따르면, 텔레비전은 중독성이 강하고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놀이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에디슨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에게 아주 나쁘다고 한다. 에디슨 유전자를 가졌든, 어떻든, 지금의 교육제도는 다양한 형태의 부적응아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비합리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부모인 우리가 해 줄 일은, 아이들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아이를 믿고 지켜 봐 주는 것이다. |